리딩 크리스천 블로그 사용법입니다

레이블이 감사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감사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26년 4월 13일 월요일

독서 묵상 (68) 감사하는 뇌가 인생을 바꾼다 - 험담은 나의 인생을 망칩니다.

 



과학적인 결과를 바탕으로 한 저자의 주장은 상당히 충격적입니다. 누군가를 지목해서 험담을 할 때, 말하는 사람의 뇌는 마치 자신에게 그 말을 한 것처럼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악한 말을 입에 담는 것은 사실 자신의 인생을 망치는 것임을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성경의 중심은 죄로부터의 구원과 영원한 생명이지만, 특히 언어에 대한 권면과 경고 또한 두드러집니다. 자기 이웃을 은밀히 헐뜯는 자를 멸하신다는 말씀이 얼마나 큰 무게를 가지는가를 새삼 깨닫습니다(시 101:5). 그러므로 삶의 변화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나 자신을 살리고 이웃과 공동체를 살리는 첩경은 험담을 멈추고 상대방을 격려하며 칭찬하는 것입니다. 

* '리딩 크리스천 독서 묵상' 모음
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2/10/blog-post_48.html

2026년 1월 26일 월요일

독서 묵상 (62) 리씽크 - 운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우주가 빅뱅에서 시작해 팽창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문제는 그 팽창을 누구도 스스로 조정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우리 중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결론적으로 현재의 우주가 존재하며 인류가 그 우주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자는 우리가 아주 운이 좋았기에 감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연히 만들어진 우주라면 감사할 필요가 없습니다. 운에는 인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끝을 헤아릴 수 없는 우주의 현실 속에서, 우리가 안전한 지구 안에 숨 쉬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결코 운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그 감사는 어디로 향해야 할까요? 성경은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한다'(시 19:1)고 말씀하십니다. 정직한 인간이라면 마땅히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 '리딩 크리스천 독서 묵상' 모음
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2/10/blog-post_48.html

2025년 11월 20일 목요일

독서 묵상 (46) 감사의 재발견 - 넉넉하게 베푸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주셨습니다

 



현대인들은 수고롭게 살아갑니다. 자신의 삶을 위해서 열심으로 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언뜻 보면 내가 가진 모든 것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큰 그림 속에서, 모든 사람은 겸손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 누리는 많은 것들은 사실은 나 자신의 수고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땅에서의 삶을 주셨습니다. 생각할 수 있는 힘을 주셨습니다. 따뜻한 마음을 주셨습니다. 가족과 건강과 풍성한 재물을 주셨습니다. 또한 이 모든 것보다 더 좋은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기꺼이 내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은혜로 살아가는 것임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 "리딩 크리스천 독서 묵상" 모음
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2/10/blog-post_48.html

2025년 7월 30일 수요일

네비큐티 (03) 당신이 '감당할 수 있는 시험만' 허락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 / 승리의 확신)

 


큐티를 하면 설교를 준비하는 것과는 또 다른 감각을 경험합니다. 물론 설교를 준비하는 것도 제 자신을 대상으로 놓고 준비를 하는 것이지만, 큐티는 훨씬 더 개인적입니다. 그리고 더 마음에 깊이 와 닿습니다. 

가장 중요하게 발견한 것은, 이 말씀 자체가 말세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위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 그리고 말세의 때는 시간의 중첩이 일어납니다. 지금이 마지막 때라는 것이 더욱 실감나게 느껴지고, 또한 언젠가 이 시간이 곧 반드시 끝난다는 그 절박함이 깊이 다가옵니다. 

그리고 과거의 죄악들이 말세의 시대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지금 시대가 마치 대단히 발전한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AI가 등장하고 과거에 누리지 못했던 기술과 부를 누립니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과 그 본질은 동일합니다. 우상 숭배, 음행, 주를 시험함, 원망, 이 모든 것이 저의 평생에 경계해야 할 것들입니다. 

'어떤 사람들과 같으니' 라는 부분이 처음으로 눈에 들어왔습니다. 여러번 반복되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어두운 시대를 살아갔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을 버린 것은 아닙니다. 분명히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고 그 길을 걷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의 시선을 어디에 둘 것인가를 생각했습니다. 인생은 짧기 때문에, 믿음으로 탁월하게 살았던 사람들에게 더 초점을 맞추고 싶습니다. 칼빈과 루이스 같은 사람이 저의 롤 모델입니다. 그분들의 발걸음을 쫓아 가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합니다. 열심히 교회를 섬기며 목회를 해야 하지만, 그러나 정신과 삶의 에너지를 가장 긍정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달려가야겠습니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지만 이번에 새롭게 발견한 것은, 13절 마지막에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라는 것입니다. 저는 저도 모르게 은연 중에, '너희로 능히 피하게 하시느니라'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방법은 시험을 피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시험을 견디게 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피할 길을 내신다고 말씀하시지만, 그러한 시험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 듯 합니다. 

저의 삶은 평생 견디는 것임을 새롭게 깨달았습니다. 한편으로는 그 무게가 너무 무겁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주님을 더 의지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스터디 바이블을 보니 '그 인내는 그 자체로 보상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라고 설명합니다. 원래 이전에도 인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다시 보니, 인내는 성도의 본질입니다. 주여, 저의 평생에 주님을 의지하여 인내하도록 저를 도우소서.

* 네비암송 (03)
당신이 "감당할 수 있는 시험만" 허락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 / 승리의 확신)

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0/12/10-13.html

 

2024년 2월 19일 월요일

악인론 (5) - 욕을 먹더라도 의도적으로 먹어라 (악인의 무기 3 : 사회적 지능)

 

1. 요약

진정한 악인은, 카리스마나 매력으로 다른 이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회적 지능' 이다. 사회적 지능이란, ‘다른 이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함으로 그것에 맞춰 행동하는 능력’이다. 이것은 인생을 결정지을 만큼 중요한 능력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비록 능력이 부족하더라도 사회적 지능이 높은 사람에게 호의를 베풀려고 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지능을 갖춘 이들은, 다른 이의 감정을 헤아리면서 정중하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것으로 많은 이익을 얻는다. 말 하는 것과 글 쓰는 것, 그리고 악인의 지배력을 행사하기 위해 호감을 얻는 것, 이 모든 것이 사회적 지능과 연결되어 있다.

사회적 지능을 빠르게 올리기 위해서는, 전혀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집단에 소속되어 봐야 한다. 다양한 반응을 경험하면서 사회적 지능은 빠르게 성장하기 때문이다. 또한 감정을 드러내는 훈련을 해야 하는데, 진정성 있는 감정 표현을 통해서 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악인은 철저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적절한 타이밍에 파고 들어가 권위를 잡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권위를 침범 당하지 않을 수 있는가? 그럴 때에 명분 이론을 사용해야 한다.

명분 이론은 첫째,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기록한다. 상대방을 정확하게 평가하기 위해서는 나의 왜곡된 기억이 아니라 기록에 근거해야 한다. 보통 한 달 정도 기록이 필요하며 편향적인 생각을 고치고 상대를 공격할 명분을 확보할 수 있다.

둘째, 결정적 타이밍에 파고 들어가야 한다. 기록을 잘 하면 공격해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깨닫게 된다.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다. 상대방이 선을 넘을 때는 무례하다고 정확하게 지적해야 한다.

셋째, 상대방의 잘못을 나열해야 한다. 만만해 보이는 사람이 되면 안 된다. 잘못을 집중적으로 이야기하여 상대방이 충격을 받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상대방을 교정할 수 있고 나의 권위를 확실하게 보호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 관계의 변주 그리고 그것을 다루는 것이 바로 인생이다. 그 중심에는 사회적 지능이 있다. 톱클래스 수준의 사회적 지닌 사람들의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타인을 공격함으로 자존감을 높이려 하지 말아라. 실패자들은 자신보다 잘난 사람을 괜히 지적하고 자존감을 높이려고 하지만, 위대한 사람들은 자신을 반성하며 자신만의 것을 창조한다.

둘째, 아군과 적군을 정확히 구별하라. 자신에게 이득을 준 사람을 공격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자신에게 이득을 준 사람에게는 철저히 보상해야 한다. 셋째, 자기중심적으로 사고 하지 말아라. 세상의 중심에 서려고 노력하는 것은 좋지만,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 착각하는 것은 큰 문제이다.

넷째, 상대방이 이유 없이 시비를 걸면 지적하고 맞서 싸워야 한다. 선을 넘는 상대방을 방치하면 언젠가 그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된다. 그러므로 자신이 정한 선을 넘는다면 고민 없이 반응하라.

다섯째, 뒷담화에 중독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라. 특정 그룹 안에서 뒷담화를 하는 것은 무의미한 대화에 시간을 낭비하거나 자신의 업적을 망치는 것이다. 뒷담화 중독은 한순간이며, 집단 압력에 저항하면서 그 시간에 자기 발전에 모든 힘을 쏟으라.

여섯째, 정확한 지적을 해준 사람에게 고마워하라. 전문가가 문제를 객관적으로 지적해 줄 때에,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없는 피드백이라면 받아들이고 감사를 표현하고, 그것에 기반해 성장하라.

일곱째, 관계에 문제가 있을 때 남 탓하지 말아라. 사람들은 종종 자신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한다. 그래서 손절 당하는 것이다. 여덟째, 고마움을 모르는 사람에겐 단호하게 지원을 중단하라. 상대방이 도움을 받다가 정작 나의 위기를 모른 척 한다면 지원을 끊어야 한다. 만약에 공감 능력이 있다면 사과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관계를 유지하라.

 

2. 책에서 한마디

“인간관계란 시간의 흐름을 축으로 하나하나의 만남과 연락마다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축적되는 그래프다. 사회적 지능이 뛰어난 사람은 상대방이 마음에 들어 할 만한 행동을 시기적절하게 해서 남들보다 쉽게 사랑을 받고 인기를 끈다.”


3. 성경적 관점에서 보기

- 성도는 항상 자기 자신을 돌아 보아야 한다는 측면에서

마태복음 18:15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18:15 "If your brother sins against you, go and show him his fault, just between the two of you. If he listens to you, you have won your brother over.

성경은 어떤 문제에 대해서 누군가와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절대로 금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옳은 일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말은 해야 합니다. 다만 소문과 오해가 늘어나지 않도록 일대일로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 말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자신을 돌이키는 사람은 무너진 그 자리에서 회복될 것입니다.

Reading Christian Bookclub

잠언 14:9 미련한 자는 죄를 심상히 여겨도 정직한 자 중에는 은혜가 있느니라 14:9 Fools mock at making amends for sin, but goodwill is found among the upright.

이러석은 사람은 조롱하는 것 그리고 다투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들은 잘못을 적절하게 배상하는 것, 그리고 하나님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도 비웃습니다.

D. A. Carson, ed.,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1081.

 

- 성도는 기브앤 테이크가 아니라 힘써 은혜를 베풀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에베소서 4:32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4:32 Be kind and compassionate to one another, forgiving each other, just as in Christ God forgave you.

용서하라는 헬라어 카리조마이는, 단순히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운 태도로 그렇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용서를 묘사하기 위해서 다른 곳에서도 이와 동일한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John D. Barry et al., Faithlife Study Bible (Bellingham, WA: Lexham Press, 2012, 2016), Eph 4:32.

성도가 서로 용서하기를 힘쓰는 것은, 단순히 나의 선함을 드러내거나 혹은 이익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대하셨기 때문에, 아버지의 모습을 닮기 위하여 그렇게 노력하는 것입니다.

Reading Christian Bookclub

히브리서 13:16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13:16 And do not forget to do good and to share with others, for with such sacrifices God is pleased.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던 구약의 제사는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선을 행하고 다른 사람에게 나의 것을 나누어 줌으로써 여전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오히려 이 질문이 더 중요합니다. 당신은 과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싶어합니까?

Reading Christian Bookclub

 

- 다른 이를 존중하지 않는 이를 냉정하게 대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삼상 2:30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원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2:30 "Therefore the LORD, the God of Israel, declares: 'I promised that your house and your father's house would minister before me forever.' But now the LORD declares: 'Far be it from me! Those who honor me I will honor, but those who despise me will be disdained. 

타락한 인간은 심지어 하나님조차 경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자유를 그들에게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선택에 따라서 하나님의 모든 은택을 거두실 것입니다. 하나님도 동일하게 그들에게 갚으실 것입니다. 성도가 참으로 인내함으로 누군가에게 은혜를 베풀어야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가 그러한 은혜를 짓밟고 끝까지 욕되게 한다면, 그는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Reading Christian Bookclub

마태복음 7: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개역개정) 7:6 "Do not give dogs what is sacred; do not throw your pearls to pigs. If you do, they may trample them under their feet, and then turn and tear you to pieces. (NIV)

거룩하지 못한 사람들은 복음을 경멸하는 사람들입니다. 듣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가르치는 것은, 돼지에게 진주를 주는 것만큼이나 헛된 일입니다. 돼지는 진주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진흙 속에서 짓밟습니다. 악한 사람들은 복음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멸시하며 버립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멸시 받지 않도록 지혜로워야 하며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Bruce Barton et al., Life Application New Testament Commentary (Wheaton, IL: Tyndale, 2001), 35.

 

4. RCB의 관점으로

악인론의 핵심은 '영향력' 이다. 계속적으로 다른 이로 부터 영향을 받지 않으면, 오히려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까에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다. 그리고 이번 챕터는, 높은 사회적 지능을 가진 사람이 큰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고 조언한다.

저자는 사회적 지능을 기르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반응을 경험해 봐야 한다라고 말한다. 안타깝게도 교회 공동체 안에서 나에 대한 다른 이들의 반응을 실질적으로 경험할 일이 거의 없다. 그러나 오직 북클럽 안에서 가장 깊은 수준의 교감을 하게 되며, 다른 이들의 반응을 통해서 나를 수정할 수 있게 된다. 그런 면에서 크리스천 북클럽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저자는 다른 이로부터 영향 받지 않기 위해서, 혹은 권위를 침범 받지 않기 위해서 명분 이론을 제시한다. 크리스천으로서 손해를 보지 않고, 혹은 권위를 침범 받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리스천 역시 자신을 보호해야 하며 보호할 능력과 방법을 갖추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저자의 명분 이론은 가치가 있다.

내가 원해서 누군가에게 양보하고 손해를 보는 것과, 내가 원하지도 않는데 다른 사람에게 이용 당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영적으로 탁월한 권위를 가지고 지혜롭게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과, 어리석게 다른 이에게 휘둘리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상대방의 행동과 그 의도를 정확하게 평가하고, 그것에 근거해 상대방의 무례함을 지적하는 것, 그리고 상대방의 잘못을 한번에 다 이야기함으로써 확실하게 상대방을 교정하는 능력은 크리스천 역시 반드시 길러야 한다고 볼 수 있다.

저자는 사회적 지능이 뛰어난 사람들을 항상 대하면서 그들의 장점을 정리해서 우리에게 알려준다. 물론 저자의 관찰 결과에는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게도 은혜의 메시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철저한 기브 앤 테이크의 원칙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원리들은, 다른 사람에게 받는데만 익숙한 염치없는 크리스천들이 봐야 하는 중요한 원리들이라 말할 수 있다. 크리스천이기 때문에 받는 것보다 더 많이 베푸는 것이 당연한데, 오히려 받는 것 만큼도 다른 사람에게 해주지 못한다면 어찌 우리가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있겠는가?

만약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자녀라는 확고한 정체성이 있다면,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을 공격하면서 자존감을 높이지 않을 것이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아직도 복음의 초입에 서 있는 사람에 불과하다. 주님 안에서 높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만이 오히려 다른 사람을 칭찬할 수 있다.

남을 험담하는 것은 교회에서 큰 문제 중 하나이다. 저자의 조언은 그대로 우리에게 적용할 수 있다. 쓸데 없는데 시간 낭비 하지 말아야 한다. 그 시간에 말씀 묵상하고 기도하며 책을 읽고 자신을 연마하는 것이 나를 살리는 길이다. 이렇게 하면서 죄인인 나를 위하여 죽으신 주님의 은혜를 깊이 깨달은 사람만이,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이 더 넓어질 것이다. 

성경은 은혜를 베풀라고 끊임없이 말씀하신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이들은 그렇게 반드시 살게 된다. 크리스천은 비록 세상이 몰라줘도 얼마든지 손해볼 수 있다. 왜냐하면 아버지께서 그것을 아시고 하늘의 상급으로 '반드시' 갚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생명까지라도 기꺼이 형제를 위하여 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또 다른 면이 존재한다. 하나님께서도 자신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존중히 여기겠다고 말씀하신다. 심지어 크리스천은 하나님이 아니다. 우리는 충분히 지혜로워야 한다. 은혜와 호의를 거절하는 자에게, 지나치게 계속 그렇게 하는 것이야 말로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누군가가 은혜를 악으로 갚을 때에 우리는 오히려 그를 위해서 기도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더 이상 그를 붙들고 더 노력하는 것은 그 시점에서는 어리석은 일이다. 하나님께서 다시 관계를 회복할 기회를 주실 때까지, 오히려 더 의미 있는 일을 찾아서 추구해야 한다.

참된 성도는, 자신을 돌아보는 사람이다. 지금도 수많은 이들이 내가 얼만큼 성경을 읽고 얼만큼 기도하는지를 자랑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오히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맞서 싸우신 자들은, 위선자들이다. 그들은 최상의 신앙 생활의 겉모습을 가졌지만, 내면은 철저하게 부패한 자들이었다. 

그러므로 내가 얼만큼 신앙 생활을 열심히 했는가가 아니라, '나 자신을 얼마나 돌아보았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말씀에 비추어 나를 돌아보는 것이 참된 신앙이다. 그러므로 신앙이 깊다는 것은, 다른 이의 성경적인 조언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며, 자신의 잘못을 돌이키고 사과하는 것이며, 더 성장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다. 과연 당신은 참된 크리스천으로써 이 길을 최선을 다해 달려가고 있는가?

 

5. 적용

1) 저자의 주장에 근거하여 당신 자신을 분석할 때에, 당신은 어느 정도의 '사회적 지능'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 저자가 이야기하는 성공한 사람들의 여덟 가지 특징 가운데, 당신의 마음에 가장 마음에 와 닿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 "악인론" 크리스천 북클럽 인도자용 자료모음
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4/01/blog-post_31.html

2022년 11월 5일 토요일

목양말씀암송 (44) 악한 말을 버리고, 감사의 말로 당신의 삶을 풍성하게 채우세요 (에베소서 5장 4절)

 

에베소서 5:4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개역개정) 5:4 Nor should there be obscenity, foolish talk or coarse joking, which are out of place, but rather thanksgiving. (NIV)

 

5:4 thanksgiving. An acknowledgment of our dependence on God and our grateful response to God’s gift of redemption, recognizing that he is the source of every blessing. Such an attitude corrects the self-serving focus found in the preceding vices of sexual immorality, greed, and obscene speech. See v. 20; 1 Thess 5:18. 감사하는 말이라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의존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그분께서 모든 축복의 근원이 되심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구원의 선물에 감사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가, 이 말씀 앞에 등장하는 성적인 부도덕, 탐욕, 음탕한 말이라는 나에게만 초점을 맞추는 이기적인 삶을 바로 잡아 주는 것입니다. 

Douglas J. Moo, “The Letters and Revelation,” in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ed. D. A. Carson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2124.

5:4 not fitting. These 3 inappropriate sins of the tongue include any speech that is obscene and degrading or foolish and dirty, as well as suggestive and immoral. All such are destructive of holy living and godly testimony and should be confessed, forsaken, and replaced by open expressions of thankfulness to God (cf. Col 3:8). 마땅치 아니하니 : 이 세가지의 혀로 부터 나오는 온당하지 않은 세가지의 죄는, 음란한, 비하하는, 그리고 더럽고 외설적이고 부도덕한 말이 포함됩니다. 모든 이러한 것들은 거룩한 삶과 경건한 간증을 파괴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잘못을 고백하고 버려야 하며, 오히려 하나님께 대한 공개적인 공적인 감사의 표현들로 채워져야 합니다.

John F. MacArthur Jr., The MacArthur Study Bible: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ashville, TN: Thomas Nelson Publishers, 2006), 엡 5:4.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제가 누렸던 모든 행복들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인정하고 고백합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저의 입에서 악한 것들이 나오지 않기를 원합니다. 저의 마음과 생각과 입을 고쳐주시고, 하늘 아버지에 대한 감사의 말이 넘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은혜를 누리며, 제 자신을 뛰어 넘어 하나님과 타인을 위한 희생적인 삶을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Heavenly Father, I acknowledge that every blessing I had is from only you. I do not want to speak evil things. Please correct my heart, mind, and lips, and flourish the thanksgiving for you. Pleases demolish my selfishness and make my life boundaries broaden to serve you and other people with sacrificial love. I pray in Jesus’ name. Amen. 


* "목양을 위한 말씀 & 해석 & 기도" 전체 모음
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3/10/blog-post_7.html 

2022년 10월 30일 일요일

독서 묵상 (05) 어른은 어떻게 성장하는가 - '진정한 감사'로 공동체가 살아납니다

 


교회와 가정을 포함한 세상의 그 어떤 공동체도, 리더 혼자서 결과를 이룬 것이 아닙니다. 구성원 모두가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함으로써, 현재 그 공동체가 누리는 모든 것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리더가,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각 멤버들의 공헌을 구체적으로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형식적으로 전하는 감사가 아니라, 깊은 마음의 감사를 표현하고 전해야 합니다. 이것이 공동체를 하나되게 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며, 진정한 의미의 '협업'입니다.

2022년 10월 26일 수요일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 5 - 은혜의 색다른 계산법

 

1. 요약

예수님의 비유에 나오는 계산법은 이치에 어긋난다. 잃은 양 한마리를 찾기 위해 아흔 아홉 마리를 그냥 두고 어둠 속에 뛰어드는 것이 그렇다. 마리아가 1년치 임금에 해당하는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는 것이 그렇다. 한 과부의 아주 작은 헌금을 가지고 다른 고액 헌금을 깎아 내리시는 것이 그렇다. 끝나기 한시간 전에 온 사람들이 하루 종일 일한 사람들과 같은 일당을 받는 것이 그렇다. 

예수님의 비유는 경제적으로 보면 전혀 말이 안된다. 그것이 그분의 취지였다. 그분이 이 비유로 우리에게 가르치고자 한 것은 바로 은혜이다. 은혜는 일등이냐 꼴찌냐를 따지지 않고, 은혜는 산수가 아니며, 은혜는 선물로 받는 것이지 노력의 대가로 얻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비유에서 품꾼들의 불만의 원인은, '은혜의 파격적인 계산법'에 있었다. 많은 그리스도인은 온종일 고생한 자들과 자신을 동일시하지만, 우리 중 자기 공로대로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나님의 요구하시는 완전한 삶 근처라도 가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공평한 기준대로 받기로 한다면 우리는 다 지옥행으로 끝날 것이다. 은혜의 세계에는 자격이라는 말 자체가 소용이 없다. 예수님이 이런 은혜의 비유를 들려주신 것은, 우리가 눈에는 눈으로 방식의 비은혜 세계에서 완전히 벗어나,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의 세계에 들어가게 하시기 위함이다.

은혜는 소위 하나님에 대한 딜레마를 해결해 준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의 행동에 반감을 느끼신다. 인간 안에서는 고작해야 깨어져 흩어진 하나님의 형상의 조각만 보일 뿐이다. 그래도 하나님은 포기하실 수 없고 포기하시지 않는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버림받아 마땅했지만, 그 마땅한 것이 임하지 않는다. 자식을 돌아오게만 할 수 있다면 하나님은 얼마든지 합리적 계산을 무시하실 수 있다. 그것을 방탕한 아내 고멜과 호세아의 관계를 통해 드러내신다. 다른 남자한테 가버리고 타락한 고멜을 하나님께서는 데려오라고 하신다. 고멜이 받은 것은 공평도 아니고 공의도 아니다. 고멜은 은혜를 받았다.

바울이 귀가 따갑도록 은혜를 이야기한 것은, 우리가 자기 힘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얻었다고 믿을 때 어떤 결과가 올지 잘 알았기 때문이다. 바울은 하나님이 인간과 화목케 되신 경위를 밝히는데 많은 공을 들였다. 인간이 은혜에 부담을 느끼는 것은, 그것이 불의에는 대가가 따라야 한다는 만인의 본능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바울은 대가가 이미 하나님 자신에 의해 지불되었음을 강조했다. 하나님은 인류를 버리시기보다는 그 아들을 버리셨다. 은혜란 받는 이에게는 값 없는 것이지만, 주는 이에게는 전 소유가 다 들어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선심 정도가 아닌 것은, 갈보리에서 엄청난 댓가를 치르셨기 때문이다. 심판이나 혹은 은혜로 충족(fulfill)될 수 있는 우주의 법칙을, 예수님은 친히 그 몸으로 심판을 받으시고 그 법칙을 충족시키셨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용서의 방도를 찾으셨다.

예수님의 사랑에 공감하면서도, 내 힘으로 그 사랑을 얻으려는 것처럼 행동할 때가 왜 그렇게 많고, 그냥 받아들이는게 왜 그리도 힘들까? 계속되는 실패, 희망의 상실, 못난 기분에 짓눌릴 때면 우리는 은혜가 통과되지 않는 껍질 속으로 숨어든다. 고집스레 은혜로부터 등을 돌린다. 우리가 하나님이 날 사랑하신다는 놀라운 성경 말씀을 진실로 믿는다면, 그리고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신분을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자'로 볼 수 있다면 어떨까? 하루를 마감할 때 자신을 보는 눈이 얼마나 달라질까?

세상은 비 은혜로 움직이며 모든 일이 나 하기에 달려 있다. 그러나 예수님이 부르시는 길의 터는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그분이 하신 일에 있다. 우리는 성취에 대한 부담 없이 그냥 따르기만 하면 된다.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값비싼 승리는 그분이 이미 우리를 위해 얻어 놓으셨다.


2. 책에서 한 마디

“은혜란 하나님의 사랑을 더 받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뜻이다. 신앙 훈련과 자기 부인에 아무리 힘써도, 신학교에서 배운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의로운 싸움에 아무리 발벗고 나서도 다 소용없다. 은혜란 또 무엇으로도 하나님의 사랑을 약화시킬 수 없다는 뜻이다. 인종 차별, 교만, 포르노, 간음, 심지어 살인죄를 지어도 별수 없다. 은혜란 무한한 신의 사랑으로 가능한 최대치만큼 이미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고 계심을 뜻한다.”


3. 성경적 관점에서 보기

마태복음 20:14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개역개정) 20:14 Take your pay and go. I want to give the man who was hired last the same as I gave you. (NIV)

In this parable, Jesus pointed out that salvation is not earned, but given freely only because of God’s great generosity, which goes far beyond our human ideas of what is fair. The message of the parable is that God’s loving mercy accepts the lowest member of society on an equal footing with the elite. 이 비유에서 예수님께서는, 구원이라는 것은 사람이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공평에 대한 인간의 생각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위대한 관용 때문에 거저 주어지는 것임을 지적하셨습니다. 이 비유의 메시지는, 하나님의 사랑의 자비가, 사회에서 가장 낮은 계층의 사람들이라도 엘리트와 동등한 입장에서 그들을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Bruce Barton et al., Life Application New Testament Commentary (Wheaton, IL: Tyndale, 2001), 89.


4. RCB의 관점으로

우리가 성경적인 은혜에 대한 관점을 가지고 있는가는, 얀시가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 각자에게 은혜가 '파격적'으로 받아들여지는가를 통해 파악할 수 있다. 

왜냐하면, 많은 이들이 은혜를 이야기하고 설교하지만, 실상 그 은혜라는 것조차 '내가 어느 정도 잘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호의를 더 베푸는 수준'의 은혜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은혜는 말 그대로 은혜이다. 예수님이 강조하셨던 부분이 바로 그것이다. 은혜는 사실상 말도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바로 그것이 은혜이다.

내가 은혜를 누릴 수 있는 것은, 내가 전적인 은혜를 누릴 수 있는 조건을 하나님께서 이미 이루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나의 구원과 생명과 가진 모든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임을 인정할 때에, 예수님의 가치가 드디어 온전히 드러나며 내 영혼 안에 깊이 받아들여지게 된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의 세계에 이미 들어갔다. 예수님께서 친히 우리를 위하여 은혜의 값을 틀림없이 완벽하게 모두 치르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넘치는 은혜 속에서 우리 각자를 가장 완전하게 사랑하신다. 그러므로 내 삶에 이루어진 모든 것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 받은 은혜이며, 그래서 언제나 감사할 뿐이다. 내가 오늘 하루 동안 할 수 있는 것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이, 기쁨으로 그저 그분을 따르는 것이다.


5. 적용

1)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호세아 11:8) 말씀에서, 에브라임과 이스라엘 대신 각자 자신의 이름을 넣어 읽어보세요.

2) 거울을 보고 나 자신을 바라보며 '나는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자'라고 말해보세요.

*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 크리스천 북클럽 인도자용 자료 모음
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2/10/blog-post_29.html

독서 묵상 (88) 집중의 뇌과학 - 창조된 인간은 언어 안에서 자라갑니다

  저자는 나이가 들어도 다양한 언어의 적극적인 사용을 통해서 인지 능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성인이 되어도 배움을 절대로 그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죄로 인해서 많은 부분이 망가졌지만 여전히 인간은 탁월한 존재입니다. 육...

리딩 크리스천 독서 묵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