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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22일 월요일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4) - 4주 특별해지고 싶은 마음이 너무 특별하지 않아서

 



1. 요약

저자는 새로운 친구가 생겨서 스스로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친구는 저자와 다르지만 또 비슷한 점을 많이 가졌다. 그런데 저자는 자신이 친구와 다르기 때문에 상대방이 자신과 멀어질 것을 걱정한다. 저자는 멀어지는 것을 버림받은 것이라고 생각하며, 상대방이 자신을 평범하게 여길 것을 염려한다. 저자는 친구는 특별하지만 자신은 전형적이라고 생각한다. 친구는 저자의 생각을 듣고서는, 자신도 평범한 사람이며 늘 연락할 수 없지만 서로의 마음을 계속 기억하면 좋겠다고 말한다. 

상담가는 저자에게 애정을 분산시키라고 말한다. 그리고 상대방이 아닌 나 자신이 주체가 되어서, 상대방이 자신과 맞는지를 스스로 생각해 보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미래에 대해서 너무 생각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리고 상대방을 절대선으로 생각하고 자기를 비하하지 말고 상대방과의 만남과 함께하는 시간 자체를 소중히 여기고 의미를 부여하고 만족을 누리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을 평범하게 보는 것 자체를 문제 삼지 말고, 내가 나만의 기준으로 스스로를 괴롭게 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 좋겠다고 조언한다. 

저자는 어린 시절 상처를 입고 무리 안에 있기 위해서 노력하다가, 어느 순간 홀로 있는 것을 선택했다. 그런데 혼자 있기 위해서는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야 혼자 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상담가는 저자가 자기에 대한 사람들의 일시적인 관심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불량식품과 같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저자가 행복해지면 오히려 사람들이 멀어질 것이고 그것이 다시 저자를 힘들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혼자 다니느냐 아니느냐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내가 행복하고 내가 편한 나만의 방법을 계속 찾아가라고 조언한다. 


2. 책에서 한마디

“선생님: 평범하다는 말은 오히려 자신을 보호하는 방식일 수도 있어요. 열등하다고 하지는 않잖아요. 나: 그러네요. 그 친구를 만나고 그 생각이 더 강해진 것 같아요. 걔가 전형적인 걸 되게 싫어하거든요. 저도 뻔한 게 싫기는 해요.”

 

3. 성경적 관점에서 보기

* 인간은 모두 죄인이기에 평범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측면에서

로마서 3: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 인간은 모두가 연약한 죄인이기 때문에 서로를 도와야 한다는 측면에서 

갈라디아서 6:2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 인간이 사랑 받을 수 있는 조건이, 자신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주어진다는 측면에서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고린도후서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에, 우리는 교환을 하게 됩니다. 그분은 우리의 죄를 가져가시고 우리를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로 만들어 주십니다. 우리의 죄는 그분이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믿을 때에 그분의 의가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속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세상에서의 물물 교환은 비교적 가치가 대등한 물건을 바꿀 때만 성립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의로움을 우리의 죄와 바꾸도록 하십니다. 즉, 측정할 수 없을 만큼 가치 있는 것을, 완전히 무가치한 것과 바꾸시는 것입니다. 

Tyndale, Chronological Life Application Study Bible, ed. Susan Perlman, Second Edition (Carol Stream, IL: Tyndale House Publishers, 2023), 1669.

* 연약한 우리 가운데 기꺼이 내주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맥락에서

고린도후서 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4. RCB의 관점으로

저자는 자신이 평범하기 때문에 친구가 자신을 멀리할 것이라고 염려한다.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 많이 낮기 때문에, 누군가가 자신을 끊임없이 사랑해 주기를 원한다. 저자는 누군가의 사랑이 필요하기 때문에, 자신이 불쌍한 사람이 되는 것조차 감수하려고 한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이 더 이상 동정받지 못하는 정상적인 삶이 되면 자신을 도와주려는 관심조차 끊어질까 봐 두려워한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자신의 가치와 사랑받는 이유를 자기 자신에게서 끊임없이 찾는다. 그리고 평범한 자신에게는 그럴 만한 조건이 없기 때문에 슬퍼한다. 

저자는 사람과의 관계를 기본적으로 우열의 관계로 이해한다. 그러나 성경은 모든 인간이 죄인이며, 그런 면에서는 ‘모든 이들이 평범하고 또 동일 선상에서 서로를 대할 수 있다’라고 가르치신다. 우리가 인간에 대한 성경의 진리를 받아들일 때에, 누군가를 지나치게 폄하하지도 지나치게 높게 평가하지도 않게 된다. 그리고 영적인 평등함 속에서 건강한 관계를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이 특별하지 않기 때문에, 차라리 모든 관계를 끊어버린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시도를 하지 못하고 혼자 지내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 자체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나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며, 내가 상대방을 조정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할 때에 우리는 누군가에게 부담 없이 손을 내밀 수 있다. 

저자는 혼자 있는 것을 너무나 두려워한다. 혼자 있는 것 자체를 사랑받지 못하는 것과 동일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혼자 있어도 얼마든지 괜찮은 것은, 예수님의 무한한 사랑이 있고 그분이 우리와 언제나 동행하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받는 사랑의 조건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선물이며, 그런 면에서 이것은 참으로 세상을 거스르는 것이고 혁명적인 것이다. 성도는 심지어 모든 사람 중심에 서서 그들과 함께할 때에도 자만하지 않는다. 그리고 온전히 홀로 있더라도 외롭지 않다. 왜냐하면 그는 영원하고도 변치 않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5. 적용

1) 당신은 누군가가 당신을 떠나 버릴까 봐 염려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2) 내가 평범한 죄인에 불과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크리스천 북클럽 인도자용 자료모음
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6/06/blog-post_22.html

2024년 5월 14일 화요일

부모학교 (2) - 가장 뼈저린 아픔

 


1. 요약

많은 미국의 부모들은 자녀들이 경쟁을 경험하지 못하도록, 그리고 그들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 최대한 막는다. 그러나 이러한 양육으로 인해 오히려 중독, 비만, 자살, 그리고 무기력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지금 세대는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실패를 통해서 배울 기회가 없기 때문에, 정작 배운 것을 발휘할 수 없고 결국 삶에 필요한 진정한 지혜를 키울 수가 없는 것이다. 

부모들이 자녀의 세상적인 성공과 스트레스 없이 사는 것을 최우선으로 놓기 때문에, 정작 그들은 거룩함이나 덕성을 계발하지 못한다. 영적인 훈련은 지루함을 동반할 수 밖에 없지만 오히려 부모들이 그 지루함을 느끼지 않도록 자녀들을 돕는데 바쁘다. 마음으로는 모험을 하고 도전을 이겨내며 포기하지 않고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것을 가르쳐주고자 하지만, 정작 그 길로 자녀들을 인도하는 것은 두려워한다.

하나님의 나라 그리고 자녀의 거룩함보다 자녀의 행복만을 택한다면 큰 문제가 생긴다. 자녀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잘못되어 가고 있는데도 그들의 행복이 우선시 된다면 그것은 재앙이다. 자녀들은 그들이 스스로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구원자의 필요성을 깨달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언제나 자신의 잘못을 남 탓으로 돌릴 것이 틀림없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자녀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고 구주의 종이 되는 것이다.

완전한 신이시자 인간이신 예수님께서는 자신과 죄인들을 위하여 고난을 당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철저하게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그리고 그 사건은 아버지 자신의 마음을 너무나 아프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부 하나님께서 십자가 고난을 허락하셨기에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승리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부모 된 우리의 모본이시기 때문에, 자녀가 더 큰 유익을 맛보기 위해서 우리가 자녀의 고생을 지켜봐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자녀의 고통을 막는데 시간을 다 사용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뜻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뜻에 복종해야 하며 이것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계획이다. 자녀의 역경을 거절한다면 그들은 세상을 변화시킬 만큼 강해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부모는 스스로 용기를 길러야 한다. 그리고 자식들이 역경과 고생에 부딪치도록 허용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부모가 가장 중시하는 것이 무엇인가가 자녀들에게 영향을 준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을 우리의 영혼이 가졌는가를 우리 자녀들이 볼 것이다. 자녀들은 부모들이 하나님의 나라와 대의를 위해서 손해를 보는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녀들은 그 부모의 가치를 보고 자라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배우게 될 것이다. 자녀들이 도전과 실패와 고통에 부딪치도록 허용함으로써, 오히려 더 사명감을 가지고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가르쳐야 할 것이다.

 

2. 책에서 한마디

“자녀 양육 에너지의 대부분을 똑똑하고 품행이 단정하고 ‘성공한’ 자녀를 만드는 데 들인다면 부모의 그런 배려가 오히려 더 좋은 목표를 막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는 묻는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3. 성경적 관점에서 보기

- 부모가 하나님 보다 자녀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 얼마나 치명적인가의 측면에서

사무엘상 2:29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내 처소에서 명령한 내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이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너희들을 살지게 하느냐 2:29 Why do you scorn my sacrifice and offering that I prescribed for my dwelling? Why do you honor your sons more than me by fattening yourselves on the choice parts of every offering made by my people Israel?'

엘리 제사장은 그의 아들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경고했지만, 그들의 죄에 대해 실제로 책망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는 부모로서의 의무를 등한히 함으로써 사실상 하나님보다 아들들을 더 아낀 것입니다.   

Earl D. Radmacher, Ronald Barclay Allen, and H. Wayne House, The Nelson Study Bible: New King James Version (Nashville: T. Nelson Publishers, 1997), 1 Sa 2:29.


- 자녀의 성장을 위해서 역경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측면에서

로마서 8: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8:18 I consider that our present sufferings are not worth comparing with the glory that will be revealed in us.

현재의 고난은 나중의 영광에 비하면 작은 것입니다. 바울은 영원한 영광의 무게에 비하면 현재의 고난을 가벼운 환난이라고 부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보상은 백배 이기 때문입니다.   

Earl D. Radmacher, Ronald Barclay Allen, and H. Wayne House, The Nelson Study Bible: New King James Version (Nashville: T. Nelson Publishers, 1997), Ro 8:18.

히브리서 5:8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5:8 Although he was a son, he learned obedience from what he suffered 5:9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5:9 and, once made perfect, he became the source of eternal salvation for all who obey him 

그분은 고난을 겪으심으로 순종을 배웠습니다. 예수님은 고난을 당하시기 전에도 불순종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아버지의 뜻에 완전히 복종하면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인간의 경험의 길을 걸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같은 길을 걸어갈 것으로 예상해야 합니다.

New Living Translation Study Bible (Carol Stream, IL: Tyndale House Publishers, Inc., 2008), Heb 5:8.

로마서 5: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5:3 Not only so, but we also rejoice in our sufferings, because we know that suffering produces perseverance; 5: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개역개정) 5:4 perseverance, character; and character, hope. (NIV)

하나님의 백성은 미래의 영광 뿐만 아니라 현재의 시련과 고난을 기뻐합니다. 그것은 시련이 즐겁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신자들이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단계적 변화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2165.

 

4. RCB의 관점으로

이번 챕터에서 저자는 갈등하는 부모의 마음을 잘 보여준다. 저자 자신이 그런 것처럼, 그 어떤 부모도 자녀들이 고통 받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미국 사회는 그것의 극단적인 형태로서, 부모는 자녀의 도전과 인내의 기회 조차도 허락하지 않는 사람들이 되었음을 저자는 날카롭게 지적한다.

만약 일시적인 혹은 겉으로 드러나는 성공만이 목적이라면, 이 시대의 부모의 양육은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으로서의 참된 성숙은, 오직 고난과 인내와 분투로 이루어진 연단을 통해 만들어진다. 연단의 핵심은 것은 자녀들의 내면에 아름다운 성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일반적인 의미에서도 바른 자녀 양육을 이렇게 이해한다면, 하물며 성경적인 관점에서 자녀에게 주어지는 고난은 필수적인 것이다.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난을 기꺼이 통과하시며 죄인을 위한 구원의 길을 활짝 여신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어떤 형태로든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되며 그분을 닮은 아름다운 사람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자녀의 양육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부모인 나의 목표나 감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칫하면 엘리 제사장이 그러했던 것처럼 자녀가 우상이 되고, 자녀의 일시적 행복이 부모의 궁극적 목적이 되어서 결국 그들을 망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일차적으로 중요한 것은,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소개하고 그분에 대해서 가르치는 것이다. 그리고 이차적으로는, 부모가 모든 것을 간섭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가 실패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해주고 오히려 근본적인 영적 원리를 심어 주는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은, 부모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가장 소중히 여기며 기꺼이 그러한 삶에 도전하고, 고난을 이겨내며 인내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챕터에서 가장 큰 질문은, 과연 어느 정도까지 자녀에게 어려움을 허락해야 하는가 이다. 중요한 것은 부모의 경험이다. 어쩌면 고난 속에서 성숙해 나가는 과정을 스스로 처절하게 경험해본 부모만이, 어느 시점에 어떤 모습으로 어느 정도 선에서 그들에게 고난을 허락하고 또 역으로 적극적으로 그들의 삶에 개입 할 지에 대한 참된 지혜와 영적인 감각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5. 적용

1) ‘엄마 아빠가 어디에 가장 열정이 있는 것 같으냐?’ 라고 자녀에게 질문해 보세요, 당신은 어떤 대답을 듣기를 바라고 있습니까? 그리고 자녀들의 실제 대답은 어떠했습니까? 만약 대답이 차이가 있었다면 당신은 어떤 마음이 들었습니까?

2) 당신은 자녀의 성공보다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잘 섬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확신하고 있습니까?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당신이 자녀를 도울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 한가지를 고민해서 실천해 보시기 바랍니다.

 

* 추가로 읽어볼 자료

- 밑바닥에서부터 경험을 쌓아 갈 때에, 유용한 사람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측면에서 

처음부터 높은 곳에서 시작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그 아래쪽에서 무엇을 놓쳤는지 절대 알지 못한다. 우편물을 분류하거나 늦은 밤까지 식당 청소를 하거나 체육관에서 비품을 정리하고 고치는 사람, 진짜로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아는 건 그런 사람이다. 그처럼 근면하게 한 단계씩 밟아가며 위로 올라간 사람은 어떤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왜 그런지, 일이 중단되었을 때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모두 안다. 그런 인물은 조직 내에서의 영향력과 가치가 클 뿐 아니라 근무 수명 역시 길다. 가장 높은 곳에 도달하려면 어떤 역량이 필요한지 그만큼 잘 알기 때문이다.

멘탈리티 | 팀 그로버, 샤리 웽크, 서종기 저

- 당신, '헬리콥터 부모' 아래서 자랐는지 확인하는 법
https://www.news1.kr/articles/?2446987 

- 헬리콥터 부모, 날개 잘린 아이들
http://www.koreatimes.com/article/20110910/683616 

- 헬리콥터 부모가 자녀를 망친다 / 줄리 리스콧 헤임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157695

* '부모학교' 크리스천 북클럽 인도자용 자료모음
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4/05/blog-post.html

2024년 2월 21일 수요일

기도하는 엄마들 (MIP) / 1권 2주 "사랑의 하나님" 말씀 묵상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5:8 But God demonstrates his own love for us in this: While we were still sinners, Christ died for us.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가 그분의 사랑을 느끼도록 하실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 대신에 죽으신 그분의 아들의 보내심으로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을 강력하게 보여주십니다.

Douglas J. Moo, “The Letters and Revelation,” in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ed. D. A. Carson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2028–2029.

 

로마서 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8:35 Who shall separate us from the love of Christ? Shall trouble or hardship or persecution or famine or nakedness or danger or sword? 8: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8:36 As it is written: "For your sake we face death all day long; we are considered as sheep to be slaughtered." 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8:37 No, in all these things we are more than conquerors through him who loved us.

그 어떤 것도 신자들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바울 사도는 신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절대적 확실성을 설명하기 위해서 애를 씁니다. 고난이나 위험한 것, 혹은 죽음과 삶도 하나님과 우리를 갈라 놓을 수 없습니다. 창조되지 않으신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신다면, 그리고 어떤 만들어진 것도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다면, 그분 안에서 우리의 안전은 절대적입니다.

Earl D. Radmacher, Ronald Barclay Allen, and H. Wayne House, The Nelson Study Bible: New King James Version (Nashville: T. Nelson Publishers, 1997), Ro 8:38–39.

 

에베소서 3: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3:18 may have power, together with all the saints, to grasp how wide and long and high and deep is the love of Christ, 3: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3:19 and to know this love that surpasses knowledge--that you may be filled to the measure of all the fullness of God.

바울 사도의 주된 간구는 우리의 속의 존재에 성령님께서 주시는 힘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 힘의 구체적인 본질은 그리스도의 불가해한 사랑을 이해하는 능력입니다. 이 사랑이 우리의 마음에 심겨질 때까지 우리는 완전히 성숙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모든 이들 중에서 우리가 가장 사랑 받는 다는 것을 알기 전에는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자로 살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그리스도의 자비를 깨달을 때까지 우리는 이웃을 자비로 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식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기 전에는 우리는 기독교에 대해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Kevin DeYoung, “Ephesians,” in Gospel Transformation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ed. Bryan Chapell and Dane Ortlund (Wheaton, IL: Crossway, 2013), 1589.

 

요한일서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4:10 This is love: not that we loved God, but that he loved us and sent his Son as an atoning sacrifice for our sins.

우리는 하나님을 미워했습니다. 우리는 우주의 왕에게 반항하는 바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당신은 친절하게 반응하지 않는 사람들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당신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Tony Evans, The Tony Evans Study Bible (Nashville, TN: Holman Bible, 2019), 1498.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3:16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e and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a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그리스도를 믿는 누구든지 영생을 얻을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을 인간으로 이 땅에 보내어 고난을 받고 죽게 함으로 죄에 대한 형벌을 받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그를 믿는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그를 신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멸망하지 않는다는 것은, 영원한 심판 에서도 멸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J. I. Packer, Wayne Grudem, and Ajith Fernando, eds., ESV Global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2012), 1484.

 

요한일서 4: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개역개정) 4:16 And so we know and rely on the love God has for us. God is love. Whoever lives in love lives in God, and God in him. (NIV)

하나님의 사랑은, 죄인들의 반역 혹은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언약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포기하지 않으시고 죄인들을 찾아 구원하시는 모습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R. C. Sproul, ed., The Reformation Stud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2015 Edition) (Orlando, FL: Reformation Trust, 2015), 2274.

* 기도하는 엄마들 (MIP) 말씀 묵상 모음
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3/10/mip.html   

2023년 10월 22일 일요일

하나님 나라의 도전 (6) - 온전한 복음

 

1. 요약

성경의 메시지는 온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담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이야기가 바로 성경이 전하는 하나님 나라 이야기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시면서 그 반응으로 회개를 요구하신다. 회개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었음을 깨닫고, 그리고 내 인생의 방향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나 중심의 삶에서 하나님께로 돌아 가는 것이다.

그러나 방향 전환의 결단이 있어도 여전히 문제는 존재한다. 나의 결심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근본적 문제는 하나님 나라를 향해 방향 전환을 해도 하나님이 받아 주실 것인가 라는 문제이다. 하나님을 향해 돌아섰을 때에, 자신에게 내릴 심판이 먼저 보이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좋은 소식이 있으니 그 소식을 믿으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셨지만, 오히려 사역의 정점에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신다. 그 이유는 사람이 하나님을 향해 돌아섰을 때 직면하게 되는 심판을 거두시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은 정의로우시기에 인간을 향한 심판을 자신의 아들에게 대신 지게 하셨다. 그러므로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가 완벽한 형태로 나타난다.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우리는 하나님 없이 사는 삶의 방식에 대하여 죽었다. 이제는 자기 중심적 삶과는 무관하게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의에 대해 살았는데, 그것은 이제 하나님 중심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정의를 이루신 십자가의 예수님 속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을 발견한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먼지와 같은 자신에게 쏟으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 감격하는 사람이다. 사람은 사랑을 받을 때에 변하며 하나님의 무조건적 사랑 때문에 사람은 변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여셨고, 그분을 의지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분의 사랑이 너무 커서 그 큰 사랑이 처음부터 끝까지 지키실 것을 믿는 것이다.

이러한 복음을 들었을 때에 필요한 것은 믿음이다. 안 만큼 진실하게 반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복음을 전인격적으로 받아들이는 반응이 믿음이다. 믿음은 내가 믿고 싶은 것이 아니라 복음을 믿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하신 일에 인격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자격은 자신의 자격 없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선물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 수록 내면의 힘이 더 강해진다. 더욱 든든히 믿음으로 살 때에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 안에서 회복되는 것이다. 깨지고 상한 세상을 회복하게 하려고,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이 세상에 시작하게 하시고 당신을 그 나라에 들어가게 하려고 그리고 남은 인생이 쓰일 수 있게 하려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도전에 당신은 어떻게 응답하겠는가?

 

2. 책에서 한마디

“우리는 자격이 없지만, 그가 하나님의 정의를 만족시켰으므로, 그를 의지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낼 자신이 없지만, 그의 사랑이 너무 커서 그 큰 사랑이 우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키실 것을 믿는다… 들어갈 수도, 살아 낼 수도 없는 하나님 나라에 우리를 들어가게 한 것이 바로 ‘복음’이다.”

 

3. 성경적 관점에서 보기

마가복음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10:45 For even the Son of Man did not come to be served, but to serve, and to give his life as a ransom for many."

10:45 The greatest example of servant leadership is the Son of Man. Giving is the essence of servanthood, and Jesus gave his life as a ransom for many (cp. Is 53:10–12). “Ransom” refers to the price paid to release a slave. The words of v. 45 are crucial to Jesus’s self-understanding of his death. 섬기는 리더십의 가장 위대한 모범은 인자입니다. 베푸는 것이 섬김의 본질이며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셨습니다. “대속물”이란 노예를 해방시키기 위해 지불하는 대가를 말합니다. 45절의 말씀은 그분의 죽음에 대한 예수님의 자기 이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Ross H. McLaren, “Mark”, in CSB Study Bible: Notes, ed. Edwin A. Blum와/과Trevin Wax (Nashville, TN: Holman Bible Publishers, 2017), 1579.

베드로전서 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2:24 He himself bore our sins in his body on the tree, so that we might die to sins and live for righteousness; by his wounds you have been healed.

2:24 When a person is dead to someone or something, it means any connection between the two is broken. Jesus died so that we would want to have nothing to do with sin anymore, but instead be devoted to doing what God has declared is right (righteousness). 사람이 누군가 또는 무언가에 대해 죽었다는 것은 둘 사이의 모든 연결이 끊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더 이상 죄와 상관없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옳다고 선언하신 것(의)를 행하는 데 헌신하기를 원하셔서 죽으셨습니다. 

The Wartburg Project, Holy Bible: Evangelical Heritage Version Study Bible (Midland, MI: Northwestern Publishing House; Wartburg Project, 2019), 벧전 2:23.

2:24 who Himself bore our sins: The Greek wording emphasizes Jesus’ personal involvement in the act of paying the price for our sins. It also emphasizes that it is our sins that Jesus bore on the Cross. The tree is the Cross. that we . . . might live for righteousness: The purpose of Christ’s bearing our sins is that we might live to please Him.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 여기에서 헬라어 표현은, 우리의 죄의 대가를 치르시는 행동에서 예수님의 개인적인 참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지신 것은, 바로 우리의 죄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신 것은, 우리가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Earl D. Radmacher, Ronald Barclay Allen와/과H. Wayne House, The Nelson Study Bible: New King James Version (Nashville: T. Nelson Publishers, 1997), 벧전 2:24.

로마서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1:17 For in the gospel a righteousness from God is revealed, a righteousness that is by faith from first to last, just as it is written: "The righteous will live by faith."

1:17 righteousness of God. This is a key phrase in Romans (3:21; 5:19; 10:3), regularly explained in the letter as “righteousness … through (or of) faith” (3:22; cf. 9:30; 10:6). It refers to the righteousness of Christ that is reckoned, accounted, or imputed to the one who believes. This imputation of righteousness to sinners who believe is fully consistent with the personal righteousness of God (cf. 3:25, 26). As a just and righteous judge (2:5–16), God on the merit of the obedience and death of His Son alone justifies, or declares righteous, sinners through true faith in Christ and not through anything that they have done, are doing, or will do (3:21–26; 5:10). Luther’s reading of this verse had a decisive impact on his understanding of justification. 하나님의 의 : 이것은 로마서의 핵심 구문이며, “믿음으로 말미암아…의”라는 표현으로 자주 설명됩니다. 이것은 믿는 자들의 것으로 여겨지는, 또는 전가되는 그리스도의 의를 가리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죄인에게 이렇게 의를 전가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온전히 일치하는 것입니다. 공정하고 의로운 재판장으로서, 하나님은 오직 자기 아들의 순종과 죽음의 공로에 따라 죄인을 의롭다 칭하시거나 또는 선언하십니다. 이는 그들이 행했거나 행하고 있거나 행할 그 어떤 것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참된 믿음을 통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 어구에 대한 루터의 독법은 칭의에 대한 그의 이해에 결정적인 영향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from faith for faith. The righteousness of justification is received exclusively through faith, not works, so it comes to all those with faith, whatever their race.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 칭의의 의는 선행이 아니라 오로지 믿음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의는 사람의 혈통이나 인정과 상관없이 누구에게든지 주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as it is written. Hab. 2:4 provides the biblical basis for and the summary of what follows, indicating that the way of justification by faith alone was already known in the OT. 기록된 바 : 하박국 2장 4절은 다음에 이어질 내용들에 대한 성경적 근거와 요약을 제공합니다. 따라서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하심을 얻는 방식이 이미 구약에서도 알려진 바 되었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shall live. The whole of the Christian life, from beginning to end, is lived in trust and dependence on the God who graciously justifies the sinner. 그리스도인의 삶 전체는 처음 시작에서부터 마지막 최후에 이르기까지, 죄인을 은혜로이 의롭게 여기시는 하나님께 대한 신뢰와 의존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R. C. Sproul, 편집자, The Reformation Stud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2015 Edition) (Orlando, FL: Reformation Trust, 2015), 1979.

 

로마서 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1:20 For since the creation of the world God's invisible qualities--his eternal power and divine nature--have been clearly seen, being understood from what has been made, so that men are without excuse. 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1:21 For although they knew God, they neither glorified him as God nor gave thanks to him, but their thinking became futile and their foolish hearts were darkened.

1:19 God as Creator has disclosed himself in creation. “The heavens declare the glory of God, and the expanse proclaims the work of his hands” (Ps 19:1; cp. Ac 14:15–17). People also have an innate capacity for God as well as a moral conscience. God is at work to show himself in the world, yet the world is in rebellion against him.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는 창조물들 안에서 자기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시편 19편1절). 사람들은 도덕적인 양심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타고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속에서 자신을 나타내기 위해 일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에게 대항하여 반역하고 있습니다.

1:20 Humanity’s problem is not that they don’t know the truth. The history of the human race discloses a determined effort to oppose the will of God. People are without excuse for their idolatry and practical atheism. 인류의 문제는 그들이 진리를 모른다는 것이 아닙니다. 인류의 역사는 하나님의 뜻에 반대하는 단호한 노력을 드러냅니다. 사람들은 그들의 우상 숭배와 실질적인 무신론에 대하여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Edwin A. Blum, “Romans”, in CSB Study Bible: Notes, ed. Edwin A. Blum와/과Trevin Wax (Nashville, TN: Holman Bible Publishers, 2017), 1781.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개역개정) 5:8 But God demonstrates his own love for us in this: While we were still sinners, Christ died for us. (NIV)

5:6–8 The greatness of God’s love contrasts infinitely with even the noblest acts of love that are possible for the natural man, for it is revealed in the voluntary death of the best, Jesus Christ, for the worst (Gal. 2:20; Eph. 5:25; 1 John 4:9–10). 하나님의 사랑의 위대함은, 심지어 보통의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사랑의 행위와 무한히 대조됩니다. 왜냐하면 가장 위대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장 최악의 인간들을 위하여 자발적으로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Joel R. Beeke, Michael P. V. Barrett와/과Gerald M. Bilkes, 편집자, The Reformation Heritage KJV Study Bible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4), 1622.

 

4. RCB의 관점으로

성경은 인간의 현실에 대하여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인간은 하나님에 대하여 어렴풋이 그러나 부인하지 못할 만큼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러나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떠나고 나 중심적인 삶을 살아간다 라는 표현으로는 인간의 현실을 충분히 묘사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오히려, 인간은 하나님을 반역하고 대적하고 있으며, 이제는 오직 자신만을 위하여 살아가는 악한 존재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죄인에게 “당신 중심적인 삶에서 이제는 돌이키라” 라는 표현은 여전히 아쉬움이 있다. 이제는 “말씀을 듣고 반응해야 한다” 라고 표현하는 것도 아쉬움이 있다. 어쩌면, “이제 당신이 반응해야 한다” 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여전히 기독교 신앙을 “나” 중심적으로 이해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즉, 하나님으로부터 내가 돌아섰기에, 이제는 내가 다시 하나님께 돌아서는 것이라고 기독교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설명은, 당신의 힘으로 낙원으로 들어가라는 말과 과연 무엇이 다른가?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사랑 그 자체이시다. 저자는 온전한 복음이라는 이름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에 대하여 거의 처음으로 심도 있게 설명한다. 핵심은, 당신은 반응하는 믿음으로 구원 받았으며 하나님은 당신을 극진히 사랑하시기에 당신은 이제 안심해도 된다는 것이다. 복음에 대한 좋은 설명이지만, 책의 중반부까지 하나님에 대한 혹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인간의 반응에 초점을 강하게 맞추다가, 이제 갑자기 하나님이 사랑하시기 때문에 당신의 의지가 약해도 염려하지 말아야 한다 라고 설명하기에 전체적인 흐름에서의 논리적인 연결점이 약해 보인다.

저자는 우리가 선한 일을 노력하고 행하지만 여전히 부족함을 인정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에 괜찮다 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저자가 이야기하는 그 사랑은 과연 어떤 것인가? 우리가 여전히 부족하지만 그저 눈을 감아주는 하나님이신가? 그러므로 온전한 복음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를 설명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처음부터 인간은 하나님 앞에 죄인이다. 그리고 평생동안 여전히 그의 수준은 죄인에 불과하다.

영적으로 죽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반응할 수 없으며 평생 하나님의 대적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전적인 죄인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다. 성경은 심지어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선택되었다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너무나 놀라운 선언이며 인간 편에서는 충격 그 자체이다. 

때가 되어 인간 편에서 그 어떤 행위나 반응이 존재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인간에게 찾아오신다. 그리하여 그 어떤 행위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는 의로운 자들이라 칭함을 받는다. 단순히 하나님의 사랑이 크다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영원히 용납하시며,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의 구원은 보장 받는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보수적인 신앙은 인간의 의지를 축소시키며, 열심을 내지 않는 신앙으로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칼빈은 성경 말씀에 따라, 우리 속에 선한 일을 시작하시고 완성하심을 선언한다. 심지어 그는 하나님께서 선을 행할 의지를 주시며, 그것을 행하고자 하는 강한 노력조차 성도에게 허락하신다고 말한다. 

칼빈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기독교에서 인간의 반응과 열심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여호와가 가지신 그 어떤 것도 빼앗기를 원치 않는다. 그는 우리 안에 일어나는 그 모든 것, 심지어 나의 의지의 반응조차도 오직 하나님이 행하신 것이며, 그렇기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함을 말한다. 그러므로 인간을 겸허하게 만들고, 겸손하게 만들고, 감동시키고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끼고 경험하고 변화시키는 것은 결국 그리스도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의 역사이다.

나의 인생을 해석하는 가장 중요한 성경적인 틀은, 단순히 나의 반응과 나의 믿음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을 이루시는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 그리고 그분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에서 이루신 완전한 의와 그 의의 나에 대한 전가를 성경적으로 의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우리는 평생동안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더 믿고, 의지하고, 그분께만 찬양을 돌려야 한다.

 

5. 적용

1) 처음에 하나님의 자녀가 될 때 뿐만 아니라 평생동안 하나님과 말씀을 향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지금 당신이 하나님을 더욱 믿어야 하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2) 예수님께서 쏟으신 십자가의 극진한 사랑을 항상 묵상하고 있습니까? 십자가를 자주 묵상하기 위해서 당신은 언제 어떻게 어떤 방법을 사용하겠습니까?

 

* 추가로 읽어볼 자료

- 하나님께서 죄인을 의롭다 하심과 인간의 선행을 하나님 중심적으로 이해하는 측면에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1563년에 작성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개혁주의 교리와 신학에 대한 포괄적인 가르침을 제공하는 신앙고백서입니다. 전통적으로 신학자 자카리우스 우르시누스와 카스파르 올레비아누스에 의해 작성된 이 질문과 답변은 52개의 주일로 구성되어 있으며, 원래는 일 년 중 매주 일요일에 가르치기 위해 고안된 것입니다. From Reformed Church in America Webpage

https://www.rca.org/ko/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60문. 어떻게 당신은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됩니까?

대답.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참된 믿음으로만 [의롭게 됩니다]. 이것은, 비록 내가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크게 어겼고 단 하나도 지키지 않았으며 여전히 모든 악으로 기울어져 있음을 나의 양심이 고소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나의 공로가 전혀 없이 순전히 은혜로 그리스도의 완전한 속죄와 의와 거룩을(=그리스도의 완전히 만족하게 하심과 의로우심과 거룩하심을) 거저 주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내가 오직 믿는 마음으로 이 선물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마치 나에게 죄가 전혀 없고 또한 내가 죄를 짓지 않은 것처럼, 실로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이루신 모든 순종을 내가 직접 이룬 것처럼 여겨주신다는 것입니다.

61문. 왜 당신은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고 말합니까?

대답. 그것은 나의 믿음에 어떤 가치가 있어서 내가 그것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뜻]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속죄와 의와 거룩만이(=그리스도의 완전히 만족하게 하심과 의로우심과 거룩하심만이) 하나님 앞에서 나의 의가 되고, 오직 믿음으로만 나는 이러한 의를 받아들여 나의 것으로 삼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62문. 하지만 왜 우리의 선행이 하나님 앞에서 의나 의의 한 부분이 될 수 없습니까?

대답. 왜냐하면 의가 만일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때 절대적으로 완전해야 하며 하나님의 율법에 완벽하게 일치해야 하는데, 우리가 금생에서 [행한] 최고의 행위조차도 모두 불완전하며 죄로 오염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63문.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선행에 대해 금생과 내생(來生)에서 상을 베푸실 것이라는 [말씀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선행은 아무것도 획득하지 못한다는 것입니까?

대답. 이러한 상은 공로가 아니라 은혜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64문. 하지만 이러한 가르침은 사람들을 경거망동하고 방종하도록 만들지 않겠습니까?

대답.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와 같이 참된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접붙여진 사람들이 감사의 열매를 맺지 않게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임경근, 교리와 함께 하는 365 가정예배, 개정판. (서울시 마포구 양화로 78, 502호: 세움북스, 2017), 391–392.

선행의 첫 부분은 의지이며, 나머지 부분은 그것을 행하고자 하는 강한 노력인데, 이 두 가지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의지에 대해서나 그것을 이루려는 노력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우리 것으로 주장하게 되면, 그것은 여호와의 것을 빼앗는 것이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연약한 의지를 도우신다고 말하면, 결국 무언가가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이 되고 만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의지를 만드신다고 말하면, 우리의 의지 속에 있는 모든 선한 것들이 다 우리 바깥에서 비롯된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선한 의지라 할지라도 우리 육체의 짐 때문에 눌려서 일어설 수가 없으므로, 사도는 그런 어려움을 이길 수 있도록 우리에게 끊임없는 열심이 충족하게 베풀어진다는 사실을 덧붙이고 있는 것이다(참조.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역자주).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가 다른 곳에서 가르치는 말씀 —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고전 12:6) — 도 사실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이 진술은 영적 생명의 전 과정을 다 포괄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다윗은 “주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주의 진리에 행하오리니”라고 간구한 다음, 곧바로 “일심으로 주의 이름을 경외하게 하소서”(시 86:11; 참조. 시 119:33)라고 덧붙이고 있다.

이 말씀은 곧, 아무리 좋은 기질을 지닌 사람이라도 수많은 요인들로 인하여 산란해져 있기 때문에, 끝까지 인내하도록 힘을 얻지 못하면 곧바로 무너지고 타락하고 만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또한 다른 곳에서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도록 발걸음을 주장해달라고 기도한 후에, 싸울 수 있는 힘을 주시기를 간구하고 있다: “어떤 죄악도 나를 주관하지 못하게 하소서”(시 119:133). 그러므로 주께서는 이렇게 하여 우리 속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시고 또한 완성하시는 것이다. 의지가 올바른 것에 대한 사랑을 품고, 그것을 향하여 열심을 기울이며,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움직이는 것이 모두 하나님의 행하심인 것이다. 선택과 열심과 노력이 흔들리지 않고 그것을 이루도록 끝까지 나아가는 것이 바로 주님의 행하심이요, 또한 사람이 이런 일들에서 끊임없이 전진하며, 끝까지 인내하는 것도 주님의 행하심인 것이다.

기독교강요 (상) - 1559년 최종판 | 장 칼뱅, 원광연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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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의의 전가에 대한 이해의 측면에서

케빈 드영

사도행전 16장을 보면, 격렬한 지진이 났을 때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 갇혀 있었다. 죄수들은 달아났고, 잠에서 깬 간수는 모든 죄수가 달아난 것을 보고 크게 낙담했다. 간수가 자살하려는 순간, 바울이 그를 막았다. 그러자 간수가 다음과 같은 유명한 질문을 던졌다.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30절). 그러자 바울은 그에게 간단하면서도 성경적이며, 굉장히 아름다운 답변을 내놓는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31절).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이생과 내생에서 이보다 중요한 질문은 없다. 이 질문에 대한 이 교리문답의 대답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즉 구원받는 믿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하나님이 어떻게 믿음으로 구원하시는지를 잘 요약해 놓았다. 이 요약된 대답에는 두 개의 핵심 단어가 있다. 첫째, 가장 처음에 나오는 단어인 “오직”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다. 잘 알겠지만, 믿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그다지 논란거리가 아니다. 사람들은 믿음에 관심이 많고, 또한 무언가를 믿고 있다. 하지만 오직 믿음이다. 믿음에 무엇을 더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믿음에 당신의 배경을 더해야 하거나, 믿음에 당신의 출신 가문을 더해야 하거나, 사회 정의를 위해 행한 선한 일들을 더해야 하거나, 당신이 얼마나 자주 기도하는지를 더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믿음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다. 믿음에는 대상이 있다.

많은 사람이 계속해서 믿음과 신앙을 감상적으로 덧칠하며 이렇게 말한다. “나는 믿음의 사람이야.” “너도 믿음을 가져야 해.” 하지만 믿음 그 자체로는 아무 의미가 없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믿음의 대상이다. 신앙이 굳건한 사람, 진실한 사람, 영적인 일에 신비한 믿음을 지닌 사람이 된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우리를 구원한다. 그분을 믿어야 한다. 그분이 우리를 구원하는 믿음의 대상인 것이다. 믿음은 그저 도구일 뿐이다. 하나님이 “흠, 너는 그다지 이룬 것이 없구나. 하지만 너에게는 믿음이 있으니 그건 정말 맘에 든다”는 식으로 말씀하시며 믿음을 하나의 선한 행위로 보시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 않다. 믿음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는 것이며, 그러고 나서야 그리스도가 우리를 구원하신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믿느냐다.

내가 자란 지역은 추운 곳이어서 종종 스케이트를 타거나 아이스하키 경기를 즐겼다. 첫 얼음이 얼면 발끝으로 그 위를 걸으며 궁금해했다. ‘얼음이 충분히 두껍게 얼었을까?’ 어떤 사람은 얼음에 대한 믿음이 충분한지 자유롭게 스케이트를 타며 곳곳을 누볐다. 반면 내 믿음은 발끝으로 조심스럽게 다니며 언제라도 얼음에서 나갈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 모두를 안전하게 지켜 주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믿음의 정도가 아니다. 비록 자유롭게 다녀도 될 만큼 얼음이 얼었다고 아무리 확신할지라도 중요한 것은 실제 얼음의 두께다. 

당신이 서 있는 대상이 당신을 구원한다. 그 대상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뿐인 것이다.

둘째, 이 대답에는 굉장히 의미심장한 단어가 나온다. 바로 “전가”다. 그리스도의 의로운 삶이 우리에게 전가된다는 믿음은 복음과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다. 전가란 우리도 그렇게 여겨진다는 뜻이다. 우리를 그렇게 인정한다는 뜻이다. 마치 돈을 전신으로 송금하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 안에 있는 의(본래적 의, inherent righteousness)와 우리 안에 주입된 의(주입된 의, infused righteousness)는 다르다. 본래적 의는 다음과 같은 의에 가깝다. “자, 봐. 내가 얼마나 의로운지. 난 의로운 일을 했어.”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의는 이런 것이 아니다. 우리 외부에 있는 그리스도의 의다. 우리가 믿음으로 예수와 연합되어 예수의 의가 우리의 의로 여겨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지만 악한 자를 의롭다 하실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로마서 3장이 다루는 문제이자, 복음의 좋은 소식이다. 즉, 우리가 여전히 죄인이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게 여기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는 것은 공의롭다. 그분이 마술 지팡이를 흔들면서 “죄는 큰 문제가 아니야(윙크)”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이 공의로우시면서도 우리를 의롭다고 하실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께 속하여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의 의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복음 연합 and 리디머 장로교회, 뉴시티 교리문답 해설: 우리의 신앙을 굳건히 세워 줄 하나님의 진리, ed. 콜린 한센, 초판. (서울: 죠이북스, 2018), 139–141.

 

- 하나님의 선택과 믿음의 관계의 측면에서

처음 논문에 나타나 있는 칼빈주의의 견해는 유명한 5세기 신학자 어거스틴과 바울의 로마서에 대한 그의 해석에까지 소급한다. 이러한 견해를 주장하였던 다른 유명한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위대한 종교개혁자들인 마틴 루터와 존 칼빈이 있다. 거기에 유명한 부흥설교가들인 조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 1714–1770)와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 등도 이 견해를 주장하였다. 오늘날 이 견해는 R. C. 스프룰(Sproul, 1939–)과 존 파이퍼(John Piper, 1946–) 등과 같은 복음주의 학자들에 의해 분명하게 표명되고 변호되고 있다. 이 견해의 핵심에는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지혜와 주권 가운데 세상의 기초를 놓기 전부터 죄 많은 인류로부터 일단의 사람들인 택자를 구원하기 위하여 자비롭게 선택하셨다는 확신이 있다.

그레고리 A. 보이드 and 폴 R. 에디, 복음주의 신학 논쟁: 복음주의 신학의 이슈 이해, ed. 백승현, trans. 박찬호, 초판., vol. 9, 복음주의 역사 시리즈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14), 264.

또한 알미니안주의가 사람들이 성령의 구원하시는 사역에 항복하거나 거부하거나 선택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모순적이다. 그들은 사람들이 전적으로 은혜에 의하여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인정하기는 한다. 그러나 만일 구원받은 사람과 구원받지 못한 사람 사이의 차이가 전자는 성령에게 굴복하지만 후자는 굴복하지 않는 것이라면 어떻게 구원받은 사람들이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들보다 더 낫다거나 아니면 최소한 덜 죄악되다는 결론을 피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어떻게 사람들의 구원에 대하여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릴 수 있는가? 또한 알미니안주의자들이 가르치고 있는 것처럼 만일 사람들이 끊임없이 신앙을 산출함으로써 그들 스스로 구원을 지키도록 해야 한다면 끝까지 믿음을 지킨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더 낫다라는 결론을 어떻게 피할 수 있는가? 이처럼 알미니안주의는 사람들을 구원하고 지켜주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주장하지만 그들의 주장은 논리적이지 않다.

그레고리 A. 보이드 and 폴 R. 에디, 복음주의 신학 논쟁: 복음주의 신학의 이슈 이해, ed. 백승현, trans. 박찬호, 초판., vol. 9, 복음주의 역사 시리즈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14), 271–272.

첫째, 칼빈주의자들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믿도록 선택하라고 요구하신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칼빈주의자들은 이러한 선택이 사람들의 구원의 기초임을 부정한다. 사람들이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말하는 것과 사람들이 믿기 때문에 구원을 받는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것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에 의해 선택되었기 때문에 구원받는다. 만일 그들이 택자들이라면 그들은 믿을 것이다. 만일 그들이 택자가 아니라면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불신자들에게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요 8:47)라고 말씀하고 있다. 최초의 원인은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속한 자”인지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자”인지 하는 것이다. 그다음 두 번째로 그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든지 거부하든지 하는 일이 발생한다.

둘째, 칼빈주의자들은 자유의지를 부정하지 않는다. 칼빈주의자들이 부정하는 것은 타락한 인간이 그들 스스로 하나님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성경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하나님을 반역함에 있어서 아담과 하와를 자유롭게 따라갔다. 이러한 반역의 결과는 인간이 이제 전적으로 타락하여 하나님께 긍정적으로 반응하도록 선택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자유는 단지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주셔서 그들의 본성을 바꾸어 주시고 그들이 결코 가질 수 없었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을 가지게 하실 때에만 회복될 수 있는 것이다(참조. 행 16:14).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요 6:29)고 말씀하신다

그레고리 A. 보이드 and 폴 R. 에디, 복음주의 신학 논쟁: 복음주의 신학의 이슈 이해, ed. 백승현, trans. 박찬호, 초판., vol. 9, 복음주의 역사 시리즈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14), 275–276.

* "하나님 나라의 도전" 북클럽 인도자용 자료모음
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3/09/blog-post.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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