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딩 크리스천 블로그 사용법입니다

레이블이 (진리의조각들)터프토픽스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진리의조각들)터프토픽스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25년 10월 28일 화요일

터프 토픽스 (5) -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의 진의는 무엇일까?

 

1. 요약

세상의 주된 논리는 상대주의이며, 이것은 절대 진리가 존재함을 믿지 않는 것이다. 상대주의에 빠진 사람은, 마태복음 7장 1절의 말씀을 이해할 때에, 다른 사람들을 평가하기 위한 어떠한 윤리적 분별도 사용해서는 안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 말씀이 속한 산상 수훈 안에서 살펴보면, 예수님의 모든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떠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외식하는 자와 다르게 진실한 신앙 생활을 할 것을 요구하시는데, 이것은 다른 사람들을 향한 판단을 전제로 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금하신 비판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의 잘 되는 것을 위한 염려를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 자기 의에 사로 잡혀서 과하게 파괴적으로 행하는 비판이다. 그러므로 비판하지 말라는 예수님은 말씀은, 다른 이를 향하여 관대하라는 간청이며, 나 자신이 재판관이 되어 하나님처럼 행동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너희의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는다고 말씀하셨다. 이 비판이 하나님으로 부터이든 혹은 사람으로 부터이든 중요한 것은, 내가 다른 사람을 평가할 때에 어떤 기준을 세웠다면 그 기준을 자기 자신에게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다른 이를 비평하기 전에 반드시 나를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분별 없이 행동하는 것을 경계하시며, 자기를 점검한 이후에 다른 사람을 비평하라고 명하시는 것이다.

 

2. 책에서 한마디

“사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돕는 일에 정말로 관심이 있지 않다. 우리는 그를 정죄하는 일에만 관심을 갖는다. 우리는 그에게 큰 관심을 갖고 있는 척한다… 우리는 그의 결점을 발견하게 되어 매우 기쁜 것이다.”

 

3. 성경적 관점에서 보기

마태복음 7: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예수님께서는 모든 판단 행위를 금지하려고 의도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구절들에서 예수님은 신자들이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분별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정죄하신 것은, 자신의 죄는 눈감아주면서 다른 사람의 잘못에만 초점을 맞추는 위선적인 판단이었습니다.

Charles L. Quarles, “Matthew,” in CSB Study Bible: Notes, ed. Edwin A. Blum and Trevin Wax (Nashville, TN: Holman Bible Publishers, 2017), 1510–1511.

 

4. RCB의 관점으로

저자의 말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사람들조차도 가장 좋아하고 자주 인용하는 말씀이 마태복음 7장 1절 말씀이다. 그들은 이 말씀을 가져다가 기독교 인의 모든 판단을 비난하며, 자신들의 자유를 옹호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을 조금만 진지하게 읽어 본 사람이라면, 예수님이 모든 판단을 금하시지 않은 것을 분명히 알 수가 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진리이다 라고 말씀하셨고 모든 죄악을 판단하시며 정죄하셨다. 그리고 동시에 그분을 믿는 자들에게, 성경적인 판단력을 가지고 상황과 사람을 판단하며 살아갈 것을 명령하셨다.

그러나, 그러한 기독교인의 판단은 ‘정직’과 ‘사랑’을 전제로 해야만 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지나치게 가혹하게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평가하는데, 그것은 상대방을 향한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진지하게 돌아보지 않기 때문에, 마치 자신은 하나님이라도 된 것처럼, 혹은 아무런 죄가 없는 것처럼 지나치게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비난하는 것이다.

주변을 돌아보면, 이미 세상은 넘칠 만큼의 판단으로 가득하다. 특별히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이 진리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혹독하게 세상을 판단한다. 그러므로 어쩌면 이 시대에 있어 가장 필요한 것은, 정확한 평가가 아니라 품어주는 사랑이 아닐까? 다른 사람을 향한 날선 비판이 아니라 진지한 자기 성찰이 아닐까? 그리고 특별히 목회자에게 그것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5. 적용

1) 당신이 지금 가장 비판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2) 만약에 누군가가 당신이 사용하는 그 비판의 기준을 당신에게 들이댄다면 어떻게 반응하겠습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 '터프 토픽스' 크리스천 북클럽 인도자용 자료모음
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5/08/blog-post.html  

2025년 9월 23일 화요일

터프 토픽스 (4) - 예수님도 죄를 지으실 수 있었을까?



1. 요약

인간은 본성적으로 죄를 짓는 존재이며 그러므로 죄를 알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를 알지도 못하는 분이시다. 그분은 직접 죄를 지으신 적이 없고 죄가 없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죄를 지으실 수 있었는가? 다시 말해서 죄를 짓지는 않으셨지만 죄를 짓는 것이 가능했는가?

그분은 인간이셨기에 죄를 지으실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했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을 항상 의지하심으로 죄를 짓지 않으셨다. 그리고 두번째 아담으로서 죄를 짓지 않기로 선택하신 것이다. 성자 하나님은 인간이 되심으로서 자신의 신적인 능력을 사용하시지 않기로 의도하셨고 이것은 참된 인간의 한계와 함께 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분의 기적의 역사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행하신 것이다.

성령님은 언제나 예수님과 함께 하셨고, 그분의 능력을 예수님이 의시적으로 의존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죄의 가능성이 있었지만, 성령의 사역이 실패하시지 않으시기 때문에 그분에게는 죄의 가능성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예수님의 성령님에 대한 전적 의존은, 그분의 제자들이 인간성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모델이며, 제자들은 성령님을 통하여 소명을 완수해야 하는 것이다.

 

2. 책에서 한마디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원하신 삶의 방식, 즉 이상적이고 가장 성공적인 삶의 방식은, 하나님과 떨어져 독립적이거나 그분 없이 사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조화를 이루고 그분의 능력을 공급받는 삶이다. 예수님이 이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신 것이다.

 

3. 성경적 관점에서 보기

베드로전서 2:22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2:23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2:22 베드로는 오실 메시아의 고난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 곧 이사야 53장 9절을 인용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전혀 정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죄를 범한 적도 없고 누구를 속인 적도 없었기 때문에 사형을 선고받을 아무런 이유가 없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경험으로 부터 예수께서 완전하신 분임을 알았습니다. 그는 3년 동안 예수와 함께 살고 여행했습니다. 가까운 관계는 종종 사람의 가장 나쁜 면을 드러내지만, 베드로는 선지자의 말씀이 진리임을 직접 보았습니다. 그리스도는 삶과 말씀에서 그 어떤 죄도 없으셨습니다.

Bruce Barton et al., Life Application New Testament Commentary (Wheaton, IL: Tyndale, 2001), 1113.

요한복음 3:34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이니라

3:34 인간 교사들과 달리, 예수께서는 성령을 제한적으로 즉, 한정된 방식으로 받지 않으셨습니다. 성령님은 예수께 완전히 주어졌습니다. 이 구절에는 삼위일체 하나님 모두가 언급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아들을 보내시고, 그에게 성령을 한량 없이 주셨습니다.

Earl D. Radmacher, Ronald Barclay Allen, and H. Wayne House, The Nelson Study Bible: New King James Version (Nashville: T. Nelson Publishers, 1997), Jn 3:34.

누가복음 4:1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성령께서 예수님의 삶에 관여하신 것은 예수님의 참된 인성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과 성령의 인도하심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능력 있게 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광야는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믿음의 시험에 실패했던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스라엘이 통과하지 못했던 광야 시험을 통과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마지막 아담’ 으로 시험을 받으셨는데, 이는 첫 아담이 실패한 자리에서 승리하실 분이셨습니다.

A. Boyd Luter, “Luke,” in CSB Study Bible: Notes, ed. Edwin A. Blum and Trevin Wax (Nashville, TN: Holman Bible Publishers, 2017), 1609.

 

4. RCB의 관점으로

예수님의 죄 없으심이야 말로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시는 핵심이다. 그분이 무죄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죄를 예수님께 전가할 수 있으며,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실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죄 없으심이란 실질적으로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성경은 그분이 우리와 동일한 인간이시라고 분명히 말씀하심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는 그분은 죄가 없으시다는 선언으로 인하여 그분이 우리와 뭔가 다르다는 거리감을 느낀다.

그러나 저자는 예수님 역시 우리와 동일한 인간이 확실하며, 그분은 참된 인간으로서 죄의 가능성은 분명히 있었지만 성령님을 항상 의지하며 그분의 도우심으로 죄를 짓지 않았다고 분명하게 설명한다. 이 부분이 참 좋은 것은, 저자의 결론처럼 성도가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서 분명한 방향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인간으로서 오직 성령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능력으로 사셨던 것처럼, 모든 하나님의 자녀는 바로 그런 모습과 방식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비록 우리는 연약한 인간으로 죄를 짓고 살아가지만, 그러나 주님께서 만드신 새로운 피조물로서 예수님이 보여주신 참된 인간의 삶의 방식을 그대로 따라가야 함을 다시 한번 분명하게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다.

 

5. 적용

1) 당신은 삶의 모든 상황에서 오직 성령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있습니까?

2) 성령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능력을 힘입기 위해서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 '터프 토픽스' 크리스천 북클럽 인도자용 자료모음
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5/08/blog-post.html 

 

 

2025년 8월 19일 화요일

터프 토픽스 (3) - 하나님은 자신의 마음을 바꾸실까?



1. 요약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마음을 바꾸시는가? 하나님은 언제나 존재하신다는 점에서는 불변하신다. 그러나 피조물간의 관계 안에서는 하나님께도 변화와 발전이 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모든 상황 속에서 자기 자신의 신적 본성을 변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신다. 하나님은 그분의 본질적 존재, 그분의 생명, 그분의 도덕적 특성, 그분의 목적과 계획이라는 점에서 불변하시다.

하나님은 스스로 계시는 분이시며, 그분은 도덕적 특성에 있어 변화가 없으시다. 하나님께서는 목적과 계획에서 불변하신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이 피조물과 맺으시는 관계를 통해 보이시는 다양한 변화와 구속사적 사건들은, 하나님의 마음 속에 영원히 존재하던 목적이 때가 차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불변성을 이해할 때에 난점은, 하나님께서 마치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시고 마음을 바꾸시는 것처럼 보이는 부분들이다. 이것은 신인동감동정설을 동원한 비유적 묘사이며 실제로 그렇다는 뜻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무조건적 작정과 조건적 선언 혹은 경고 사이의 차이점을 우리가 인식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피조물들의 행위와 성품에 따라서 언제나 옳은 바를 행하신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변치 않으실 것이고 변하실 수 없는 신뢰할 만한 분이시다. 그러므로 어떤 고난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토록 동일하시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

 

2. 책에서 한마디

하나님의 불변은 다만 그분이 성경을 통해 계시된 스스로의 존재와 뜻에 완벽하게 부합하도록 존재하시고 행동하신다는 뜻이다

 

3. 성경적 관점에서 보기

잠언 19:21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

하나님의 계획은 인간에 의해 실패하거나 좌절될 수 없는 것입니다.

Joel R. Beeke, Michael P. V. Barrett, and Gerald M. Bilkes, eds., The Reformation Heritage KJV Study Bible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4), 908.

삼상15:11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 사무엘이 근심하여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으니라

하나님을 주어로 하는 동사 ‘후회하다’ 는 여기(삼상 15:10–11)와 창세기 6:7에서만 나타납니다. 창세기에서는 인류를 창조하신 것을 후회하시며 큰 홍수를 내리기로 결정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나타냅니다. 두 경우 모두 사람들이 잘못된 도덕적 선택을 했으며,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미리 아심을 통해 이미 그들이 무엇을 할지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불순종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을 보시는 것은 하나님께 아픔을 드렸다.

Bryan E. Beyer, “1 Samuel,” in CSB Study Bible: Notes, ed. Edwin A. Blum and Trevin Wax (Nashville, TN: Holman Bible Publishers, 2017), 432.

말라기 3:6 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

하나님은 자신이 신실하지 않다는 비난에 대해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거짓말하지 않으시고 변덕스럽지 않으시며, 그분의 목적과 약속이 취소될 수 없는 불변의 하나님이 아니셨다면, 이스라엘의 반역은 이미 오래전에 그들을 멸망시켰을 것입니다.

E. Ray Clendenen, “Malachi,” in CSB Study Bible: Notes, ed. Edwin A. Blum and Trevin Wax (Nashville, TN: Holman Bible Publishers, 2017), 1472.

히브리서 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이 말씀은 그 자체로 중요한 기독론의 선언이지만, 동시에 7절 마지막 구절과 연결이 됩니다. 즉, 너희 지도자들이 일생 동안 선포하고 신뢰했던 그분은 너희 또한 신뢰할 만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변함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Douglas J. Moo, “The Letters and Revelation,” in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ed. D. A. Carson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2222.

 

4. RCB의 관점으로

이 챕터의 내용은 하나님에 대해서 더 깊이 생각하게 이끌어준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변하지 않는 분이라고 배우고 믿고 있지만, 동시에 성경은 마치 하나님께서 변하시는 분인 것처럼 묘사하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철학적으로 이 부분을 접근하는 것도 굉장히 유익하지만, 이 챕터의 내용을 잃으면서 오히려 하나님의 불변성은 그분의 은혜를 드러내시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 인간은 처음부터 하나님을 반역하였지만, 그분께서는 그분의 선하심이라는 측면에서 변하지 않으셨고, 신실하게 자신의 약속을 지키셨기 때문이다.

구속사 가운데 많은 사건들이 일어나지만, 하나님께서 변하시는 것처럼 보이는 사건들 (ex) 사울에 대한 후회)은 하나님께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책임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계셨지만,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을 때에 아파하셨다는 Bryan E. Beyer의 설명은, 우리가 다루고 있는 이 주제는 철학적인 논리가 아니라, 살아 계시고 역사하시는 인격적인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것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한다.

저자가 마지막에 이야기하는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그분의 사랑에 대한 불변성은 다소 논리적으로 갑자기 전개가 된 것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불변성을 결국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내셨다는 점에서는 너무나 완벽한 결말이다. 하나님은 모든 상황 속에서 믿을 수 있는 분이시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것을 확증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불변하심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그분의 신실함은, 우리의 모든 연약함과 죄악을 반드시 이기고 승리하실 것이다.

 

5. 적용

1) 하나님의 불변하심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까?

2) 하나님의 불변하심을 목회 가운데 혹은 설교 가운데 어떻게 드러낼 수 있겠습니까?

* '터프 토픽스' 크리스천 북클럽 인도자용 자료모음
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5/08/blog-post.html

2025년 6월 23일 월요일

터프 토픽스 (2) - 열린 유신론이란 무엇일까?

 



1. 요약

열린 유신론은,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에 대해서 절대적으로 확신하지 못하며 알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 이론은 하나님께서 미래의 모든 사건을 다 아신다는 것과 불변성과 영원성을 부정하는데, 이러한 전통적인 견해는 성경이 아닌 그리스 철학으로 부터 왔다고 믿는다.

열린 유신론에 따르면, 하나님은 사건의 전개를 인식하고 그 과정 속에서 반응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이 미래에 대한 모든 세부 사항을 다 알고 계시다면 주고 받는 관계를 통한 인간과의 사랑이 불가능하다고 본다. 어떤 이들은 이러한 열린 유신론을, 하나님도 인간처럼 과정 가운데 존재한다는 과정 신학과 유사하다고도 본다. 

열린 유신론자들은 선택 교리에 대해서는 아르미니우스주의를 지지함에도 불구하고, 아르미니우스가 추구한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지식조차 인정하지 않는다. 

또한 열린 유신론자들은 하나님이 전지하시다고 말은 하지만, 미래가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이기에 대상이 존재할 수 없다는 이유로 하나님의 예지는 거부한다. 이들은 미래의 사건이 예정되어있을 경우 분명히 일어난다는 명제 때문에 인간의 자유의지는 상실하게 된다고 받아들인다. 또한 인간이 계획을 했더라도 바꿀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미래를 알 수 없다고 주장한다.

열린 유신론은 이사야 41장에서 48장까지의 말씀을 통해 반증할 수 있다. 여기에서 하나님께서는 미래에 대한 철저한 예지와, 일어날 모든 일을 세밀하게 예측하신다. 그리고 이것이야 말로 참된 신임을 증명하는 조건임을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바벨론의 멸망과 고레스에 의한 귀환을 미리 알고 계셨다. 

이러한 결과를 위해서는 수 많은 사람들의 자발적이고 자유로운 선택이 얽혀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최종적인 결과를 그분의 능력으로 실제로 이루셨다. 하나님께서 앞으로 이루실 사건들을 미리 보여주신 이유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감사하도록 하시며 자신이 역사를 주관하심을 분명히 드러내시기 위해서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예지하심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자발적인 선택이 도덕적 책임을 벗어날 수 없다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2. 책에서 한마디

“하나님이 좁게는 어떤 개인의 삶을, 넓게는 이 세상을 빚어가시는 방법에 대해 도전하는 것은 선호나 관점의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이것은 하나님이 하나님 되신 것에 대한 거부, 역할 전도, 즉 피조물이 창조주를 자신의 계획을 수행할 종으로 만들려는 시도다”

 

3. 성경적 관점에서 보기

사 44:6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7 내가 영원한 백성을 세운 이후로 나처럼 외치며 알리며 나에게 설명할 자가 누구냐 있거든 될 일과 장차 올 일을 그들에게 알릴지어다 8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겁내지 말라 내가 예로부터 너희에게 듣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알리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나의 증인이라 나 외에 신이 있겠느냐 과연 반석은 없나니 다른 신이 있음을 내가 알지 못하노라

우상에 대한 긴 논쟁은, 하나님의 유일성에 대한 확신으로 시작됩니다.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사용되었습니다.

Tremper Longman III, “Isaiah,” in CSB Study Bible: Notes, ed. Edwin A. Blum and Trevin Wax (Nashville, TN: Holman Bible Publishers, 2017), 1106.

오직 여호와 한분만이 진정한 신이시며 그러므로 그분은 자신의 약속을 모두 지키실 수 있습니다.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1320.

 

4. RCB의 관점으로

전통적이지 않은 어떤 신학적인 이론을 접하는 것은 당황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것의 유익은, 이미 알고 믿고 있는 성경적인 하나님에 대한 이해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열린 유신론은, 여호와 하나님을 제한하는 것이다. 그리고 좀 더 깊이 들어가보면, 하나님을 인간과 동일한 수준으로 격하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이다. 그분이 미래를 확정적으로 예지하지 못한다면, 어찌 그분을 하나님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유신론자들의 하나님에 대한 개념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연약하고 오류 투성이인, 그저 인간보다 좀 더 탁월한 수준의 신의 개념으로 덮여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한계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언급하지는 않지만 열린 유신론의 결정적인 오류는, 미래를 예지하지 못하는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미래를 예지하시지 못한다면, 어떻게 그분이 수천년에 걸쳐서 자신의 약속을 이루실 수 있겠는가? 그리고 어떻게 그 약속 대로 자신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시고 죄인의 구원을 이루실 수 있었겠는가? 인간의 입장에서는 여러 철학적인 고찰을 통해 열린 유신론을 주장할 수 있겠으나, 하나님은 그들을 비웃으시며 (시2:4) 자신의 위대하심을 역사 속에서 이미 드러내셨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 의지를 아래의 표처럼 제안하는 바이다. 이 표의 핵심은, 하나님의 주권은 인간의 자유 의지를 품고 그 우위에 있는데, 그것은 그 주권을 행하시는 바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주권은 인간의 자유 의지의 성질을 보전하되 완전히 다스리신다.


시간적인 측면에서, 하나님은 시간의 창조자로서 영원하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전체 시간을 미리 아시고 다스리시며 그들의 운명을 또한 결정하셨다. 시간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에게는 모든 것이 현재이며, 그러므로 인간의 미래가 확정되지 않았으니 그분이 미래를 알 수 없다는 것은 논리적인 모순이다. 

반면 인간의 관점에서는 현재의 시간만 누릴 수 있을 뿐이며, 동시에 미래와 현재 그리고 과거 속에서 완전한 자유 의지를 사용한다. 또한 인간의 자유의지는 자신의 입장에서는 온전히 자유하지만,  전체의 측면에서는 그의 의지와 체의 시간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 아래 놓여 있다.

이 표가 보여주는 것은 부정적인 면은 다음과 같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한다. 이것이 죄인에게 하나님의 구원이 전적으로 필요한 이유이다. 반면 긍정적인 면에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예정하셨고 그분의 구원의 계획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이루신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주권의 극치는 확정된 미래,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다. 성령께서 거듭나게 하신자는 이러한 하나님의 주권과 그분의 일하심의 놀라움을 깨닫게 되며, 하나님의 계획의 성취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절대적인 안정감과 흔들리지 않는 미래에 대한 소망을 얻게 된다.

결론적으로 성도는 한 없이 자유롭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자유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자유 의지를 사용하여 그분의 선하신 뜻을 이루신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논리적으로 납득하고 이해하고 믿는 우리는 오직 그분께만 영광을 돌린다.

 

5. 적용

1) 만약 당신 주변에 열린 유신론을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습니까?

2) 당신은 저자가 이야기하는 이사야에 대한 설명을 통해서 어떤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까?

 

* 추가적으로 읽어볼 자료

- 일반적인 심리학적 관점에서도 미래의 확정성은 인생의 의미를 결정짓는 요소라는 측면에서

프랭클에 따르면 어떤 환경에 처하든 미래를 분명히 볼 수 있어야 한다.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데도 명확한 미래가 아주 중요하다. 미래의 나를 위협하는 가장 심각한 요인은, 자유의 상실이 아니라 목적과 의미의 부재다. 프랭클이 전하는 이야기는 목적과 의미의 부재가 얼마나 치명적인 위협이 되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목적을 잃으면 현재의 삶은 죽은 삶이다.

퓨처 셀프 | 벤저민 하디, 최은아 저

- 하나님의 시간을 인간의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것 자체가 오해라는 측면에서

하나님이 시간에 매여 살지 않으신다는 것은 거의 확실합니다. 하나님의 삶은 연속되는 순간들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오늘 밤 10시 30분에 100만 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기도한다 해도, 하나님은 우리가 ‘10시 30분’이라고 부르는 짧은 순간에 그 모든 기도를 들으실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10시 30분—그리고 태초 이래의 모든 순간—은 언제나 ‘현재’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께는 불길에 휩싸여 추락하는 비행기 속에서 조종사가 드리는 그 찰나의 기도를 들으실 여유가 영원무궁히 있는 것입니다.

순전한 기독교 | C. S. 루이스, 이종태, 장경철 저

-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어떤 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 일을 이루시는 분이라는 측면에서

우리가 잘되거나 다른 사람의 일이 잘될 때에는 그냥 지나치지 말고, 반드시 찬양과 감사를 하나님께 드려서 거기에 하나님의 손길이 있음을 우리가 깨닫고 인정한다는 것을 증거해야 마땅할 것이다

기독교강요 (중) - 1559년 최종판 | 장 칼뱅, 원광연 저

성도들의 의지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감동을 받으므로 그들이 간절히 원하게 되어 그 일을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이요, 그들이 그렇게 원하게 되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기 때문에 그들이 그렇게 원하게 되는 것이다.

기독교강요 (상) - 1559년 최종판 | 장 칼뱅, 원광연 저

* '터프 토픽스' 크리스천 북클럽 인도자용 자료모음
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5/08/blog-post.html

2025년 5월 26일 월요일

터프 토픽스 (1) - 성경은 무오한 책일까?

 



1. 요약

사람들은 난감한 문제들을 만날 때 혼돈을 경험한다. 제대로 된 대답을 얻지 못하면, 그들의 신앙이 약해지거나 심지어 영혼이 침체에 빠질 수 있다. 성경의 난제들과 씨름해야 하는 것은, 사고의 능력을 연마하고 영혼을 풍성하게 만들며, 하나님의 신비한 역사를 이해하는 환희를 누리기 위해서이다.

우리를 곤란하게 하는 문제의 대답은 오직 성경에서만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성경은 무오한 책인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세가지 입장은, 교회의 말씀, 나의 영, 성경 말씀이 이 세가지 중의 하나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성경 말씀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고 있다.

성령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증거를 우리 마음에 주신다. 또한 예수님 자신이 성경의 영감과 권위를 믿으셨음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은 구약의 이야기를 역사적 사실로 대하였으며, 그러므로 성경의 권위를 부인하는 것은, 예수님의 주 되심을 부인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알 수 없는 것을 직접 밝히 드러내신다. 이것이 계시이다. 성경의 중요한 역사적인 사건들은, 설명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그 의미가 드러난다. 또한 계시는 점진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종합적이고 통합적이며 최종적인 것을 향해 움직인다. 또한 성령께서는 인간 저자들이 기록할 때 의도한 바가 하나님이 의도하신 바와 일치하도록 역사하셨다. 이것이 축자 영감, 완전 영감의 교리이다. 즉, 성경 말씀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뜻이다.

성경은 제한적으로 무오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무오하다. 해석하는 사람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되고, 성경의 원문과 당시 문화와 소통의 방식을 감안한 적절한 해석이 있을 때에, 성경이 주장해온 모든 것은 전적으로 사실로 드러나게 될 것이다.

구약과 신약 모두를 포함한 성경 전체는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 여기서 하나님의 감동이라는 것은, 원어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호흡이다. 즉, 성경은 하나님의 호흡을 근원으로 하여 생겨난 결과물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을 인간의 언어와 경험에 맞추시기 때문에, 성경의 비유적 표현은 무오성에 반하지 않는다. 문법적 관심을 따르지 않았어도, 얼마든지 사실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무오성에 반하지 않는다. 성경에 대한 해석이 다른 것은 성경의 문제가 아니라, 해석자의 문제이다. 

성경은 완벽한 이해를 보장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성경의 정확성은 성경 저자들의 기록 당시의 기준으로 판단되어야 한다. 같은 사건을 다른 저자가 서로 다른 관점과 목적을 기록한 경우에 차이가 일어날 수 있는데, 이것은 부분적 묘사의 특징이기 때문에 무오성에 반하지 않는다.  지금 당장 모순되어 보이는 사건이나 자료를 조화시킬 수 없다는 것은, 성경의 권위를 인간의 지략 아래 두려는 것이므로 이것 역시 무오성에 반하지 않는다. 결국 외견상의 모순들은 해결될 것이다.  

 

2. 책에서 한마디

“간단히 말해, 성경의 영감과 권위는 우리의 신앙이 지어진 기초다. 이것 없이는 불확실과 의심, 인간의 추측, 곧 흑암 속에서 절망적으로 더듬거리게 될 뿐이다.”

 

3. 성경적 관점에서 보기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자들에게는 위로와 양식을 주는 것이지만, 예수 그리스도께 헌신하지 않은 자들에게는 심판과 처형의 도구입니다. 히브리서의 일부 독자들은 그리스도께 속한 척하며 형식만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지적으로는 어느 정도 설득되었지만, 내면적으로는 헌신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의 얕은 믿음과 심지어 거짓된 의도까지도 드러낼 것입니다.

John F. MacArthur Jr., The MacArthur Study Bible: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ashville, TN: Thomas Nelson Publishers, 2006), Heb 4:12.

살전 2: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바울은 두 번째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사도들의 메시지를 메시지를 단순한 인간의 철학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자체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New Living Translation Study Bible (Carol Stream, IL: Tyndale House Publishers, Inc., 2008), 1 Th 2:13.

 

4. RCB의 관점으로

저자는 보수적인 신학의 입장에서 성경의 무오성에 대해서 논증하고 있다. 이번 챕터에 대해서 탁월한 점은, 성경 자체의 논증을 통해서 성경의 무오성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예수님께서 성경의 영감과 권위를 믿으셨음을 설명하면서, 성경의 무오성을 믿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동일한 것임을 설명한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성경에 대한 믿음을 연결함으로써, 성경에 대한 성도의 태도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준다.

또한 저자는 성경이 무오하다는 것에 대한 다양한 반론들을 염두에 두고, 차분하게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서, 성경의 정확성이라는 것은 성경 저자들의 당시 기준으로 판단되어야 한다는 것은, 21세기의 엄격한 과학적 잣대를 성경에 들이대는 것이 현명하지 못하다는 것을 잘 설명한다. 

또한 지금 현재의 인간의 이해 수준을 가지고 성경을 판단하는 것은, 성경의 권위를 인간 아래에 두는 것이라고 논증하는 것이 중요한 부분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성경의 판단자로 존재하려 할 때에, 그것은 결국 자신의 인성을 최고의 권위로 두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언젠가는 모순처럼 보이는 성경의 어떤 부분들이, 반드시 그 모순이 해결될 것을 믿고 희망의 내용으로 챕터를 마무리한다.

저자의 탁월한 저술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것은, 저자의 설명은 누군가에게는 단지 ‘믿음’으로 비췰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교회나, 나 자신이나, 성경 말씀에서 어디에서 나오느냐에 대한 저자의 입장은, 사실 믿음의 문제이다. 이것 자체를 증명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저자의 저술은 충분히 논리적이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성경에 근거한 믿음을 통해 빚어진 결과론적인 입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내용의 부분 부분들 속에서, 일종의 순환적 논리를 발견한다. 보수적인 신학을 공부하고 성경을 무오하다고 믿는 나의 입장에서는 저자의 모든 내용이 그대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성경이 무오한 것은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면, 사실 설득력 있는 논증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이미 투철한 신앙을 가진 이들에게는 그것이 크게 와 닿지만, 성경에 대하여 의심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더 불신을 더할 뿐이다. 그러므로 차라리, 믿지 않는 이들에게 설득력 있는 논증을 하기 위해서는, 성경의 예언의 성취에 대한 확률, 혹은 성경이 필사의 과정을 거치면서도 거의 완벽하게 보전된 그 증거 등을 제시하는게 훨씬 유익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의 무오성을 믿는 것은 전적으로 성령님의 역사이다. 아무리 탁월한 증거를 들이밀어도, 증거 자체가 힘이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성령께서 죄인을 살리시고 하나님을 만나게 하시며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그 가치를 알아보게 하신다. 

히브리서 4장 12절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마음을 향하고 우리의 영혼을 움직이신다. 복 있는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한다. 이것은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내적 증거이다. 기독교의 긴 역사 속에서 수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주의 말씀 안에서 신령한 기쁨, 하늘의 기쁨을 발견했다. 이것이야 말로, 이미 믿은 이들에게 주어진 성경의 무오성에 대한 가장 강력한 증거가 아닐까?

 

5. 적용

1) 당신의 주변에 성경의 무오성에 대해서 의심을 품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 사람이 가진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입니까?

2) 당신이 이 챕터에서 배운 가장 중요한 한가지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 '터프 토픽스' 크리스천 북클럽 인도자용 자료모음
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5/08/blog-post.html

독서 묵상 (88) 집중의 뇌과학 - 창조된 인간은 언어 안에서 자라갑니다

  저자는 나이가 들어도 다양한 언어의 적극적인 사용을 통해서 인지 능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성인이 되어도 배움을 절대로 그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죄로 인해서 많은 부분이 망가졌지만 여전히 인간은 탁월한 존재입니다. 육...

리딩 크리스천 독서 묵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