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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13일 월요일

선교적 교회로 가는 길 (5) - 하나님 나라의 관점으로 보다

 


1. 요약

예수님은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대해 집중적으로 가르치셨다.  교회에 대한 직접 가르침은 두 번 정도에 불과하다. 첫째로, 마태복음 16장인데 주님은 베드로의 고백 위에 주의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셨다. 둘째로, 마태복음 18장인데 거기에서 교회는 하나님 백성의 모임을 의미한다.

이 외에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수도 없이 가르치셨으며 복음 선포의 주제가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에게  여전히 혼란스러운 하늘 나라 혹은 천국이라는 것은, 공간적 개념이 아니라 통치적 개념임을 반드시 깨달아야 한다.

예수님은 교회보다 하나님의 나라를 집중해서 가르치셨지만, 우리는 하나님 나라보다 교회에 집중하고 있다. 교회 중심으로 살고 교회 문화를 배워 익히도록 했다. 안타깝게도 하나님의 백성이 초림과 재림 사이에 어떻게 자신의 분야에서 살아야 할지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다. 두가지 주요 원인으로 인해 가나안 성도들 그리고 교회의 신뢰도 추락이 일어났다. 첫째 교회 성장을 하나님 나라 확장과 동일시했고, 둘째 하나님 나라는 죽어서 가는 일종의 영적 공간으로 가르친 것이다.

교회가 규모가 커진다고 해서 반드시 그 지역에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은 아니다. 교회가 많아도 자신의 생존과 만족만을 위해서 노력한다면 그것을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결코 연결할 수 없다. 오히려 교회가 하나님의 왕권을 존중하며 복음으로 지역 사회 가운데 아름다운 변화를 일으켜야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확장이다. 마치 메시아로 인해서 구원과 화평이 찾아오는 것처럼, 지역 사회에 전해지는 복음은 하나님과의 수직적 그리고 마을 안에서의 수평적인 화평까지 이루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다.

하나님 나라는 무엇이며 교회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하나님 나라는 첫째, 하나님의 통치가 인정되고 실행되는 영역이다. 또한 지금 여기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모시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둘째, 회개하고 들어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통치를 겸손히 받아들이고 들어가는 것이다. 진정한 회개는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에 일어난다.

셋째, 교회의 증거를 통해 선포되고 드러난다. 교회의 사명은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드러내는 것이다. 교회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구속 은혜를 보여주는 표지, 도구, 그리고 맛보기라는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로 가는 길을 보여주는 표지이며, 하나님 나라의 임재가 이 땅에 드러나도록 쓰임 받는 매개체이며,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미리 맛보도록 하는 곳이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한 사람들을 형벌에서 구원해 주신 기쁜 소식이다. 그러나 결코 이것은 다가 아니며 시작에 불과하다. 복음이 기쁜 소식인 이유는, 이제는 죄악 된 인간이 아니라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께서 통치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 통치 아래에서 개인의 영혼, 이웃과의 관계, 그리고 창조 세계의 회복까지 일어나는 것이다. 한 사람의 구원은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기 위한 시작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 나라의 실재를 삶의 현장에서 나타내야 한다.

교회가 하나님 나라 관점을 상실하면 생존을 위해 제도권에 갇힌다. 소외된 이들을 더 이상 찾아가지 않고 오히려 교회를 채우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교회와 세상을 구분함으로 예배가 이루어지는 영역만 거룩하다고 가르친다. 또한 세상을 섬겨야 할 성도가 영적 소비자로 전락한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교회는 안정기로 넘어가면 제도화의 길을 걷는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관점을 가져야 한다. 교회 중심의 생활보다는 하나님 나라 중심의 생활이 되어야 한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신앙 생활을 해야 한다. 또한 지역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가정과, 마을, 그리고 지역 사회를 위한 결정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는 지금 이곳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2. 책에서 한마디

“우리는 물어야 한다. 예수님은 교회보다 하나님의 나라(천국)를 집중해서 가르치셨는데, 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보다 교회에 집중하고 있는가?”

 

3. 성경적 관점에서 보기

스가랴 9: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9:9 Rejoice greatly, O Daughter of Zion! Shout, Daughter of Jerusalem! See, your king comes to you, righteous and having salvation, gentle and riding on a donkey, on a colt, the foal of a donkey. 9:10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통치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 9:10 I will take away the chariots from Ephraim and the war-horses from Jerusalem, and the battle bow will be broken. He will proclaim peace to the nations. His rule will extend from sea to sea and from the River to the ends of the earth.

9:10 peace to the nations. In sharp contrast to Alexander’s empire, which was founded on bloodshed, the Messianic King will establish a universal and eternal kingdom of peace as the ultimate fulfillment of the Abrahamic covenant (cf. 14:16; see Ge 12:2–3 and note, but cf. Rev 19:11 and note). 많은 이들의 피 위에 세워진 알렉산더의 제국과는 정반대로, 메시아 왕은 아브라함 언약의 궁극적인 성취로서 보편적이고 영원한 평화의 왕국을 세울 것입니다. 

Kenneth L. Barker, ed., NIV Study Bible, Fully Revised Edition. (Grand Rapids, MI: Zondervan, 2020), 1601.

9:9, 10 The two advents of Christ are here compressed as though they were one as in Is 61:1–3 (cf. Lk 4:16, 21). Actually, v. 9 refers to His first coming and v. 10 is His second. OT prophets didn’t see the great time period between the two comings. The church age was a “mystery” hidden from them (cf. Eph 3:1–9; Col 1:27). 이 9절과 10절에서는 그리스도의 두 번의 강림이 마치 하나처럼 압축되어 있습니다. 사실 9절은 그분의 첫 번째 오심을 말하고, 10절은 그분의 두 번째 오심을 가리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두 번의 강림 사이의 위대한 기간을 보지 못했습니다. 교회 시대는 그들에게 숨겨진 “비밀”이었습니다. => 초림과 재림의 사건으로 이해하는 성경 해석과 저자의 해석은 어느 쪽이 더 성경적으로 우세한가? 

John F. MacArthur Jr., The MacArthur Study Bible: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ashville, TN: Thomas Nelson Publishers, 2006), Zec 9:9.

누가복음 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23:43 Jesus answered him, "I tell you the truth, today you will be with me in paradise."

23:43 Verily. Truly. To day. Though just converted from a life of sin and blasphemy, this man did not have to wait until after ages of purgatory or unconsciousness but immediately upon his death joined Christ in glory. paradise. A word for a beautiful garden, used here of the heavenly realm where pardoned souls are gathered after death like a return to the garden of Eden (2 Cor. 12:4; Rev. 2:7; cf. Rev. 22:1–3). 진실로. 진실로. 오늘도. 죄와 신성 모독의 삶에서 막 회심했지만, 이 사람은 오랜 연옥이나 무의식 상태가 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었고, 죽자마자 영광 가운데 그리스도와 연합하였습니다. 낙원: 아름다운 동산을 뜻하는 단어로, 에덴동산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이 죽음 후에 용서받은 영혼들이 모이는 천상의 영역을 가리킵니다. 

Joel R. Beeke, Michael P. V. Barrett, and Gerald M. Bilkes, eds., The Reformation Heritage KJV Study Bible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4), 1503.

마태복음 13: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13:44 "The kingdom of heaven is like treasure hidden in a field. When a man found it, he hid it again, and then in his joy went and sold all he had and bought that field.

13:44–46 Those who discover and recognize the worth of living life under the rule of God will sacrifice anything of earthly value for participation in his kingdom.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서 사는 삶의 가치를 발견하고 인식하는 사람들은, 그분의 왕국에 참여하기 위해 세상적인 가치가 있는 모든 것을 희생할 것입니다. 

Tony Evans, The Tony Evans Study Bible (Nashville, TN: Holman Bible, 2019), 1115.

사도행전 8:12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그들이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8:12 But when they believed Philip as he preached the good news of the kingdom of God and the name of Jesus Christ, they were baptized, both men and women.

8:12–13 Philip’s message and signs attracted the attention even of Simon. His interest appears to have been in the miraculous aspect of Philip’s ministry more than in the message of the kingdom of God, which he preached. 빌립의 메시지와 표적은 심지어 시몬의 관심까지 끌었습니다. 그의 관심은 빌립이 전파한 하나님 나라의 메시지보다, 그의 사역의 기적적인 측면에 더 있었던 것 같습니다. 

Lyman Coleman, 편집자, Life Connections Study Bible (Nashville, TN: Holman Bibles, 2019), 1764.

이사야 52:7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개역개정) 52:7 How beautiful on the mountains are the feet of those who bring good news, who proclaim peace, who bring good tidings, who proclaim salvation, who say to Zion, "Your God reigns!" (NIV)

52:7 In the ancient world, news was carried by a herald. In this verse the herald announces the end of hostilities and the fact that God reigns as King over his people. A variation of this verse occurs in Nah 1:15. Paul quotes this verse in Rm 10:15. 고대에는 전령이 소식을 전하였습니다. 이 구절에서 전령은 적대 행위가 종식되었다는 것과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왕으로서 통치하신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습니다. 

Tremper Longman III, “Isaiah,” in CSB Study Bible: Notes, ed. Edwin A. Blum and Trevin Wax (Nashville, TN: Holman Bible Publishers, 2017), 1118.

 

4. RCB의 관점으로

이 챕터는 마치 코페르니쿠스의 혁명과 같은 사고의 전환을 가져다 준다. 저자의 탁월한 점은, 단순히 하나님의 나라를 강조했다는 것이 아니다. 현대 교회가 성경적인 하나님의 나라를 강조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무엇을 지나치게 혹은 비성경적으로 강조하였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저자는 매우 진지하게 질문한다. “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보다 교회에 집중하고 있는가?”

교회에 집중하는 것은, 언뜻 보면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인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몸을 소중히 여기고 아낀다는데 누가 감히 뭐라고 하겠는가? 그런데 여기에서 아이러니가 등장한다. 예수님 자신이 실제로 이 땅에서의 삶의 대부분 가운데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강조하시고 가르치셨는데 왜 교회에서는 그렇지 않은가? 저자와 함께 하는 진지한 성찰 앞에서, 드디어 우리의 아픈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성경적 회복이 없다면, 사실상 기독교의 모든 것이 무너지게 된다는 것을 새롭게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의 다스림과 통치가 없는데 우리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라고 외치는 것이 무슨 실질적인 의미가 있는가? 하나님의 통치를 거절하고 있는 자신의 현실에 대한 직시와 참된 회개가 없는데 어떻게 교회가 변하겠는가?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내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하는데, 교회 자체의 세력을 불리는 것에 모든 힘을 쏟고 있다면 그것이 도대체 세상의 친목 동호회와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이런 맥락에서, 이단이 극단적인 도피주의이며 성경을 개인적인 문서로 만들어버렸다는 것은 참으로 통찰력 있는 지적이다. 어쩌면,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고백함에도 불구하고 삶의 내용이라는 면에서는 얼마든지 우리는 이단과 다름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교회가 안정기로 넘어가면 제도화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매우 뼈아픈 지적이다. 그렇다면 공동체를 회복시키기 위한 방법은 오직 하나이다. 다시 하나님의 나라의 메시지를 새롭게 회복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성도들에게 실현시키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의 실제를 성도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돕고 훈련하고 그 결과물들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저자의 논리의 아쉬운 점이 보인다. 저자는, 하나님 나라의 관점을 제대로 갖지 못했다는 것을 지적하며 이제는 교회 중심의 생활보다는 하나님 나라 중심의 생활이 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마치 부모가 자녀에게 공부 잘해라 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리고 공부를 잘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없겠는가? 문제는 공부를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어야 하며, 공부를 어떻게 잘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가르치고 훈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저자의 주장도 마찬가지이다. 이제는 교회 중심에서 벗어나 하나님 나라를 실현해야 한다라는 저자의 주장만으로는 부족하다. 더 나아가서 저자가 분석한 원인 즉, 하나님의 백성이 초림과 재림 사이에 어떻게 자신의 분야에서 살아야 할지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대책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 나라의 원대한 비전을 이루는 것은 매우 복합적인 것이다. 성도로서 지적이며 정서적인 성숙, 기본적인 성경의 이해와 삶의 견고한 연결,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 제공하는 지혜와 격려가 반드시 필요하다. 과연 이 책은 그러한 원대한 비전과 훈련에 대한 구체적인 전략들을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크리스천 북클럽이야 말로 이것에 대한 가장 적절한 대안이 아닌가?

 

5. 적용

1) 당신의 신앙 생활은 당신이 출석하는 교회 중심입니까, 아니면 하나님 나라 중심입니까?

2) 하나님 나라 중심의 신앙 생활을 위해서 당신에게 가장 시급히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 "선교적 교회로 가는 길" 북클럽 인도자용 자료모음
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3/09/blog-post_28.html 

2023년 10월 28일 토요일

하나님 나라의 도전 (7) - 진정한 회심

 

1. 요약

하나님 나라의 도전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깨어진 세상의 한 부분으로 더 이상 살지 않고 그 세상을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편에 서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깨어진 세상은 특정한 시기만이 아니라 인간의 역사 속에 너무나 선명하게 드러난다. 나치와 일본의 만행이 그렇다. 우리나라의 동족간의 전쟁의 상흔이 그렇다. 유신 정권의 아픔과 현재 일어나는 정치 사회 영역에서의 사건 사고가 그렇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들은 더 어려워진다. 점수 몇 점 때문에 목숨을 버리는 수 많은 학생들이 있다.

성경의 하나님은 이런 세상속에서 특별 대우나 자녀에 대한 복으로 우리를 구슬리는 분이 아니다. 기독교의 주 목적은 예배에서 위로를 받는 것이 아니다. 교리를 외워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도 아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세상과 그 속의 나를 정직히 바라보고, 난세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 편에 서라고 가르치신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주일에 교회 나가고 헌금하는 것으로 의무를 다 했다고 생각한다. 주중에는 하나님 모르는 사람과 동일하게 산다. 세상의 문제에 소극적으로 침묵하든지 혹은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그러나 나 역시 세상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인정할 때에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 하나님께 돌아선 그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서게 되고, 거기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만날 수 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을 배신한 인간을 향해 베푸신 사랑을 십자가에서 은혜로 발견한 사람이다.

세상과 자신, 그리고 하나님을 진실하게 직면하고 나서야 결단할 수 있다. 진실한 결단이 필요하다.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의 특징이다. 결단의 진정성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진실한 자에게 하나님의 영을 선물로 주시고 그와 떠나시지 않고 함께 사신다. 성령을 받는 것에 대한 체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오직 하나님의 약속을 전인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진실하게 하나님을 따르겠다고 결단할 때, 그리고 성령님을 믿음으로 인정할 때 진실한 회심이 일어난다.

진실한 회심은, 다음의 네 가지 질문에 진심으로 답변할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질문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답해야 한다. 첫째로, 당신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으며, 세상에 관해 무엇을 믿고 있는가? 둘째로, 세상 속에 살고 있는 당신은 어떤 존재인가? 셋째로, 세상과 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당신을 위해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하셨는가? 마지막으로, 우리를 하나님 나라에 초대하시는 메시아이신 예수님께 어떤 반응을 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정직한 답변을 하나님께 말씀 드려야 한다. 아브라함이 그러했듯이 당신도 하나님을 믿고 따르기 시작하면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될 것이다.

 

2. 책에서 한마디

“나는 그에게 우리 나이 또래 여공들이 어떻게 사는지 물었다. 당시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던 고통스러운 현장에 관해 이야기했다. 나는 그날, 세상은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곳이라고 말하는 그 친구에게 예수를 소개하지 못했다… 비록 큰 어려움을 모르고 자란 나였지만, 그런 내게도 세상은 슬픈 곳이었다… 세상 앞에 진실하게 서는 것, 그것이 첫 출발점이다.”

 

3. 성경적 관점에서 보기

디모데후서 3: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3:1 But mark this: There will be terrible times in the last days. 3: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2 People will be lovers of themselves, lovers of money, boastful, proud, abusive, disobedient to their parents, ungrateful, unholy, 3: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3:3 without love, unforgiving, slanderous, without self-control, brutal, not lovers of the good, 3: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3:4 treacherous, rash, conceited, lovers of pleasure rather than lovers of God-- 3: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3:5 having a form of godliness but denying its power. Have nothing to do with them.

3:1 Paul’s reference to the last days (Gk. eschatais hēmerais) puts the present evil situation in solemn eschatological (or “end times”) perspective. As Acts 2:17 indicates, “the last days” began with the coming of the Spirit at Pentecost (see also note on 1 Tim. 4:1). Thus Paul’s prediction of times of difficulty that will occur in “the last days” is already beginning to be fulfilled, even in the present situation. 마지막 날에 대한 바울의 언급은 현재의 악한 상황을 엄숙한 종말론적 관점에서 보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17절에서 알 수 있듯이 “마지막 날”은 오순절 성령 강림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따라서 “어려움이 닥칠 마지막 날”에 대한 바울의 예언은 현재 상황에서도 이미 성취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2341.

3:5 while Paul and Timothy’s opponents have the external appearance of godliness, they do not have its real essence. Power means the present, effective working of God in and through believers’ lives (see note on Acts 1:8). “Godliness” (Gk. eusebeia) means genuine piety, including holiness, reverence, faith, and love and devotion to God. 바울과 디모데의 반대자들은 경건의 겉모습은 있지만 경건의 본질은 없습니다. 능력은 신자들의 삶 속에서 그리고 신자들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 현재적이고 효과적으로 역사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경건” 은 헬라어 유세베이아인데 이것은 거룩함, 경외심, 믿음,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헌신을 포함한 진정한 경건을 의미합니다.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2341.

3:5 A form of godliness is an outward appearance of reverence for God. Denying its power describes religious activity that is not connected to a living relationship with Jesus Christ. As time progresses, people would begin to participate in religious activities that are empty. Their activities have nothing to do with a true relationship with God or with individual faith in Jesus Christ. This kind of religion provokes God’s anger (see Is. 1:10–18; Matt. 23:25–28). Turn away is a command for Timothy to avoid the evil persons described in vv. 2–5. We are not to link up in common cause with them (see 1 Cor. 15:33). “경건의 모양”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외적인 모습입니다. “그 능력을 부인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살아있는 관계와 연결되지 않은 종교 활동을 의미합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람들은 공허한 종교 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활동은 하나님과의 진정한 관계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개인적인 믿음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이런 종류의 종교는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킵니다. “돌아서라” 라는 말씀은 디모데에게 11절에 묘사된 악한 사람들을 피하라는 명령입니다. 우리는 그들과 공동의 목적을 위해 연대해서는 안됩니다. 

Earl D. Radmacher, Ronald Barclay Allen, and H. Wayne House, The Nelson Study Bible: New King James Version (Nashville: T. Nelson Publishers, 1997), 2 Ti 3:5.

사도행전 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2:38 Peter replied, “Repent and be baptized, every one of you, in the name of Jesus Christ for the forgiveness of your sins. And you will receive the gift of the Holy Spirit. 2: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2:39 The promise is for you and your children and for all who are far off—for all whom the Lord our God will call.”

2:38 Repent: Repentance for the Judeans involved rejecting their former attitudes and opinions concerning who Jesus was. In faith they had to accept Him for who He declared Himself to be while on earth, a declaration that was confirmed by His resurrection and ascension. 회개하여 : 유대인들의 회개에는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이전의 태도와 의견을 거부하는 것을 포함했습니다. 믿음으로 그들은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자기 자신에 대하여 선언하셨던 그 예수님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즉 그분의 부활과 승천으로 확증된 그분의 선언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Earl D. Radmacher, Ronald Barclay Allen, and H. Wayne House, The Nelson Study Bible: New King James Version (Nashville: T. Nelson Publishers, 1997), Ac 2:38.

4) 사람들의 반응 (2:37-41) 베드로는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 그리하면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의 선물을 받을 것이다” 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권면을 개인 구원의 단계적 형식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10:44–48을 보면, 세례가 구원의 조건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곧 고넬료의 경우에는 성령을 받고 방언을 말한 후에 세례를 받았기 때문이다.

황원하, 사도행전 -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총회 설립 60주년 기념 성경주석, ed. 변종길 (서울: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출판국, 2019), 81.

The Response : … Second, alongside repentance, Peter calls the crowd to be baptized. Baptism is an essential part of Christian discipleship and represents our forgiveness of sins. But is baptism necessary for salvation? The New Testament clearly represents baptism as a visual picture of salvation. The one who is immersed in the waters of baptism is the one who has been regenerated. So, baptism is not a prerequisite for salvation (the repentant thief on the cross was assured of his place in paradise, but was in no position to be baptized, Luke 23:40–43). The New Testament, however, doesn’t recognize any unbaptized believer. Baptism is a necessary sign of obedience and discipleship. We do not need to be baptized to be saved, but if we are saved, then we will get baptized. 둘째, 회개와 함께 베드로는 군중에게 세례를 받으라고 요청합니다. 세례는 기독교 제자도의 필수적인 부분이며 우리의 죄 용서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원을 받기 위해 세례가 꼭 필요한 것일까요? 신약 성경은 세례를 구원 받았음의 시각적 그림으로 명확하게 표현합니다. 세례의 물에 잠긴 사람은 거듭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세례는 구원 받기 위한 전제 조건은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회개한 도둑은 천국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보장 받았지만 세례를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신약 성경은 세례를 받지 않은 신자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세례는 순종과 제자도의 필수 표시입니다. 우리는 구원 받기 위해 세례를 받을 필요는 없지만, 만약 우리가 구원 받은 사람이라면 세례를 받을 것입니다.

R. Albert Mohler Jr., Acts 1–12 for You, ed. Carl Laferton, God’s Word for You (The Good Book Company, 2018), 38–39.

2:38 The New Testament is clear that we are saved by grace through faith in Jesus Christ apart from works (see Eph 2:8–9; Rom 4:4–5). But repentance and baptism are to accompany faith. To repent is to turn from sin to God. To be baptized in the name of Jesus is to obediently go public with a profession of faith in him. 신약은 우리가 행위와 상관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받았다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회개와 세례는 믿음에 수반되어야 합니다. 회개한다는 것은 죄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그분에 대한 믿음을 순종적으로 공개적으로 고백 하는 것입니다. 

Tony Evans, The Tony Evans Study Bible (Nashville, TN: Holman Bible, 2019), 1273.

로마서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개역개정) 10:9 That if you confess with your mouth, "Jesus is Lord," and believe in your heart that God raised him from the dead, you will be saved. (NIV)

10:9 confess … Jesus as Lord. Not a simple acknowledgment that He is God and the Lord of the universe, since even demons acknowledge that to be true (Jas 2:19). This is the deep personal conviction, without reservation, that Jesus is that person’s own master or sovereign. This phrase includes repenting from sin, trusting in Jesus for salvation, and submitting to Him as Lord. This is the volitional element of faith.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 이것은 그분이 하나님이시며 우주의 주이심을 단순히 인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심지어 귀신들도 그것을 사실임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그 사람의 주인 혹은 주권자이심을 주저 없이 인정하는 깊은 개인적인 확신입니다. 이 구절에는 죄를 회개하고, 구원을 위해 예수님을 신뢰하며, 그분을 주님으로 복종하는 것이 포함됩니다. 이것이 믿음의 의지적 요소입니다. 

John F. MacArthur Jr., The MacArthur Study Bible: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ashville, TN: Thomas Nelson Publishers, 2006), Ro 10:9.

 

4. RCB의 관점으로

저자의 논지는 선명하다. 하나님 앞에 자신을 정직하게 보고 그분께 돌아오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 앞에 진실한 회개하고 그분의 편에 설 것을 지속적으로 강조한다. 개혁주의 성경 이해에서는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면서, 이미 선택하시고 때가 되어 찾아오시며 은혜로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강조한다. 이것을 충분히 믿고 이해하고 감사하지만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저자의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나 자신을 돌아 보게 된다. 나는 과연 하나님 앞에 진실한 사람인가?

진실함이라는 것은 수치로 나타낼 수 없다. 또한 아무리 진실해도 죄인이 스스로 링반데룽의 현상을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논리적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이렇게 질문하게 된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자들에게, 과연 성경이 강력하게 요구하시는 그 진실함이 존재하는가? 완벽한 인간은 없다는 것은 성경적인 사실이며, 인간 스스로 자신을 돌이킬 수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연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진실함, 나는 깨어진 세상에서 반드시 하나님 편에 서겠다는 그 뜨거운 진실함이 있는가?

한국처럼 빈부격차가 심한 나라가 있는가? 그러나 많은 이들의 눈은 가려져 있다. 세상은 너무나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 앞에서, 깨어진 세상의 현실을 보라 라는 요구는 너무나 이상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깨어지고 망가진 세상을 전제로 복음을 주신다. 이미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가 말세이다. 그리고 말세에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영적인 풍조 속에서 세상은 더욱 심하게 망가질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주변이 마치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세상의 악함을 인정해야한다. 세상이 어두움임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어찌 빛으로 살아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겠는가? 나 자신이 바로 그 세상의 일부분임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매 순간 통곡하며 삶의 변화를 추구하겠는가? 

그러므로 세상의 어두운 면을 보지 못하는 나의 무지를 극복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세상과 완전히 다르게 살기 위하여 진실하게 자신을 돌이키고 하나님께 돌아서는 것, 오직 그것 만이 성도의 유일한 삶의 방식이 되어야 한다.

이제 이 책을 거의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저자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다. 저자의 목표는 성경적이라는 것을 더욱 확신하게 된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 이 땅에서 진심으로 하나님의 편에 서서 깨어진 세상을 아파하며 그것을 회복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목표는 안락한 내 삶을 유지하면서 이루어 낼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무너진 곳을 세우고, 아픈 곳을 고치며, 소망이 없어 보이는 곳에 내 삶을 헌신해야 한다. 나와 우리는 과연 하나님 앞에 진실한가? 진실하고 싶다고 그럴 듯한 말은 하면서, 그 진실함을 실제로 실천하는 것은 크게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과연 우리의 믿음은 충분히 견고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수 많은 정직한 질문 앞에 서 있다.

 

5. 적용

1) 당신은 깨어진 세상의 현실, 세상에 동조하는 당신의 현재 모습, 그리고 죄악 된 세상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진실하게 직면하고 있습니까?

2) 당신은 언제 하나님 앞에 결정적으로 회개하며 진실하게 그분을 향해 돌아섰습니까? 당신의 경험을 모임 안에서 나눠 보시면서 다시 한번 그 결심을 회복해 보시기 바랍니다.


* 추가로 읽어볼 자료

- 깨어진 세상의 현실을 잘 이해하기 위한 측면에서

일자리의 유동성이 떨어지고 일자리 성장이 정체되다 보니 정치적 적개심과 사회악이 자라기 쉬운 여건이 조성되었다. 실업률과 불완전고용률**이 높아지면 약물 남용, 가정 폭력, 아동 학대, 우울증 같은 사회 문제가 늘어난다. 오늘날 미국에서 출생하는 아이의 40퍼센트는 결혼한 부부 사이가 아닌 관계에서 태어난다. 가장 큰 이유는 노동자 계층의 결혼율이 크게 낮아졌기 때문이다. 약물 과다 복용과 자살은 주요 사망 원인 순위에서 자동차 사고를 앞질렀다. 이미 미국 가정의 절반 이상이 어떤 형태로든 정부로부터 직접 소득 지원을 받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기분장애mood disorder를 호소하는 사람의 수가 점점 늘면서 생산가능인구의 20퍼센트가 어떤 형태로든 장애를 겪고 있다고 한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일자리 대신 얻은 것이 절망인 셈이다. 당신이 만약 우리 삶의 방식과 공동체의 보존에 관심이 있다면, 사람들이 일자리를 갖도록 하는 일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 시대의 가장 긴박한 경제적 문제이자 사회적 문제다. 우리 경제는 갈수록 교육 수준이 낮은 사람이 일자리를 구해 벌어먹고 살기 힘든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조만간 화이트칼라 사이에서도 일어날 것이다. 지금은 마치 모두가 조금씩 온도가 올라가는 냄비 속에 든 개구리가 된 것과 같은 형국이다.

(** 불완전고용underemployment이란 취업은 했지만, 노동 시간이 짧아 노동자가 더 많은 시간을 일할 의사와 능력이 있는 경우를 말한다. 노동자의 교육 수준이나 기술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의 일을 하는 것을 포함하기도 한다.)

2005~2015년 사이에 새로 생긴 일자리의 94퍼센트는 복지혜택이 없는 임시직이거나 계약직이다. 그러다 보니 여러 임시직이나 계약직을 전전하며 간신히 먹고사는 것이 점점 일상화되어 가고 있다. 실질 임금은 정체되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떨어지기까지 하고 있다. 1990년에 태어난 미국인이 부모보다 돈을 더 많이 벌 확률은 50퍼센트로 떨어졌다. 1940년에 태어난 미국인의 경우에는 이 확률이 92퍼센트였다…

그렇다면 보통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미국의 보통 사람은 2년제 대학이나 4년제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다. 대학을 1년 정도 다녔거나 고등학교만 졸업했을 수도 있다. 순자산은 대략 3만6000달러 정도 되는데 주택 자산과 자동차 자산을 빼고 나면 6000달러가량 된다. 그러면서 그달 벌어 그달 쓰기 바쁘다. 요구불 예금 계좌에 들어 있는 돈은 500달러가 되지 않고 주식시장에 투자한 돈도 별로 없다. 이것은 통계치의 중앙값이므로 미국인의 50퍼센트는 이보다 수준이 더 낮다.

당신이 이 책을 읽고 있다면, 당신이나 당신 친구 또는 당신 가족의 생활은 아마 위에서 설명한 것과 다를 것이다. 이것이 통계적으로 보통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나한테는 그다지 놀라운 사실이 아니었다. 지난 몇 년간 일 때문에 여기저기 다니면서 본 것이 있기 때문이다.

기술 발전의 영향으로 일자리가 대거 사라지기 시작하면 미국의 보통 사람들은 기댈 데가 많지 않을 것이다.

보통 사람들의 전쟁 | 앤드루 양, 장용원 저

* "하나님 나라의 도전" 북클럽 인도자용 자료모음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3/09/blog-post.html

2023년 4월 15일 토요일

네비암송 (69) “양심에 거리낌 없는” 성도의 삶을 살아가세요 (사도행전 24장 15-16절 E-4 정직)

 

사도행전 24:15 그들의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 24:15 and I have the same hope in God as these men themselves have, that there will be a resurrection of both the righteous and the wicked. 24:16 이것으로 말미암아 나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나이다 (개역개정) 24:16 So I strive always to keep my conscience clear before God and man. (NIV)

 

24:15–16 Because of this resurrection of both the righteous and the wicked, Paul sought to maintain a clear conscience before God and everyone else (see comments at 23:1). Here is the strong personal testimony of one who expected to stand before his Maker and give account for his life. In stating it this way, Paul not only bore witness to the fact that he was ready to meet God but also—by implication—that all people must get ready for such a meeting of their own. 이것으로 말미암아 : 의인과 악인 모두의 부활로 인해 바울은 하나님과 다른 모든 사람 앞에서 깨끗한 양심을 유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것은 창조주 앞에 서서 자신의 삶에 대해서 설명하고 말씀드릴 것을 기대하는 한 사람의 강력한 개인적인 간증입니다. 이렇게 말함으로써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을 만날 준비가 되었다는 사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그러한 하나님과 자기 자신의 만남을 위해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함축적으로 증거했습니다.

Bruce Barton et al., Life Application New Testament Commentary (Wheaton, IL: Tyndale, 2001), 557–558.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죽음 이후에 부활을 믿게 하시고, 주님 앞에 설 것을 기대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깨끗한 양심으로 살기 원합니다. 주님 앞에서 정직하고 진실하게 살기 원합니다. 주님을 뵐 때에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 받을 수 있도록 저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Dear Heavenly Father, I come before you with a heart full of gratitude for the assurance of resurrection that you have given me, which fills me with hope of meeting you one day. I desire to live my life with pure consciousness and honesty, guided by your teachings and example. I humbly ask that you lead me to be recognized as a faithful servant, and that my actions bring glory and honor to your name. I ask all of this in the precious name of Jesus, Amen.


* "네비게이토 암송 60구절 말씀 & 해석 & 기도" 전체 모음
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2/10/60.html

독서 묵상 (88) 집중의 뇌과학 - 창조된 인간은 언어 안에서 자라갑니다

  저자는 나이가 들어도 다양한 언어의 적극적인 사용을 통해서 인지 능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성인이 되어도 배움을 절대로 그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죄로 인해서 많은 부분이 망가졌지만 여전히 인간은 탁월한 존재입니다. 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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