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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 23일 화요일

터프 토픽스 (4) - 예수님도 죄를 지으실 수 있었을까?



1. 요약

인간은 본성적으로 죄를 짓는 존재이며 그러므로 죄를 알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를 알지도 못하는 분이시다. 그분은 직접 죄를 지으신 적이 없고 죄가 없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죄를 지으실 수 있었는가? 다시 말해서 죄를 짓지는 않으셨지만 죄를 짓는 것이 가능했는가?

그분은 인간이셨기에 죄를 지으실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했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을 항상 의지하심으로 죄를 짓지 않으셨다. 그리고 두번째 아담으로서 죄를 짓지 않기로 선택하신 것이다. 성자 하나님은 인간이 되심으로서 자신의 신적인 능력을 사용하시지 않기로 의도하셨고 이것은 참된 인간의 한계와 함께 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분의 기적의 역사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행하신 것이다.

성령님은 언제나 예수님과 함께 하셨고, 그분의 능력을 예수님이 의시적으로 의존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죄의 가능성이 있었지만, 성령의 사역이 실패하시지 않으시기 때문에 그분에게는 죄의 가능성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예수님의 성령님에 대한 전적 의존은, 그분의 제자들이 인간성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모델이며, 제자들은 성령님을 통하여 소명을 완수해야 하는 것이다.

 

2. 책에서 한마디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원하신 삶의 방식, 즉 이상적이고 가장 성공적인 삶의 방식은, 하나님과 떨어져 독립적이거나 그분 없이 사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조화를 이루고 그분의 능력을 공급받는 삶이다. 예수님이 이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신 것이다.

 

3. 성경적 관점에서 보기

베드로전서 2:22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2:23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2:22 베드로는 오실 메시아의 고난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 곧 이사야 53장 9절을 인용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전혀 정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죄를 범한 적도 없고 누구를 속인 적도 없었기 때문에 사형을 선고받을 아무런 이유가 없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경험으로 부터 예수께서 완전하신 분임을 알았습니다. 그는 3년 동안 예수와 함께 살고 여행했습니다. 가까운 관계는 종종 사람의 가장 나쁜 면을 드러내지만, 베드로는 선지자의 말씀이 진리임을 직접 보았습니다. 그리스도는 삶과 말씀에서 그 어떤 죄도 없으셨습니다.

Bruce Barton et al., Life Application New Testament Commentary (Wheaton, IL: Tyndale, 2001), 1113.

요한복음 3:34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이니라

3:34 인간 교사들과 달리, 예수께서는 성령을 제한적으로 즉, 한정된 방식으로 받지 않으셨습니다. 성령님은 예수께 완전히 주어졌습니다. 이 구절에는 삼위일체 하나님 모두가 언급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아들을 보내시고, 그에게 성령을 한량 없이 주셨습니다.

Earl D. Radmacher, Ronald Barclay Allen, and H. Wayne House, The Nelson Study Bible: New King James Version (Nashville: T. Nelson Publishers, 1997), Jn 3:34.

누가복음 4:1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성령께서 예수님의 삶에 관여하신 것은 예수님의 참된 인성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과 성령의 인도하심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능력 있게 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광야는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믿음의 시험에 실패했던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스라엘이 통과하지 못했던 광야 시험을 통과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마지막 아담’ 으로 시험을 받으셨는데, 이는 첫 아담이 실패한 자리에서 승리하실 분이셨습니다.

A. Boyd Luter, “Luke,” in CSB Study Bible: Notes, ed. Edwin A. Blum and Trevin Wax (Nashville, TN: Holman Bible Publishers, 2017), 1609.

 

4. RCB의 관점으로

예수님의 죄 없으심이야 말로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시는 핵심이다. 그분이 무죄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죄를 예수님께 전가할 수 있으며,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실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죄 없으심이란 실질적으로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성경은 그분이 우리와 동일한 인간이시라고 분명히 말씀하심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는 그분은 죄가 없으시다는 선언으로 인하여 그분이 우리와 뭔가 다르다는 거리감을 느낀다.

그러나 저자는 예수님 역시 우리와 동일한 인간이 확실하며, 그분은 참된 인간으로서 죄의 가능성은 분명히 있었지만 성령님을 항상 의지하며 그분의 도우심으로 죄를 짓지 않았다고 분명하게 설명한다. 이 부분이 참 좋은 것은, 저자의 결론처럼 성도가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서 분명한 방향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인간으로서 오직 성령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능력으로 사셨던 것처럼, 모든 하나님의 자녀는 바로 그런 모습과 방식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비록 우리는 연약한 인간으로 죄를 짓고 살아가지만, 그러나 주님께서 만드신 새로운 피조물로서 예수님이 보여주신 참된 인간의 삶의 방식을 그대로 따라가야 함을 다시 한번 분명하게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다.

 

5. 적용

1) 당신은 삶의 모든 상황에서 오직 성령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있습니까?

2) 성령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능력을 힘입기 위해서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 '터프 토픽스' 크리스천 북클럽 인도자용 자료모음
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5/08/blog-post.html 

 

 

2024년 2월 21일 수요일

기도하는 엄마들 (MIP) / 1권 2주 "사랑의 하나님" 말씀 묵상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5:8 But God demonstrates his own love for us in this: While we were still sinners, Christ died for us.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가 그분의 사랑을 느끼도록 하실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 대신에 죽으신 그분의 아들의 보내심으로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을 강력하게 보여주십니다.

Douglas J. Moo, “The Letters and Revelation,” in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ed. D. A. Carson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2028–2029.

 

로마서 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8:35 Who shall separate us from the love of Christ? Shall trouble or hardship or persecution or famine or nakedness or danger or sword? 8: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8:36 As it is written: "For your sake we face death all day long; we are considered as sheep to be slaughtered." 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8:37 No, in all these things we are more than conquerors through him who loved us.

그 어떤 것도 신자들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바울 사도는 신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절대적 확실성을 설명하기 위해서 애를 씁니다. 고난이나 위험한 것, 혹은 죽음과 삶도 하나님과 우리를 갈라 놓을 수 없습니다. 창조되지 않으신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신다면, 그리고 어떤 만들어진 것도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다면, 그분 안에서 우리의 안전은 절대적입니다.

Earl D. Radmacher, Ronald Barclay Allen, and H. Wayne House, The Nelson Study Bible: New King James Version (Nashville: T. Nelson Publishers, 1997), Ro 8:38–39.

 

에베소서 3: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3:18 may have power, together with all the saints, to grasp how wide and long and high and deep is the love of Christ, 3: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3:19 and to know this love that surpasses knowledge--that you may be filled to the measure of all the fullness of God.

바울 사도의 주된 간구는 우리의 속의 존재에 성령님께서 주시는 힘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 힘의 구체적인 본질은 그리스도의 불가해한 사랑을 이해하는 능력입니다. 이 사랑이 우리의 마음에 심겨질 때까지 우리는 완전히 성숙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모든 이들 중에서 우리가 가장 사랑 받는 다는 것을 알기 전에는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자로 살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그리스도의 자비를 깨달을 때까지 우리는 이웃을 자비로 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식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기 전에는 우리는 기독교에 대해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Kevin DeYoung, “Ephesians,” in Gospel Transformation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ed. Bryan Chapell and Dane Ortlund (Wheaton, IL: Crossway, 2013), 1589.

 

요한일서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4:10 This is love: not that we loved God, but that he loved us and sent his Son as an atoning sacrifice for our sins.

우리는 하나님을 미워했습니다. 우리는 우주의 왕에게 반항하는 바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당신은 친절하게 반응하지 않는 사람들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당신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Tony Evans, The Tony Evans Study Bible (Nashville, TN: Holman Bible, 2019), 1498.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3:16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e and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a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그리스도를 믿는 누구든지 영생을 얻을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을 인간으로 이 땅에 보내어 고난을 받고 죽게 함으로 죄에 대한 형벌을 받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그를 믿는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그를 신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멸망하지 않는다는 것은, 영원한 심판 에서도 멸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J. I. Packer, Wayne Grudem, and Ajith Fernando, eds., ESV Global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2012), 1484.

 

요한일서 4: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개역개정) 4:16 And so we know and rely on the love God has for us. God is love. Whoever lives in love lives in God, and God in him. (NIV)

하나님의 사랑은, 죄인들의 반역 혹은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언약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포기하지 않으시고 죄인들을 찾아 구원하시는 모습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R. C. Sproul, ed., The Reformation Stud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2015 Edition) (Orlando, FL: Reformation Trust, 2015), 2274.

* 기도하는 엄마들 (MIP) 말씀 묵상 모음
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3/10/mip.html   

2023년 12월 27일 수요일

선교적 교회로 가는 길 (7) - 선교적 교회의 요소를 말하다

 


1. 요약

선교적 교회가 되기 위해서 다섯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첫째, 성령의 인도하심이다. 사도행전 전체를 놓고 보면 성령님께서 교회를 지속적으로 인도하셨다. 그러므로 선교적 교회를 향해 나아가고자 한다면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거룩한 부담을 따라 그 음성에 순종해야 한다. 둘째, 선교적 리더십이다. 제도적 교회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한정된 힘과 자원을 꼭 필요한 본질의 변화에 쓰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셋째, 세상을 섬기는 건강도이다. 기득권 싸움에 매진하면서 그저 존재하기만 하는 교회로는 세상에 도움을 줄 수 없다. 건강한 교회는 사역자를 세우고, 은사 중심으로 일하며, 열정과 기능적인 조직을 함께 가지고 있는 교회이다. 또한 영감 있는 예배와 전인적 소그룹, 그리고 전도와 사랑의 관계가 존재하는 교회이다. 이러한 특징을 가지고 세상을 진심으로 섬기고 복음을 변화시키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넷째, 온전한 복음이다. 선교적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복음 전파와 상관 없는 일을 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교회로 체질을 바꾸어야 한다. 본질을 경험하지 못하면 반드시 비본질을 놓고 싸우게 된다. 그러므로 마치 선교사가 그러한 것처럼 불편을 감당하면서 부르심에 따라 십자가의 흔적을 가지고 희생을 감수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복음이 나의 복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온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해결책임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타협하지 않아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인위적으로 축소해서는 안되며 영혼 구원 뿐 아니라 사회 정치적 참여를 함께 감당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역자를 세우는 제자화 과정이다. 선교적 교회에는 엄격한 멤버십 과정이 필요하다. 선교적 교회의 멤버가 된다는 것은 많은 시간과 인내를 요하는 것이다. 소비자적 성도가 아니라 헌신된 제자의 삶을 보일 수 있어야 하며. 성도가 세상에서 의미 있는 개입을 할 수 있도록 그들을 반드시 훈련시켜야 한다.  

이러한 요소들을 바탕으로 선교적 교회의 모습을 이렇게 그려볼 수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미 이 땅에서 일하고 계심을 믿고 겸손하게 동참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님의 일에 쓰시기 위해서 자신을 선택하셨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또한 영혼 구원을 포함하여 복음의 온전성과 그것을 통한 세상의 회복을 꿈꾼다. 그리고 분명한 하나님 나라의 관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분의 통치를 중시하고 함께 협력하여 사역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이원론을 벗어나 교회 밖으로 나아가며 축복을 나누며, 특별히 가까운 곳에서 사회의 변두리에서 약하고 소외된 자들을 돌보는데 힘을 쓴다. 그리고 세상의 회복을 위해서 실천적인 삶을 살아갈 뿐 아니라 선교적 DNA를  가진 선교적 교회를 재생산하며 소그룹을 파송하는데 관심을 가지고 노력한다. 비록 선교적 교회가 금방 완성되지 않지만 전체 그림을 보면서 노력하고 전진한다면 이룰 수 있을 것이다.

 

2. 책에서 한마디

“그렇다면 우리가 지향하는 선교적 교회의 모습은 어떠해야 할까?"

 

3. 성경적 관점에서 보기

유다서 1:20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1:20 But you, dear friends, build yourselves up in your most holy faith and pray in the Holy Spirit.

우리가 신적인 영감에 의해서 감동을 받아 하늘의 도움을 구할 때에 우리는 성령 안에서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스스로는 절대로 얻을 수 없는 좋은 것들을 받는 것입니다.

James Stuart Bell, ed., Ancient Faith Study Bible (Nashville, TN: Holman Bibles, 2019), 1579.

누가복음 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4:18 "The Spirit of the Lord is on me, because he has anointed me to preach good news to the poor. He has sent me to proclaim freedom for the prisoners and recovery of sight for the blind, to release the oppressed, 4: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4:19 to proclaim the year of the Lord's favor."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사역이 인간의 모든 필요를 채우심을 말씀하셨습니다. 성령님의 능력을 통해서 그분의 제자들은 그분의 사역을 하는 것인데, 우리 역시 사람들의 모든 필요를 채움으로써 우리가 그분의 제자임을 세상 속에 보이는 것입니다.

Holman Bible Publishers, CSB Disciple’s Study Bible: Notes (Nashville, TN: Holman Bible Publishers, 2017), 1531.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개역개정) 3:16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e and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a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NIV)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주신 것은,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한 것입니다. 세상이라는 헬라어 단어를 택자들에게만 적용하려는 것은 신약 전체에서 그 용어의 명확한 사용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경계가 허물어졌으며,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이들에게 확장되며, 그분은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Robert H. Mounce, “John,” in The Expositor’s Bible Commentary: Luke–Acts (Revised Edition), ed. Tremper Longman III and David E. Garland, vol. 10 (Grand Rapids, MI: Zondervan, 2007), 400.

(위의 설명과 반대되는 개혁주의의 이해에 대하여) 성부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주신 자들의 구원은 단순한 가능성이 아니라 절대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오직 자기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세상” 이라는 것은 시대나 민족적 배경과 관계 없이 세상에 있는 모든 택자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R. C. Sproul, ed., The Reformation Stud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2015 Edition) (Orlando, FL: Reformation Trust, 2015), 1858.

 

4. RCB의 관점으로

이번 챕터를 통해서 선교회 교회를 아주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다. 성령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분께 순종하는 리더십으로부터 시작하여, 세상을 섬기기 위한 훈련을 강조하는 것까지 선교적 교회를 이루기 위한 핵심적인 요소를 잘 정리하였다. 그리고 이 요소들이 결코 추상적이지 않았고 실제로 교회 가운데 적용해야 하는 생생한 요소들이었기에 더 마음에 와 닿았다. 또한 저자가 설명하는 선교적 교회 성도들의 모습은, 마치 실제로 존재하는 이상적인 어떤 교회를 눈 앞에 그리는 것처럼 생생하게 다가왔다.

선교적 교회의 요소를 다루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본질을 경험하지 못하면 비본질을 놓고 교회가 싸우게 된다는 저자의 통찰력 있는 지적이었다. 우리는 실제로 이러한 모습을 너무나 많이 보고 있다. 복음으로 나 자신이 변하고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투철한 사명과 복음의 목적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우리는 그저 교회에서 더 좋은 직분을 받는 데에만, 혹은 주의 교회를 이용하여 내 욕심을 채우는 데에만 삶을 낭비해 버리며 오히려 교회를 망친다는 것이다. 이것은 나 자신에게도 큰 경고의 말씀이 되었다.

저자는 요한 복음 3장 16절을 이해하면서, “온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온 세상을 위하여 오셨다는 것은 충분히 설득력 있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혁주의의 이 부분의 성경 이해는, 오직 택자를 염두에 둔 이해이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온 세상을 사랑하시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회복시키기 위하여 교회를 세우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구원의 완전성을 염두에 둔다면, 우리는 이 말씀을 택자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한정 짓는 것이 옳다.

그렇다면 이러한 중요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 하나님께서 미리 택자를 선택하시고 구원하시기로 결정하셨다는 그 사실이, 교회가 세상의 필요 전체를 돌보고 채우고 회복시키며 복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나가는데 있어서 걸림돌이 되는 것인가? 아니면 더욱 큰 격려가 되는 것인가?

또한 저자의 훈련의 선명한 내용과 방향성이 인상적이다. 저자는 선교적 교회를 이루는 훈련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말씀 자체를 묵상하는 훈련, 세상 속에서 삶과 대화를 통해서 복음을 의미 있게 전하는 훈련, 또한 성도의 성품 자체를 변화시키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사실상 이것이야 말로 크리스천 북클럽이 이루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목적들이다. 그렇다면 다양한 훈련을 한꺼번에 진행하는 것보다 하나로 종합하여서 진행할 수 있다면 선교적 교회를 이루는데 있어서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5. 적용

1) 선교적 교회의 다섯가지 요소 중에, 지금 당신에게 혹은 당신의 교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2) 많은 이들에게 큰 감동과 도전을 주었던 세이비어 교회조차도, 결국 차세대 일꾼을 키우지 못하였습니다. 당신은 그 이유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또한 이런 현실적인 어려움 속에서, 선교적 교회를 감당하는 성도를 양육하기 위한 당신의 핵심 전략은 무엇입니까?

* "선교적 교회로 가는 길" 북클럽 인도자용 자료모음
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3/09/blog-post_28.html 

2023년 10월 15일 일요일

하나님 나라의 도전 (5) - 하나님 나라

 

1. 요약

예수님께서는 자기 중심성에 빠졌던 인류를 향해 하나님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나라를 실제로 보여주신다. 그렇다면 과연 예수는 누구인가?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적을 가장 가까운 시기에 기록한 마가복음은, “때가 찼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여라. 복음을 믿어라”라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요약한다.

“때가 찼다” 라는 것은, 링반데룽을 거듭하다 소망이 없는 그 때이며, 바로 이 때가 하나님께서 역사 가운데 개입하셔서 자신의 종 메시아를 보내셔서 세상을 심판하시고 회복하실 때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말씀 하시는데,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이다. 그것은 더 이상 약육강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로 움직이고, 하나님과 인간의 끊어진 관계가 회복되어 다시 인격적 관계를 맺고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의 사랑을 받아 누리는 나라이다.

고대 사회에서 왕이 그 나라의 성경을 좌우했는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기에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신을 알리시기 위해서 인간이 되어 오셨으며 그분이 예수님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계시는 동안 하나님이 중심 되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치셨다. 사람들은 대부분 하나님의 나라를 죽어서 가는 천당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이 땅에 오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음을 선언하셨고, 수 많은 기적들을 통해서 메시아가 왔음을 증거하심으로 세상을 회복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실제로 이루어지셨음을 보이셨다.

오늘날 교회들은 ‘죽으면 천국 간다’ 라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소개한다. 그러나 예수님을 받아들이면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다.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하나님 나라는 혁명적인 사상이다. 그러나 그 완성은 점진적이다. 볼품 없이 작게 시작하지만 일정한 과정을 거쳐 놀라운 결과에 이른다. 기독교 역사는 깨어진 세상을 회복하는 역사이기도 하였지만, 동시에 예수님과 교회의 이름으로 사익을 추구하고 악행을 저지른 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에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 있을 것이고, 악에 대하여 궁극적 심판과 완전한 회복이 일어날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죄를 대신 지시고 돌아가실 만큼 자신을 특별히 사랑하시고 복 주시는 분’이라고 사람들은 찬양한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떠난 세상을 심판하고 회복하기 위해 약속되었던 메시아이며, 상한 세상을 심판하시고 회복하실 메시아이다. 예수님은 구세주이다. 이분은 여전히 사람들을 찾아오시고,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며, 그 나라를 받아들이라고 도전하심으로 사람들이 안 만큼 진실하게 반응하기를 원하신다.

 

2. 책에서 한마디

“그런데 오늘날 많은 교회는 예수의 가르침을 ‘죽으면 천국 간다’ 라고 소개한다… 현재적 하나님 나라를 잃어버리면, 기독교는 내세 지향적이고 현실 도피적이며 세속을 합리화하는 신앙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3. 성경적 관점에서 보기

요한복음 3: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3:17 For God did not send his Son into the world to condemn the world, but to save the world through him.

3:17 to condemn the world. Jesus elsewhere says that judgment does attend His coming into the world (9:39; 12:31). His point is not that He will not judge, but that the time has not yet come. The world was already under threat of judgment before He came, but with His coming, salvation becomes a reality offered to a hostile world (12:47; Matt. 23:37; Rom. 5:8). 다른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세상에 오신 것은 심판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의 요지는, 그분이 심판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게 아니라, 그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세상은 이미 심판의 위협 아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구원은 적대적인 세상에 제공된 현실이 된 것입니다. 

R. C. Sproul, ed., The Reformation Stud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2015 Edition) (Orlando, FL: Reformation Trust, 2015), 1858.

요한복음 9: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9:39 Jesus said, “For judgment I have come into this world, so that the blind will see and those who see will become blind.”

9:39 For judgment I came. The first coming of Christ did not bring in the last judgment (3:17; 12:47), but He confronted people with the obligation to decide for or against Him (Matt. 12:30; Luke 11:23). Until the second coming of Christ, this is still the age of redemption during which the blind are made to see and those dead in trespasses and sins are raised to newness of life (Eph. 2:4).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 그리스도의 초림은 마지막 심판을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위하든지 아니면 예수님을 대적하든지 결정해야 하는 의무에 직면하게 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재림때까지는 지금도 여전히 구속의 시대입니다. 이 기간에 맹인들은 볼 수 있게 되고,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들은 새로운 생명으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R. C. Sproul, ed., The Reformation Stud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2015 Edition) (Orlando, FL: Reformation Trust, 2015), 1874.

마태복음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20:28 just as the Son of Man did not come to be served, but to serve, and to give his life as a ransom for many."

20:28 Jesus’ own mission was self-giving, not self-serving, as he came to die for the sins of humanity. ransom. The price paid to secure a slave’s freedom. At the Passover (Exod 11–13) a ransom was paid to rescue the firstborn Israelites. for many. Probably alludes to Isa 53:12. for. Greek anti is a comparatively rare preposition that means “in the place of” or “in exchange for.” This succinctly articulates the doctrine of the representative, substitutionary, atoning death of Jesus. 예수님의 사명은 인류의 죄를 위하여 죽으로 오셨기 때문에 그것은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대속물 : 이것은 노예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 치르는 값을 의미합니다. 출애굽기에서 유월절에 이스라엘의 장자들을 구원하기 위해 대속물이 지불되었습니다. 많은 사람의 or 많은 사람을 위하여 : 헬라어 안티는 “대신에” 혹은 “대가로”를 의미하는 비교적 드문 전치사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대표적이고, 대속적이고 속죄하는 죽으심의 교리를 간결하게 표현합니다. 

D. A. Carson, “The Gospels and Acts,” in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ed. D. A. Carson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1740.

마태복음 25: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25:13 "Therefore keep watch, because you do not know the day or the hour.

25:13 be on the alert Jesus’ repeated teaching that the disciples must always be ready. 깨어 있으라 :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고 반복해서 가르치셨습니다.

John D. Barry et al., Faithlife Study Bible (Bellingham, WA: Lexham Press, 2012, 2016), Mt 25:13.

25:1–13 the church, God’s Kingdom—Christ brought the kingdom of God, making it present in his church. He pointed to the future when he will bring the kingdom in its fullness. Believers must be alert, prepared to greet Christ when he returns. Other people cannot prepare us at the last moment. Christ will admit only the prepared ones to the kingdom. 하나님의 나라 :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가져오셔서 그의 교회에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그분은 왕국을 충만하게 가져오실 미래를 가리키십니다. 신자들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맞이할 준비를 함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마지막 때에 우리를 준비시킬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준비된 자들에게만 왕국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Holman Bible Publishers, CSB Disciple’s Study Bible: Notes (Nashville, TN: Holman Bible Publishers, 2017), 1465.

빌립보서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2:8 And being found in appearance as a man, he humbled himself and became obedient to death--even death on a cross! 2: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2:9 Therefore God exalted him to the highest place and gave him the name that is above every name, 2: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2:10 that at the name of Jesus every knee should bow, in heaven and on earth and under the earth, 2: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2:11 and every tongue confess that Jesus Christ is Lord, to the glory of God the Father.

2:9 By humbling himself on the cross out of love, Jesus demonstrated that he truly shared the divine nature of God, who is love (1 John 4:8). For this very reason (Therefore), God raised him to life and highly exalted him, entrusting him with the rule of the cosmos and giving him the name that is above every name. Following his death and resurrection, Jesus received a status and authority that had not been his before the incarnation (compare Matt. 28:18; Acts 2:33). 예수님께서는 사랑으로 십자가에서 자기 자신을 낮추심으로 자신이 사랑이신 하나님의 신성을 참으로 공유하고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살리시고 지극히 높이셨고, 우주의 통치권을 맡기시며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죽음과 부활 이후에 예수님께서는 성육신 전에는 갖지 못했던 지위와 권위를 받으셨습니다. 

J. I. Packer, Wayne Grudem, and Ajith Fernando, eds., ESV Global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2012), 1677.

마가복음 1: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1:15 "The time has come," he said. "The kingdom of God is near. Repent and believe the good news!"

1:15 The time is fulfilled. The past times, especially of God’s acts of salvation for His people Israel, reach their climax in this present time of salvation through Jesus. 때가 찼고 : 과거의 때, 특히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때가 바로 예수님을 통한 이 구원의 시기에 정점에 이르렀습니다.

the kingdom of God is at hand. The kingdom of God is that final state of affairs in which God’s supreme reign is fully realized over the transformed universe and in the hearts of all His redeemed and glorified people. This kingdom is “at hand” in the sense that the coming of Jesus sets in motion all that will bring about its actualization. God requires repentance and belief in response to this news.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니 : 하나님의 나라는, 변화된 우주 만물과 그의 구속함을 받아 영화롭게 된 백성의 마음에서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가 온전히 실현되는 최종 상태입니다. 예수님의 오심으로 그 왕국에서 실현될 모든 일이 시작된다는 의미에서 이 나라는 “가까이 왔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소식에 대한 반응으로 회개와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R. C. Sproul, ed., The Reformation Stud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2015 Edition) (Orlando, FL: Reformation Trust, 2015), 1734–1735.

마태복음 13: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개역개정) 13:30 Let both grow together until the harvest. At that time I will tell the harvesters: First collect the weeds and tie them in bundles to be burned; then gather the wheat and bring it into my barn.'" (NIV)

13:25–30 These weeds are probably darnel, a weedy rye grass with poisonous black seeds. Darnel resembles wheat in its early growth but is easily distinguished from it when full grown. Let both grow together (v. 30). Believers and unbelievers live side by side in the world until the day of judgment. 가라지는 아마도 독이 있는 검은 씨앗이 들어 있는 독보리 잡초를 의미할 것입니다. 이것은 초기 성장기에는 밀과 비슷하지만 완전히 자라면 밀과 쉽게 구별됩니다. 함께 자라게 두라 : 신자와 불신자는 심판의 날이 올때까지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J. I. Packer, Wayne Grudem, and Ajith Fernando, eds., ESV Global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2012), 1342.

 

4. RCB의 관점으로

저자의 탁월한 점은, 성도들의 마음 속에 여전히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강조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이 다소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으면서 독자의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 라는 단어가 깊이 새겨지게 된다.

그러나 중요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다스림이 회복되는 것이고 그것이 예수님을 통해서 드러나고 시작되었다 라는 저자의 설명이, 저자가 안타까워하는 한국 교회의 현실을 극복하게 만들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다. 저자의 글을 읽다 보면, 마치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 전파자 정도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 맥락에서 아쉬운 부분은, 현재 한국 교회의 그 문제에 대한 원인과 대안에 대한 저자의 분석이 다소 오류가 있어 보인다는 점이다. 저자는 현 시대 성도의 예수님에 대한 이해를 평가할 때에, “자신의 죄를 대신 지시고 돌아가실만큼 특별히 자신을 사랑하시는 분” 정도로 이해한다고 진단한다. 그리고 현 시대 교회는 예수님의 중심 가르침을 이해할 때에 “죽으면 천국 간다” 라고 이해하였다고 분석한다.

그렇다면, 그 원인에 따라서 합당한 해결책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라고 질문하게 된다. 현대 교회가 예수님에 대한 혹은 십자가 복음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에 대한 오류를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즉 예수님은 단순히 사랑이 넘쳐서 죄를 대신 지신 것이 아님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존귀한 그분 자신이 죄인을 위하여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영원한 대속물이 되신 것임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십자가에서 이어진 능력의 부활을 통하여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모든 이가 무릎 꿇어야 하는 유일한 분이심을 만 천하에 선포하셨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가 설명하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죄를 심판하시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회개를 촉구하신다. 그러나 그것은 저자가 이야기하는 수준에서 악인이 응당 댓가를 치르는 그러한 심판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링반데룽에 빠진 인간에게 왜 링반데룽에 빠져 있냐고 심판하신다면 그것이 어찌 성경의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예수님은 자신의 말씀처럼,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 위하여 구원의 은혜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물론 저자가 세상의 부조리와 악함에 분노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예수님과 연결하려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러나 예수님의 은혜를 약화시킨다면 오히려 예수님의 재림으로 이루어질 마지막 때의 심판이 희미해진다 라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그리스도를 통한 죄인을 향한 절대적인 은혜로써 하나님의 나라가 현재적으로 시작되었음이 강조 되어야만이, 이후에 그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 최종적인 하나님 나라의 심판의 미래가 역설적으로 더욱 절대적인 엄위한 형태로 다가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저자의 설명과 성경을 비교해볼 때에 흥미로운 점은,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깨어 있으라” 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이 부분이 매우 놀랍다. 왜냐하면 저자는, 하나님의 나라의 현재성을 강조하지 않았기 때문에 교회에 어려움이 찾아왔다 라고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오히려 반대로 말씀하시고 계신다. 예수님의 시대에도 그리고 지금 시대에도 미래적 하나님의 나라가 충분히 강조되지 않았다 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언제 오실지 아무도 모르며 어느 날 갑자기 그분의 최종적 심판의 때가 반드시 온다 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 나라의 미래성을 강조하는 것이야 말로 제자됨의 핵심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성경적인 십자가 복음은 결국 하나님 나라와 반드시 연결 된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한국 교회의 대안이 되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존귀하심, 그분의 대속적 죽음으로 인한 성도의 정체성, 그리고 성령님으로 인해 변화되는 성도의 내면과 부활을 통해 보이신 그분의 주권과 능력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실현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온전한 십자가의 복음이야 말로, 하나님의 다스리심의 당위성과 그 가치를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십자가를 믿는 자는 전적인 은혜로 값으로 산 바가 되었기에 이제는 하나님의 온전한 소유가 되는 것이며, 자신의 삶의 중심성을 그 어느 곳에서도 주장할 수 없고, 오직 예수님 앞에 무릎 꿇고 그분을 위해서 살아가야 하는 존재임을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저자는 이러한 연결 구조는 소홀히 한 체, 그저 예수님께서 메시아로서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시기 위해서 오셨다 라고만 설명하는 것인가라고 아쉬움을 가지게 된다. 

결국 이러한 저자의 접근은, 복음에 대한 이중적 접근에 기반한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의도치 않게 십자가의 복음과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다소 분리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저자가 설명하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메시아이시다. 링반데룽에 빠져버린 인간이 스스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에  그분이 십자가를 지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이다.

십자가를 지신 그분이 친히 성도 안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신다. 성도는 그분의 십자가의 은혜와 능력을 묵상하고 의지하고 실천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자신의 삶 가운데 이루어 나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십자가가 있고, 십자가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존재하는 것이다. 성도는 눈을 떠서 살아가는 모든 순간에 자신의 현재의 시간을 초월하여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다시 말해서 확정된 미래를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존재이며 반드시 그렇게 살아가야만 한다.

 

5. 적용

1)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주인이 되심을 진심으로 고백합니까? 그렇게 고백하는 논리적인 근거는 무엇입니까?

2) 예수님께서 당신의 온전한 주인이시라면, 당신의 삶에서 가장 시급하게 변화해야 되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그것을 실천할 수 있겠습니까?

 

* 추가로 읽어볼 자료

- 하나님 나라라는 성경적 내용을 균형 있게 보아야 한다라는 맥락에서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정말로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은 부분적인 성경 구절뿐 아니라 성경 이야기 전체에서도 자신을 계시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한 가지 속성만 취하여 그것이 전체라고 이해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분의 주권은 받아들이고 그분의 선하심을 잊어서는 안 된다. 혹은 선하심은 받아들이고 그분의 거룩하심을 잊어서도 안 된다. 그 의미는 그분이 심판의 하나님이고 엄중한 심판을 하신다는 점을 받아들이면서도 그분이 또한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를 매우 사랑하셔서 반역한 피조물인 우리의 죄를 짊어지게 하시려고 자신의 아들을 보내어 십자가에 달리게 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확실히 알고 그것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방식으로 경배하기 위해서는 성경이 말하는 바를 묵상하고 또 묵상하며, 성경 자체가 말하는 것들 안에서 균형적을 이루어 그 전체를 통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우리를 예배로 나아가게 한다. 우리가 무엇이든 그것을 하나님의 자리에 놓으면, 그이 바로 우상 숭배가 된다.

* D. A. 카슨 / 뉴시티 교리 문답 Question 2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https://www.tgckorea.org/content/newCityView?idx=2

 

-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는다는 것 자체가 이미 그분만을 경배함을 의미한다는 맥락에서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나는 예수를 위대한 도덕적 스승으로는 기꺼이 받아들이지만, 자신이 하나님이라는 주장만큼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말을 그 누구도 못 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이런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인간에 불과한 사람이 예수와 같은 주장을 했다면, 그는 결코 위대한 도덕적 스승이 될 수 없습니다. 그는 정신병자—자신을 삶은 계란이라고 말하는 사람과 수준이 똑같은 정신병자—거나, 아니면 지옥의 악마일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선택을 해야 합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었고, 지금도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미치광이거나 그보다 못한 인간입니다. 당신은 그를 바보로 여겨 입을 틀어막을 수도 있고, 악마로 여겨 침을 뱉고 죽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그의 발 앞에 엎드려 하나님이요 주님으로 부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위대한 인류의 스승이니 어쩌니 하는 선심성 헛소리에는 편승하지 맙시다. 그는 우리에게 그럴 여지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그럴 여지를 줄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순전한 기독교 | C. S. 루이스, 이종태, 장경철 저

 

- 성도됨은 그 자체가 삶의 선택과 나 자신을 바꾸어감을 의미 한다는 맥락에서

이제 두번째 논지를 말할 차례군요. 사람들은 기독교 도덕을 “네가 이 많은 규칙들을 지키면 상을 주고 지키지 않으면 벌을 주겠다”고 말하는 하나님과 흥정하는 일로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제 생각에 이것은 기독교 도덕을 바라보는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저라면 오히려 여러분이 매번 선택을 내리는 행위는 여러분의 중심, 즉 선택을 내리는 그 부분을 조금씩 전과 다른 모습으로 바꾸어 가는 일이라고 말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수없는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여러분의 생애 전체를 놓고 볼 때, 여러분은 이 중심부를 평생에 걸쳐 천국의 피조물로 바꾸어 가든지, 지옥의 피조물로 바꾸어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다른 피조물들·자기 자신과 어울려 살아가는 피조물로 바뀌어 가든지, 하나님·동료 피조물들·자기 자신을 미워하고 그것들과 싸우는 피조물로 바뀌어 갈 수 있습니다. 전자가 되는 것이 천국의 삶입니다. 그것은 기쁨과 평화와 지식과 능력의 삶이지요. 후자가 된다는 것은 광기와 공포와 어리석음과 분노와 무능함과 영원한 외로움을 겪게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 각 사람은 매 순간 이 두 가지 중 하나의 상태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순전한 기독교 | C. S. 루이스, 이종태, 장경철 저

* "하나님 나라의 도전" 북클럽 인도자용 자료모음
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3/09/blog-post.html

독서 묵상 (88) 집중의 뇌과학 - 창조된 인간은 언어 안에서 자라갑니다

  저자는 나이가 들어도 다양한 언어의 적극적인 사용을 통해서 인지 능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성인이 되어도 배움을 절대로 그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죄로 인해서 많은 부분이 망가졌지만 여전히 인간은 탁월한 존재입니다. 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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