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약
예수님께서는 자기 중심성에 빠졌던 인류를 향해 하나님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나라를
실제로 보여주신다. 그렇다면 과연 예수는 누구인가?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적을 가장 가까운 시기에 기록한 마가복음은, “때가 찼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여라. 복음을
믿어라”라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요약한다.
“때가 찼다” 라는 것은, 링반데룽을 거듭하다 소망이 없는 그 때이며, 바로 이 때가 하나님께서 역사 가운데 개입하셔서 자신의 종 메시아를 보내셔서 세상을 심판하시고 회복하실 때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말씀 하시는데,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이다. 그것은 더 이상
약육강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로 움직이고, 하나님과 인간의 끊어진 관계가 회복되어 다시 인격적
관계를 맺고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의 사랑을 받아 누리는 나라이다.
고대 사회에서 왕이 그 나라의 성경을 좌우했는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기에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신을 알리시기 위해서 인간이 되어 오셨으며 그분이 예수님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계시는 동안 하나님이 중심 되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치셨다. 사람들은 대부분 하나님의 나라를 죽어서 가는 천당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이 땅에 오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음을 선언하셨고, 수 많은 기적들을 통해서
메시아가 왔음을 증거하심으로 세상을 회복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실제로 이루어지셨음을 보이셨다.
오늘날 교회들은 ‘죽으면 천국 간다’ 라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소개한다. 그러나 예수님을 받아들이면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다.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하나님 나라는 혁명적인 사상이다. 그러나 그 완성은 점진적이다. 볼품 없이 작게 시작하지만 일정한
과정을 거쳐 놀라운 결과에 이른다. 기독교 역사는 깨어진 세상을 회복하는 역사이기도 하였지만, 동시에 예수님과 교회의 이름으로 사익을 추구하고 악행을 저지른 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에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 있을 것이고, 악에 대하여 궁극적 심판과 완전한 회복이
일어날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죄를 대신 지시고
돌아가실 만큼 자신을 특별히 사랑하시고 복 주시는 분’이라고 사람들은 찬양한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떠난 세상을 심판하고
회복하기 위해 약속되었던 메시아이며, 상한 세상을 심판하시고 회복하실 메시아이다. 예수님은 구세주이다. 이분은 여전히 사람들을 찾아오시고,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며, 그 나라를 받아들이라고
도전하심으로 사람들이 안 만큼 진실하게 반응하기를 원하신다.
2. 책에서 한마디
“그런데 오늘날 많은 교회는 예수의
가르침을 ‘죽으면 천국 간다’ 라고 소개한다… 현재적 하나님 나라를 잃어버리면, 기독교는 내세 지향적이고 현실
도피적이며 세속을 합리화하는 신앙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3. 성경적 관점에서
보기
요한복음 3: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3:17 For God did not send his
Son into the world to condemn the world, but to save the world through him.
3:17 to condemn the world. Jesus elsewhere says that judgment does attend His coming into the world (9:39; 12:31). His point is not that He will not judge, but that the time has not yet come. The world was already under threat of judgment before He came, but with His coming, salvation becomes a reality offered to a hostile world (12:47; Matt. 23:37; Rom. 5:8). 다른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세상에 오신 것은 심판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의 요지는, 그분이 심판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게 아니라, 그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세상은 이미 심판의 위협 아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구원은 적대적인 세상에 제공된 현실이 된 것입니다.
R.
C. Sproul, ed., The Reformation Stud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2015
Edition) (Orlando, FL: Reformation Trust, 2015),
1858.
요한복음 9: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9:39
Jesus said, “For judgment I have come into this world, so that the blind will
see and those who see will become blind.”
9:39 For judgment I came. The first coming of Christ did not bring in the last judgment (3:17; 12:47), but He confronted people with the obligation to decide for or against Him (Matt. 12:30; Luke 11:23). Until the second coming of Christ, this is still the age of redemption during which the blind are made to see and those dead in trespasses and sins are raised to newness of life (Eph. 2:4).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 그리스도의 초림은 마지막 심판을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위하든지 아니면 예수님을 대적하든지 결정해야 하는 의무에 직면하게 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재림때까지는 지금도 여전히 구속의 시대입니다. 이 기간에 맹인들은 볼 수 있게 되고,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들은 새로운 생명으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R.
C. Sproul, ed., The Reformation Stud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2015
Edition) (Orlando, FL: Reformation Trust, 2015),
1874.
마태복음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20:28 just as the Son of Man
did not come to be served, but to serve, and to give his life as a ransom for
many."
20:28 Jesus’ own mission was self-giving, not self-serving, as he came to die for the sins of humanity. ransom. The price paid to secure a slave’s freedom. At the Passover (Exod 11–13) a ransom was paid to rescue the firstborn Israelites. for many. Probably alludes to Isa 53:12. for. Greek anti is a comparatively rare preposition that means “in the place of” or “in exchange for.” This succinctly articulates the doctrine of the representative, substitutionary, atoning death of Jesus. 예수님의 사명은 인류의 죄를 위하여 죽으로 오셨기 때문에 그것은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대속물 : 이것은 노예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 치르는 값을 의미합니다. 출애굽기에서 유월절에 이스라엘의 장자들을 구원하기 위해 대속물이 지불되었습니다. 많은 사람의 or 많은 사람을 위하여 : 헬라어 안티는 “대신에” 혹은 “대가로”를 의미하는 비교적 드문 전치사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대표적이고, 대속적이고 속죄하는 죽으심의 교리를 간결하게 표현합니다.
D.
A. Carson, “The Gospels and
Acts,”
in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ed. D. A. Carson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1740.
마태복음 25: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25:13 "Therefore keep watch, because you do not know the
day or the hour.
25:13
be on the alert Jesus’ repeated
teaching that the disciples must always be ready. 깨어
있으라 :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고 반복해서 가르치셨습니다.
John
D. Barry et al., Faithlife Study Bible (Bellingham, WA: Lexham
Press, 2012, 2016), Mt 25:13.
25:1–13 the church, God’s Kingdom—Christ brought the kingdom of God, making it present in his church. He pointed to the future when he will bring the kingdom in its fullness. Believers must be alert, prepared to greet Christ when he returns. Other people cannot prepare us at the last moment. Christ will admit only the prepared ones to the kingdom. 하나님의 나라 :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가져오셔서 그의 교회에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그분은 왕국을 충만하게 가져오실 미래를 가리키십니다. 신자들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맞이할 준비를 함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마지막 때에 우리를 준비시킬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준비된 자들에게만 왕국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Holman
Bible Publishers, CSB Disciple’s Study Bible: Notes
(Nashville, TN: Holman Bible Publishers, 2017), 1465.
빌립보서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2:8 And being found in appearance as a man, he humbled himself
and became obedient to death--even death on a cross! 2: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2:9 Therefore God exalted him
to the highest place and gave him the name that is above every name, 2: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2:10 that at the name of Jesus every knee should bow, in heaven
and on earth and under the earth, 2: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2:11 and every tongue confess
that Jesus Christ is Lord, to the glory of God the Father.
2:9 By humbling himself on the cross out of love, Jesus demonstrated that he truly shared the divine nature of God, who is love (1 John 4:8). For this very reason (Therefore), God raised him to life and highly exalted him, entrusting him with the rule of the cosmos and giving him the name that is above every name. Following his death and resurrection, Jesus received a status and authority that had not been his before the incarnation (compare Matt. 28:18; Acts 2:33). 예수님께서는 사랑으로 십자가에서 자기 자신을 낮추심으로 자신이 사랑이신 하나님의 신성을 참으로 공유하고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살리시고 지극히 높이셨고, 우주의 통치권을 맡기시며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죽음과 부활 이후에 예수님께서는 성육신 전에는 갖지 못했던 지위와 권위를 받으셨습니다.
J.
I. Packer, Wayne Grudem, and Ajith Fernando, eds., ESV Global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2012), 1677.
마가복음 1: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1:15 "The time has come," he said. "The kingdom
of God is near. Repent and believe the good news!"
1:15
The time is fulfilled.
The past times, especially of God’s acts of salvation for His people Israel,
reach their climax in this present time of salvation through Jesus. 때가
찼고 : 과거의 때, 특히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때가 바로 예수님을 통한 이 구원의 시기에 정점에 이르렀습니다.
the kingdom of God is at hand. The kingdom of God is that final state of affairs in which God’s supreme reign is fully realized over the transformed universe and in the hearts of all His redeemed and glorified people. This kingdom is “at hand” in the sense that the coming of Jesus sets in motion all that will bring about its actualization. God requires repentance and belief in response to this news.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니 : 하나님의 나라는, 변화된 우주 만물과 그의 구속함을 받아 영화롭게 된 백성의 마음에서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가 온전히 실현되는 최종 상태입니다. 예수님의 오심으로 그 왕국에서 실현될 모든 일이 시작된다는 의미에서 이 나라는 “가까이 왔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소식에 대한 반응으로 회개와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R. C.
Sproul, ed., The Reformation Stud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2015
Edition) (Orlando, FL: Reformation Trust, 2015),
1734–1735.
마태복음 13: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개역개정) 13:30 Let both grow together
until the harvest. At that time I will tell the harvesters: First collect the
weeds and tie them in bundles to be burned; then gather the wheat and bring it
into my barn.'" (NIV)
13:25–30
These weeds are probably darnel, a
weedy rye grass with poisonous black seeds. Darnel resembles wheat in its early
growth but is easily distinguished from it when full grown. Let both grow together (v. 30).
Believers and unbelievers live side by side in the world until the day of
judgment. 가라지는 아마도 독이 있는 검은 씨앗이 들어 있는 독보리 잡초를 의미할 것입니다. 이것은 초기 성장기에는 밀과 비슷하지만 완전히 자라면 밀과 쉽게 구별됩니다.
함께 자라게 두라 : 신자와 불신자는 심판의 날이 올때까지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J.
I. Packer, Wayne Grudem, and Ajith Fernando, eds., ESV Global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2012), 1342.
4. RCB의 관점으로
저자의 탁월한
점은, 성도들의 마음 속에 여전히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강조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이 다소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으면서 독자의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 라는 단어가 깊이 새겨지게 된다.
그러나 중요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다스림이 회복되는 것이고 그것이 예수님을 통해서 드러나고
시작되었다 라는 저자의 설명이, 저자가 안타까워하는 한국 교회의 현실을 극복하게 만들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다. 저자의 글을 읽다 보면, 마치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 전파자 정도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 맥락에서
아쉬운 부분은, 현재 한국 교회의 그 문제에 대한 원인과 대안에 대한 저자의 분석이 다소 오류가 있어
보인다는 점이다. 저자는 현 시대 성도의 예수님에 대한 이해를 평가할 때에, “자신의 죄를 대신 지시고 돌아가실만큼 특별히 자신을 사랑하시는 분” 정도로 이해한다고 진단한다. 그리고 현 시대 교회는 예수님의 중심 가르침을 이해할 때에 “죽으면 천국 간다” 라고 이해하였다고 분석한다.
그렇다면, 그 원인에 따라서 합당한 해결책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라고 질문하게 된다. 현대 교회가 예수님에 대한 혹은 십자가 복음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에 대한 오류를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즉 예수님은 단순히 사랑이 넘쳐서 죄를 대신 지신 것이 아님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존귀한 그분 자신이 죄인을 위하여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영원한 대속물이 되신 것임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십자가에서 이어진 능력의 부활을 통하여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모든
이가 무릎 꿇어야 하는 유일한 분이심을 만 천하에 선포하셨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가 설명하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죄를 심판하시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회개를 촉구하신다. 그러나 그것은 저자가 이야기하는 수준에서 악인이 응당 댓가를
치르는 그러한 심판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링반데룽에 빠진 인간에게 왜 링반데룽에 빠져 있냐고 심판하신다면
그것이 어찌 성경의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예수님은
자신의 말씀처럼,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 위하여 구원의 은혜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물론 저자가 세상의 부조리와
악함에 분노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예수님과 연결하려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러나 예수님의
은혜를 약화시킨다면 오히려 예수님의 재림으로 이루어질 마지막 때의 심판이 희미해진다 라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그리스도를
통한 죄인을 향한 절대적인 은혜로써 하나님의 나라가 현재적으로 시작되었음이 강조 되어야만이, 이후에
그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 최종적인 하나님 나라의 심판의 미래가 역설적으로 더욱 절대적인 엄위한 형태로 다가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저자의 설명과 성경을 비교해볼 때에 흥미로운 점은,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깨어 있으라” 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이 부분이 매우 놀랍다. 왜냐하면 저자는, 하나님의 나라의 현재성을 강조하지 않았기 때문에 교회에 어려움이 찾아왔다 라고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오히려 반대로 말씀하시고 계신다. 예수님의 시대에도
그리고 지금 시대에도 미래적 하나님의 나라가 충분히 강조되지 않았다 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언제 오실지 아무도 모르며 어느 날 갑자기 그분의 최종적 심판의 때가 반드시 온다 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 나라의 미래성을 강조하는 것이야 말로 제자됨의 핵심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성경적인 십자가 복음은 결국 하나님 나라와 반드시 연결 된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한국 교회의 대안이 되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존귀하심, 그분의
대속적 죽음으로 인한 성도의 정체성, 그리고 성령님으로 인해 변화되는 성도의 내면과 부활을 통해 보이신
그분의 주권과 능력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실현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온전한 십자가의 복음이야 말로, 하나님의 다스리심의 당위성과 그 가치를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십자가를 믿는 자는 전적인 은혜로 값으로 산 바가 되었기에 이제는 하나님의 온전한 소유가 되는 것이며, 자신의 삶의 중심성을 그 어느 곳에서도 주장할 수 없고, 오직 예수님 앞에 무릎 꿇고 그분을 위해서 살아가야 하는 존재임을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저자는 이러한 연결 구조는 소홀히 한 체, 그저 예수님께서 메시아로서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시기 위해서 오셨다 라고만 설명하는 것인가라고 아쉬움을 가지게 된다.
결국 이러한
저자의 접근은, 복음에 대한 이중적 접근에 기반한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의도치 않게 십자가의 복음과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다소 분리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저자가 설명하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메시아이시다. 링반데룽에 빠져버린 인간이 스스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에
그분이 십자가를 지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이다.
십자가를 지신
그분이 친히 성도 안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신다. 성도는 그분의 십자가의 은혜와 능력을 묵상하고
의지하고 실천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자신의 삶 가운데 이루어 나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십자가가 있고, 십자가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존재하는 것이다. 성도는
눈을 떠서 살아가는 모든 순간에 자신의 현재의 시간을 초월하여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다시 말해서 확정된
미래를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존재이며 반드시 그렇게 살아가야만 한다.
5. 적용
1)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주인이 되심을 진심으로 고백합니까? 그렇게 고백하는 논리적인 근거는 무엇입니까?
2)
예수님께서 당신의
온전한 주인이시라면, 당신의 삶에서 가장 시급하게 변화해야 되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그것을 실천할 수 있겠습니까?
* 추가로 읽어볼
자료
- 하나님 나라라는 성경적 내용을 균형 있게 보아야 한다라는 맥락에서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정말로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은 부분적인 성경 구절뿐 아니라 성경 이야기 전체에서도 자신을 계시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한 가지 속성만 취하여 그것이 전체라고
이해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분의 주권은
받아들이고 그분의 선하심을 잊어서는 안 된다. 혹은 선하심은 받아들이고 그분의 거룩하심을 잊어서도 안
된다. 그 의미는 그분이 심판의 하나님이고 엄중한 심판을 하신다는 점을 받아들이면서도 그분이
또한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를 매우 사랑하셔서 반역한 피조물인
우리의 죄를 짊어지게 하시려고 자신의 아들을 보내어 십자가에 달리게 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확실히 알고 그것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방식으로 경배하기 위해서는 성경이 말하는 바를 묵상하고 또 묵상하며, 성경 자체가 말하는 것들 안에서
균형적을 이루어 그 전체를 통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우리를 예배로 나아가게 한다. 우리가 무엇이든 그것을 하나님의 자리에 놓으면, 그이 바로 우상
숭배가 된다.
* D. A. 카슨 / 뉴시티 교리 문답 Question 2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https://www.tgckorea.org/content/newCityView?idx=2
-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는다는
것 자체가 이미 그분만을 경배함을 의미한다는 맥락에서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나는 예수를 위대한 도덕적 스승으로는 기꺼이 받아들이지만, 자신이
하나님이라는 주장만큼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말을 그 누구도 못 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이런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인간에 불과한 사람이 예수와 같은 주장을 했다면, 그는 결코 위대한
도덕적 스승이 될 수 없습니다. 그는 정신병자—자신을 삶은 계란이라고 말하는 사람과 수준이 똑같은 정신병자—거나, 아니면 지옥의 악마일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선택을 해야 합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었고, 지금도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미치광이거나 그보다 못한 인간입니다. 당신은 그를 바보로 여겨 입을 틀어막을 수도 있고, 악마로 여겨 침을 뱉고 죽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그의 발 앞에
엎드려 하나님이요 주님으로 부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위대한 인류의 스승이니 어쩌니 하는 선심성 헛소리에는
편승하지 맙시다. 그는 우리에게 그럴 여지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그럴 여지를 줄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순전한 기독교 | C. S. 루이스, 이종태, 장경철
저
- 성도됨은 그 자체가 삶의 선택과 나 자신을 바꾸어감을 의미 한다는 맥락에서
이제 두번째
논지를 말할 차례군요. 사람들은 기독교 도덕을 “네가 이 많은 규칙들을 지키면 상을 주고 지키지 않으면
벌을 주겠다”고 말하는 하나님과 흥정하는 일로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제 생각에 이것은 기독교 도덕을
바라보는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저라면 오히려 여러분이 매번
선택을 내리는 행위는 여러분의 중심, 즉 선택을 내리는 그 부분을 조금씩 전과 다른 모습으로 바꾸어
가는 일이라고 말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수없는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여러분의 생애 전체를 놓고
볼 때, 여러분은 이 중심부를 평생에 걸쳐 천국의 피조물로 바꾸어 가든지, 지옥의 피조물로 바꾸어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다른 피조물들·자기 자신과 어울려 살아가는 피조물로 바뀌어 가든지, 하나님·동료
피조물들·자기 자신을 미워하고 그것들과 싸우는 피조물로 바뀌어 갈 수 있습니다. 전자가 되는 것이 천국의
삶입니다. 그것은 기쁨과 평화와 지식과 능력의 삶이지요. 후자가 된다는 것은 광기와 공포와 어리석음과 분노와 무능함과
영원한 외로움을 겪게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 각 사람은 매 순간 이 두 가지 중 하나의 상태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순전한 기독교 | C. S. 루이스, 이종태, 장경철 저
* "하나님 나라의 도전" 북클럽 인도자용 자료모음
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3/09/blog-post.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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