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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23일 금요일

네비암송 (24) 사람을 낚는 어부는, "끈기와 헌신"으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4장 19절 / A-6 증거)

 

마태복음 4: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개역개정) 19 He said to them, “Follow me, and I will turn you into fishers of people!” (NET)

 

4:19 Follow me. Jesus did not simply invite these men but commanded them to be His disciples. For us as well, this command cannot be negotiated but requires our utmost allegiance (10:24–42; 16:24–26). 나를 따라 오너라 :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사람들을 초대하신 것이 아니라 제자가 되라고 명하셨습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명령은 협상할 있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우리의 최대한의 충성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Joel R. Beeke, Michael P. V. Barrett, and Gerald M. Bilkes, eds., The Reformation Heritage KJV Study Bible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4), 1362.

sn The kind of fishing envisioned was net—not line—fishing (cf. v. 18; cf. also BDAG 55 s.v. ἀμφιβάλλω, ἀμφίβληστρον) which involved a circular net that had heavy weights around its perimeter. The occupation of fisherman was labor-intensive. The imagery of using a lure and a line (and waiting for the fish to strike) is thus foreign to this text. Rather, the imagery of a fisherman involved much strain, long hours, and often little results. Jesus’ point may have been one or more of the following: the strenuousness of evangelism, the work ethic that it required, persistence and dedication to the task (often in spite of minimal results), the infinite value of the new “catch” (viz., people), and perhaps an eschatological theme of snatching people from judgment (cf. W. L. Lane, Mark [NICNT] 67). 여기서 말씀하시는 낚시의 종류는, 줄낚시가 아니라 그물 낚시입니다. 둘레에 무거운 무게가 있는 원형 그물을 사용했습니다. 어부의 직업은 노동 집약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미끼와 줄을 사용하는 것은 본문과는 것입니다. 오히려 어부의 이미지는 많은 긴장과 시간, 그리고 종종 적은 결과들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요점은 다음 하나 혹은 이상이었을 것입니다. 매우 어려운 전도, 그것이 요구하는 직업 윤리, 과제에 대한 끈기와 헌신 (종종 최소한의 결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낚는 대한 무한한 가치, 그리고 아마도 심판으로 부터 사람을 낚아채는 종말론적 주제입니다.

Biblical Studies Press, The NET Bible, Second Edition. (Denmark: Thomas Nelson, 2019).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주님의 제자로 부르시고,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는데 저를 사용하여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영원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주님의 제자로의 부르심에 반응하기를 원합니다. 아버지의 부르심 앞에 두렵고 떨리지만, 그러나 용기를 가지고 주님 앞으로 나아갑니다. 많은 어려움이 눈 앞에 보이지만 주님이 부르셨기 때문에 그 길을 걸어가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신실한 제자로 살아가도록 저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Heavenly Father, I thank you for calling me to be your disciple and for entrusting me with the task of sharing your glorious salvation. I want to respond to your call with a heart that treasures eternal values. Though I may be afraid and trembling, I ask for courage to bravely follow your path. Despite the obstacles that may come my way, I desire to continue walking in obedience to your call. Please guide me to be a sincere and faithful disciple of yours. I pray all this in Jesus' name. Amen.


* "네비게이토 암송 60구절 말씀 & 해석 & 기도" 전체 모음
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2/10/60.html

SOLID JOYS 묵상 12 / 경험적 열쇠 (The Experiential Key)

 

* SOLID JOYS 묵상 12

- 경험적 열쇠
https://www.desiringgod.org/articles/the-experiential-key?lang=ko

- The Experiential Key
https://www.desiringgod.org/articles/the-experiential-key

 


* 핵심 말씀

고린도후서 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개역개정) 8:9 For you know the grace of our Lord Jesus Christ, that though he was rich, yet for your sakes he became poor, so that you through his poverty might become rich. (NIV)


8:9 though He was rich. A reference to the eternality and pre-existence of Christ. As the second person of the Trinity, Christ is as rich as God is rich. He owns everything, and possesses all power, authority, sovereignty, glory, honor, and majesty (cf. Is 9:6; Mic 5:2; Jn 1:1; 8:58; 10:30; 17:5; Col 1:15–18; 2:9; Heb 1:3). 부요하신 이로써 : 이것은 그리스도의 영원성과 선재성에 대한 표현입니다. 삼위 일체 하나님의 두번째 위격으로서,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 부요하신 만큼 부요하십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소유하시고, 모든 권세와 권위와 주권과 영광과 존귀와 위엄을 가지셨습니다.  

He became poor. A reference to Christ’s incarnation (cf. Jn 1:14; Ro 1:3; 8:3; Gal 4:4; Col 1:20; 1Ti 3:16; Heb 2:7). He laid aside the independent exercise of all His divine prerogatives, left His place with God, took on human form, and died on a cross like a common criminal (Php 2:5–8). that you … might become rich. Believers become spiritually rich through the sacrifice and impoverishment of Christ (Php 2:5–8). They become rich in salvation, forgiveness, joy, peace, glory, honor, and majesty (cf. 1Co 1:4, 5; 3:22; Eph 1:3; 1Pe 1:3, 4). They become joint heirs with Christ (Ro 8:17). 가난하게 되심은 :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대한 표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모든 신성한 특권의 독립적인 특권의 행사를 제쳐두고, 하나님과 함께하시던 자리를 떠나, 인간의 몸으로 보통의 범죄자처럼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희생과 가난해지심을 통하여 영적으로 부요하게 됩니다. 그들은 구원과 용서와 기쁨과 평화와 영광과 존귀와 위엄에서 풍성하게 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상속자가 됩니다.

John F. MacArthur Jr., The MacArthur Study Bible: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ashville, TN: Thomas Nelson Publishers, 2006), 고후 8:9.

 

* 리딩 크리스천 묵상

요즘 시대의 화두는 미래입니다. 모든 사람이 미래에 대해서 궁금해합니다. 그리고 미래를 암울하게 그리는 사람일수록 주목을 받게 됩니다. 미래에 대한 전문가들의 시각은 매우 어둡습니다. 디스토피아를 그린 영화가 주기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평범한 우리의 시각으로 볼 때에도 사실 미래는 암울해보이고 어떤 확고한 소망을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파이퍼 목사님은 하나님께서 모든 은혜를 넘치게 하실미래를 바라보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성도에게 주어진 그분의 약속입니다. 미래를 책임지시고 그 가운데 은혜를 주실 전능하신 여호와가 계시기 때문에, 성도는 그 확고한 미래를 바탕으로 하여 지금 이 순간에 넉넉하게 베푸는 사람으로, 그리고 착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파이퍼 목사님은 말씀합니다.

그런데 파이퍼 목사님은, 성도가 넉넉하게 베풀며 살기 위해서는 과거의 역사적 열쇠를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역사 가운데 실제로 오셨고,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가난해지시고 우리를 넉넉하게 하셨으므로, 이제 우리는 그 어떤 것도 흔들 수 없는 기초를 가졌다는 것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이번 파이퍼 목사님의 글은 조금 난해한 듯 합니다. 굳이 경험적 열쇠와 역사적 열쇠를 나누어야 하는가 라는 반문도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은혜의 기초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이 제일 좋았습니다. 여호와께서 과거에 모든 구원의 일들을 친히 이루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은혜의 과거는 사라지지 않고 흔들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상황 속에서 과거에 그리고 현재까지 여전히 확고하게 존재하는 하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합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흔들릴 수 없는 과거의 기초를 가진 사람만이 미래를 확신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를 확신할 때에만, 현재의 우리의 탐욕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고 온전한 미래를 꿈꿀 수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육신의 눈으로 볼 때에는 어두운 미래를 살아갈지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자가를 붙드는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넘치는 미래를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 묵상 질문

1. 위의 묵상 속에서 새롭게 깨달은 부분은 무엇입니까? What did you realize newly in the above meditation?

2. 과거에 행하신 십자가의 사건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습니까? How does the event of the Cross in the past affect you living in the present?

"SOLIDJOYS" 북클럽 인도자용 자료모음
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2/10/solidjoys.html

2022년 9월 20일 화요일

뉴시티 교리문답 묵상 (05) / 하나님은 또 무엇을 창조하셨습니까? (What else did God create?)

 



 뉴시티 교리문답 묵상 05

- Question 5 하나님은 또 무엇을 창조하셨습니까?
https://www.tgckorea.org/content/newCityView?idx=5

- Question 5 What else did God create?
http://newcitycatechism.com/new-city-catechism/#5

 

핵심 말씀

골로새서 1: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16 For by him all things were created: things in heaven and on earth, visible and invisible, whether thrones or powers or rulers or authorities; all things were created by him and for him. 1: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안에 함께 섰느니라 1:17 He is before all things, and in him all things hold together.

 

1:16 Genesis 1:1 says, “God created the heavens and the earth.” Yet Jesus is the uncreated Creator of all things (see John 1:1–4), and there is only one uncreated, eternal being. Thus, Jesus is God. What, then, should we make of the claim in Isaiah 9:6 that “A child will be born for us, a son will be given”? Well, the child (that is, Jesus) had to be born because the incarnation was a new thing, but the Son was given because he already existed. 창세기 1 1절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만물의 창조되지 않은 창조주이시며, 창조되지 않은 영원한 존재는 뿐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이사야서에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되었는데라는 선언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성육신이 새로운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아기로 태어난 것입니다. 그러나 아들로서 이미 존재하셨기 때문에 그분을 주신 것입니다.  

Tony Evans, The Tony Evans Study Bible (Nashville, TN: Holman Bible, 2019), 1415.

1:17 He is before all things. “His beloved Son” (v 13) existed before the creation (Jn 1:1–2; 3:16). in Him all things hold together. Contradicts the heretical teaching that the creation is inherently evil. Jesus still cares very much about this created world, continues to sustain it, and will renew it.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 그의 사랑하는 아들은 창조 전에 존재하셨습니다. 만물이 안에 함께 섰느니라 : 말씀은 창조가 본질적으로 악하다라는 이단적인 가르침을 반박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창조된 세계에 대해 여전히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계시며, 계속해서 유지하시고 그것을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Edward A. Engelbrecht, The Lutheran Study Bible (St. Louis, MO: Concordia Publishing House, 2009), 2044.

1:16–18 stewardship, Purpose of Possessions—Christ is the source of creation and the power that sustains it. He gives purpose and stability to the material order. This provides the basis for the Christian view of the material world. This view contrasts sharply with non-Christian views that either say material things are evil and valueless or think the material world is all that exists and so is all-important. Christians view material things as good and valuable if used to fulfill God’s holy purposes for money and possessions and to reach the lost world. See note on Gn 1:26–31. 소유의 목적 : 그리스도는 창조의 근원이시며 그것을 지탱하는 능력이십니다. 그분은 물질의 질서에 목적과 안전성을 부여하십니다. 이것이 물질 세계에 대한 기독교적 견해의 기초를 제공합니다. 견해는, 물질은 악하고 무가치하다고 말하거나 혹은, 물질 세계가 존재하는 모든 것이며 그러므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비기독교적 견해들과 극명하게 대조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돈과 소유에 대한 하나님의 거룩한 목적을 성취하고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도달하는데 사용한다면, 물질을 선하고 가치 있는 것으로 봅니다.

Holman Bible Publishers, CSB Disciple’s Study Bible: Notes (Nashville, TN: Holman Bible Publishers, 2017), 1861.

 

리딩 크리스천 묵상

하나님께서 그분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이미 창세 전에 존재하셨고 세상을 돌보고 지탱하신다는 것을 분명히 밝힙니다. 창조되지 않은 예수님은 단순히 인간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분명한 성자 하나님이시며, 때가 되어 가운데 성육신하여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세상은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이 지탱하시며, 하나님의 뜻대로 이끌어 가십니다. 비록 죄로 인하여 타락하였지만, 칼빈이 말한 것처럼 주님의 자녀들은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불꽃 봅니다

세상은 결코 소망없이 망해가고 버려야 곳이 아닙니다. 여전히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주님께서 돌보시며 완전한 구원을 기다리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 안에서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망가진 세상 속에서도 선하고 아름다운 것을 배우며, 세상 안으로 들어가 세상을 변혁시키며 적극적으로 믿음으로 살아야합니다

켄트 휴즈는 설교를 위한 주석으로 잘 알려진 분입니다. 상상력과 묘사력이 탁월합니다. 광속의 우주선을 타고 세상의 끝까지 우리가 간다 하더라도, 여전히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그리스도로 인하여서 그리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만들어진 것임을 고백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의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가진 것과 우리 존재 자체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내가 가진 재산, 생명, 시간, 에너지 등 모든 것은 주님을 위해 사용될 때에 선하게 사용되는 것입니다. 만물은 주님의 사랑 아래에 있고, 성도는 그분을 위하여서 살아야하며, 오직 그분을 위하여 드려져야 합니다.

우리의 주인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거룩한 다스림을 받을 때에, 세상도 그리고 우리 자신도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번성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외형적으로 번성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과 우리의 존재 자체가 기쁨과 행복과 감격을 누릴 수 있습니다. 원래 하나님이 창조하신 목적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을 주인으로 아버지로 인정하고 자신을 주님께 드리는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진정한 축복입니다.

 

묵상 질문

Question 1. 위의 교리 그리고 묵상의 내용에서 가장 마음에 닿는 것은 어떤 부분입니까그리고 이유는 무엇입니까What part of the above doctrine and meditation touches your heart the most? And why?

Question 2. 당신이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위하여 당신의 무엇을 특별히 구별해서 사용할 있겠습니까? Everything you have belongs to God. What can you give to God with your districted possession or something especially?

* "뉴시티교리문답" 북클럽 인도자용 자료모음
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2/10/blog-post_7.html

2022년 9월 18일 일요일

SOLID JOYS 묵상 11 / 하나님과 진리를 향한 열정 (Passionate for God and Truth)

 

* SOLID JOYS 묵상 11

- 하나님과 진리를 향한 열정
https://www.desiringgod.org/articles/passionate-for-god-and-truth?lang=ko

- Passionate for God and Truth
https://www.desiringgod.org/articles/passionate-for-god-and-truth

 


* 핵심 말씀

로마서 3:3-4 3:3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냐   3:3 What if some did not have faith? Will their lack of faith nullify God's faithfulness? 3:4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기록된 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 3:4 Not at all! Let God be true, and every man a liar. As it is written: "So that you may be proved right when you speak and prevail when you judge."


3:3 While it was true that many Jews were unfaithful to God or to what they had been entrusted, that didn’t change the fact of God’s faithfulness. Many Jews rejected the gospel and thus failed to understand their own Scriptures. But Israel’s unfaithfulness did not determine God’s faithfulness. God had always been faithful to Israel, despite the nation’s failings, and God would continue to be faithful to his covenant with them. 많은 유대인들이 하나님께 그리고 자신들에게 맡겨진 사명에 충실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절했고 따라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성경을 이해하는데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신실하지 못함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결정짓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항상 신실하셨고, 하나님께서는 그들과의 언약에 계속 신실하실 것입니다.

3:4 In the strongest terms he could use, Paul wanted to drive home the point that the combined self-justification of the whole world could not stand up to God’s truth. If God and every person were to disagree, there still would not be any doubt about who was right. The fact that many people are unfaithful (see Psalm 116:11) by suppressing the truth (1:18), exchanging the truth for a lie (1:25), and rejecting the truth (2:8), doesn’t change the deeper fact that God is true. God’s purpose for Israel and his plan for all people remained unshaken. 바울은 자신이 사용할 있는 가장 강력한 용어들을 가지고, 세상의 자기 정당화의 결합들이 하나님의 진리에 맞설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만약 하나님과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어떤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과연 누가 옳았는가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진실하지 않으며, 진리를 억누르고,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며, 진리를 거부한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참되시다라는 깊은 사실을 바꿀 없습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과 모든 백성을 위한 그의 계획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Paul quoted from one of the profoundly confessional passages in the Old Testament (Psalm 51:4). It records the repentance of David following his confrontation with the prophet Nathan over his sin with Bathsheba. In the revelation of his sin David realized, as all of us must, that there is no denial before God. He sees even those things that we hide so well in ourselves and perhaps even come to believe never happened. Kings were used to getting their way. We tend toward the same arrogance. Before God it carries no weight at all. 바울은 구약 성경에서 심오한 고백적인 구절 하나를 인용했습니다. 그것은 다윗이 밧세바와의 죄에 대해서 선지자 나단과 대면한 후에 회개한 것을 기록한 것입니다. 자신의 죄가 드러났을 때에, 우리 모두가 그러해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는 자신의 죄를 부인할 길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스스로 안에 숨긴 것들, 그리고 심지어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라고 믿게 되는 일들까지도 보십니다.  왕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데로 행동하는데 익숙했습니다. 우리 역시 같은 오만함의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그것은 어떤 가치도 없는 것입니다.

Bruce Barton et al., Life Application New Testament Commentary (Wheaton, IL: Tyndale, 2001), 590.

 

데살로니가후서 2:10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2:10 and in every sort of evil that deceives those who are perishing. They perish because they refused to love the truth and so be saved.


2:10 deceivableness of unrighteousness. Deception characterized by injustice or sin. them that perish. Lost sinners already being ruined by sin and unbelief (1 Cor. 1:18; 2 Cor. 4:3) and headed for eternal destruction (1:9). People without sincere love for the truth of God’s Word will be swept away by the lies of the Man of Sin. 불의의 모든 속임 : 불의나 죄를 특징으로 하는 속임수를 의미합니다 멸망하는 자들에게 : 잃어버린 죄인들은 이미 죄와 불신앙으로 파멸되고 있으며, 영원한 멸망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에 대한 진실한 사랑이 없는 사람들은, 불법한 자의 거짓말에 휩쓸려 것입니다.

Joel R. Beeke, Michael P. V. Barrett, and Gerald M. Bilkes, eds., The Reformation Heritage KJV Study Bible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4), 1747.

 

* 리딩 크리스천 묵상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진리에 대한 사랑 혹은 열정이 없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세상입니다. 먼저 외형적으로는, 그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잘 먹고 잘 사는 것,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 남들보다 높아지는 것에만 관심을 가집니다. 진리가 아니라 나의 잘됨그것 하나만을 최종적인 목적과 기준으로 두는 것입니다. 심지어 스스로 성도라고 부르는 이들조차, 하나님의 진리를 따르는 것은 훨씬 후순위, 어쩌면 삶의 가장 마지막 순위에 있습니다.

내면적으로는, 더 이상 진리에 관심이 없습니다.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지 않고 내가 그것을 좋게 느끼는가 아닌가를 절대 기준으로 받아들입니다. 어려운 용어로 포스트모더니즘이라 부르는 것은, 쉬운 말로 내가 살고 싶은대로 내 기분대로 살겠다입니다. 눈치있는 사람이 환영 받습니다. 어디에서든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맞춰주기 위해서 옳은 말을 하지 말아야하며, 사람들은 듣기 좋은 이야기들만 계속 해주기를 원합니다.

여호와께서 진리 그 자체이시며 진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진리를 사랑하고 붙드는 것은 성도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존파이퍼 목사님은, 진리에 신경쓰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 신경쓰지 않는다고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합니다완전히 동의합니다. 진리의 문제는 성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가장 시급한 문제입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신앙의 성숙은 일어날 수 없습니다. 진정한 신앙은, 나의 모든 삶, 다시 말해서 나의 생각, 행동, 그리고 감정과 그 모든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께서 기준이 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옳다 하시면 옳은 것이고, 그르다 하시면 그른 것입니다. 거기에 나를 힘써 맞춰나가는 사람이 성도입니다.

성경은, 진리에 대한 진실한 사랑이 없다면 결국 거짓말에 휩쓸려 갈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지금 시대가 그런 시대입니다. 진리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면 성도에게 더 이상 희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의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과 그분의 진리를 다시 붙든다면 그 때에 우리에게 진정한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진리를 나의 것으로 삼아야하며, 그 진리대로 살아가기 위해서 모든 삶을 걸어야만 합니다.

 

* 묵상 질문

1. 위의 묵상 속에서 새롭게 깨달은 부분은 무엇입니까? What did you realize newly in the above meditation?

2. 하나님의 진리를 당신이 더욱 가까이 하고 삶에 진실하게 적용하기 위해서 당신은 무엇을 해야 합니까? What can you do to bring God's truth closer to you and truly apply it in your life?

"SOLIDJOYS" 북클럽 인도자용 자료모음
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2/10/solidjoys.html

부모학교 (1) - 아빠 하나님

  1. 요약 부모는 , 자녀의 마음 속에 있는 하나님에 대한 열망과 갈급함에 영향을 준다 . 또한 자녀를 양육하는 것 역시 , 부모의 마음에 있는 하나님을 향한 열망과 갈급함을 자라게 한다 . 자녀 양육은 부모의 성장에 중요한 통로이다 .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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