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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30일 토요일

천로역정 (4) - 9. 겸손의 골짜기 & 10.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 11. 크리스천과 믿음의 만남

 

1. 요약

아름다운 궁전을 떠날 때에, 자매들이 크리스천을 투구와 갑옷으로 중무장 시킨다. 그것은 길 가는 중에 나타날 온갖 위험에 대비한 것이다. 크리스천은 겸손의 골짜기로 내려가게 되는데, 거기에서 흉칙한 마귀 아볼루온을 만난다. 그는 도망칠 수도 없었고 그를 대항하기로 마음 먹는다. 아볼루온은 자신이야 말로 크리스천의 충실한 왕임을 주장한다. 순례의 길을 가봐야 비참하게 종말을 맞이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크리스천이 다시 자신에게 돌아온다면 후하게 여겨 주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가 따르는 현재의 왕인 하나님에 대해서 험담을 하며 크리스천을 회유한다.

그러나 크리스천은 아볼루온이 지배하는 곳에서는 더 이상 생명을 얻을 수 없고, 자신은 하나님의 신하임을 선포한다. 하나님의 신하들은 당장의 어려움을 그분의 사랑의 시험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얻게 될 영광을 기대하며, 자신의 종말을 가장 영광스러운 것으로 여기고 있음을 주장한다. 아볼루온이 크리스천의 약점을 들추어 내지만, 그는 이미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셨다고 대답한다.

아볼루온은 본색을 드러내며 크리스천을 공격하고 치열한 싸움이 전개된다. 참으로 무시무시하고 소름 끼치는 전투였다. 크리스천은 자신의 칼로 마귀에게 치명상을 입히고 그에게서 벗어난다. 크리스천이 승리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 찬송을 드릴 때에, 생명 나무 잎과 빵과 포도주로 회복된다.

그는 겸손의 골짜기를 지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들어가게 된다. 그곳은 천국에 이르기 위해서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곳인데, 아볼루온과의 치열한 싸움보다 더 큰 어려움을 경험하는 곳이다. 그곳은 매우 고독하고 인적이 없는 곳이며, 공포와 괴로움이 뒤섞인 채 질서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곳이다.

크리스천은 여호와께 기도하며 그 길을 나아갔다. 크리스천은 정신이 혼미 해져서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할 힘마저 상실한다. 그 때에 앞서가는 사람이,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신다고 외친다. 크리스천은 자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그 길을 걷고 있었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만 단지 장애물로 인해 그것을 깨닫지 못했음을 알게 되었으며, 또한 조만간 동료를 만나리라는 소망을 가지게 된다.

마침내 그 골짜기를 벗어나게 되는데, 그 골짜기 끝에서 교황과 이교도(Pagan)라는 거인을 만나고 그로 인해 희생된 수 많은 순례자들의 시신을 발견한다. 그러나 이 두 거인들은 이미 오래 전에 그 힘을 잃었다. 크리스천은 골짜기를 벗어나며 모든 어려움에서 보호하신 예수님께 찬양을 드린다.

계속 길을 걸어가던 크리스천은 한 언덕 위에서 “믿음”을 만나게 된다. 믿음은 자신이 크리스천이 살던 도시에서 살았고, 그와 함께 떠나려 했지만 크리스천이 먼저 떠나는 바람에 혼자 오게 되었다고 말한다. 믿음은 떠나온 고향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도시가 멸망한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확실히 그것을 믿는 사람은 별로 없었음을 알려준다. 오히려 크리스천의 “필사적인 도피”를 조소할 뿐이었다. 그러나 믿음은 그 소문을 믿었기 때문에 도시에서 도망쳐 나왔다고 이야기하며 지금까지 일어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오는 도중에 바람둥이라는 못된 여자를 만났고, 그 여자가 온갖 쾌락과 향락을 다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믿음이 유혹을 피하기 위해 눈을 감아버리자 그녀는 물러갔다. “곤고산”에서는 한 노인이 믿음과 함께 살자고 말했다. 그 사람은 “첫 사람 아담”이며 기만의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쾌락을 즐기면서 자신의 딸들인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그리고 “이생의 자랑”과 결혼하고 죽은 후에 그의 상속자가 되라고 믿음을 유혹했다.

그러나 믿음은 첫 사람 아담의 이마에 적혀져 있은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라”라는 말을 보고서는 아담의 제안을 거절한다. 아담이 믿음의 몸을 완전히 움켜 쥐었지만 믿음은 도망한다. 그러나 아담이 보낸 한 사람, 모세가 믿음을 따라와 그를 내리친다. 믿음이 아담의 유혹에 마음이 끌렸던 죄 때문이라며 계속 그를 내려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모세를 만류하여서 믿음은 살아나게 된다.

믿음은 겸손의 골짜기에서 “불만”이라는 사람을 만났는데, 그는 자기와 돌아가자고 믿음을 설득한다. 겸손의 골짜기에는 명예로운 것이 없으며, 믿음이 겸손의 골짜기를 지나가는 것은 “교만”, “오만”, “자만”, “세상 영광” 등의 많은 친구들을 배신하는 것이고, 그들의 기분을 몹시 상하게 할 것이라고 불만은 주장한다. 그러나 믿음은 말하기를, 그들이 믿음과 혈통 관계이긴 하지만 그러나 이제는 믿음과 그들이 서로 부인했고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또한 믿음은 “수치”라는 친구를 만났는데, 이 사람은 철면피와 같은 인간이었다. 수치는 믿음에게 주장하기를, 종교를 두는 것 자체가 비열하고 무기력하며, 부드러운 양심은 사내답지 못하고, 시대가 말하는 자유를 삼가는 것은 다른 이들에게 조롱거리가 되는 것이고, 어느 누구도 바보가 아닌 이상 확실히 알지 못하는 것을 위해 스스로 세상 쾌락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설교를 들으며 슬퍼하는 것은 수치스럽고, 예배가 끝나고 한숨 짓는 것도 우스꽝스러우며, 잘못을 저지르고 이웃에게 용서를 비는 것도, 그리고 믿음의 형제들이라 하며 비천한 자들을 받아들이고 존경하는 것도 수치스러운 것들이라고 주장했다.

그 말을 듣고 믿음은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눅 16:15)’ 라는 말씀을 기억하게 된다. 믿음은 수치가 인간에 대한 이야기만 하고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또한 최후의 심판날에 생명과 죽음을 결정하는 것은 세상의 허세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와 율법이라는 것도 기억해냈다. 그러므로 천국을 위하여 세상에서 바보 취급 당하는 사람들이 가장 현명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따라가는 가난한 사람들이 세상에서 존경받고 하나님을 미워하는 부자들보다 더 영적으로 부유한 사람들임을 깨닫게 되었다. 결국 믿음은 단호하게 수치를 때어낸다.

 

2. 책에서 한마디

“아니, 그렇다면 어째서 당신 이외의 사람들은 위험을 피하여 도시를 떠나오지 않았습니까?"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야기는 많이 돌았지만 그것을 확실하게 믿는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3. 성경적 관점에서 보기

- 겸손의 골짜기에서의 전투 중에

요한계시록 9:11 그들에게 왕이 있으니 무저갱의 사자라 히브리어로는 그 이름이 아바돈이요 헬라어로는 그 이름이 아볼루온이더라 9:11 They had as king over them the angel of the Abyss, whose name in Hebrew is Abaddon, and in Greek, Apollyon.

이것은 아마도 아폴로를 의미하는 것인데, 그리스의 역병의 신이며 종종 메뚜기로 상징되는 것입니다. 도미티안 황제는 자신을 아폴로 신의 화신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이것은 악한 황제 숭배의 또 다른 표현 일 수 있습니다.

Douglas J. Moo, “The Letters and Revelation,” in NIV Zondervan Study Bible: Built on the Truth of Scripture and Centered on the Gospel Message, ed. D. A. Carson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5), 2602.

로마서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6:23 For the wages of sin is death, but the gift of God is eternal life in Christ Jesus our Lord.

죄를 통해 얻은 삯은 죽음인데 이것과는 대조적으로 누구도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오직 이것은 하나님의 특권에 따라 거저 주시는 선물입니다.

John D. Barry et al., Faithlife Study Bible (Bellingham, WA: Lexham Press, 2012, 2016), Ro 6:23.

미가서 7:8 나의 대적이여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말지어다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이요 어두운 데에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 7:8 Do not gloat over me, my enemy! Though I have fallen, I will rise. Though I sit in darkness, the Lord will be my light.

이 말씀은 적들에게 패배했지만 회복을 확신하는 자로서 시온 성의 백성이 말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비록 함락되었지만 다시 재건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John D. Barry et al., Faithlife Study Bible (Bellingham, WA: Lexham Press, 2012, 2016), Mic 7:8.

로마서 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8:37 No, in all these things we are more than conquerors through him who loved us.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넉넉히 이기는 것입니다.

Edwin A. Blum, “Romans,” in CSB Study Bible: Notes, ed. Edwin A. Blum and Trevin Wax (Nashville, TN: Holman Bible Publishers, 2017), 1795.

야고보서 4: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4:7 Submit yourselves, then, to God. Resist the devil, and he will flee from you.

우리는 이 말씀의 명령을 순서대로 따라야 하는데, 먼저 문맥상 이기적인 교만을 버리고 하나님께 복종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마귀가 우리에게 던지는 모든 유혹을 물리쳐야 합니다.

Earl D. Radmacher, Ronald Barclay Allen, and H. Wayne House, The Nelson Study Bible: New King James Version (Nashville: T. Nelson Publishers, 1997), Jas 4:7.

 

-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가면서

예레미야 2:6 그들이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 곧 사막과 구덩이 땅, 건조하고 사망의 그늘진 땅, 사람이 그 곳으로 다니지 아니하고 그 곳에 사람이 거주하지 아니하는 땅을 우리가 통과하게 하시던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하고 말하지 아니하였도다 2:6 They did not ask, 'Where is the LORD, who brought us up out of Egypt and led us through the barren wilderness, through a land of deserts and rifts, a land of drought and darkness, a land where no one travels and no one lives?'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내신 전능하신 힘을 가지신 분이시며, 그들을 사막과 구덩이 땅, 사망의 그늘진 땅을 통해서 그들을 인도하신 분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을 구하시고 보호하신 하나님을 쉽게 잊어버렸습니다.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1371.

민수기 13:32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13:32 And they spread among the Israelites a bad report about the land they had explored. They said, "The land we explored devours those living in it. All the people we saw there are of great size. 13:33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13:33 We saw the Nephilim there (the descendants of Anak come from the Nephilim). We seemed like grasshoppers in our own eyes, and we looked the same to them."

다른 정탐꾼들은 정탐의 결과를 과장하고 나쁘게 보고 하였습니다. 그들의 묘사는 논쟁적이었으며 궁극적으로 그 땅을 주신 하나님에 대한 공격이었으며 용납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Earl D. Radmacher, Ronald Barclay Allen, and H. Wayne House, The Nelson Study Bible: New King James Version (Nashville: T. Nelson Publishers, 1997), Nu 13:31–33.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그 아름다운 나라에 대하여 악평하는 이들을 우리는 이미 성경에서 보았습니다. 하나님 자신과 그분의 영광과 그분의 나라에 대하여 폄하하거나 악평 하는 사람은 절대로 가까이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영적으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우리의 영혼까지 병들게 하는  악인들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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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69:14 나를 수렁에서 건지사 빠지지 말게 하시고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서와 깊은 물에서 건지소서 69:14 Rescue me from the mire, do not let me sink; deliver me from those who hate me, from the deep waters. 69:15 큰 물이 나를 휩쓸거나 깊음이 나를 삼키지 못하게 하시며 웅덩이가 내 위에 덮쳐 그것의 입을 닫지 못하게 하소서 69:15 Do not let the floodwaters engulf me or the depths swallow me up or the pit close its mouth over me.

시편 기자는 그의 적들과 그들이 안겨준 슬픔에서부터 구원을 간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면에서 우리를 도우실 수 있기에 얼마든지 또 다양하게 간구할 수 있습니다.

Crossway, ESV Church History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2023), 832.

누가복음 6:39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맹인이 맹인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 6:39 He also told them this parable: "Can a blind man lead a blind man? Will they not both fall into a pit?

맹인이라는 표현은 아마도,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보다는 자기 이익을 위해 살아가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이끄는 사람은, 그분의 희생적인 사랑을 구현하고 보여야만 합니다.

John D. Barry et al., Faithlife Study Bible (Bellingham, WA: Lexham Press, 2012, 2016), Lk 6:39.

시편 116:4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 116:4 Then I called on the name of the LORD: "O LORD, save me!"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종종 공적인 기도 가운데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이 말씀도 그런 경우인 듯 합니다.

J. I. Packer, Wayne Grudem, and Ajith Fernando, eds., ESV Global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2012), 822.

시편 71:16 내가 주 여호와의 능하신 행적을 가지고 오겠사오며 주의 공의만 전하겠나이다 71:16 I will come and proclaim your mighty acts, Sovereign Lord; I will proclaim your righteous deeds, yours alone.

다윗은 자신의 기도가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응답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전능하신 역사들이 그를 자신의 목적지에 이르게 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이것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그분 자신을 기억하도록 의도한 선언입니다.

James M. Hamilton Jr., Psalms, ed. T. Desmond Alexander, Thomas R. Schreiner, and Andreas J. Köstenberger, vol. 1, Evangelical Biblical Theology Commentary (Bellingham, WA: Lexham Academic, 2021), 626.

시편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23:4 Even though I walk through the valley of the shadow of death, I will fear no evil, for you are with me; your rod and your staff, they comfort me.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죽음의 매우 깊은 그림자”라고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두려운 상황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임재를 확신할 수 있습니다.

Edward A. Engelbrecht, The Lutheran Study Bible (St. Louis, MO: Concordia Publishing House, 2009), 865–866.

욥기 29:3 그 때에는 그의 등불이 내 머리에 비치었고 내가 그의 빛을 힘입어 암흑에서도 걸어다녔느니라 29:3 when his lamp shone upon my head and by his light I walked through darkness!

욥은 과거에 고난을 겪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임재의 빛을 알았습니다.

Joel R. Beeke, Michael P. V. Barrett, and Gerald M. Bilkes, eds., The Reformation Heritage KJV Study Bible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4), 740.

 

- 음녀의 유혹을 피하는 믿음

잠언 5:5 그의 발은 사지로 내려가며 그의 걸음은 스올로 나아가나니 5:5 Her feet go down to death; her steps lead straight to the grave.

음란한 여인과의 관계는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며, 어리석은 여인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New Living Translation Study Bible (Carol Stream, IL: Tyndale House Publishers, Inc., 2008), Pr 5:5–6.

 

- 옛 사람 아담의 유혹을 피하는 믿음

고린도전서 15: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15:45 So it is written: "The first man Adam became a living being"; the last Adam, a life-giving spirit.

창세기 2장 7절은 아담이 살아 있는 존재가 된 것을 말합니다. 아담은 땅의 흙으로 만들어졌고 하나님으로부터 생기를 받았습니다. 그 이후로 모든 인간은 동일한 특성을 공유합니다. 그러나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는 생명을 주시는 영이십니다. 아담이 인류의 첫번째 존재였던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 가운데에서 영생으로 부활할 사람들 중에 첫 번째 사람이십니다.

Bruce Barton et al., Life Application New Testament Commentary (Wheaton, IL: Tyndale, 2001), 700.

요한일서 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2:16 For everything in the world--the cravings of sinful man, the lust of his eyes and the boasting of what he has and does--comes not from the Father but from the world.

요한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서 멀어지게 하는 여러가지 것들에 대해서 나열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정욕은 죄의 방탕한 쾌락에 대한 욕망을 말합니다. 안목의 정욕은 탐심이나 물질주의를 말합니다. 이생의 자랑은, 이 세상에서 자신의 지위에 대해 교만해지는 것을 말합니다.

Earl D. Radmacher, Ronald Barclay Allen, and H. Wayne House, The Nelson Study Bible: New King James Version (Nashville: T. Nelson Publishers, 1997), 1 Jn 2:16.

로마서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7:24 What a wretched man I am! Who will rescue me from this body of death?

이 말씀은, 성도가 충분히 발전하여서 더 이상 자신의 죄를 보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경고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괜찮은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속는 것입니다. 우리가 더 거룩해질 수록 우리는 덜 거룩하다고 느낄 것입니다. 우리의 죄성과의 싸움을 예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 말씀은, 죄에 대한 유혹과 투쟁 심지어 죄에 빠지는 것조차도 미성숙한 사람이 아닌 성장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과 일치한다고 격려하고 있습니다.

Timothy Keller, Romans 1–7 for You, ed. Carl Laferton, God’s Word for You (The Good Book Company, 2014), 170–171.

 

- 불만의 유혹을 피하는 믿음

잠언 15:3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훈계라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15:33 The fear of the LORD teaches a man wisdom, and humility comes before honor.

겸손이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피조물로서 자신의 지위를 인식하는데 바탕을 둔 낮아짐과 순종의 태도입니다.

Martin H. Manser, Dictionary of Bible Themes: The Accessible and Comprehensive Tool for Topical Studies (London: Martin Manser, 2009).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능력을 과소평가하거나, 다른 이들에게 감추는 것을 겸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참된 겸손은, 자신이 성취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이루셨음을 인정하며, 오직 주님을 위해 그것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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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16:18 Pride goes before destruction, a haughty spirit before a fall.

교만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완고하게 자기 힘만 의지하는 것인데, 이것은 자기 파멸적이고 어리석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누구도 생명을 위한 자원을 얻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New Living Translation Study Bible (Carol Stream, IL: Tyndale House Publishers, Inc., 2008), Pr 16:18.

 

- 수치의 유혹을 피하는 믿음

요한복음 7:48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자가 있느냐 7:48 "Has any of the rulers or of the Pharisees believed in him?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의 매우 강한 편견은 성전 경비대와 무리, 그리고 심지어 공회원이었던 니고데모를 저주하고 정죄하는 모습을 통해서 드러납니다.

R. C. Sproul, ed., The Reformation Stud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2015 Edition) (Orlando, FL: Reformation Trust, 2015), 1869.

고린도전서 1: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1:26 Brothers, think of what you were when you were called. Not many of you were wise by human standards; not many were influential; not many were of noble birth.

1세기 대부분의 그리스-로마 종교에서는 귀족 가문이나 큰 부자만이 구원을 위해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 사람들만 주로 통치자와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구원으로 부르셨다는 사실을 성도들에게 상기시킵니다.

John D. Barry et al., Faithlife Study Bible (Bellingham, WA: Lexham Press, 2012, 2016), 1 Co 1:26.

고린도전서 3:18 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3:18 Do not deceive yourselves. If any one of you thinks he is wise by the standards of this age, he should become a "fool" so that he may become wise.

믿는 자들을 미혹하는 지혜는 이 시대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주권에 복종하기 보다는 독립적으로 자신의 삶을 다스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고린도의 그리스도인들은 완전히 변화되어야 합니다. 성도는 기독교와 세상 사이의 대조를 보면서 어리석은 자라는 꼬리표 조차 받아들여야 합니다. 바울의 목적은 그리스도의 복음의 교훈을 따르게 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주님의 인도를 받아야 하고 하늘의 지혜를 얻기 위해 전적으로 그분을 의존해야 합니다.

Simon J. Kistemaker and William Hendriksen, Exposition of the First Epistle to the Corinthians, vol. 18, New Testament Commentary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53–2001), 119–120.

빌립보서 3: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3:7 But whatever was to my profit I now consider loss for the sake of Christ. 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3:8 What is more, I consider everything a loss compared to the surpassing greatness of knowing Christ Jesus my Lord, for whose sake I have lost all things. I consider them rubbish, that I may gain Christ 3: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3:9 and be found in him, not having a righteousness of my own that comes from the law, but that which is through faith in Christ--the righteousness that comes from God and is by faith.

바울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 비하면 다른 모든 것들을 무익한 쓰레기로 여겼습니다. 쓰레기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배설물이라는 것은 쓸모 없고 바람직하지 않은 물질을 가리키는 용어인데, 배설물로 번역될 수도 있습니다. 

The Wartburg Project, Holy Bible: Evangelical Heritage Version Study Bible (Midland, MI: Northwestern Publishing House; Wartburg Project, 2019), Php 3:8.

바울은 율법 준수를 통한 인간적인 성취를 통해 의롭다 하심을 얻지 않는 것이며, 완전히 전적으로 하나님에게서 난 의로움 곧 그리스도의 공로에만 기초하는 것임을 인정합니다. 그리스도만이 믿음의 대상이시기에, 바울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자격에 대한 의존을 버립니다.

R. C. Sproul, ed., The Reformation Stud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2015 Edition) (Orlando, FL: Reformation Trust, 2015), 2113.

누가복음 16:15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들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16:15 He said to them, "You are the ones who justify yourselves in the eyes of men, but God knows your hearts. What is highly valued among men is detestable in God's sight.

사람 중에 높아지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행하지 아니한 모든 종류의 인간적 성취가 포함되는 것입니다.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1991.

마가복음 8:38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8:38 If anyone is ashamed of me and my words in this adulterous and sinful generation, the Son of Man will be ashamed of him when he comes in his Father's glory with the holy angels."

예수님의 제자로서 살아가기를 거절하는 사람은, 그들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가르침을 부끄러워하는 자이며 그러므로 구원 받지 못하였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John F. MacArthur Jr., The MacArthur Study Bible: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ashville, TN: Thomas Nelson Publishers, 2006), Mk 8:38.

우리가 그리스도의 탁월함과 영광을 더 많이 인식할 수록, 우리는 사람들 앞에서 그분을 더욱 담대하게 고백할 것입니다.

Crossway, ESV Church History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2023), 1488.

잠언 3:35 지혜로운 자는 영광을 기업으로 받거니와 미련한 자의 영달함은 수치가 되느니라 (개역개정) 3:35 The wise inherit honor, but fools he holds up to shame. (NIV)

지혜로운 자는, 악한 자에게 배척 당하고 조롱당하는 자들이며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높아지게 될 것입니다. 반면에 영적인 지혜가 없는 사람은 영원한 형벌과 치욕을 받게 될 것입니다.

Edward A. Engelbrecht, The Lutheran Study Bible (St. Louis, MO: Concordia Publishing House, 2009), 1004.

 

4. RCB의 관점으로

크리스천의 순례의 길은 결코 꽃 길이 아니다. 오히려 거의 죽음에 다다를 정도의 고통의 길이다. 아볼루온은 크리스천을 먼저 그를 회유한다. 그는 자신이 크리스천의 왕이라고 주장하고 하나님을 비난한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돌아오면 잘해주겠다고 유혹한다. 존 번연은 아볼루온과의 전투가 무시무시하고 소름 끼치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마귀와 죽도록 싸우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이 전쟁의 핵심은, 누가 과연 우리의 참된 주인인가에 대한 싸움이다. 끊임없이 유혹하고 속이는 마귀의 다스림을 벗어나, 겸손하게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분의 다스림만 받고자 하는 그 치열한 전쟁이 성도의 현실인 것이다.

크리스천은 넘어지고 부상을 입고 쓰러지고 기진맥진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도우심으로 다시 일어난다. 그리고 주님으로 인하여 넉넉히 이긴다고 고백한다. 이것이야 말로 영적 전쟁에 임하는 성도의 참된 성경적 태도이다. 우리가 악한 마귀를 대적할 수 있는 것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도우시기 때문이며, 하나님이 승리하게 하심을 믿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는, 포기하지 않고 기꺼이 다시 일어서며 더욱 능동적으로 영적인 전쟁에 임할 수 있는 것이다.

다윗이 고백했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번연을 통해 실감나게 묘사되고 있다. 번연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순례자라면 반드시 지나가는 곳이라 말하며, 성도가 경험하는 깊은 영적인 어두움과 공포와 괴로움은 너무나 당연한 것임을 보여준다. 그 골짜기 안에는 질서라고는 찾아볼 수 없으며, 크리스천이 자신의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 조차 못할 만큼 정신이 혼미해 졌다는 묘사를 통해 그 어려움의 깊이를 보여준다.

그러나 크리스천은 새로운 무기인 기도를 꺼내 들고 여호와께서 도와주시기를 크게 간구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의 외침이 크리스천을 깨어나게 하고, 크리스천에게는 동반자가 있음을 깨닫게 하며 인내하게 한다. 그러므로 극심한 영적 혼란과 침체 속에서도 성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간절히 하나님을 찾는 기도이며,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며, 또한 그 믿음을 함께 고백하며 순례의 길을 걸어가는 동반자이다.

존번연은 믿음의 이야기를 풀어가며 성경의 거대한 비유의 구조를 사용한다. 그것은 첫 사람 아담, 모세, 그리고 주님의 역할이다. 아담은 옛 사람으로 남아 있는 인간의 모습이고, 모세는 조그만 틈이라도 보이면 믿음을 내려친다. 그러나 결국 주님의 은혜로 믿음은 살아난다.

주목할 것은, 아담의 딸들의 이름이다. 옛 사람 아담에게 속한 자는 죄의 방탕한 쾌락을 추구하고, 돈을 전부로 알고, 오직 자기가 높아지기 위해서 살아간다. 이것이야 말로 세상의 본질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아담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자들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에 깊은 탐욕을 발견하고, 마치 매로 치듯이 우리 자신을 책망하며 다시 주님의 용서를 구하고 돌이켜야 한다. 이제 우리는 아담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기 때문에,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의로움과 용서와 회복을 누리는 것임을 깨닫고 항상 믿음으로 주님을 붙들어야 한다.

크리스천이 지난 겸손의 골짜기는 영적인 전투의 자리였지만, 믿음이 지나온 겸손의 골짜기에는 교만, 오만, 자만, 그리고 세상 영광이라는 옛 절친들과 헤어지는 자리임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서 참된 믿음을 가진 성도들은 너무나 친숙했던 이것들과 단호하게 절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전혀 그것들과 상관 없는 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성도는 한마디로, 겸손한 사람이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분의 도우심만을 구하며 자신의 삶의 최선을 오직 하나님께 드리는 사람들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가장 존귀하게 여기며, 그로인하여 기꺼이 나를 부인하며 살아가는 자들이 바로 성도이다. 믿음을 향한 수치의 집요한 매달림은, 이 시대 성도들이 듣는 이야기 그대로이다. 하나님의 말씀만 진리로 믿고 그것으로 진실하게 감동을 받고 오직 그것에 자신의 인생을 던지는 사람은 세상의 조롱을 당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세상이 주장하는 것과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진실한 신앙의 삶은 수치스러운 것이라며 세상은 우리에게 낙인을 찍는다. 과학과 이성과 인간의 권위가 아니라 성경만이 진리임을 고백 할 때 비웃음을 당한다. 말씀으로 나 자신을 무장하지 않으면, 세상이 나에게 쏟아붓는 비난과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수치심을 이겨낼 수가 없다. 세상이 수치라고 주장하는 것을 수치라 여기지 않고, 오직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전부로 알고 더 그 안에 깊이 들어가야 한다. 성도야 말로 영적으로 부유한 사람들임을 기억하고 마지막 날에 받을 영생을 확신하며 우리 역시 크리스천이 걸어갔던 길을 함께 걸어가야 한다.

 

5. 적용

1) 크리스천과 아볼루온과의 논쟁 속에서 당신의 마음에 가장 와 닿았던 부분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2) 수치가 믿음을 향해서 비난하는 말 중에서 당신의 마음에 가장 와 닿았던 부분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 "천로역정" 크리스천 북클럽 인도자용 자료모음 & 참여자 준비 자료 예시
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3/12/blog-post.html

2023년 9월 30일 토요일

하나님 나라의 도전 (3) - 회복의 길

 


1. 요약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잃어버림으로 자기 중심적으로 살아가며 유사 신을 찾아 헤매고 있는 형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관계 회복의 가장 중요한 원리가 무엇인가? 

인간은 이러한 자신의 근원적 문제 해결을 위해서 끊임 없이 절대적 진리나 구원 또는 깨달음을 찾는다. 첫째로 양심과 선행이다. 양심에 따라 선한 일을 많이 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이익에 반하거나 선을 행하는데 고통이 수반되면 그 양심이 무너지기 때문에, 부실한 양심과 선행에 의지해서 잃어버린 신을 찾는 것은 불가능이다. 둘째, 탐구와 연구이다. 인류는 본질적인 질문들을 하고 그 답을 찾아왔다. 이 답들은 어느 정도 통찰을 주지만 삶의 궁극적인 답을 주지 못하며 이기심으로 오염되어 있으며 지식과 삶은 여전히 괴리되어 있다.

셋째, 기도와 종교 행위이다. 인류는 신을 상정하고 종교적 행위를 실천했다. 그러나 인간의 종교 행위는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다. 성경의 하나님은 종교적 행위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하나님을 알고 변함 없이 사랑하기를 원한다. 인간의 인식 능력으로는 우주 밖에 존재하는 신을 만날 수 없고, 신을 내 마음대로 조작하려는 종교 행위를 통해서도 신을 만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시기 위해서 한 사람을 찾아가 인격적으로 반응할 기회를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찾아가시고 나를 믿고 따라오라고 말씀하신다. 그를 통해서 하나님 없이 망가진 모든 민족을 회복시키시겠다 라고 말씀하신다. 이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다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을 신뢰하였고 그분을 따라갔다.

아브라함의 위대성은 그의 진실한 반응이다. 인간이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를 맺기 위한 중요한 원리는, 깨달은 만큼 진실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창세기 15장 6절에서 하나님께서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라는 것은, 하나님께 인정 받고 그분과의 관계가 바로 섰다 라는 의미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믿음을 소중히 여기셨고 그 가치를 인정하셨다.

대다수 종교는 인간의 열심으로 신을 감동시키는 신심을 중요시한다. 그러나 기독교의 믿음은 신심과는 다르다. 기독교의 믿음은 하나님에 관해 알고 깨달은 만큼 인격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을 찾는 자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시며, 그 상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다. 하나님 자신을 알려주실 때에 알게 된 만큼 인격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믿음이다. 하나님을 알아가며 전인격적으로 반응할 때에 관계가 발전한다.

그러므로 성경의 하나님은, 자신을 알고 따르고 사랑하며 진실하게 반응하는 믿음을 요구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깨달은 것에 대하여 인격적으로 반응할 때에 깨어진 개인과 세상이 회복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믿고 그렇게 따라가는 것이므로 명사가 아니라 동사이다. 믿음이야 말로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의 원리이며,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끌어 가시고 하나님의 사역에 우리가 동참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다.

 

2. 책에서 한마디

성경의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를 알아라. 나를 안 만큼 나를 따라라. 나를 알면 나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너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너희가 안 만큼 진실하게 내게 반응하는 것이 믿음이고, 이런 믿음을 볼 때 나는 기쁘다.”

 

3. 성경적 관점에서 보기

창세기 15: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15:5 He took him outside and said, "Look up at the heavens and count the stars--if indeed you can count them." Then he said to him, "So shall your offspring be." 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15:6 Abram believed the LORD, and he credited it to him as righteousness.

15:1–6 In this chapter, we see for the first time dialogue between the Lord and Abram. The childless Abram is fearful about his future. He thinks that his servant, Eliezer of Damascus, will have to be his surrogate heir (a practice common in the ancient world), but God reassures him that he will in fact have his own children—as many as the stars. Abram believes God’s word, throwing himself upon God’s promises. As a result of Abram’s faith, God declares him righteous. Long before the Law of Moses, Abram is righteous before God (Ro 4:1–3). 창세기 15장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대화를 봅니다. 자녀가 없는 아브라함은 자신의 미래를 두려워합니다. 그는 자신의 종인 다메섹 엘리에셀이 자신의 대리 상속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별과 같이 많은 그 자신의 자녀를 갖게 될 것이라고 확신시켜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고 하나님의 약속에 자기 자신을 던졌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결과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의롭다고 선언하셨습니다. 모세의 율법이 있기 오래 전에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였습니다. (로마서 4: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4: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Stephen Dempster, “Genesis,” in The NIV Grace and Truth Study Bible, ed. R. Albert Mohler Jr. (Grand Rapids, MI: Zondervan, 2021), 22.

히브리서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개역개정) 11:6 And without faith it is impossible to please God, because anyone who comes to him must believe that he exists and that he rewards those who earnestly seek him. (NIV)

11:6 impossible to please. Enoch pleased God because he had faith. Without such faith it is not possible for anyone to “walk with God” or “please Him” (cf. 10:38). He is. The emphasis here is on “He,” the true God. Genuine faith does not simply believe that a divine being exists, but that the God of Scripture is the only real and true God who exists. Not believing that God exists is equivalent to calling Him a liar (cf. 1Jn 5:10). rewarder. A person must believe not only that the true God exists, but also that He will reward men’s faith in Him with forgiveness and righteousness, because He has promised to do so (cf. 10:35; Ge 15:1; Dt 4:29; 1Ch 28:9; Ps 58:11; Is 40:10). 기쁘시게 할 수 없나니 : 에녹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믿음이 없이는, 누구도 하나님과 동행하거나 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 강조하는 것은, 참 하나님이신 “그분” 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단순히 신적인 존재가 존재한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하나님이 유일한 참되고 존재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믿지 않는 것은, 그분을 거짓말쟁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습니다. 상 주시는 이 : 사람은 참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할 뿐만 아니라, 그분이 그렇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용서와 의로움으로 그분을 믿는 사람들의 믿음에 보상을 주실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John F. MacArthur Jr., The MacArthur Study Bible: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ashville, TN: Thomas Nelson Publishers, 2006), Heb 11:6.

 

4. RCB의 관점으로

김형국 목사님의 글은 따뜻하다. 렘브란트의 탕자의 귀향의 이미지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분을 떠난 인간을 얼마나 기다리시는지를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그리고 저자는 하나님께 다가가기 위한 인간의 다양한 시도들이 의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잘 설명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챕터에서는 아쉬운 점은, 성경의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믿음이라는 것을 여전히 “하나님에 대한 신뢰 정도”로 이해하였다는 것이다. 어쩌면 책의 초반이기 때문에 저자가 강조하고 싶은 믿음의 반응이라는 측면을 더 드러내기 위하여 그렇게 설명하신 듯 하다.

저자는 마음을 다해 신에게 간구하는 신심과, 하나님에 관해 알고 깨달은 것에 인격적으로 반응하는 믿음을 구별하면서 후자가 바로 아브라함의 믿음이며 성경적인 믿음이라고 설명한다. 일견 탁월한 설명 같지만, 이러한 관점으로만 믿음으로 이해한다면 인간의 반응이라는 측면에서는 이 두가지를 구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저자는 신심과 믿음의 반응을 애써 동일선상에 놓고 싶어하지 않지만, 그러나 인간의 열심이라는 것에는 기준이 없기 때문에 결국 잘 모르는 신을 열심히 믿고 착하게 살든지, 혹은 하나님을 잘 믿고 착하게 살든지의 기준으로 밖에 기독교의 차이점을 설명해내지 못한다.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내가 믿음으로 반응하면 하나님이 인정해 주신다” 라고 주장한다면, “도대체 얼만큼 반응하면” 인정을 받는다는 것인가? 그리스도의 죄 사함과 그분이 주시는 완전한 의로움이 약화된다면 그리고 더 나아가 빼 버린다면, 기독교는 사실상 타 종교와 다를 바 없는 것이 된다. 그저, 열심히 믿으면 인정 받는 인과응보의 종교로 전락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모든 인간이 죄를 범함으로 하나님의 의에 이르지 못했다 라고 말씀하신다 (롬3:23). 다시 말해서 인간이 하나님에게 반응하느냐 안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반응이 하나님의 기준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의로움이라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을 했는가 하지 않았는가 의 문제가 아니라 로마서 4장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그가 하나님을 믿은 것이 그의 의로움이 되었고, 요한복음 8장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고 믿었던 아브라함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프로울과 같은 보수적인 신학자도 믿음과 순종이 나란히 가는 것임을 강조한다. 그는 심지어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음으로 겁쟁이가 되어버린 현대 교회를 질타한다. 그러나 그는, 성경이 이야기하는 믿음의 본질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아브라함은 그리스도를 믿은 자이다. 우리는 유대인이 아니지만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었으며, 김형국 목사님이 그토록 강조하는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은 단순히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반응하여서 일어난 것이 아닌,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이다.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선택한 자에게 믿음을 주시는 그 하나님의 신비한 경륜을 인정해야 한다. 에베소서 3장에서 바울 사도는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성도가 그리스도의 사랑의 놀라움을 더 깊이 알아가기를 간구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이며, 인간의 이성과 보편적 상식을 뛰어 넘어 은혜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온 마음 다해 찬양할 수 밖에 없으며, 더욱 왕되신 주님께 순종하기를 목숨을 다해 애쓰는 자들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5. 적용

1) 지금보다 하나님을 더 깊이 신뢰할 수 있기 위해서 당신이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2)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당신의 삶에서 한걸음 더 전진해야 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입니까?

 

* 추가로 읽어볼 자료

- 참된 믿음의 열매로서 순종은 믿음과 분리될 수 없다는 측면에서

히브리서 11장은 아벨, 에녹, 노아의 믿음을 언급한 뒤 아브라함을 소개한다. 앞 장에서 말한 대로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으로 불린다. 8절을 보자.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믿음’과 ‘순종’이 나란히 연결된 것에 주목하라.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사는 삶이 믿음의 본질이다…

바울은 아브라함이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들의 위대한 표상이라고 역설했다(롬 4:17).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면 그 즉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에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아브라함은 복종을 통해 자신의 믿음을 구체적으로 보였다. 야고보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복종의 행위를 통해 믿음의 열매를 보여 주었다고 증언했다(약 2:21)…

선조들이 우리를 위해 감수했던 희생을 우리가 기꺼이 감수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피가 땅속에서 울부짖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겁쟁이들만 가득한 교회를 결코 존귀하게 여기지 않으실 것이다.

승리하는 교회가 되려면 먼저 싸우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교회는 목숨을 걸고 기꺼이 영적 전쟁을 시작해야 한다. 교회의 역사를 돌아보면, 신앙의 용사들이 그들 삶의 대부분을 감옥에서 보냈을 때 복음이 가장 명확하고 찬란하게 빛을 발했다. 그런데 이 세상의 안락함에 깊이 젖은 우리는 세상에서 외국인이요 나그네로 살아갔던 사람들처럼 살기보다 세상에서 편안하게 사는 것을 더 좋아한다…

믿음, 자신 있게 대답하라 | 찰스 스펄전, R. C. 스프로울, 조나단 에드워즈, 황을호, 조계광 저

 

- 아브라함의 믿음은 단순히 신뢰가 아니라 구원자이신 그리스도를 믿은 것이며, 그것으로 인하여 의롭다 함을 받았다는 측면에서

아브라함은 세상의 성을 짓기보다 하나님께서 친히 지으실 성을 바라며 기다렸다. 그는 단지 거할 땅 이상의 것을 추구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1, 32)고 말씀하시자 바리새인들은 그 말을 불쾌히 여기며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33절)고 대꾸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이 행한 일들을 할 것이거늘 ……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39, 56절)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히브리서 저자와 똑같은 말씀을 하신 셈이다.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을 바라보았을 뿐 아니라 모든 약속을 온전히 이루실 구원자를 고대했다…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받는 방식과 새 언약의 공동체에 속하는 그리스도인들이 구원받는 방식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지금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고, 과거에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구약 시대의 구원의 근거 역시 소나 염소의 공로가 아닌 그리스도의 공로였다. 소나 염소의 피는 죄를 없애지 못한다(히 10:4, 11). 그러한 희생 제사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하는 예표일 뿐이다(히 9:13, 14). 그것은 장차 오실 메시아를 예시하는 그림자였다. 오직 그분의 보혈만이 죄를 없앨 수 있다.

아브라함과 우리는 시간상의 위치가 다를 뿐이다. 다시 말해 아브라함은 미래의 십자가를 바라보았고, 우리는 과거의 십자가를 바라본다. 그는 약속을 믿었고, 우리는 성취된 약속을 믿는다. 오늘날 우리에게나 그때의 아브라함에게나 구원의 길은 동일하다.

믿음, 자신 있게 대답하라 | 찰스 스펄전, R. C. 스프로울, 조나단 에드워즈, 황을호, 조계광 저

 

- 믿음은 단순히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선택에 의한 선물이라는 측면에서

인간은 영적으로 죽어 있는 상태이기에 스스로의 힘으로는 결코 하나님의 일에 관심을 기울일 수 없다. 예수님께서는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요 6:65)고 말씀하셨다. 같은 복음을 듣고도 어떤 사람은 믿음으로 반응하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다. 그 궁극적인 이유는 전자의 경우 성령의 거듭나게 하시는 역사가 일어난 반면, 후자의 경우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교리의 난해한 지점은 성령께서 모든 사람을 거듭나게 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다. 이 문제로 인해 많은 사람이 걸려 넘어진다. 구원을 얻는 믿음은 성령의 선물이고 그 선물이 있어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그 선물을 모두에게 주시지 않는 걸까?

이 문제는 우리를 선택 교리로 인도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4장은 구원을 얻는 믿음을 선택과 연결시킨다. “믿음의 은혜, 곧 선택받은 자들이 믿어 영혼의 구원에 이르게 하는 은혜는 그들 마음속에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영의 사역이다.” 이 말은 곧 모두가 신자가 될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께서 믿는 능력을 주기로 작정하신 사람들만 신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을 함축한다. 이것이 선택 교리의 핵심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풍성하신 긍휼로 구원을 얻었다. 우리를 구원한 그 믿음조차도 우리의 육신과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개입에 의한 결과이다. 이 사실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마땅히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려야 한다.

믿음, 자신 있게 대답하라 | 찰스 스펄전, R. C. 스프로울, 조나단 에드워즈, 황을호, 조계광 저

* "하나님 나라의 도전" 북클럽 인도자용 자료모음
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3/09/blog-post.html

독서 묵상 (88) 집중의 뇌과학 - 창조된 인간은 언어 안에서 자라갑니다

  저자는 나이가 들어도 다양한 언어의 적극적인 사용을 통해서 인지 능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성인이 되어도 배움을 절대로 그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죄로 인해서 많은 부분이 망가졌지만 여전히 인간은 탁월한 존재입니다. 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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