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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27일 수요일

선교적 교회로 가는 길 (7) - 선교적 교회의 요소를 말하다

 


1. 요약

선교적 교회가 되기 위해서 다섯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첫째, 성령의 인도하심이다. 사도행전 전체를 놓고 보면 성령님께서 교회를 지속적으로 인도하셨다. 그러므로 선교적 교회를 향해 나아가고자 한다면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거룩한 부담을 따라 그 음성에 순종해야 한다. 둘째, 선교적 리더십이다. 제도적 교회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한정된 힘과 자원을 꼭 필요한 본질의 변화에 쓰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셋째, 세상을 섬기는 건강도이다. 기득권 싸움에 매진하면서 그저 존재하기만 하는 교회로는 세상에 도움을 줄 수 없다. 건강한 교회는 사역자를 세우고, 은사 중심으로 일하며, 열정과 기능적인 조직을 함께 가지고 있는 교회이다. 또한 영감 있는 예배와 전인적 소그룹, 그리고 전도와 사랑의 관계가 존재하는 교회이다. 이러한 특징을 가지고 세상을 진심으로 섬기고 복음을 변화시키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넷째, 온전한 복음이다. 선교적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복음 전파와 상관 없는 일을 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교회로 체질을 바꾸어야 한다. 본질을 경험하지 못하면 반드시 비본질을 놓고 싸우게 된다. 그러므로 마치 선교사가 그러한 것처럼 불편을 감당하면서 부르심에 따라 십자가의 흔적을 가지고 희생을 감수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복음이 나의 복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온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해결책임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타협하지 않아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인위적으로 축소해서는 안되며 영혼 구원 뿐 아니라 사회 정치적 참여를 함께 감당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역자를 세우는 제자화 과정이다. 선교적 교회에는 엄격한 멤버십 과정이 필요하다. 선교적 교회의 멤버가 된다는 것은 많은 시간과 인내를 요하는 것이다. 소비자적 성도가 아니라 헌신된 제자의 삶을 보일 수 있어야 하며. 성도가 세상에서 의미 있는 개입을 할 수 있도록 그들을 반드시 훈련시켜야 한다.  

이러한 요소들을 바탕으로 선교적 교회의 모습을 이렇게 그려볼 수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미 이 땅에서 일하고 계심을 믿고 겸손하게 동참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님의 일에 쓰시기 위해서 자신을 선택하셨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또한 영혼 구원을 포함하여 복음의 온전성과 그것을 통한 세상의 회복을 꿈꾼다. 그리고 분명한 하나님 나라의 관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분의 통치를 중시하고 함께 협력하여 사역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이원론을 벗어나 교회 밖으로 나아가며 축복을 나누며, 특별히 가까운 곳에서 사회의 변두리에서 약하고 소외된 자들을 돌보는데 힘을 쓴다. 그리고 세상의 회복을 위해서 실천적인 삶을 살아갈 뿐 아니라 선교적 DNA를  가진 선교적 교회를 재생산하며 소그룹을 파송하는데 관심을 가지고 노력한다. 비록 선교적 교회가 금방 완성되지 않지만 전체 그림을 보면서 노력하고 전진한다면 이룰 수 있을 것이다.

 

2. 책에서 한마디

“그렇다면 우리가 지향하는 선교적 교회의 모습은 어떠해야 할까?"

 

3. 성경적 관점에서 보기

유다서 1:20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1:20 But you, dear friends, build yourselves up in your most holy faith and pray in the Holy Spirit.

우리가 신적인 영감에 의해서 감동을 받아 하늘의 도움을 구할 때에 우리는 성령 안에서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스스로는 절대로 얻을 수 없는 좋은 것들을 받는 것입니다.

James Stuart Bell, ed., Ancient Faith Study Bible (Nashville, TN: Holman Bibles, 2019), 1579.

누가복음 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4:18 "The Spirit of the Lord is on me, because he has anointed me to preach good news to the poor. He has sent me to proclaim freedom for the prisoners and recovery of sight for the blind, to release the oppressed, 4: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4:19 to proclaim the year of the Lord's favor."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사역이 인간의 모든 필요를 채우심을 말씀하셨습니다. 성령님의 능력을 통해서 그분의 제자들은 그분의 사역을 하는 것인데, 우리 역시 사람들의 모든 필요를 채움으로써 우리가 그분의 제자임을 세상 속에 보이는 것입니다.

Holman Bible Publishers, CSB Disciple’s Study Bible: Notes (Nashville, TN: Holman Bible Publishers, 2017), 1531.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개역개정) 3:16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e and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a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NIV)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주신 것은,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한 것입니다. 세상이라는 헬라어 단어를 택자들에게만 적용하려는 것은 신약 전체에서 그 용어의 명확한 사용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경계가 허물어졌으며,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이들에게 확장되며, 그분은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Robert H. Mounce, “John,” in The Expositor’s Bible Commentary: Luke–Acts (Revised Edition), ed. Tremper Longman III and David E. Garland, vol. 10 (Grand Rapids, MI: Zondervan, 2007), 400.

(위의 설명과 반대되는 개혁주의의 이해에 대하여) 성부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주신 자들의 구원은 단순한 가능성이 아니라 절대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오직 자기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세상” 이라는 것은 시대나 민족적 배경과 관계 없이 세상에 있는 모든 택자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R. C. Sproul, ed., The Reformation Stud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2015 Edition) (Orlando, FL: Reformation Trust, 2015), 1858.

 

4. RCB의 관점으로

이번 챕터를 통해서 선교회 교회를 아주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다. 성령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분께 순종하는 리더십으로부터 시작하여, 세상을 섬기기 위한 훈련을 강조하는 것까지 선교적 교회를 이루기 위한 핵심적인 요소를 잘 정리하였다. 그리고 이 요소들이 결코 추상적이지 않았고 실제로 교회 가운데 적용해야 하는 생생한 요소들이었기에 더 마음에 와 닿았다. 또한 저자가 설명하는 선교적 교회 성도들의 모습은, 마치 실제로 존재하는 이상적인 어떤 교회를 눈 앞에 그리는 것처럼 생생하게 다가왔다.

선교적 교회의 요소를 다루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본질을 경험하지 못하면 비본질을 놓고 교회가 싸우게 된다는 저자의 통찰력 있는 지적이었다. 우리는 실제로 이러한 모습을 너무나 많이 보고 있다. 복음으로 나 자신이 변하고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투철한 사명과 복음의 목적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우리는 그저 교회에서 더 좋은 직분을 받는 데에만, 혹은 주의 교회를 이용하여 내 욕심을 채우는 데에만 삶을 낭비해 버리며 오히려 교회를 망친다는 것이다. 이것은 나 자신에게도 큰 경고의 말씀이 되었다.

저자는 요한 복음 3장 16절을 이해하면서, “온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온 세상을 위하여 오셨다는 것은 충분히 설득력 있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혁주의의 이 부분의 성경 이해는, 오직 택자를 염두에 둔 이해이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온 세상을 사랑하시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회복시키기 위하여 교회를 세우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구원의 완전성을 염두에 둔다면, 우리는 이 말씀을 택자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한정 짓는 것이 옳다.

그렇다면 이러한 중요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 하나님께서 미리 택자를 선택하시고 구원하시기로 결정하셨다는 그 사실이, 교회가 세상의 필요 전체를 돌보고 채우고 회복시키며 복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나가는데 있어서 걸림돌이 되는 것인가? 아니면 더욱 큰 격려가 되는 것인가?

또한 저자의 훈련의 선명한 내용과 방향성이 인상적이다. 저자는 선교적 교회를 이루는 훈련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말씀 자체를 묵상하는 훈련, 세상 속에서 삶과 대화를 통해서 복음을 의미 있게 전하는 훈련, 또한 성도의 성품 자체를 변화시키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사실상 이것이야 말로 크리스천 북클럽이 이루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목적들이다. 그렇다면 다양한 훈련을 한꺼번에 진행하는 것보다 하나로 종합하여서 진행할 수 있다면 선교적 교회를 이루는데 있어서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5. 적용

1) 선교적 교회의 다섯가지 요소 중에, 지금 당신에게 혹은 당신의 교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2) 많은 이들에게 큰 감동과 도전을 주었던 세이비어 교회조차도, 결국 차세대 일꾼을 키우지 못하였습니다. 당신은 그 이유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또한 이런 현실적인 어려움 속에서, 선교적 교회를 감당하는 성도를 양육하기 위한 당신의 핵심 전략은 무엇입니까?

* "선교적 교회로 가는 길" 북클럽 인도자용 자료모음
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3/09/blog-post_28.html 

2023년 11월 29일 수요일

선교적 교회로 가는 길 (6) - 선교적 교회를 정의하다

 


1. 요약

2015년 기준으로 한국 기독교는 전체 인구의 20퍼센트에 육박한다. 그러나 나라는 바뀔 줄 모른다. 성도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 탓이다. 성경은 구원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성도를 부르심은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것이다.

구원에만 초점을 맞추면 교회는 복음을 사유화하게 되고 성공주의에 빠지며 큰 교회만을 찾게 된다. 전도하면서 사용하는 용어가 그리고 성도의 대화의 중심이 하나님 나라가 되어야 한다. 이것을 통해서 성경적인 교회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대형 교회는 성도를 훈련해서 세상으로 파송하는 사명을 확고하게 가져야 한다. 소형 교회는 숫자와 상관 없이 주님의 사역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분명한 사명감을 가진 주님의 제자를 만들어야 한다.

선교적 교회는 단순히 선교를 많이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온 성도가 건강한 모습으로 선교적 삶을 사는 것이다. 선교는 교회의 여러 사역 중 하나가 아니라 교회의 본질이다. 선교를 위해서 교회가 존재하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선교가 없다면 교회가 존재할 필요가 없으며 온 성도가 세상으로 파송 받아 선교적 삶을 훈련하고 돕는 것이 선교적 교회이다.

선교적 교회란, “온 성도가 세상으로 보내심을 받아 구속적 삶을 살며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는 교회”이다. 첫째,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세상을 섬기도록 훈련해서 파송하는 것이다. 둘째, 교회 안에서 보다 밖에서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의 죄 사함의 은총을 올바로 깨닫고 받아들임으로 화해와 회복의 삶을 사는 것이다. 미움과 분열로부터 해방을 누리고 나눔과 섬김을 통해 살아가는 것이다. 넷째, 선교는 삼위 하나님의 활동임을 깨닫고 성도는 선교의 DNA를 가지고 세상 속에서 예외 없이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는 것이다.

교회가 세상과 갖는 관계는 세 가지 유형인데, 첫째, 세상 속으로 흡수된 무기력한 교회인데 이런 교회는 공의롭게 살아가라는 설교는 없고 개인의 영적 성장만 강조한다. 둘째, 세상과 단절한 무관심한 교회인데 이원론에 빠져서 경건만을 추구하면서 세상을 등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이런 교회는 오직 영혼 구원을 위한 전도만 교회의 유일한 사명으로 간주한다. 

마지막으로 세상으로 보내심을 받은 교회이다.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나와 다시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런 교회는 주중에 증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힘을 얻기 위하여 주일 예배를 매우 중시한다. 이들은 세상에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은 자들이다.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 공부하고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세상의 가치관을 파악해서 복음으로 바꾸고 채우고자 노력한다. 즉, 복음의 본질을 잘 이해하고 지키면서도 세상의 상황을 파악함으로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한다. 이것이 선교적 교회의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이원

 

2. 책에서 한마디

“교회 지도자들은 성경적 교회론에 입각해서 온 성도가 세상으로 보내심을 받았다는 점을 분명히 가르치고 파송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선교적 교회는 모이는 숫자가 아니라 보내는 숫자로 그 교세를 측정하기 때문이다.”

 

3. 성경적 관점에서 보기

에베소서 2: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2:10 For we are God's workmanship, created in Christ Jesus to do good works, which God prepared in advance for us to do.

2:10 This is a thought-provoking statement: God prepared in advance opportunities for us in our lives to do good works—the only question is whether we will, in thanks to Christ, use those opportunities as we walk the path of life that he lays out for us. 이것은 시사하는 바가 깊은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에서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미리 예비해 두셨습니다. 유일한 문제는 우리가 그리스도께 감사하며 그분이 준비해 놓으신 인생의 길을 걸을 때에 그 기회들을 사용할 것인지의 여부입니다.

The Wartburg Project, Holy Bible: Evangelical Heritage Version Study Bible (Midland, MI: Northwestern Publishing House; Wartburg Project, 2019), Eph 2:10.

The verse begins “for we are his artifact.” The Greek noun (from the verb “to do, make”) occurs elsewhere in the New Testament only in Romans 1:20. RSV “workmanship” and TC, NEB “handiwork” are perhaps a bit unwieldy; JB “work of art” seems a bit affected. TEV God has made us what we are (similarly Mft and others) seems better than “he has made us” (Gdsp) since the thought is not the original act of creation but God’s saving work, the new creation in Christ Jesus. In order to emphasize that what we are refers to this new relationship to God in view of salvation, it may be important to translate this clause as “what we now are.” 이 구절은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로 시작됩니다. 헬라어 명사는 신약의 다른 곳에서는 로마서 1장 20절에서만 나옵니다. RSV의 “솜씨”와 TC 그리고 NEB의 “수공예품”은 아마도 약간 어색해 보이고, JB의 “예술 작품”은 약간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TEV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현재의 모습으로 만드셨다”라는 것은, 창조의 원래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사역,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창조이기 때문에 Gdsp의 “그가 우리를 만드셨다” 보다 더 나은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의 존재”라는 구원의 관점에서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를 의미하기 때문에, 이 절을 “지금 우리가 무엇인지”로 번역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Robert G. Bratcher and Eugene Albert Nida, A Handbook on Paul’s Letter to the Ephesians, UBS Handbook Series (New York: United Bible Societies, 1993), 47–48.

디도서 2: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2:14 who gave himself for us to redeem us from all wickedness and to purify for himself a people that are his very own, eager to do what is good.

2:14 Salvation involves the double work of redeeming us from guilt and judgment and of producing moral purity and helpful service to others. 구원에는 우리를 죄책과 심판에서 구속하시는 일과 도덕적 순결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섬기는 이중의 사역이 포함 됩니다.

Kenneth L. Barker, ed., NIV Study Bible, Fully Revised Edition. (Grand Rapids, MI: Zondervan, 2020), 2144.

25.77 ζηλωτήςa, οῦ m: one who is deeply committed to something and therefore zealous—‘enthusiast, zealous person.’ 열심히 하는 : 어떤 일에 깊이 전념하여 열성적인 사람, 즉 “열광적인 사람, 열성적인 사람”

Johannes P. Louw and Eugene Albert Nid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Based on Semantic Domains (New York: United Bible Societies, 1996), 297.

누가복음 12:32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12:32 "Do not be afraid, little flock, for your Father has been pleased to give you the kingdom.

12:32 little flock. Affectionate term indicating ownership and tender care. good pleasure. Synonymous with “resolve, determination, choice.” give you the kingdom. We are included in that realm ruled by God’s grace. This comes through faith in Jesus and results in abundant life both here and in heaven. 적은 무리여 : 이것은 소유권과 인자한 돌보심을 나타내는 애정 어린 용어입니다. “기뻐하시느니라”는 “결단, 결심, 선택”과 동의어입니다.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통치되는 그 영역에 속해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서 오고, 이 땅과 천국에서 풍성한 삶을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Edward A. Engelbrecht, The Lutheran Study Bible (St. Louis, MO: Concordia Publishing House, 2009), 1741.

12:32 The Kingdom is worth making a priority (12:31), for one day God the Father will give it to those who faithfully follow him. The Kingdom is a certain reality, so God’s people need not be afraid. Fear and worry will be constant companions to those who devote their lives to getting, achieving, and protecting what they have. No bank and no medical plan can protect a person from death or from present harm. Only those whose true treasure is in heaven (12:33–34) can be truly secure. Not only does God promise to give believers his Kingdom, but it is his great happiness to do so. God the Father (12:30) wants to share his Kingdom with them. 그 왕국은 우선 순위를 둘 가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느날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분을 신실하게 따르는 사람들에게 왕국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왕국은 확실한 현실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두려움과 걱정은 자신이 소유한 것을 얻고, 성취하고, 그리고 지키기 위해 평생을 바치는 사람들에게는 끊임없이 따라다닐 것입니다. 어떤 은행이나 의료 보험도 사람을 죽음이나 현재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할 수 없습니다. 오직 그의 진정한 보물이 하늘에 있는 사람만이 참으로 안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자들에게 그분의 왕국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하시는 것이 그분의 큰 기쁨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그분의 왕국을 그들과 함께 나누기를 원하십니다.

Bruce Barton et al., Life Application New Testament Commentary (Wheaton, IL: Tyndale, 2001), 309–310.

 

4. RCB의 관점으로

교회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모두가 성경적인 교회는 아니다. 어떤 일을 열심히 한다고 해서 그 교회가 훌륭한 교회인 것도 아니다. 성경적인 분명한 방향성을 가지고 그것을 향하여 열심으로 나아가야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구원하실 때에,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이들로 부르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선명한 목적이다. 이것보다 더 명백하게 그러므로 교회는 그 일에 매진해야 한다. 그렇다면 선한 일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세상에 있지만 그곳에 속하지 않은 자로써, 세상을 하나님의 뜻대로 변혁시키는 자로 살아가는 것이다.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라는 말씀이 너무나 크게 다가온다. 삶의 모든 열정을 선한 일을 위해서 사용하라는 명령이야 말로 인생의 가장 중대한 도전이 아닌가?

저자는 현재 교회에서 선교적 교회가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가르침이 부족해서라고 설명한다. 물론 그런 면도 있겠지만 단순히 교육의 문제만은 아니다. 오히려 선교적 교회의 비전을 공고하게 만들고 그것을 실천하게 하는 훈련의 부재라고 말할 수 있다. 모든 모임 안에서 세상 속으로 나아가는 성도의 정체성이 이야기되어야 하고, 그 안에서 우리의 역할을 끊임없이 나누고 전략을 개발하고 그것을 도전하도록 권면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크리스천 북클럽은, 선교적 교회를 이루기 위한 필수 요소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대형 교회 그리고 소형 교회 둘 다에게 주는 저자의 통찰이 탁월하다. 주님께서 적은 무리에게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의 다스림 속에서 오직 그분만 따르기로 결심한 이들에게 무슨 두려움이 있을 수 있겠는가? 어떤 교회이든지 그 핵심은 성도를 훈련해서 세상으로 보내는 것이다. 숫자에 연연할 필요 없이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다. 

이러한 확고한 태도는 선교를 교회의 본질로 볼 때에만 나올 수 있다. 그리고 오직 선교적 교회의 진정한 정체성을 확고히 할 때에야, 교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의 그 진정한 가치를 평가받을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한국 교회에서 주일 식사 친교는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그것은 세상 속으로 들어가 변혁시키는 교회의 정체성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결국 그것은 우리에게 어느 정도의 우선 순위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

교회에서 에너지를 다 사용하지 말고 예배와 모임의 횟수를 줄이고 최대한 사역을 나누라는 저자의 조언은 가히 충격적이다. 감히 어느 누가 이렇게 직언할 수 있겠는가? 수도 없는 예배와 모임을 만들어도 결국 그 예배와 모임이 선교적 교회를 빚어낼 수 없다면 사실상 그것은 무용 지물인 것이다. 

그러나, 단 한번의 예배와 모임이라도 선교적 교회를 제대로 만들고 또 힘을 불어 넣을 수 있다면, 그 한번으로도 충분하다. 교회의 수준은 예배와 모임의 횟수가 아니라, 얼마나 선교적 교회로서의 정체성을 품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온 성도가 참여하는 주일 예배야 말로 목회의 꽃이며 목회자의 그리고 교회의 전부를 걸어야 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선교적 교회를 평생 꿈꾸고 싶다. 그것을 꿈꾸며 한걸음씩 전진하고 싶다. 뜨거워진 영혼으로 열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고 싶다. 비록 속도가 더디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바른 방향으로 마땅히 걸어가고 싶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빚어내신 전혀 새로운 피조물들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분의 나라를 주시기를 크게 기뻐하시기에, 오직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일을 이루어주실 것이다.

 

5. 적용

1) 당신의 교회는 교회가 세상과 갖는 관계의 세 가지 유형 중에 어느 쪽에 가깝습니까? 그렇게 판단하는 중요한 이유 세가지 정도를 나눠 보시기 바랍니다.

2) 선교적 교회로 나아가기 위하여 당신의 교회에서 가장 시급하게 필요한 변화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리고 그 변화를 이루기 위한 실질적인 첫번째 단계에 대해서 생각해서 나눠 보시기 바랍니다.

* "선교적 교회로 가는 길" 북클럽 인도자용 자료모음
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3/09/blog-post_28.html

2023년 11월 13일 월요일

선교적 교회로 가는 길 (5) - 하나님 나라의 관점으로 보다

 


1. 요약

예수님은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대해 집중적으로 가르치셨다.  교회에 대한 직접 가르침은 두 번 정도에 불과하다. 첫째로, 마태복음 16장인데 주님은 베드로의 고백 위에 주의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셨다. 둘째로, 마태복음 18장인데 거기에서 교회는 하나님 백성의 모임을 의미한다.

이 외에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수도 없이 가르치셨으며 복음 선포의 주제가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에게  여전히 혼란스러운 하늘 나라 혹은 천국이라는 것은, 공간적 개념이 아니라 통치적 개념임을 반드시 깨달아야 한다.

예수님은 교회보다 하나님의 나라를 집중해서 가르치셨지만, 우리는 하나님 나라보다 교회에 집중하고 있다. 교회 중심으로 살고 교회 문화를 배워 익히도록 했다. 안타깝게도 하나님의 백성이 초림과 재림 사이에 어떻게 자신의 분야에서 살아야 할지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다. 두가지 주요 원인으로 인해 가나안 성도들 그리고 교회의 신뢰도 추락이 일어났다. 첫째 교회 성장을 하나님 나라 확장과 동일시했고, 둘째 하나님 나라는 죽어서 가는 일종의 영적 공간으로 가르친 것이다.

교회가 규모가 커진다고 해서 반드시 그 지역에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은 아니다. 교회가 많아도 자신의 생존과 만족만을 위해서 노력한다면 그것을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결코 연결할 수 없다. 오히려 교회가 하나님의 왕권을 존중하며 복음으로 지역 사회 가운데 아름다운 변화를 일으켜야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확장이다. 마치 메시아로 인해서 구원과 화평이 찾아오는 것처럼, 지역 사회에 전해지는 복음은 하나님과의 수직적 그리고 마을 안에서의 수평적인 화평까지 이루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다.

하나님 나라는 무엇이며 교회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하나님 나라는 첫째, 하나님의 통치가 인정되고 실행되는 영역이다. 또한 지금 여기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모시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둘째, 회개하고 들어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통치를 겸손히 받아들이고 들어가는 것이다. 진정한 회개는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에 일어난다.

셋째, 교회의 증거를 통해 선포되고 드러난다. 교회의 사명은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드러내는 것이다. 교회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구속 은혜를 보여주는 표지, 도구, 그리고 맛보기라는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로 가는 길을 보여주는 표지이며, 하나님 나라의 임재가 이 땅에 드러나도록 쓰임 받는 매개체이며,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미리 맛보도록 하는 곳이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한 사람들을 형벌에서 구원해 주신 기쁜 소식이다. 그러나 결코 이것은 다가 아니며 시작에 불과하다. 복음이 기쁜 소식인 이유는, 이제는 죄악 된 인간이 아니라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께서 통치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 통치 아래에서 개인의 영혼, 이웃과의 관계, 그리고 창조 세계의 회복까지 일어나는 것이다. 한 사람의 구원은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기 위한 시작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 나라의 실재를 삶의 현장에서 나타내야 한다.

교회가 하나님 나라 관점을 상실하면 생존을 위해 제도권에 갇힌다. 소외된 이들을 더 이상 찾아가지 않고 오히려 교회를 채우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교회와 세상을 구분함으로 예배가 이루어지는 영역만 거룩하다고 가르친다. 또한 세상을 섬겨야 할 성도가 영적 소비자로 전락한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교회는 안정기로 넘어가면 제도화의 길을 걷는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관점을 가져야 한다. 교회 중심의 생활보다는 하나님 나라 중심의 생활이 되어야 한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신앙 생활을 해야 한다. 또한 지역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가정과, 마을, 그리고 지역 사회를 위한 결정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는 지금 이곳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2. 책에서 한마디

“우리는 물어야 한다. 예수님은 교회보다 하나님의 나라(천국)를 집중해서 가르치셨는데, 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보다 교회에 집중하고 있는가?”

 

3. 성경적 관점에서 보기

스가랴 9: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9:9 Rejoice greatly, O Daughter of Zion! Shout, Daughter of Jerusalem! See, your king comes to you, righteous and having salvation, gentle and riding on a donkey, on a colt, the foal of a donkey. 9:10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통치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 9:10 I will take away the chariots from Ephraim and the war-horses from Jerusalem, and the battle bow will be broken. He will proclaim peace to the nations. His rule will extend from sea to sea and from the River to the ends of the earth.

9:10 peace to the nations. In sharp contrast to Alexander’s empire, which was founded on bloodshed, the Messianic King will establish a universal and eternal kingdom of peace as the ultimate fulfillment of the Abrahamic covenant (cf. 14:16; see Ge 12:2–3 and note, but cf. Rev 19:11 and note). 많은 이들의 피 위에 세워진 알렉산더의 제국과는 정반대로, 메시아 왕은 아브라함 언약의 궁극적인 성취로서 보편적이고 영원한 평화의 왕국을 세울 것입니다. 

Kenneth L. Barker, ed., NIV Study Bible, Fully Revised Edition. (Grand Rapids, MI: Zondervan, 2020), 1601.

9:9, 10 The two advents of Christ are here compressed as though they were one as in Is 61:1–3 (cf. Lk 4:16, 21). Actually, v. 9 refers to His first coming and v. 10 is His second. OT prophets didn’t see the great time period between the two comings. The church age was a “mystery” hidden from them (cf. Eph 3:1–9; Col 1:27). 이 9절과 10절에서는 그리스도의 두 번의 강림이 마치 하나처럼 압축되어 있습니다. 사실 9절은 그분의 첫 번째 오심을 말하고, 10절은 그분의 두 번째 오심을 가리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두 번의 강림 사이의 위대한 기간을 보지 못했습니다. 교회 시대는 그들에게 숨겨진 “비밀”이었습니다. => 초림과 재림의 사건으로 이해하는 성경 해석과 저자의 해석은 어느 쪽이 더 성경적으로 우세한가? 

John F. MacArthur Jr., The MacArthur Study Bible: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ashville, TN: Thomas Nelson Publishers, 2006), Zec 9:9.

누가복음 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23:43 Jesus answered him, "I tell you the truth, today you will be with me in paradise."

23:43 Verily. Truly. To day. Though just converted from a life of sin and blasphemy, this man did not have to wait until after ages of purgatory or unconsciousness but immediately upon his death joined Christ in glory. paradise. A word for a beautiful garden, used here of the heavenly realm where pardoned souls are gathered after death like a return to the garden of Eden (2 Cor. 12:4; Rev. 2:7; cf. Rev. 22:1–3). 진실로. 진실로. 오늘도. 죄와 신성 모독의 삶에서 막 회심했지만, 이 사람은 오랜 연옥이나 무의식 상태가 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었고, 죽자마자 영광 가운데 그리스도와 연합하였습니다. 낙원: 아름다운 동산을 뜻하는 단어로, 에덴동산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이 죽음 후에 용서받은 영혼들이 모이는 천상의 영역을 가리킵니다. 

Joel R. Beeke, Michael P. V. Barrett, and Gerald M. Bilkes, eds., The Reformation Heritage KJV Study Bible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4), 1503.

마태복음 13: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13:44 "The kingdom of heaven is like treasure hidden in a field. When a man found it, he hid it again, and then in his joy went and sold all he had and bought that field.

13:44–46 Those who discover and recognize the worth of living life under the rule of God will sacrifice anything of earthly value for participation in his kingdom.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서 사는 삶의 가치를 발견하고 인식하는 사람들은, 그분의 왕국에 참여하기 위해 세상적인 가치가 있는 모든 것을 희생할 것입니다. 

Tony Evans, The Tony Evans Study Bible (Nashville, TN: Holman Bible, 2019), 1115.

사도행전 8:12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그들이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8:12 But when they believed Philip as he preached the good news of the kingdom of God and the name of Jesus Christ, they were baptized, both men and women.

8:12–13 Philip’s message and signs attracted the attention even of Simon. His interest appears to have been in the miraculous aspect of Philip’s ministry more than in the message of the kingdom of God, which he preached. 빌립의 메시지와 표적은 심지어 시몬의 관심까지 끌었습니다. 그의 관심은 빌립이 전파한 하나님 나라의 메시지보다, 그의 사역의 기적적인 측면에 더 있었던 것 같습니다. 

Lyman Coleman, 편집자, Life Connections Study Bible (Nashville, TN: Holman Bibles, 2019), 1764.

이사야 52:7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개역개정) 52:7 How beautiful on the mountains are the feet of those who bring good news, who proclaim peace, who bring good tidings, who proclaim salvation, who say to Zion, "Your God reigns!" (NIV)

52:7 In the ancient world, news was carried by a herald. In this verse the herald announces the end of hostilities and the fact that God reigns as King over his people. A variation of this verse occurs in Nah 1:15. Paul quotes this verse in Rm 10:15. 고대에는 전령이 소식을 전하였습니다. 이 구절에서 전령은 적대 행위가 종식되었다는 것과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왕으로서 통치하신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습니다. 

Tremper Longman III, “Isaiah,” in CSB Study Bible: Notes, ed. Edwin A. Blum and Trevin Wax (Nashville, TN: Holman Bible Publishers, 2017), 1118.

 

4. RCB의 관점으로

이 챕터는 마치 코페르니쿠스의 혁명과 같은 사고의 전환을 가져다 준다. 저자의 탁월한 점은, 단순히 하나님의 나라를 강조했다는 것이 아니다. 현대 교회가 성경적인 하나님의 나라를 강조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무엇을 지나치게 혹은 비성경적으로 강조하였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저자는 매우 진지하게 질문한다. “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보다 교회에 집중하고 있는가?”

교회에 집중하는 것은, 언뜻 보면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인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몸을 소중히 여기고 아낀다는데 누가 감히 뭐라고 하겠는가? 그런데 여기에서 아이러니가 등장한다. 예수님 자신이 실제로 이 땅에서의 삶의 대부분 가운데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강조하시고 가르치셨는데 왜 교회에서는 그렇지 않은가? 저자와 함께 하는 진지한 성찰 앞에서, 드디어 우리의 아픈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성경적 회복이 없다면, 사실상 기독교의 모든 것이 무너지게 된다는 것을 새롭게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의 다스림과 통치가 없는데 우리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라고 외치는 것이 무슨 실질적인 의미가 있는가? 하나님의 통치를 거절하고 있는 자신의 현실에 대한 직시와 참된 회개가 없는데 어떻게 교회가 변하겠는가?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내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하는데, 교회 자체의 세력을 불리는 것에 모든 힘을 쏟고 있다면 그것이 도대체 세상의 친목 동호회와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이런 맥락에서, 이단이 극단적인 도피주의이며 성경을 개인적인 문서로 만들어버렸다는 것은 참으로 통찰력 있는 지적이다. 어쩌면,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고백함에도 불구하고 삶의 내용이라는 면에서는 얼마든지 우리는 이단과 다름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교회가 안정기로 넘어가면 제도화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매우 뼈아픈 지적이다. 그렇다면 공동체를 회복시키기 위한 방법은 오직 하나이다. 다시 하나님의 나라의 메시지를 새롭게 회복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성도들에게 실현시키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의 실제를 성도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돕고 훈련하고 그 결과물들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저자의 논리의 아쉬운 점이 보인다. 저자는, 하나님 나라의 관점을 제대로 갖지 못했다는 것을 지적하며 이제는 교회 중심의 생활보다는 하나님 나라 중심의 생활이 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마치 부모가 자녀에게 공부 잘해라 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리고 공부를 잘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없겠는가? 문제는 공부를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어야 하며, 공부를 어떻게 잘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가르치고 훈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저자의 주장도 마찬가지이다. 이제는 교회 중심에서 벗어나 하나님 나라를 실현해야 한다라는 저자의 주장만으로는 부족하다. 더 나아가서 저자가 분석한 원인 즉, 하나님의 백성이 초림과 재림 사이에 어떻게 자신의 분야에서 살아야 할지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대책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 나라의 원대한 비전을 이루는 것은 매우 복합적인 것이다. 성도로서 지적이며 정서적인 성숙, 기본적인 성경의 이해와 삶의 견고한 연결,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 제공하는 지혜와 격려가 반드시 필요하다. 과연 이 책은 그러한 원대한 비전과 훈련에 대한 구체적인 전략들을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크리스천 북클럽이야 말로 이것에 대한 가장 적절한 대안이 아닌가?

 

5. 적용

1) 당신의 신앙 생활은 당신이 출석하는 교회 중심입니까, 아니면 하나님 나라 중심입니까?

2) 하나님 나라 중심의 신앙 생활을 위해서 당신에게 가장 시급히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 "선교적 교회로 가는 길" 북클럽 인도자용 자료모음
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3/09/blog-post_2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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