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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24일 화요일

선교적 교회로 가는 길 (4) - 하나님의 선교를 말하다

 

1. 요약

선교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속에서 이미 일하고 계셨고, 또한 앞으로도 계속 일하실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 무슨 일을 하시는가? 그리고 하나님의 선교를 감당하는 하나님의 백성은 어떠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선교는 하나님의 본질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다. 삼위 일체 하나님은 보내시는 하나님이시다. 아버지는 아들을 세상 속으로, 아버지와 아들은 성령을, 성령은 교회를 세상으로 보내신다. 보내시고 보냄을 받음으로써 하나님의 선교의 개념이 등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는 교회가 미셔널 처치이다.

성경 전체를 통해서 타락한 인류와 창조 세계를 구속하시려는 선교의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다. 창세기 1장에서 11장까지는 창조, 타락, 그리고 구속의 섭리를 보여준다. 창세기 12장에서 요한계시록 22장까지는 구속 계획의 구체적인 실현이다. 특히 창세기 12장 1-3절의 아브라함 언약은 구속의 계획과 구체적 실현 사이의 경첩과 같다. 아브라함을 통해서 열방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인데,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성경의 중요한 사건들이 하나님의 선교를 증거한다. 하나님의 선교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며, 이 세상을 회복시키려는 하나님의 구속적 의미를 담고 있고, 그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다. 하나님의 선교는 단순히 구출이 아니라 회복이기 때문에 “구원”보다는 “구속”이라는 단어가 더 적합하다. 구속이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망가진 자아상이 회복되고, 죄로 인해 신음하는 생태계가 회복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선교에서 무슨 역할을 하는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여러 나라 중에 제사장 나라가 되어 그분을 경배하며 열방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거룩한 백성이 되기 원하셨다. 비록 그들이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은 존재하며, 베드로 사도는 출애굽기 19장 5-6절 말씀을 소아시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택하신 족속이다. 특별히 그들을 “택하신 족속”이라고 부른 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실패를 재현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자신들이야 말로 택함 받을 만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택하심은 특권을 누리는 삶이 아니라 사명을 감당하는 삶으로 이어지고 하나님의 선교에 쓰임 받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는 성도가 왜 택하심을 받았는지, 왜 교회가 지역 사회에 존재하는지, 그리하여 어떻게 열방을 섬길 것인지를 새롭게 발견해야 한다.

둘째로, 교회는 제사장이다. 제사장은 자기 자신이 먼저 예배자이어야 하며 더 나아가 주위 사람들을 예배하는 자들로 변화시켜야 한다. 셋째로, 교회는 거룩한 나라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법을 제대로 지킴으로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넷째로, 교회는 주님의 소유가 된 백성이다. 여기서 소유는 부동산이 아닌 동산의 개념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보호를 기대하며 또한 그분의 뜻대로 움직이는 심플 라이프를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의 사명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덕을 선포하는 것이다. 어둠 속에서 살았던 이들이 하나님을 선포하며, 또한 어둠 속에 살고 있는 자들에게 돌아가 선포하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의 선포는 예배이며, 교회 밖에서의 선포는 선교이다. 교회에서의 찬양이 넘쳐서 세상 속으로 흘러 들어가야 하며, 또한 거기에서 찬양이 또 다시 다른 곳으로 이어져야 한다. 찬양과 선교는 끊임 없이 이어져 진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2. 책에서 한마디

“죄로 인해 총체적 난관에 부딪힌 인류를 구하시고 죄로 물든 창조 세계를 구속하시려는 하나님은 교회를 부르시고 세상에 보내시며 이 일에 동참하게 하신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선교’라는 중요한 개념이 나온다.”

 

3. 성경적 관점에서 보기

출애굽기 19: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19:5 Now if you obey me fully and keep my covenant, then out of all nations you will be my treasured possession. Although the whole earth is mine,

5 On סְגֻלָּה (segullâ, “treasured possession”; GK 6035), see Moshe Greenberg, “Hebrew segûllā: Akkadian sikiltu,” JAOS 71 (1951): 172ff. The basic root of this term is sakālu (“to set aside a thing or a property”). While real property (e.g., real estate) cannot be removed, this property can. This term is used for extremely valuable property; God values his people Israel. 부동산의 경우에는 움직일 수 없지만, 이 소유는 가능합니다. 이 단어는 매우 귀중한 자산에 사용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 이스라엘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Walter C. Kaiser Jr., “Exodus,” in The Expositor’s Bible Commentary: Genesis–Leviticus (Revised Edition), ed. Tremper Longman III and David E. Garland, vol. 1 (Grand Rapids, MI: Zondervan, 2008), 473.

베드로전서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2:9 But you are a chosen people, a royal priesthood, a holy nation, a people belonging to God, that you may declare the praises of him who called you out of darkness into his wonderful light.

이사야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개역개정) 43:21 the people I formed for myself that they may proclaim my praise. (NIV)

2:9 proclaim the virtues Describes the purpose of God choosing Christians as His people. Christians are not only called to bless the world, but to make known the mighty acts of God they have witnessed (compare Gen 12:1–3). Here Peter probably has in mind the resurrection of Christ and the conversion of the believers to whom he writes (compare Acts 2:22–24).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을 그분의 백성으로 선택하신 목적을 설명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축복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목격한 하나님의 강력한 일하심을 알리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여기에서 베드로는 아마도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의 편지를 받는 신자들의 회심을 염두에 두고 있었을 것입니다.

Here Peter is likely drawing on the language and imagery of Isa 43:21. This passage, which is situated in a period of exile—parallel to the experience of the believers living in this world—praises Yahweh for His mighty deeds in redeeming the Israelites during the exodus. Similar to the situation in Isa 43; 1 Pet 2:9 calls the new Israel to praise God for His mighty work of salvation in anticipation of full deliverance from both their literal and physical exile. 이 말씀에서 베드로는 이사야 43장 21절의 언어와 이미지를 사용했을 것입니다. 이 구절은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신자들의 경험과 비슷한 바벨론 포로 기간에 위치한 구절로,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을 구속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전능하신 행위에 대해 그분을 찬양합니다. 이사야 43장의 상황과 유사하게, 베드로전서 2장 9절에서는 새 이스라엘이 문자적 그리고 물리적인 유배로부터 완전한 구원을 기대하며 하나님의 강력한 구원 사역을 찬양하도록 촉구합니다. 

John D. Barry et al., Faithlife Study Bible (Bellingham, WA: Lexham Press, 2012, 2016), 1 Pe 2:9.

 

4. RCB의 관점으로

성경을 전체적으로 보는 안목을 가지는 것은 성도 개인과 교회 전체의 방향을 만들어가는데 있어 너무나 중요하다. 성경 전체는, 결국 타락한 인류와 창조 세계를 구속하시는 선교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주신다. 교회는 왜 존재하는가?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교회는 쓰임을 받는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교회의 본질을 결정 짓는 핵심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실패했음을 강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사명이 그대로 신약의 교회에 이어지고 있음을 강조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교회의 사명은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야 말 것임을 소망 가운데 끊임없이 선포해야 한다. 

장로 교회가 강조하는 선택의 교리는 자칫하면 나의 특권 의식으로 이어지기 쉽다. 그러나 저자는 택하신 족속이라는 의미는 사명을 감당하는 삶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한다. 이것은 성도의 마음을 겸손하게 하는 매우 중요한 통찰이다. 하나님은 성도가 세상을 섬기도록 선택하셨고, 그분을 찬양하도록 하기 위하여 선택하셨다. 선택에 대한 성경적인 이해는, 성도에게 진실한 감사와 열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소유라는 단어는 이 시대에 있어서 철저하게 개인적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소유를 늘리기 위해서 살아간다. 그리고 그 소유는 영원한 것이 되기를 원한다. 그런 맥락에서 하나님께서 교회를 그분의 소유로 삼으셨다는 것은 세상을 완벽하게 거스르는 것이며 죄악 된 세상을 향한 거룩한 선포이다. 성도는 자신의 모든 것 그리고 자신의 존재 자체가 오직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진심으로 고백하는 자들이다. 

출애굽기 19장 5절에서 소유가 동산에 속하는 것임을 설명한 내용이 탁월하다. 성도는 하나님의 뜻을 위해 항상 준비하고 움직이는 존재이다. 현시대의 인류는 온라인으로 오프라인으로 끊임없이 움직인다. 이러한 디지털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것보다 더 적절한 설명이 어디에 있겠는가? 우리는 모든 순간에 하나님을 위하여 그분의 뜻에 따라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교를 통해서 예배의 가치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게 된다. 예배는 단순히 종교적인 갈망을 충족시키는 자리가 아니다. 예배는 단순히 좋은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는 시간도 아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덕”이 선포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배의 성공과 실패는 하나님께서 그 가운데 충만히 드러나며 영광을 받으시는가에 달려 있다. 

그것은 선교도 마찬가지이다. 선교라는 말이 추상적일 수 있겠으나, “교회 밖에서 하나님의 덕이 선포되도록 하는 것이 선교이다” 라는 구체적인 정의를 통해서 더욱 실질적으로 다가온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믿지 않고 대적하는 자리가 하나님의 덕을 선포하고 찬양을 올려드리는 자리가 된다면 그것이 바로 선교이다. 이것을 위해 성도 개인이 그리고 교회가 힘있게 전진해야 하는 것이다. 이보다 더 가슴 설레이고 벅찬 존재의 목적이 어디에 있겠는가?

 

5. 적용

1)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세상 속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당신의 주변에서 만나야 하는 첫번째 대상은 누구입니까? 언제 어떻게 그 사람을 만나고 대화할 수 있겠습니까?

2) 택하신 족속, 제사장, 거룩한 나라, 소유된 백성 중에 가장 마음에 와 닿는 표현은 무엇입니까? 그렇다면 당신의 그 정체성을 실제로 삶 속에서 어떻게 실천하겠습니까?

* "선교적 교회로 가는 길" 북클럽 인도자용 자료모음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3/09/blog-post_28.html 

2023년 10월 21일 토요일

기도하는 엄마들 (MIP) / 2권 6주 "여호와" 말씀 묵상

 

출애굽기 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3:14 God said to Moses, "I AM WHO I AM. This is what you are to say to the Israelites: 'I AM has sent me to you.'" 3:15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 3:15 God also said to Moses, "Say to the Israelites, 'The LORD, the God of your fathers--the God of Abraham, the God of Isaac and the God of Jacob--has sent me to you.' This is my name forever, the name by which I am to be remembered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3:14–15 I AM is the English translation of the first-person singular Hebrew verb meaning “to be.” By describing himself this way, God was affirming that he is the personal, eternal, self-existing, and self-sufficient Creator and sustainer of all. “나는 스스로” 라는 것은 “존재하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1인칭 단수 동사를 영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이렇게 묘사함으로써 자신이 인격적이고, 영원하며, 스스로 존재하시고, 스스로 충족하시는 창조주이시자 모든 것을 지탱하는 분이심을 확언하고 계십니다.

Many claim to believe in a generic “God.” But Moses was to tell the Israelites that he had been sent by the one true God—“the Lord.” He alone is “the God of Abraham, Isaac, and Jacob” (3:16), and he is the Father of our Lord Jesus. He is responsible for all that exists, and he sovereignly directs all things to accomplish his purposes. Though the world is ever-changing, HE IS. 많은 사람들은 일반적인 “하나님”을 믿는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유일하신 참 하나님, 즉 “주님”의 보내심을 받았다고 말해야 했습니다. 그분만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이시며, 우리 주 예수님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분은 존재하는 모든 것을 책임지시며,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모든 것을 주권적으로 지휘하십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지만, 그분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Tony Evans, The Tony Evans Study Bible (Nashville, TN: Holman Bible, 2019), 68.


예레미야 16:19 여호와 나의 힘, 나의 요새, 환난날의 피난처시여 민족들이 땅 끝에서 주께 이르러 말하기를 우리 조상들의 계승한 바는 허망하고 거짓되고 무익한 것뿐이라 16:19 O LORD, my strength and my fortress, my refuge in time of distress, to you the nations will come from the ends of the earth and say, "Our fathers possessed nothing but false gods, worthless idols that did them no good. 16:20 사람이 어찌 신 아닌 것을 자기의 신으로 삼겠나이까 하리이다 16:20 Do men make their own gods? Yes, but they are not gods!" 16:2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보라 이번에 그들에게 내 손과 내 능력을 알려서 그들로 내 이름이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   16:21 "Therefore I will teach them--this time I will teach them my power and might. Then they will know that my name is the LORD.

16:19–20 In contrast to the idolatry of his people (v. 18), Jeremiah himself proclaims the Lord alone as his “refuge.” In addition to the new exodus of the people, Jeremiah anticipates the day when the “nations” also will abandon their worthless idols and come to the Lord (Isa 2:2–4). 예레미야는 동족인 이스라엘 백성의 우상 숭배와는 대조적으로 주님만이 자신의 “피난처”임을 선포합니다. 예레미야는 백성들의 새로운 출애굽과 더불어 “열방”도 그들의 쓸모없는 우상을 버리고 주님께도 돌아올 날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D. A. Carson, ed.,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1323.

 

요한복음 8: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8:58 "I tell you the truth," Jesus answered, "before Abraham was born, I am!"

8:58 before Abraham was, I am. This is a clear reference to Jesus’ eternal preexistence. Since this is an attribute of God alone, this text is a forceful statement of Jesus’ deity. The present tense of the verb suggests the eternal present of God’s eternity. “I am” is also reminiscent of God’s name in Ex. 3:14 (vv. 24, 28 note).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 이것은 예수님의 영원한 선재하심에 대한 분명한 언급입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는 속성이기 때문에, 이 말씀은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강력한 진술입니다. 이 문장에서 동사의 현재형은 하나님의 영원성이 지닌 영원한 현재성을 암시합니다. “내가 있느니라”라는 말씀은, 출애굽기 3장 14절에서의 하나님의 이름을 상기시키는 표현입니다.

R. C. Sproul, ed., The Reformation Stud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2015 Edition) (Orlando, FL: Reformation Trust, 2015), 1872.

8:48–59 The confrontation between Jesus and the Pharisees reaches a climax when the Pharisees attempt to stone Him for claiming to be the preexistent Son of God. The Bible’s witness that Jesus is true God and the only way to heaven receives intense and sometimes virulent opposition today. Pray for those confused or offended by the truth about Jesus, for “God shows His love for us in that while we were still sinners, Christ died for us” (Rm 5:8). • O God, grant true repentance to those whose hearts are turned against You. Amen 예수님과 바리새인의 대결은 자신이 선재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한다는 이유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돌로 치려고 시도하면서 절정에 이르게 됩니다. 예수님이 참 하나님이시며 천국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는 성경의 증언은 오늘날 강렬하고 때로는 악랄한 반대에 부딪힙니다. 예수님에 관한 진리로 인해서 혼란스러워하거나 불쾌해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세요. 하나님, 주님께 등을 돌린 사람들에게 참된 회개를 허락해 주시기 원합니다. 아멘 

Edward A. Engelbrecht, The Lutheran Study Bible (St. Louis, MO: Concordia Publishing House, 2009), 1798.

 

출애굽기 34:5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에 강림하사 그와 함께 거기 서서 여호와의 이름을 선포하실새 34:5 Then the LORD came down in the cloud and stood there with him and proclaimed his name, the LORD. 34:6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개역개정) 34:6 And he passed in front of Moses, proclaiming, "The LORD, the LORD, the compassionate and gracious God, slow to anger, abounding in love and faithfulness, (NIV)

34:6 The words merciful and gracious convey the idea of “overwhelmingly gracious.” long-suffering: The idea of the Hebrew idiom is that God is very slow to anger. In our idiom, we would say He has “a very long fuse.” The Hebrew word for goodness means “loyal love”; the word for truth means “faithfulness,” “truth,” and “constancy.” When the Gospel of John introduces Jesus as the Word, there is celebration of the fact that He is “full of grace and truth” (John 1:14, 17). In this way John echoes the words of this passage. To see Jesus is to see the Father! (John 1:18). 여호와께서 “자비롭고 은혜로우시다” 라는 표현은 그분이 “압도적으로 은혜로우시다”는 개념을 전달합니다. 히브리어 관용구의 개념은 하나님은 노하기를 매우 더디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관용구로는 그분은 “아주 오래가는 퓨즈”를 갖고 계신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인자”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충성스러운 사랑’을 의미합니다. “진실” 라는 단어는 “신실함”, “진리”, “불변성”을 의미합니다. 요한복음이 예수님을 “말씀”으로 소개할 때에, 그분이 “은혜와 진리로 충만하신 분”이라는 사실에 대한 찬사가 나옵니다. 이런 식으로 요한은 이 구절의 말씀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보는 것이 곧 아버지를 보는 것입니다.

Earl D. Radmacher, Ronald Barclay Allen, and H. Wayne House, The Nelson Study Bible: New King James Version (Nashville: T. Nelson Publishers, 1997), Ex 34:6.

* 기도하는 엄마들 (MIP) 말씀 묵상 모음
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3/10/mip.html

독서 묵상 (88) 집중의 뇌과학 - 창조된 인간은 언어 안에서 자라갑니다

  저자는 나이가 들어도 다양한 언어의 적극적인 사용을 통해서 인지 능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성인이 되어도 배움을 절대로 그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죄로 인해서 많은 부분이 망가졌지만 여전히 인간은 탁월한 존재입니다. 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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