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를 하면 설교를 준비하는 것과는 또 다른 감각을 경험합니다. 물론 설교를 준비하는 것도 제 자신을 대상으로 놓고 준비를 하는 것이지만, 큐티는 훨씬 더 개인적입니다. 그리고 더 마음에 깊이 와 닿습니다.
가장 중요하게 발견한 것은, 이 말씀 자체가 말세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위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 그리고 말세의 때는 시간의 중첩이 일어납니다. 지금이 마지막 때라는 것이 더욱 실감나게 느껴지고, 또한 언젠가 이 시간이 곧 반드시 끝난다는 그 절박함이 깊이 다가옵니다.
그리고 과거의 죄악들이 말세의 시대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지금 시대가 마치 대단히 발전한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AI가 등장하고 과거에 누리지 못했던 기술과 부를 누립니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과 그 본질은 동일합니다. 우상 숭배, 음행, 주를 시험함, 원망, 이 모든 것이 저의 평생에 경계해야 할 것들입니다.
'어떤 사람들과 같으니' 라는 부분이 처음으로 눈에 들어왔습니다. 여러번 반복되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어두운 시대를 살아갔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을 버린 것은 아닙니다. 분명히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고 그 길을 걷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의 시선을 어디에 둘 것인가를 생각했습니다. 인생은 짧기 때문에, 믿음으로 탁월하게 살았던 사람들에게 더 초점을 맞추고 싶습니다. 칼빈과 루이스 같은 사람이 저의 롤 모델입니다. 그분들의 발걸음을 쫓아 가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합니다. 열심히 교회를 섬기며 목회를 해야 하지만, 그러나 정신과 삶의 에너지를 가장 긍정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달려가야겠습니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지만 이번에 새롭게 발견한 것은, 13절 마지막에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라는 것입니다. 저는 저도 모르게 은연 중에, '너희로 능히 피하게 하시느니라'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방법은 시험을 피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시험을 견디게 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피할 길을 내신다고 말씀하시지만, 그러한 시험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 듯 합니다.
저의 삶은 평생 견디는 것임을 새롭게 깨달았습니다. 한편으로는 그 무게가 너무 무겁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주님을 더 의지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스터디 바이블을 보니 '그 인내는 그 자체로 보상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라고 설명합니다. 원래 이전에도 인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다시 보니, 인내는 성도의 본질입니다. 주여, 저의 평생에 주님을 의지하여 인내하도록 저를 도우소서.
* 네비암송 (03)
당신이 "감당할 수 있는 시험만" 허락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 / 승리의 확신)
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0/12/10-13.html
당신이 "감당할 수 있는 시험만" 허락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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