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약
사람들은 난감한 문제들을
만날 때 혼돈을 경험한다. 제대로 된 대답을 얻지 못하면, 그들의
신앙이 약해지거나 심지어 영혼이 침체에 빠질 수 있다. 성경의 난제들과 씨름해야 하는 것은, 사고의 능력을 연마하고 영혼을 풍성하게 만들며, 하나님의 신비한
역사를 이해하는 환희를 누리기 위해서이다.
우리를 곤란하게 하는
문제의 대답은 오직 성경에서만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성경은 무오한 책인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세가지 입장은, 교회의 말씀, 나의 영, 성경 말씀이 이 세가지 중의 하나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성경 말씀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고 있다.
성령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증거를 우리 마음에 주신다. 또한 예수님 자신이 성경의 영감과 권위를 믿으셨음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은 구약의 이야기를 역사적 사실로 대하였으며, 그러므로
성경의 권위를 부인하는 것은, 예수님의 주 되심을 부인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알
수 없는 것을 직접 밝히 드러내신다. 이것이 계시이다. 성경의
중요한 역사적인 사건들은, 설명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그 의미가 드러난다. 또한 계시는 점진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종합적이고 통합적이며 최종적인
것을 향해 움직인다. 또한 성령께서는 인간 저자들이 기록할 때 의도한 바가 하나님이 의도하신 바와 일치하도록
역사하셨다. 이것이 축자 영감, 완전 영감의 교리이다. 즉, 성경 말씀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뜻이다.
성경은 제한적으로 무오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무오하다. 해석하는 사람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되고, 성경의 원문과 당시 문화와 소통의 방식을 감안한 적절한 해석이 있을 때에, 성경이 주장해온 모든 것은 전적으로 사실로 드러나게 될 것이다.
구약과 신약 모두를 포함한 성경 전체는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 여기서 하나님의 감동이라는 것은, 원어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호흡이다. 즉, 성경은 하나님의 호흡을 근원으로 하여 생겨난 결과물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을 인간의 언어와 경험에 맞추시기 때문에, 성경의 비유적 표현은 무오성에 반하지 않는다. 문법적 관심을 따르지 않았어도, 얼마든지 사실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무오성에 반하지 않는다. 성경에 대한 해석이 다른 것은 성경의 문제가 아니라, 해석자의 문제이다.
성경은 완벽한 이해를 보장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성경의 정확성은 성경 저자들의 기록 당시의 기준으로 판단되어야 한다. 같은 사건을 다른 저자가 서로 다른 관점과 목적을 기록한 경우에 차이가 일어날 수 있는데, 이것은 부분적 묘사의 특징이기 때문에 무오성에 반하지 않는다. 지금 당장 모순되어 보이는 사건이나 자료를 조화시킬 수 없다는 것은, 성경의 권위를 인간의 지략 아래 두려는 것이므로 이것 역시 무오성에 반하지 않는다. 결국 외견상의 모순들은 해결될 것이다.
2. 책에서 한마디
“간단히 말해, 성경의 영감과 권위는 우리의 신앙이 지어진 기초다. 이것 없이는
불확실과 의심, 인간의 추측, 곧 흑암 속에서 절망적으로
더듬거리게 될 뿐이다.”
3. 성경적 관점에서
보기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자들에게는 위로와 양식을 주는 것이지만, 예수 그리스도께 헌신하지 않은 자들에게는 심판과 처형의 도구입니다. 히브리서의
일부 독자들은 그리스도께 속한 척하며 형식만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지적으로는 어느 정도 설득되었지만, 내면적으로는 헌신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의 얕은 믿음과 심지어 거짓된 의도까지도 드러낼 것입니다.
John F. MacArthur Jr., The MacArthur Study
Bible: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ashville, TN: Thomas
Nelson Publishers, 2006), Heb 4:12.
살전 2: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바울은 두 번째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사도들의 메시지를 메시지를 단순한 인간의 철학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자체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New Living
Translation Study Bible (Carol Stream, IL: Tyndale House
Publishers, Inc., 2008), 1 Th 2:13.
4. RCB의 관점으로
저자는 보수적인 신학의 입장에서 성경의 무오성에 대해서 논증하고 있다. 이번 챕터에 대해서 탁월한 점은, 성경 자체의 논증을 통해서 성경의
무오성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예수님께서 성경의 영감과 권위를 믿으셨음을 설명하면서, 성경의 무오성을 믿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동일한 것임을 설명한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성경에 대한 믿음을 연결함으로써, 성경에
대한 성도의 태도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준다.
또한 저자는 성경이 무오하다는 것에 대한 다양한 반론들을 염두에 두고, 차분하게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서, 성경의 정확성이라는 것은 성경 저자들의 당시 기준으로 판단되어야 한다는 것은, 21세기의 엄격한 과학적 잣대를 성경에 들이대는 것이 현명하지 못하다는 것을 잘 설명한다.
또한
지금 현재의 인간의 이해 수준을 가지고 성경을 판단하는 것은, 성경의 권위를 인간 아래에 두는 것이라고
논증하는 것이 중요한 부분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성경의 판단자로 존재하려 할 때에, 그것은 결국 자신의 인성을 최고의 권위로 두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언젠가는 모순처럼 보이는 성경의 어떤 부분들이, 반드시 그 모순이 해결될 것을 믿고 희망의 내용으로
챕터를 마무리한다.
저자의 탁월한 저술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것은, 저자의
설명은 누군가에게는 단지 ‘믿음’으로 비췰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교회나, 나 자신이나, 성경 말씀에서 어디에서 나오느냐에 대한 저자의 입장은, 사실 믿음의
문제이다. 이것 자체를 증명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저자의
저술은 충분히 논리적이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성경에 근거한 믿음을 통해 빚어진 결과론적인 입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내용의 부분 부분들 속에서, 일종의 순환적 논리를 발견한다. 보수적인 신학을 공부하고 성경을 무오하다고 믿는 나의 입장에서는 저자의 모든 내용이 그대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성경이 무오한 것은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면, 사실 설득력 있는 논증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이미 투철한 신앙을 가진 이들에게는 그것이 크게 와 닿지만,
성경에 대하여 의심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더 불신을 더할 뿐이다. 그러므로 차라리, 믿지 않는 이들에게 설득력 있는 논증을 하기 위해서는, 성경의 예언의
성취에 대한 확률, 혹은 성경이 필사의 과정을 거치면서도 거의 완벽하게 보전된 그 증거 등을 제시하는게
훨씬 유익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의 무오성을 믿는 것은 전적으로 성령님의 역사이다. 아무리 탁월한 증거를 들이밀어도, 증거 자체가 힘이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성령께서 죄인을 살리시고 하나님을 만나게 하시며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그 가치를 알아보게 하신다.
히브리서 4장 12절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마음을
향하고 우리의 영혼을 움직이신다. 복 있는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한다.
이것은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내적 증거이다. 기독교의 긴 역사 속에서 수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주의 말씀 안에서 신령한 기쁨, 하늘의 기쁨을 발견했다. 이것이야
말로, 이미 믿은 이들에게 주어진 성경의 무오성에 대한 가장 강력한 증거가 아닐까?
5. 적용
1) 당신의
주변에 성경의 무오성에 대해서 의심을 품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 사람이 가진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입니까?
2) 당신이 이 챕터에서 배운 가장 중요한 한가지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순환논증? 새로 배웁니다. 그런것을 보고 들을때 무언가 답답함을 느꼈는대 목사님의 대응 제안이 동감되며 감사드립니다.
답글삭제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하나님께서 언제나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한걸음 더 다가가도록 인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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