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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7월 30일 수요일

네비큐티 (03) 당신이 "감당할 수 있는 시험만" 허락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 / 승리의 확신)

 


큐티를 하면 설교를 준비하는 것과는 또 다른 감각을 경험합니다. 물론 설교를 준비하는 것도 제 자신을 대상으로 놓고 준비를 하는 것이지만, 큐티는 훨씬 더 개인적입니다. 그리고 더 마음에 깊이 와 닿습니다. 

가장 중요하게 발견한 것은, 이 말씀 자체가 말세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위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 그리고 말세의 때는 시간의 중첩이 일어납니다. 지금이 마지막 때라는 것이 더욱 실감나게 느껴지고, 또한 언젠가 이 시간이 곧 반드시 끝난다는 그 절박함이 깊이 다가옵니다. 

그리고 과거의 죄악들이 말세의 시대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지금 시대가 마치 대단히 발전한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AI가 등장하고 과거에 누리지 못했던 기술과 부를 누립니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과 그 본질은 동일합니다. 우상 숭배, 음행, 주를 시험함, 원망, 이 모든 것이 저의 평생에 경계해야 할 것들입니다. 

'어떤 사람들과 같으니' 라는 부분이 처음으로 눈에 들어왔습니다. 여러번 반복되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어두운 시대를 살아갔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을 버린 것은 아닙니다. 분명히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고 그 길을 걷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의 시선을 어디에 둘 것인가를 생각했습니다. 인생은 짧기 때문에, 믿음으로 탁월하게 살았던 사람들에게 더 초점을 맞추고 싶습니다. 칼빈과 루이스 같은 사람이 저의 롤 모델입니다. 그분들의 발걸음을 쫓아 가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합니다. 열심히 교회를 섬기며 목회를 해야 하지만, 그러나 정신과 삶의 에너지를 가장 긍정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달려가야겠습니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지만 이번에 새롭게 발견한 것은, 13절 마지막에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라는 것입니다. 저는 저도 모르게 은연 중에, '너희로 능히 피하게 하시느니라'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방법은 시험을 피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시험을 견디게 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피할 길을 내신다고 말씀하시지만, 그러한 시험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 듯 합니다. 

저의 삶은 평생 견디는 것임을 새롭게 깨달았습니다. 한편으로는 그 무게가 너무 무겁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주님을 더 의지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스터디 바이블을 보니 '그 인내는 그 자체로 보상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라고 설명합니다. 원래 이전에도 인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다시 보니, 인내는 성도의 본질입니다. 주여, 저의 평생에 주님을 의지하여 인내하도록 저를 도우소서.

* 네비암송 (03)
당신이 "감당할 수 있는 시험만" 허락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 / 승리의 확신)

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0/12/10-13.html

 

2025년 7월 23일 수요일

"네비큐티" 전체 모음


"네비게이토 암송 60구절 말씀 & 해석 & 기도" 전체 모음
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2/10/60.html

* 네비큐티 (01)
오직 예수 = 영원한 생명 (요한1서 5장 9-12절 / 구원의 확신)

* 네비큐티 (02)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면,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요한복음 16장 23-24절 / 기도 응답의 확신)

* 네비큐티 (03)
당신이 "감당할 수 있는 시험만" 허락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 / 승리의 확신)
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5/07/03-10-13.html

네비큐티 (02)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면,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요한복음 16장 23-24절 / 기도 응답의 확신)

  


이번에 말씀 묵상하면서 정말 좋았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참된 기쁨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암송 구절은 23절과 24절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지만, 주어진 문맥은 기쁨을 말씀하시는 문맥 속에 기도가 놓여져 있습니다. 바로 이 부분이 핵심입니다. 

19절에서 24절까지 흐름을 보면, 진실로 진실로 라는 말씀이 두번 나오면서 사고의 큰 구조를 만들어 주십니다. 근심이 기쁨으로 바뀌고,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는 그 기쁨을 심지어 빼앗을 자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맥락 안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더 확장하자면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는 구하고 응답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쁨은 궁극적으로 넘치게 됩니다. 

말씀을 묵상하는데 마음이 행복해졌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근심걱정이 없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목회로 교회를 섬기면서 교회에 대한 염려가 더 큽니다. 저의 개인적인 문제는 오히려 작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목회자의 바램은 교회가 잘 되기를 원하는 것이고 더 풍성해 지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도 모르게 저의 마음에 근심이 들어오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성경은 제가 기뻐해야 하는 이유를 분명히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 안에 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상에 고난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뛰어 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적인 실제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그분의 공로 덕분에 우리는 마음껏 기도하고 응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스터디 바이블은 여러모로 도움이 많이 됩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살짝 아쉽다고 느껴졌습니다. 제가 많은 책들을 살펴보고 고른 내용이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남습니다. 예수님 덕분에 혹은 예수님 때문에 우리의 기도가 가능하다는 부분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아서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기쁨을 미래적인 것으로만 한정 짓는 것도 아쉬웠습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신 기쁨을 충만히 누리고 살고 싶습니다. 어려움이 많아도 근본적인 기쁨으로 이겨내기 원하고 그것으로 인해 만족하기 원합니다. 주님께 기도하고 응답 받는 기쁨을 충만하게 누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이것이야 말로, 성도가 삶을 살아가는 가장 큰 원동력이 아닌가 싶습니다. 진리 가운데 위로하시고 저에게 기쁨과 용기를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 네비암송 (02)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면,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요한복음 16장 23-24절 / 기도 응답의 확신)
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0/11/16-23-24.html

2025년 7월 16일 수요일

네비큐티 (01) 오직 예수 = 영원한 생명 (요한1서 5장 9-12절 / 구원의 확신)

 


말씀을 묵상한다는 것은 가슴벅찬 일입니다. 위에서 보시는 것처럼 저는 악필이기 때문에 주로 디지털 도구를 사용해서 묵상을 했습니다. 그런데 성도님들을 위해서 준비한 교안에 제가 직접 큐티를 하면서, 손으로 적으며 표시하며 연결하고 정리하는 것은, 디지털로 정리하는 것보다 훨씬 더 생동감 있고 생각을 확장시켜주고 마음에 많이 남는다는 것을 경험합니다. 

이번에 말씀을 묵상하면서 여러 부분이 좋았지만, 하나님의 간절한 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 안에 영생이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분명히 알려주십니다. 또한 성경은 끊임없이 그것을 반복하고 그것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불타는 마음을 봅니다. 

사람의 증거도 법정에서 믿는데, 하나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논리적인 모순인가를 새롭게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많이 설교를 하고 또 성도님들에게 가르쳤지만, 하나님의 말씀의 그 신적인 무게에 대해서 여전히 제가 충분히 깨닫지 못했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했습니다. 

내 생각과 삶의 궁극적인 권위를 오직 하나님께 두는 것은 너무나 절대적입니다. 온전히 말씀에 나 자신을 의탁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는 너무나 큰 잘못이라는 것도 처음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였습니다. 또한 아들을 믿는 것을 마지막에 아들을 가지는 것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으로 바꾸어 표현한 것이 너무나 감동적이었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가진 자이며, 예수님을 모신 자입니다. 

묵상 후에 스터디 바이블과 비교하면서도 참 좋았습니다. 특별히 영생을 기다릴 필요 없이 믿음으로 이미 가졌다라는 설명은, 이 본문이 구원의 확신 없이 여전히 신앙 생활하는 연약한 성도님들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 구절인가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합니다. 

영생은 구원 받는 순간에 시작되지만, 그러나 성장해야 하며,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과 친밀한 관계가 중요하다는 설명도 참 좋았습니다. 교리 문답 설교를 하면서 예수님에 대해서 끊임없이 공부하고 묵상하는 것이 제 자신에게 왜 그렇게 유익이 되었는지를 이 말씀과 해설을 통해서 더 분명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스펄전 목사님의 분명한 표현도 참 좋았습니다. "이것은 추론이나 논리적 결론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의 문제입니다" 읽기만 해도 마음이 새로워집니다. 인간의 추론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지만, 그것은 절대로 궁극적인 권위가 될 수 없음을 감격하고 또 감사하게 됩니다. 독생자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을 얻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 네비암송 (01)
오직 예수 = 영원한 생명 (요한1서 5장 11-12절 / 구원의 확신)
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0/11/1-5-11-12.html

2025년 6월 23일 월요일

터프 토픽스 (2) - 열린 유신론이란 무엇일까?

 



1. 요약

열린 유신론은,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에 대해서 절대적으로 확신하지 못하며 알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 이론은 하나님께서 미래의 모든 사건을 다 아신다는 것과 불변성과 영원성을 부정하는데, 이러한 전통적인 견해는 성경이 아닌 그리스 철학으로 부터 왔다고 믿는다.

열린 유신론에 따르면, 하나님은 사건의 전개를 인식하고 그 과정 속에서 반응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이 미래에 대한 모든 세부 사항을 다 알고 계시다면 주고 받는 관계를 통한 인간과의 사랑이 불가능하다고 본다. 어떤 이들은 이러한 열린 유신론을, 하나님도 인간처럼 과정 가운데 존재한다는 과정 신학과 유사하다고도 본다

열린 유신론자들은 선택 교리에 대해서는 아르미니우스주의를 지지함에도 불구하고, 아르미니우스가 추구한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지식조차 인정하지 않는다

또한 열린 유신론자들은 하나님이 전지하시다고 말은 하지만, 미래가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이기에 대상이 존재할 수 없다는 이유로 하나님의 예지는 거부한다. 이들은 미래의 사건이 예정되어있을 경우 분명히 일어난다는 명제 때문에 인간의 자유의지는 상실하게 된다고 받아들인다. 또한 인간이 계획을 했더라도 바꿀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미래를 알 수 없다고 주장한다.

열린 유신론은 이사야 41장에서 48장까지의 말씀을 통해 반증할 수 있다. 여기에서 하나님께서는 미래에 대한 철저한 예지와, 일어날 모든 일을 세밀하게 예측하신다. 그리고 이것이야 말로 참된 신임을 증명하는 조건임을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바벨론의 멸망과 고레스에 의한 귀환을 미리 알고 계셨다

이러한 결과를 위해서는 수 많은 사람들의 자발적이고 자유로운 선택이 얽혀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최종적인 결과를 그분의 능력으로 실제로 이루셨다. 하나님께서 앞으로 이루실 사건들을 미리 보여주신 이유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감사하도록 하시며 자신이 역사를 주관하심을 분명히 드러내시기 위해서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예지하심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자발적인 선택이 도덕적 책임을 벗어날 수 없다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2. 책에서 한마디

하나님이 좁게는 어떤 개인의 삶을, 넓게는 이 세상을 빚어가시는 방법에 대해 도전하는 것은 선호나 관점의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이것은 하나님이 하나님 되신 것에 대한 거부, 역할 전도, 즉 피조물이 창조주를 자신의 계획을 수행할 종으로 만들려는 시도다

 

3. 성경적 관점에서 보기

44:6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7 내가 영원한 백성을 세운 이후로 나처럼 외치며 알리며 나에게 설명할 자가 누구냐 있거든 될 일과 장차 올 일을 그들에게 알릴지어다 8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겁내지 말라 내가 예로부터 너희에게 듣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알리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나의 증인이라 나 외에 신이 있겠느냐 과연 반석은 없나니 다른 신이 있음을 내가 알지 못하노라

우상에 대한 긴 논쟁은, 하나님의 유일성에 대한 확신으로 시작됩니다.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사용되었습니다.

Tremper Longman III, “Isaiah,” in CSB Study Bible: Notes, ed. Edwin A. Blum and Trevin Wax (Nashville, TN: Holman Bible Publishers, 2017), 1106.

오직 여호와 한분만이 진정한 신이시며 그러므로 그분은 자신의 약속을 모두 지키실 있습니다.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1320.

 

4. RCB 관점으

전통적이지 않은 어떤 신학적인 이론을 접하는 것은 당황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것의 유익은, 이미 알고 믿고 있는 성경적인 하나님에 대한 이해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열린 유신론은, 여호와 하나님을 제한하는 것이다. 그리고 좀 더 깊이 들어가보면, 하나님을 인간과 동일한 수준으로 격하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이다. 그분이 미래를 확정적으로 예지하지 못한다면, 어찌 그분을 하나님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유신론자들의 하나님에 대한 개념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연약하고 오류 투성이인, 그저 인간보다 좀 더 탁월한 수준의 신의 개념으로 덮여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한계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언급하지는 않지만 열린 유신론의 결정적인 오류는, 미래를 예지하지 못하는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미래를 예지하시지 못한다면, 어떻게 그분이 수천년에 걸쳐서 자신의 약속을 이루실 수 있겠는가? 그리고 어떻게 그 약속 대로 자신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시고 죄인의 구원을 이루실 수 있었겠는가? 인간의 입장에서는 여러 철학적인 고찰을 통해 열린 유신론을 주장할 수 있겠으나, 하나님은 그들을 비웃으시며 (2:4) 자신의 위대하심을 역사 속에서 이미 드러내셨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 의지를 아래의 표처럼 제안하는 바이다. 이 표의 핵심은, 하나님의 주권은 인간의 자유 의지를 품고 그 우위에 있는데, 그것은 그 주권을 행하시는 바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주권은 인간의 자유 의지의 성질을 보전하되 완전히 다스리신다.


시간적인 측면에서, 하나님은 시간의 창조자로서 영원하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전체 시간을 미리 아시고 다스리시며 그들의 운명을 또한 결정하셨다. 시간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에게는 모든 것이 현재이며, 그러므로 인간의 미래가 확정되지 않았으니 그분이 미래를 알 수 없다는 것은 논리적인 모순이다

반면 인간의 관점에서는 현재의 시간만 누릴 수 있을 뿐이며, 동시에 미래와 현재 그리고 과거 속에서 완전한 자유 의지를 사용한다. 또한 인간의 자유의지는 자신의 입장에서는 온전히 자유하지만,  전체의 측면에서는 그의 의지와 체의 시간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 아래 놓여 있다.

이 표가 보여주는 것은 부정적인 면은 다음과 같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한다. 이것이 죄인에게 하나님의 구원이 전적으로 필요한 이유이다. 반면 긍정적인 면에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예정하셨고 그분의 구원의 계획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이루신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주권의 극치는 확정된 미래,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다. 성령께서 거듭나게 하신자는 이러한 하나님의 주권과 그분의 일하심의 놀라움을 깨닫게 되며, 하나님의 계획의 성취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절대적인 안정감과 흔들리지 않는 미래에 대한 소망을 얻게 된다.

결론적으로 성도는 한 없이 자유롭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자유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자유 의지를 사용하여 그분의 선하신 뜻을 이루신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논리적으로 납득하고 이해하고 믿는 우리는 오직 그분께만 영광을 돌린다.

 

5. 적용

1) 만약 당신 주변에 열린 유신론을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습니까?

2) 당신은 저자가 이야기하는 이사야에 대한 설명을 통해서 어떤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까?

 

* 추가적으로 읽어볼 자료

- 일반적인 심리학적 관점에서도 미래의 확정성은 인생의 의미를 결정짓는 요소라는 측면에서

프랭클에 따르면 어떤 환경에 처하든 미래를 분명히 볼 수 있어야 한다.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데도 명확한 미래가 아주 중요하다. 미래의 나를 위협하는 가장 심각한 요인은, 자유의 상실이 아니라 목적과 의미의 부재다. 프랭클이 전하는 이야기는 목적과 의미의 부재가 얼마나 치명적인 위협이 되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목적을 잃으면 현재의 삶은 죽은 삶이다.

퓨처 셀프 | 벤저민 하디, 최은아 저

- 하나님의 시간을 인간의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것 자체가 오해라는 측면에서

하나님이 시간에 매여 살지 않으신다는 것은 거의 확실합니다. 하나님의 삶은 연속되는 순간들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오늘 밤 10 30분에 100만 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기도한다 해도, 하나님은 우리가 ‘10 30분’이라고 부르는 짧은 순간에 그 모든 기도를 들으실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10 30분—그리고 태초 이래의 모든 순간—은 언제나 ‘현재’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께는 불길에 휩싸여 추락하는 비행기 속에서 조종사가 드리는 그 찰나의 기도를 들으실 여유가 영원무궁히 있는 것입니다.

순전한 기독교 | C. S. 루이스, 이종태, 장경철 저

-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어떤 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 일을 이루시는 분이라는 측면에서

우리가 잘되거나 다른 사람의 일이 잘될 때에는 그냥 지나치지 말고, 반드시 찬양과 감사를 하나님께 드려서 거기에 하나님의 손길이 있음을 우리가 깨닫고 인정한다는 것을 증거해야 마땅할 것이다

기독교강요 () - 1559년 최종판 | 장 칼뱅, 원광연 저

성도들의 의지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감동을 받으므로 그들이 간절히 원하게 되어 그 일을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이요, 그들이 그렇게 원하게 되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기 때문에 그들이 그렇게 원하게 되는 것이다.

기독교강요 () - 1559년 최종판 | 장 칼뱅, 원광연 저

2025년 5월 26일 월요일

터프 토픽스 (1) - 성경은 무오한 책일까?

 

1. 요약

사람들은 난감한 문제들을 만날 때 혼돈을 경험한다. 제대로 된 대답을 얻지 못하면, 그들의 신앙이 약해지거나 심지어 영혼이 침체에 빠질 수 있다. 성경의 난제들과 씨름해야 하는 것은, 사고의 능력을 연마하고 영혼을 풍성하게 만들며, 하나님의 신비한 역사를 이해하는 환희를 누리기 위해서이다.

우리를 곤란하게 하는 문제의 대답은 오직 성경에서만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성경은 무오한 책인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세가지 입장은, 교회의 말씀, 나의 영, 성경 말씀이 이 세가지 중의 하나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성경 말씀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고 있다.

성령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증거를 우리 마음에 주신다. 또한 예수님 자신이 성경의 영감과 권위를 믿으셨음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은 구약의 이야기를 역사적 사실로 대하였으며, 그러므로 성경의 권위를 부인하는 것은, 예수님의 주 되심을 부인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알 수 없는 것을 직접 밝히 드러내신다. 이것이 계시이다. 성경의 중요한 역사적인 사건들은, 설명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그 의미가 드러난다. 또한 계시는 점진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종합적이고 통합적이며 최종적인 것을 향해 움직인다. 또한 성령께서는 인간 저자들이 기록할 때 의도한 바가 하나님이 의도하신 바와 일치하도록 역사하셨다. 이것이 축자 영감, 완전 영감의 교리이다. , 성경 말씀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뜻이다.

성경은 제한적으로 무오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무오하다. 해석하는 사람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되고, 성경의 원문과 당시 문화와 소통의 방식을 감안한 적절한 해석이 있을 때에, 성경이 주장해온 모든 것은 전적으로 사실로 드러나게 될 것이다.

구약과 신약 모두를 포함한 성경 전체는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 여기서 하나님의 감동이라는 것은, 원어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호흡이다. , 성경은 하나님의 호흡을 근원으로 하여 생겨난 결과물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을 인간의 언어와 경험에 맞추시기 때문에, 성경의 비유적 표현은 무오성에 반하지 않는다. 문법적 관심을 따르지 않았어도, 얼마든지 사실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무오성에 반하지 않는다. 성경에 대한 해석이 다른 것은 성경의 문제가 아니라, 해석자의 문제이다

성경은 완벽한 이해를 보장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성경의 정확성은 성경 저자들의 기록 당시의 기준으로 판단되어야 한다. 같은 사건을 다른 저자가 서로 다른 관점과 목적을 기록한 경우에 차이가 일어날 수 있는데, 이것은 부분적 묘사의 특징이기 때문에 무오성에 반하지 않는다지금 당장 모순되어 보이는 사건이나 자료를 조화시킬 수 없다는 것은, 성경의 권위를 인간의 지략 아래 두려는 것이므로 이것 역시 무오성에 반하지 않는다. 결국 외견상의 모순들은 해결될 것이다.  

 

2. 책에서 한마디

간단히 말해, 성경의 영감과 권위는 우리의 신앙이 지어진 기초다. 이것 없이는 불확실과 의심, 인간의 추측, 곧 흑암 속에서 절망적으로 더듬거리게 될 뿐이다.”

 

3. 성경적 관점에서 보기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자들에게는 위로와 양식을 주는 것이지만, 예수 그리스도께 헌신하지 않은 자들에게는 심판과 처형의 도구입니다. 히브리서의 일부 독자들은 그리스도께 속한 척하며 형식만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지적으로는 어느 정도 설득되었지만, 내면적으로는 헌신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의 얕은 믿음과 심지어 거짓된 의도까지도 드러낼 것입니다.

John F. MacArthur Jr., The MacArthur Study Bible: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ashville, TN: Thomas Nelson Publishers, 2006), Heb 4:12.

살전 2: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바울은 두 번째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사도들의 메시지를 메시지를 단순한 인간의 철학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자체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New Living Translation Study Bible (Carol Stream, IL: Tyndale House Publishers, Inc., 2008), 1 Th 2:13.

 

4. RCB 관점으

저자는 보수적인 신학의 입장에서 성경의 무오성에 대해서 논증하고 있다. 이번 챕터에 대해서 탁월한 점은, 성경 자체의 논증을 통해서 성경의 무오성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예수님께서 성경의 영감과 권위를 믿으셨음을 설명하면서, 성경의 무오성을 믿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동일한 것임을 설명한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성경에 대한 믿음을 연결함으로써, 성경에 대한 성도의 태도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준다.

또한 저자는 성경이 무오하다는 것에 대한 다양한 반론들을 염두에 두고, 차분하게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서, 성경의 정확성이라는 것은 성경 저자들의 당시 기준으로 판단되어야 한다는 것은, 21세기의 엄격한 과학적 잣대를 성경에 들이대는 것이 현명하지 못하다는 것을 잘 설명한다

또한 지금 현재의 인간의 이해 수준을 가지고 성경을 판단하는 것은, 성경의 권위를 인간 아래에 두는 것이라고 논증하는 것이 중요한 부분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성경의 판단자로 존재하려 할 때에, 그것은 결국 자신의 인성을 최고의 권위로 두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언젠가는 모순처럼 보이는 성경의 어떤 부분들이, 반드시 그 모순이 해결될 것을 믿고 희망의 내용으로 챕터를 마무리한다.

저자의 탁월한 저술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것은, 저자의 설명은 누군가에게는 단지 믿음으로 비췰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교회나, 나 자신이나, 성경 말씀에서 어디에서 나오느냐에 대한 저자의 입장은, 사실 믿음의 문제이다. 이것 자체를 증명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저자의 저술은 충분히 논리적이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성경에 근거한 믿음을 통해 빚어진 결과론적인 입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내용의 부분 부분들 속에서, 일종의 순환적 논리를 발견한다. 보수적인 신학을 공부하고 성경을 무오하다고 믿는 나의 입장에서는 저자의 모든 내용이 그대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성경이 무오한 것은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면, 사실 설득력 있는 논증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이미 투철한 신앙을 가진 이들에게는 그것이 크게 와 닿지만, 성경에 대하여 의심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더 불신을 더할 뿐이다. 그러므로 차라리, 믿지 않는 이들에게 설득력 있는 논증을 하기 위해서는, 성경의 예언의 성취에 대한 확률, 혹은 성경이 필사의 과정을 거치면서도 거의 완벽하게 보전된 그 증거 등을 제시하는게 훨씬 유익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의 무오성을 믿는 것은 전적으로 성령님의 역사이다. 아무리 탁월한 증거를 들이밀어도, 증거 자체가 힘이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성령께서 죄인을 살리시고 하나님을 만나게 하시며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그 가치를 알아보게 하신다

히브리서 4장 12절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마음을 향하고 우리의 영혼을 움직이신다. 복 있는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한다. 이것은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내적 증거이다. 기독교의 긴 역사 속에서 수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주의 말씀 안에서 신령한 기쁨, 하늘의 기쁨을 발견했다. 이것이야 말로, 이미 믿은 이들에게 주어진 성경의 무오성에 대한 가장 강력한 증거가 아닐까?

 

5. 적용

1) 당신의 주변에 성경의 무오성에 대해서 의심을 품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 사람이 가진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입니까?

2) 당신이 이 챕터에서 배운 가장 중요한 한가지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2025년 5월 23일 금요일

Christian Book Club Simple Guide (2) - What Should You Prepare Before the Meeting?

* Preparing for a Christian Book Club 

In the previous article, we explored the definition of a Christian book club and the reasons why one should participate. Now, it's time to actually delve into the book club experience. A crucial question arises here: How exactly should one prepare for a book club, and how should it be run? 

Having led book clubs for a long time, I have developed the capacity to effectively guide meetings. I have consistently led book clubs by clearly outlining what participants need to prepare. 

Of course, some people may gain various benefits just by reading the book once. However, if you prepare for the meeting as I guide you, you will gain astonishing insights beyond your expectations in the actual meeting. First, in this article, we will discuss the preparation for book club participants. 

* Summary 

First, participants in a Christian book club should prepare a simple summary. A summary involves condensing the content and flow of the text as much as possible. Refer to the syllabus to read the assigned portion for the week, and then summarize it with a minimum of one paragraph and a maximum of half a letter-sized page. 

Why is a summary necessary? It's precisely for reading the book properly. Unfortunately, there are instances where people mistakenly believe they've read a book just by skimming it. However, merely skimming without a purpose will inevitably cause you to miss the author's thoughts and deeper intentions. 

However, when you read a book with an active attitude, keeping a summary in mind, you will read with greater focus and be able to delve deeply into the author's mind. Only when you strive to summarize will you chew over the author's arguments, and the author's expressions, sentences, and logical flow will become clearer, allowing you to penetrate deeper into the text. When you voluntarily organize your thoughts while reading, you experience a deeper understanding and abundantly enjoy the benefits it brings. 

Of course, summarizing can be difficult for some. In such cases, you can write down one or two "favorite sentences." This intentionally lowers the difficulty. For example, in the small group meetings I lead for all congregants, I ask them to write down favorite sentences rather than summaries. The difficulty level of reading a Daily Devotional and writing down a favorite sentence is manageable even for congregants in their mid-70s. 

Even this much can yield great results because writing down sentences allows participants to focus on the text itself. And when participants take turns presenting in the actual meeting, synergy is created. Just as puzzle pieces beautifully come together, as the presentations progress, the beauty of the text read together is revealed, and the meeting is filled with ample richness. 

* Reflections 

Second, reflections. As you read and summarize the text, emotions like joy, sorrow, inspiration, and resolutions may arise in your heart. Writing down reflections means noting what has moved you in this way. 

Why is it necessary to specifically write down reflections? Firstly, it is more readily accepted than asking participants to write down "insights." While book clubs are a form of elite education, my goal is more focused on universal education, aiming for as many congregants as possible to participate. The aim is to lower the difficulty while maintaining the essence of a book club. In this context, the result of my 고민 (deliberation/consideration) for a meeting that ordinary people can handle is "writing down reflections." 

However, what's important is that our feelings and intellectual understanding are actually strongly connected. Therefore, as you organize your reflections, you will inevitably have to grapple with understanding the book properly. Thus, the request to write down reflections can much more gently modify a person's worldview. 

Furthermore, by organizing and writing down reflections, you internalize the content you've read. A book is not merely knowledge; it must enter our hearts. By reading the book and organizing my reflections, I engrave that content into my heart. This naturally guides participating congregants to focus on the emotions they felt while reading the book—joy, empathy, anger, etc.—and through this, helps strengthen their hearts and provide the impetus to live a life pleasing to God. 

* Application 

Third, application. You've probably asked yourself, "Why don't I change much even if I read books diligently?" Reading has power, and book club discussions bring joy and happiness, but for a more mature life transformation, the participant's own resolution is necessary. 

Just as Jesus said that those who hear His words and act on them are wise, a Christian book club definitely asks participants to write down their practical application. Therefore, after writing down your reflections, we encourage participants to write down at least one thing they can actually practice. 

And this requirement has the power to tune the soul of the participating congregant from the very beginning. This is because even before the meeting, you must consider how you will apply what you have read and then attend the meeting. While it may feel awkward at first to share your resolution in front of others, by diligently working on your own application and being challenged by hearing others' applications, the process of application gradually becomes more familiar.

크리스천 북클럽 심플 가이드 (2) - 모임 전에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요?
(The Korean version of this article and a Podcast episode)

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5/04/blog-post_10.html

* 크리스천 북클럽을 위한 '심플 가이드'를 소개합니다
(Your Simple Guide to Christian Book Clubs)
https://jungjinbu.blogspot.com/2025/05/your-simple-guide-to-christian-book.html

네비큐티 (03) 당신이 "감당할 수 있는 시험만" 허락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 / 승리의 확신)

  큐티를 하면 설교를 준비하는 것과는 또 다른 감각을 경험합니다. 물론 설교를 준비하는 것도 제 자신을 대상으로 놓고 준비를 하는 것이지만, 큐티는 훨씬 더 개인적입니다. 그리고 더 마음에 깊이 와 닿습니다.  가장 중요하게 발견한 것은, 이 말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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