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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28일 화요일

독서 묵상 (27) - 성화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공평하신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시간을 주십니다. 시간이야 말로 하나님의 최고의 선물이며 성도가 가장 소중히 여겨야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성화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며, 주어진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매 순간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며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입니다. 지혜롭게 시간을 붙잡고 시간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 "리딩 크리스천 독서 묵상" 모음
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2/10/blog-post_48.html

터프 토픽스 (5) -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의 진의는 무엇일까?

 

1. 요약

세상의 주된 논리는 상대주의이며, 이것은 절대 진리가 존재함을 믿지 않는 것이다. 상대주의에 빠진 사람은, 마태복음 7 1절의 말씀을 이해할 때에, 다른 사람들을 평가하기 위한 어떠한 윤리적 분별도 사용해서는 안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 말씀이 속한 산상 수훈 안에서 살펴보면, 예수님의 모든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떠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외식하는 자와 다르게 진실한 신앙 생활을 할 것을 요구하시는데, 이것은 다른 사람들을 향한 판단을 전제로 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금하신 비판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의 잘 되는 것을 위한 염려를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 자기 의에 사로 잡혀서 과하게 파괴적으로 행하는 비판이다. 그러므로 비판하지 말라는 예수님은 말씀은, 다른 이를 향하여 관대하라는 간청이며, 나 자신이 재판관이 되어 하나님처럼 행동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너희의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는다고 말씀하셨다. 이 비판이 하나님으로 부터이든 혹은 사람으로 부터이든 중요한 것은, 내가 다른 사람을 평가할 때에 어떤 기준을 세웠다면 그 기준을 자기 자신에게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다른 이를 비평하기 전에 반드시 나를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분별 없이 행동하는 것을 경계하시며, 자기를 점검한 이후에 다른 사람을 비평하라고 명하시는 것이다.

 

2. 책에서 한마디

사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돕는 일에 정말로 관심이 있지 않다. 우리는 그를 정죄하는 일에만 관심을 갖는다. 우리는 그에게 큰 관심을 갖고 있는 척한다우리는 그의 결점을 발견하게 되어 매우 기쁜 것이다.”

 

3. 성경적 관점에서 보기

마태복음 7: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예수님께서는 모든 판단 행위를 금지하려고 의도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구절들에서 예수님은 신자들이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분별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정죄하신 것은, 자신의 죄는 눈감아주면서 다른 사람의 잘못에만 초점을 맞추는 위선적인 판단이었습니다.

Charles L. Quarles, “Matthew,” in CSB Study Bible: Notes, ed. Edwin A. Blum and Trevin Wax (Nashville, TN: Holman Bible Publishers, 2017), 1510–1511.

 

4. RCB 관점으

저자의 말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사람들조차도 가장 좋아하고 자주 인용하는 말씀이 마태복음 7 1절 말씀이다. 그들은 이 말씀을 가져다가 기독교 인의 모든 판단을 비난하며, 자신들의 자유를 옹호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을 조금만 진지하게 읽어 본 사람이라면, 예수님이 모든 판단을 금하시지 않은 것을 분명히 알 수가 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진리이다 라고 말씀하셨고 모든 죄악을 판단하시며 정죄하셨다. 그리고 동시에 그분을 믿는 자들에게, 성경적인 판단력을 가지고 상황과 사람을 판단하며 살아갈 것을 명령하셨다.

그러나, 그러한 기독교인의 판단은 정직사랑을 전제로 해야만 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지나치게 가혹하게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평가하는데, 그것은 상대방을 향한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진지하게 돌아보지 않기 때문에, 마치 자신은 하나님이라도 된 것처럼, 혹은 아무런 죄가 없는 것처럼 지나치게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비난하는 것이다.

주변을 돌아보면, 이미 세상은 넘칠 만큼의 판단으로 가득하다. 특별히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이 진리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혹독하게 세상을 판단한다. 그러므로 어쩌면 이 시대에 있어 가장 필요한 것은, 정확한 평가가 아니라 품어주는 사랑이 아닐까? 다른 사람을 향한 날선 비판이 아니라 진지한 자기 성찰이 아닐까? 그리고 특별히 목회자에게 그것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5. 적용

1) 당신이 지금 가장 비판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2) 만약에 누군가가 당신이 사용하는 그 비판의 기준을 당신에게 들이댄다면 어떻게 반응하겠습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터프 토픽스' 크리스천 북클럽 인도자용 자료모음
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5/08/blog-post.html  

2025년 10월 26일 일요일

독서 묵상 (26) - 사랑이 없다면 목회는 불가능합니다

 



세상에서 쉬운 일은 단 하나도 없는 듯 합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목회도 참 쉽지 않습니다. 목회는 관계 속에서 섬기는 것이기에 당연히 위험이 존재합니다. 상대방에게 실망하여 마음이 상할 수 있고, 헤어나오지 못할 만큼의 큰 상처도 입는 것이 목회입니다. 

그래서 겉으로 보면 목회는 많은 것을 잃는 것입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목회를 감당하는 것은,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이며, 주님께서 맡기신 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모든 어려움을 감당하고 누구라도 품는 것입니다. 그래서 루터의 말처럼, 오늘도 주님을 사랑하는 일념으로 목회를 감당합니다. 

2025년 9월 23일 화요일

터프 토픽스 (4) - 예수님도 죄를 지으실 수 있었을까?



1. 요약

인간은 본성적으로 죄를 짓는 존재이며 그러므로 죄를 알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를 알지도 못하는 분이시다. 그분은 직접 죄를 지으신 적이 없고 죄가 없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죄를 지으실 수 있었는가? 다시 말해서 죄를 짓지는 않으셨지만 죄를 짓는 것이 가능했는가?

그분은 인간이셨기에 죄를 지으실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했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을 항상 의지하심으로 죄를 짓지 않으셨다. 그리고 두번째 아담으로서 죄를 짓지 않기로 선택하신 것이다. 성자 하나님은 인간이 되심으로서 자신의 신적인 능력을 사용하시지 않기로 의도하셨고 이것은 참된 인간의 한계와 함께 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분의 기적의 역사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행하신 것이다.

성령님은 언제나 예수님과 함께 하셨고, 그분의 능력을 예수님이 의시적으로 의존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죄의 가능성이 있었지만, 성령의 사역이 실패하시지 않으시기 때문에 그분에게는 죄의 가능성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예수님의 성령님에 대한 전적 의존은, 그분의 제자들이 인간성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모델이며, 제자들은 성령님을 통하여 소명을 완수해야 하는 것이다.

 

2. 책에서 한마디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원하신 삶의 방식, 즉 이상적이고 가장 성공적인 삶의 방식은, 하나님과 떨어져 독립적이거나 그분 없이 사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조화를 이루고 그분의 능력을 공급받는 삶이다. 예수님이 이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신 것이다.

 

3. 성경적 관점에서 보기

베드로전서 2:22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2:23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2:22 베드로는 오실 메시아의 고난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 곧 이사야 53 9절을 인용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전혀 정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죄를 범한 적도 없고 누구를 속인 적도 없었기 때문에 사형을 선고받을 아무런 이유가 없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경험으로 부터 예수께서 완전하신 분임을 알았습니다. 그는 3년 동안 예수와 함께 살고 여행했습니다. 가까운 관계는 종종 사람의 가장 나쁜 면을 드러내지만, 베드로는 선지자의 말씀이 진리임을 직접 보았습니다. 그리스도는 삶과 말씀에서 그 어떤 죄도 없으셨습니다.

Bruce Barton et al., Life Application New Testament Commentary (Wheaton, IL: Tyndale, 2001), 1113.

요한복음 3:34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이니라

3:34 인간 교사들과 달리, 예수께서는 성령을 제한적으로 즉, 한정된 방식으로 받지 않으셨습니다. 성령님은 예수께 완전히 주어졌습니다. 이 구절에는 삼위일체 하나님 모두가 언급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아들을 보내시고, 그에게 성령을 한량 없이 주셨습니다.

Earl D. Radmacher, Ronald Barclay Allen, and H. Wayne House, The Nelson Study Bible: New King James Version (Nashville: T. Nelson Publishers, 1997), Jn 3:34.

누가복음 4:1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성령께서 예수님의 삶에 관여하신 것은 예수님의 참된 인성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과 성령의 인도하심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능력 있게 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광야는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믿음의 시험에 실패했던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스라엘이 통과하지 못했던 광야 시험을 통과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마지막 아담으로 시험을 받으셨는데, 이는 첫 아담이 실패한 자리에서 승리하실 분이셨습니다.

A. Boyd Luter, “Luke,” in CSB Study Bible: Notes, ed. Edwin A. Blum and Trevin Wax (Nashville, TN: Holman Bible Publishers, 2017), 1609.

 

4. RCB 관점으

예수님의 죄 없으심이야 말로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시는 핵심이다. 그분이 무죄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죄를 예수님께 전가할 수 있으며,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실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죄 없으심이란 실질적으로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성경은 그분이 우리와 동일한 인간이시라고 분명히 말씀하심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는 그분은 죄가 없으시다는 선언으로 인하여 그분이 우리와 뭔가 다르다는 거리감을 느낀다.

그러나 저자는 예수님 역시 우리와 동일한 인간이 확실하며, 그분은 참된 인간으로서 죄의 가능성은 분명히 있었지만 성령님을 항상 의지하며 그분의 도우심으로 죄를 짓지 않았다고 분명하게 설명한다. 이 부분이 참 좋은 것은, 저자의 결론처럼 성도가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서 분명한 방향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인간으로서 오직 성령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능력으로 사셨던 것처럼, 모든 하나님의 자녀는 바로 그런 모습과 방식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비록 우리는 연약한 인간으로 죄를 짓고 살아가지만, 그러나 주님께서 만드신 새로운 피조물로서 예수님이 보여주신 참된 인간의 삶의 방식을 그대로 따라가야 함을 다시 한번 분명하게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다.

 

5. 적용

1) 당신은 삶의 모든 상황에서 오직 성령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있습니까?

2) 성령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능력을 힘입기 위해서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터프 토픽스' 크리스천 북클럽 인도자용 자료모음
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5/08/blog-post.html 

 

 

2025년 8월 19일 화요일

"터프 토픽스" 크리스천 북클럽 인도자용 자료모음

 


* 터프 토픽스 (1) - 성경은 무오한 책일까?
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5/05/1.html

* 터프 토픽스 (2) - 열린 유신론이란 무엇일까?

* 터프 토픽스 (3) - 하나님은 자신의 마음을 바꾸실까?

* 터프 토픽스 (4) - 예수님도 죄를 지으실 수 있었을까?
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5/09/1.html

* 터프 토픽스 (5)
-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의 진의는 무엇일까?
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5/10/5.html

터프 토픽스 (3) - 하나님은 자신의 마음을 바꾸실까?



1. 요약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마음을 바꾸시는가? 하나님은 언제나 존재하신다는 점에서는 불변하신다. 그러나 피조물간의 관계 안에서는 하나님께도 변화와 발전이 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모든 상황 속에서 자기 자신의 신적 본성을 변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신다. 하나님은 그분의 본질적 존재, 그분의 생명, 그분의 도덕적 특성, 그분의 목적과 계획이라는 점에서 불변하시다.

하나님은 스스로 계시는 분이시며, 그분은 도덕적 특성에 있어 변화가 없으시다. 하나님께서는 목적과 계획에서 불변하신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이 피조물과 맺으시는 관계를 통해 보이시는 다양한 변화와 구속사적 사건들은, 하나님의 마음 속에 영원히 존재하던 목적이 때가 차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불변성을 이해할 때에 난점은, 하나님께서 마치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시고 마음을 바꾸시는 것처럼 보이는 부분들이다. 이것은 신인동감동정설을 동원한 비유적 묘사이며 실제로 그렇다는 뜻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무조건적 작정과 조건적 선언 혹은 경고 사이의 차이점을 우리가 인식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피조물들의 행위와 성품에 따라서 언제나 옳은 바를 행하신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변치 않으실 것이고 변하실 수 없는 신뢰할 만한 분이시다. 그러므로 어떤 고난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토록 동일하시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

 

2. 책에서 한마디

하나님의 불변은 다만 그분이 성경을 통해 계시된 스스로의 존재와 뜻에 완벽하게 부합하도록 존재하시고 행동하신다는 뜻이다

 

3. 성경적 관점에서 보기

잠언 19:21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

하나님의 계획은 인간에 의해 실패하거나 좌절될 수 없는 것입니다.

Joel R. Beeke, Michael P. V. Barrett, and Gerald M. Bilkes, eds., The Reformation Heritage KJV Study Bible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4), 908.

삼상15:11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 사무엘이 근심하여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으니라

하나님을 주어로 하는 동사 후회하다는 여기(삼상 15:1011)와 창세기 6:7에서만 나타납니다. 창세기에서는 인류를 창조하신 것을 후회하시며 큰 홍수를 내리기로 결정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나타냅니다. 두 경우 모두 사람들이 잘못된 도덕적 선택을 했으며,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미리 아심을 통해 이미 그들이 무엇을 할지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불순종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을 보시는 것은 하나님께 아픔을 드렸다.

Bryan E. Beyer, “1 Samuel,” in CSB Study Bible: Notes, ed. Edwin A. Blum and Trevin Wax (Nashville, TN: Holman Bible Publishers, 2017), 432.

말라기 3:6 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

하나님은 자신이 신실하지 않다는 비난에 대해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거짓말하지 않으시고 변덕스럽지 않으시며, 그분의 목적과 약속이 취소될 수 없는 불변의 하나님이 아니셨다면, 이스라엘의 반역은 이미 오래전에 그들을 멸망시켰을 것입니다.

E. Ray Clendenen, “Malachi,” in CSB Study Bible: Notes, ed. Edwin A. Blum and Trevin Wax (Nashville, TN: Holman Bible Publishers, 2017), 1472.

히브리서 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이 말씀은 그 자체로 중요한 기독론의 선언이지만, 동시에 7절 마지막 구절과 연결이 됩니다. , 너희 지도자들이 일생 동안 선포하고 신뢰했던 그분은 너희 또한 신뢰할 만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변함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Douglas J. Moo, “The Letters and Revelation,” in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ed. D. A. Carson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2222.

 

4. RCB 관점으

이 챕터의 내용은 하나님에 대해서 더 깊이 생각하게 이끌어준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변하지 않는 분이라고 배우고 믿고 있지만, 동시에 성경은 마치 하나님께서 변하시는 분인 것처럼 묘사하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철학적으로 이 부분을 접근하는 것도 굉장히 유익하지만, 이 챕터의 내용을 잃으면서 오히려 하나님의 불변성은 그분의 은혜를 드러내시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 인간은 처음부터 하나님을 반역하였지만, 그분께서는 그분의 선하심이라는 측면에서 변하지 않으셨고, 신실하게 자신의 약속을 지키셨기 때문이다.

구속사 가운데 많은 사건들이 일어나지만, 하나님께서 변하시는 것처럼 보이는 사건들 (ex) 사울에 대한 후회)은 하나님께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책임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계셨지만,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을 때에 아파하셨다는 Bryan E. Beyer의 설명은, 우리가 다루고 있는 이 주제는 철학적인 논리가 아니라, 살아 계시고 역사하시는 인격적인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것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한다.

저자가 마지막에 이야기하는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그분의 사랑에 대한 불변성은 다소 논리적으로 갑자기 전개가 된 것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불변성을 결국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내셨다는 점에서는 너무나 완벽한 결말이다. 하나님은 모든 상황 속에서 믿을 수 있는 분이시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것을 확증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불변하심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그분의 신실함은, 우리의 모든 연약함과 죄악을 반드시 이기고 승리하실 것이다.

 

5. 적용

1) 하나님의 불변하심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까?

2) 하나님의 불변하심을 목회 가운데 혹은 설교 가운데 어떻게 드러낼 수 있겠습니까?

'터프 토픽스' 크리스천 북클럽 인도자용 자료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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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7월 30일 수요일

네비큐티 (03) 당신이 "감당할 수 있는 시험만" 허락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 / 승리의 확신)

 


큐티를 하면 설교를 준비하는 것과는 또 다른 감각을 경험합니다. 물론 설교를 준비하는 것도 제 자신을 대상으로 놓고 준비를 하는 것이지만, 큐티는 훨씬 더 개인적입니다. 그리고 더 마음에 깊이 와 닿습니다. 

가장 중요하게 발견한 것은, 이 말씀 자체가 말세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위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 그리고 말세의 때는 시간의 중첩이 일어납니다. 지금이 마지막 때라는 것이 더욱 실감나게 느껴지고, 또한 언젠가 이 시간이 곧 반드시 끝난다는 그 절박함이 깊이 다가옵니다. 

그리고 과거의 죄악들이 말세의 시대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지금 시대가 마치 대단히 발전한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AI가 등장하고 과거에 누리지 못했던 기술과 부를 누립니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과 그 본질은 동일합니다. 우상 숭배, 음행, 주를 시험함, 원망, 이 모든 것이 저의 평생에 경계해야 할 것들입니다. 

'어떤 사람들과 같으니' 라는 부분이 처음으로 눈에 들어왔습니다. 여러번 반복되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어두운 시대를 살아갔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을 버린 것은 아닙니다. 분명히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고 그 길을 걷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의 시선을 어디에 둘 것인가를 생각했습니다. 인생은 짧기 때문에, 믿음으로 탁월하게 살았던 사람들에게 더 초점을 맞추고 싶습니다. 칼빈과 루이스 같은 사람이 저의 롤 모델입니다. 그분들의 발걸음을 쫓아 가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합니다. 열심히 교회를 섬기며 목회를 해야 하지만, 그러나 정신과 삶의 에너지를 가장 긍정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달려가야겠습니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지만 이번에 새롭게 발견한 것은, 13절 마지막에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라는 것입니다. 저는 저도 모르게 은연 중에, '너희로 능히 피하게 하시느니라'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방법은 시험을 피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시험을 견디게 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피할 길을 내신다고 말씀하시지만, 그러한 시험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 듯 합니다. 

저의 삶은 평생 견디는 것임을 새롭게 깨달았습니다. 한편으로는 그 무게가 너무 무겁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주님을 더 의지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스터디 바이블을 보니 '그 인내는 그 자체로 보상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라고 설명합니다. 원래 이전에도 인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다시 보니, 인내는 성도의 본질입니다. 주여, 저의 평생에 주님을 의지하여 인내하도록 저를 도우소서.

* 네비암송 (03)
당신이 "감당할 수 있는 시험만" 허락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 / 승리의 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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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묵상 (27) - 성화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공평하신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시간을 주십니다. 시간이야 말로 하나님의 최고의 선물이며 성도가 가장 소중히 여겨야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성화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며, 주어진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매 순간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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