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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의 세계관, 그리고 삶을 변화시키는 북클럽
1. 요약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마음을 바꾸시는가? 하나님은 언제나 존재하신다는 점에서는 불변하신다.
그러나 피조물간의 관계 안에서는 하나님께도 변화와 발전이 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모든
상황 속에서 자기 자신의 신적 본성을 변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신다. 하나님은 그분의 본질적 존재, 그분의 생명, 그분의 도덕적 특성,
그분의 목적과 계획이라는 점에서 불변하시다.
하나님은 스스로 계시는
분이시며, 그분은 도덕적 특성에 있어 변화가 없으시다. 하나님께서는
목적과 계획에서 불변하신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이 피조물과 맺으시는 관계를 통해 보이시는 다양한
변화와 구속사적 사건들은, 하나님의 마음 속에 영원히 존재하던 목적이 때가 차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불변성을 이해할 때에 난점은, 하나님께서 마치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시고 마음을 바꾸시는 것처럼 보이는
부분들이다. 이것은 신인동감동정설을 동원한 비유적 묘사이며 실제로 그렇다는 뜻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무조건적 작정과 조건적 선언 혹은 경고
사이의 차이점을 우리가 인식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피조물들의 행위와 성품에 따라서 언제나 옳은 바를
행하신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변치 않으실 것이고 변하실 수 없는 신뢰할 만한 분이시다. 그러므로 어떤 고난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토록 동일하시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
2. 책에서 한마디
하나님의 불변은 다만 그분이 성경을 통해 계시된 스스로의
존재와 뜻에 완벽하게 부합하도록 존재하시고 행동하신다는 뜻이다
3. 성경적 관점에서
보기
잠언 19:21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
하나님의 계획은 인간에 의해
실패하거나 좌절될 수 없는 것입니다.
Joel R. Beeke, Michael P. V. Barrett, and
Gerald M. Bilkes, eds., The Reformation
Heritage KJV Study Bible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4), 908.
삼상15:11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 사무엘이 근심하여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으니라
하나님을 주어로 하는 동사 ‘후회하다’ 는 여기(삼상 15:10–11)와 창세기 6:7에서만
나타납니다. 창세기에서는 인류를 창조하신 것을 후회하시며 큰 홍수를 내리기로 결정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나타냅니다. 두 경우 모두 사람들이 잘못된 도덕적 선택을 했으며,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미리 아심을 통해 이미 그들이 무엇을 할지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불순종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을 보시는 것은 하나님께 아픔을 드렸다.
Bryan E. Beyer, “1 Samuel,” in CSB Study Bible: Notes, ed. Edwin A. Blum and Trevin Wax
(Nashville, TN: Holman Bible Publishers, 2017), 432.
말라기 3:6 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
E. Ray Clendenen, “Malachi,” in CSB
Study Bible: Notes, ed. Edwin A. Blum and Trevin Wax (Nashville, TN: Holman
Bible Publishers, 2017), 1472.
히브리서 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이 말씀은 그 자체로 중요한 기독론의 선언이지만, 동시에 7절 마지막 구절과 연결이 됩니다. 즉, 너희 지도자들이 일생 동안 선포하고 신뢰했던 그분은 너희 또한 신뢰할 만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변함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Douglas J. Moo, “The Letters and Revelation,” in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ed. D. A. Carson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2222.
4. RCB의 관점으로
이 챕터의 내용은 하나님에 대해서 더 깊이 생각하게 이끌어준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변하지 않는 분이라고 배우고 믿고 있지만, 동시에
성경은 마치 하나님께서 변하시는 분인 것처럼 묘사하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철학적으로 이 부분을 접근하는 것도 굉장히 유익하지만, 이 챕터의 내용을 잃으면서 오히려 하나님의 불변성은 그분의 은혜를 드러내시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 인간은 처음부터 하나님을 반역하였지만, 그분께서는 그분의 선하심이라는
측면에서 변하지 않으셨고, 신실하게 자신의 약속을 지키셨기 때문이다.
구속사 가운데 많은 사건들이 일어나지만, 하나님께서
변하시는 것처럼 보이는 사건들 (ex) 사울에 대한 후회)은
하나님께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책임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계셨지만,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을 때에 아파하셨다는 Bryan E. Beyer의
설명은, 우리가 다루고 있는 이 주제는 철학적인 논리가 아니라, 살아
계시고 역사하시는 인격적인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것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한다.
저자가 마지막에 이야기하는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그분의 사랑에 대한 불변성은 다소 논리적으로 갑자기 전개가 된 것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불변성을 결국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내셨다는 점에서는 너무나 완벽한 결말이다. 하나님은 모든 상황 속에서 믿을 수 있는 분이시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것을 확증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불변하심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그분의 신실함은, 우리의 모든 연약함과 죄악을 반드시 이기고 승리하실 것이다.
5. 적용
1) 하나님의
불변하심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까?
2) 하나님의 불변하심을 목회 가운데 혹은 설교 가운데 어떻게 드러낼 수 있겠습니까?
* '터프 토픽스' 크리스천 북클럽 인도자용 자료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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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열린 유신론은,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에 대해서 절대적으로 확신하지 못하며 알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 이론은 하나님께서 미래의 모든 사건을 다 아신다는 것과 불변성과 영원성을 부정하는데, 이러한 전통적인 견해는 성경이 아닌 그리스 철학으로 부터 왔다고 믿는다.
열린 유신론에 따르면, 하나님은 사건의 전개를 인식하고 그 과정 속에서 반응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이 미래에 대한 모든 세부 사항을 다 알고 계시다면 주고 받는 관계를 통한 인간과의 사랑이 불가능하다고 본다. 어떤 이들은 이러한 열린 유신론을, 하나님도 인간처럼 과정 가운데 존재한다는 과정 신학과 유사하다고도 본다.
열린 유신론자들은 선택 교리에 대해서는 아르미니우스주의를 지지함에도 불구하고, 아르미니우스가 추구한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지식조차 인정하지 않는다.
또한 열린 유신론자들은 하나님이 전지하시다고 말은 하지만, 미래가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이기에 대상이 존재할 수 없다는 이유로 하나님의 예지는 거부한다. 이들은 미래의
사건이 예정되어있을 경우 분명히 일어난다는 명제 때문에 인간의 자유의지는 상실하게 된다고 받아들인다. 또한
인간이 계획을 했더라도 바꿀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미래를 알 수 없다고 주장한다.
열린 유신론은 이사야 41장에서 48장까지의 말씀을 통해 반증할 수 있다. 여기에서 하나님께서는 미래에 대한 철저한 예지와, 일어날 모든 일을 세밀하게 예측하신다. 그리고 이것이야 말로 참된 신임을 증명하는 조건임을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바벨론의 멸망과 고레스에 의한 귀환을 미리 알고 계셨다.
이러한
결과를 위해서는 수 많은 사람들의 자발적이고 자유로운 선택이 얽혀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최종적인 결과를
그분의 능력으로 실제로 이루셨다. 하나님께서 앞으로 이루실 사건들을 미리 보여주신 이유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감사하도록 하시며 자신이 역사를 주관하심을 분명히 드러내시기 위해서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예지하심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자발적인 선택이
도덕적 책임을 벗어날 수 없다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2. 책에서 한마디
“하나님이 좁게는 어떤 개인의
삶을, 넓게는 이 세상을 빚어가시는 방법에 대해 도전하는 것은 선호나 관점의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이것은 하나님이 하나님 되신 것에 대한 거부, 역할 전도, 즉 피조물이 창조주를 자신의 계획을 수행할 종으로 만들려는 시도다”
3. 성경적 관점에서
보기
사 44:6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7 내가 영원한 백성을 세운 이후로
나처럼 외치며 알리며 나에게 설명할 자가 누구냐 있거든 될 일과 장차 올 일을 그들에게 알릴지어다 8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겁내지 말라 내가 예로부터 너희에게 듣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알리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나의 증인이라 나 외에 신이 있겠느냐 과연
반석은 없나니 다른 신이 있음을 내가 알지 못하노라
우상에 대한 긴 논쟁은,
하나님의 유일성에 대한 확신으로 시작됩니다.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사용되었습니다.
Tremper Longman III, “Isaiah,” in CSB
Study Bible: Notes, ed. Edwin A. Blum and Trevin Wax (Nashville, TN: Holman
Bible Publishers, 2017), 1106.
오직 여호와 한분만이 진정한 신이시며 그러므로 그분은 자신의 약속을 모두 지키실 수 있습니다.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1320.
4. RCB의 관점으로
전통적이지 않은 어떤 신학적인 이론을 접하는 것은 당황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것의 유익은, 이미 알고 믿고 있는 성경적인 하나님에 대한
이해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열린 유신론은, 여호와 하나님을 제한하는 것이다. 그리고 좀 더 깊이 들어가보면, 하나님을 인간과 동일한 수준으로 격하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이다. 그분이 미래를 확정적으로 예지하지 못한다면, 어찌 그분을 하나님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유신론자들의 하나님에
대한 개념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연약하고 오류 투성이인, 그저
인간보다 좀 더 탁월한 수준의 신의 개념으로 덮여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한계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언급하지는 않지만 열린 유신론의 결정적인 오류는, 미래를 예지하지 못하는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미래를 예지하시지 못한다면, 어떻게 그분이 수천년에 걸쳐서 자신의 약속을 이루실 수 있겠는가? 그리고 어떻게 그 약속 대로 자신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시고 죄인의 구원을 이루실 수 있었겠는가? 인간의 입장에서는 여러 철학적인 고찰을 통해 열린 유신론을 주장할 수 있겠으나, 하나님은 그들을 비웃으시며 (시2:4)
자신의 위대하심을 역사 속에서 이미 드러내셨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 의지를 아래의 표처럼 제안하는 바이다. 이 표의 핵심은, 하나님의 주권은 인간의 자유 의지를 품고 그 우위에 있는데, 그것은 그 주권을 행하시는 바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주권은 인간의 자유 의지의 성질을 보전하되 완전히 다스리신다.
이 표가 보여주는 것은 부정적인 면은 다음과 같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한다. 이것이 죄인에게 하나님의 구원이 전적으로 필요한 이유이다. 반면 긍정적인 면에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예정하셨고 그분의 구원의 계획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이루신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주권의 극치는 확정된 미래,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다. 성령께서 거듭나게 하신자는 이러한 하나님의
주권과 그분의 일하심의 놀라움을 깨닫게 되며, 하나님의 계획의 성취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절대적인
안정감과 흔들리지 않는 미래에 대한 소망을 얻게 된다.
결론적으로 성도는 한 없이 자유롭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자유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자유 의지를 사용하여
그분의 선하신 뜻을 이루신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논리적으로 납득하고 이해하고 믿는 우리는 오직 그분께만
영광을 돌린다.
5. 적용
1) 만약
당신 주변에 열린 유신론을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습니까?
2) 당신은
저자가 이야기하는 이사야에 대한 설명을 통해서 어떤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까?
* 추가적으로 읽어볼
자료
- 일반적인 심리학적 관점에서도 미래의 확정성은 인생의 의미를 결정짓는 요소라는 측면에서
프랭클에 따르면 어떤 환경에 처하든 미래를 분명히 볼
수 있어야 한다.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데도 명확한 미래가 아주 중요하다. 미래의 나를 위협하는 가장 심각한 요인은, 자유의 상실이 아니라 목적과 의미의 부재다. 프랭클이 전하는 이야기는 목적과 의미의 부재가 얼마나 치명적인 위협이 되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목적을 잃으면 현재의 삶은 죽은 삶이다.
퓨처 셀프 | 벤저민 하디, 최은아 저
- 하나님의 시간을 인간의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것 자체가 오해라는 측면에서
하나님이 시간에 매여 살지 않으신다는 것은 거의 확실합니다. 하나님의 삶은 연속되는 순간들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오늘 밤 10시 30분에 100만 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기도한다 해도, 하나님은 우리가 ‘10시 30분’이라고 부르는 짧은 순간에 그 모든 기도를 들으실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10시
30분—그리고 태초 이래의 모든 순간—은 언제나 ‘현재’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께는 불길에 휩싸여 추락하는 비행기 속에서 조종사가 드리는 그 찰나의 기도를 들으실 여유가 영원무궁히
있는 것입니다.
순전한 기독교 | C. S. 루이스, 이종태, 장경철
저
-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어떤 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 일을 이루시는 분이라는 측면에서
우리가 잘되거나 다른 사람의 일이 잘될 때에는 그냥 지나치지 말고, 반드시
찬양과 감사를 하나님께 드려서 거기에 하나님의 손길이 있음을 우리가
깨닫고 인정한다는 것을 증거해야 마땅할 것이다
기독교강요 (중) - 1559년 최종판 | 장
칼뱅, 원광연 저
성도들의 의지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감동을 받으므로 그들이 간절히 원하게 되어 그 일을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이요, 그들이 그렇게 원하게 되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기 때문에 그들이 그렇게 원하게 되는 것이다.
기독교강요 (상) - 1559년 최종판 | 장 칼뱅, 원광연 저
* '터프 토픽스' 크리스천 북클럽 인도자용 자료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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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프 토픽스 (1) - 성경은 무오한 책일까? 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5/05/1.html * 터프 토픽스 (2) - 열린 유신론이란 무엇일까? https://readingch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