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딩 크리스천 블로그 사용법입니다

2025년 11월 1일 토요일

독서 묵상 (30) 살아남는 스토리는 무엇이 다른가 - 성경의 세계관만이 영원한 생명을 줍니다




'세계관'이라는 말이 보편적으로 쓰이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고, 혹은 한 사람의 관점과 그것에 따라가는 삶 자체라고도 부를 수 있겠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세계관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세계관을 뛰어 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유일한 절대자이시며 세상의 창조주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벗어나서는 그 어떤 것도 영원한 가치를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참된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살아가는 사람은, 단순히 논리적인 당위성을 넘어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 "리딩 크리스천 독서 묵상"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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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30일 목요일

독서 묵상 (29) 결핍은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 결핍을 통해 한걸음 더 전진하라

 



결핍에 대한 연구가 참 흥미롭습니다. 결핍은 한 사람의 주의를 한 곳에 집중하게 만들고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늘 경험했던 것이지만 연구의 결과로서 이것을 대하는 것이 한편으로는 더 마음을 새롭게 합니다. 

우리의 인생에 혹은 신앙 속에서, 내가 결핍이 있다는 것을 잘 파악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나의 부족함을 아는 사람만이 발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자신의 결핍을 볼 수 있는 사람만이, 그 자리에서 한걸음 더 전진할 수 있는 목적과 동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넘치는 감사를 가지는 것, 그리고 동시에 여전히 도달하지 못한 숭고한 목표 속에서 나를 정직하게 평가하고 전진하는 것은 평생동안 가져야 하는 본질적인 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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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의 남은 날을 계수하게 하소서 2 - "미래의 시간"을 경험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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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29일 수요일

독서 묵상 (28) 다정한 사람이 이긴다 - 다정한 크리스천이 있다면 온 세상이 행복하리라

 



차가운 사람을 만나면 마음이 닫힙니다. 잘못된 것을 먼저 이야기하는 사람에게는 냉기가 느껴집니다. 제 자신과 또한 주변을 돌아보며 염려하는 것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이 기독교의 전부 혹은 최종적인 목표라고 생각하는 태도 혹은 확신입니다. 

이미 예수님께서는 세상이 잘못되었음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세상에 오셔서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모두가 놀랄만큼 그분은 자신을 희생하셨습니다. 자신의 잘못이 아닌 세상의 죄를 친히 짊어지셨습니다. 가끔씩 상상합니다. 예수님은 정말 다정한 분이 아니셨을까? 그분의 목소리는 정말 부드럽지 않으셨을까? '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치유하였다' 다정한 주님 앞에서, 죄인은 오직 눈물을 흘리며 경배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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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28일 화요일

독서 묵상 (27) 부의 통찰 - 성화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공평하신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시간을 주십니다. 시간이야 말로 하나님의 최고의 선물이며 성도가 가장 소중히 여겨야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성화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며, 주어진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매 순간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며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입니다. 지혜롭게 시간을 붙잡고 시간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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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프 토픽스 (5) -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의 진의는 무엇일까?

 

1. 요약

세상의 주된 논리는 상대주의이며, 이것은 절대 진리가 존재함을 믿지 않는 것이다. 상대주의에 빠진 사람은, 마태복음 7장 1절의 말씀을 이해할 때에, 다른 사람들을 평가하기 위한 어떠한 윤리적 분별도 사용해서는 안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 말씀이 속한 산상 수훈 안에서 살펴보면, 예수님의 모든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떠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외식하는 자와 다르게 진실한 신앙 생활을 할 것을 요구하시는데, 이것은 다른 사람들을 향한 판단을 전제로 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금하신 비판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의 잘 되는 것을 위한 염려를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 자기 의에 사로 잡혀서 과하게 파괴적으로 행하는 비판이다. 그러므로 비판하지 말라는 예수님은 말씀은, 다른 이를 향하여 관대하라는 간청이며, 나 자신이 재판관이 되어 하나님처럼 행동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너희의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는다고 말씀하셨다. 이 비판이 하나님으로 부터이든 혹은 사람으로 부터이든 중요한 것은, 내가 다른 사람을 평가할 때에 어떤 기준을 세웠다면 그 기준을 자기 자신에게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다른 이를 비평하기 전에 반드시 나를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분별 없이 행동하는 것을 경계하시며, 자기를 점검한 이후에 다른 사람을 비평하라고 명하시는 것이다.

 

2. 책에서 한마디

“사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돕는 일에 정말로 관심이 있지 않다. 우리는 그를 정죄하는 일에만 관심을 갖는다. 우리는 그에게 큰 관심을 갖고 있는 척한다… 우리는 그의 결점을 발견하게 되어 매우 기쁜 것이다.”

 

3. 성경적 관점에서 보기

마태복음 7: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예수님께서는 모든 판단 행위를 금지하려고 의도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구절들에서 예수님은 신자들이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분별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정죄하신 것은, 자신의 죄는 눈감아주면서 다른 사람의 잘못에만 초점을 맞추는 위선적인 판단이었습니다.

Charles L. Quarles, “Matthew,” in CSB Study Bible: Notes, ed. Edwin A. Blum and Trevin Wax (Nashville, TN: Holman Bible Publishers, 2017), 1510–1511.

 

4. RCB의 관점으로

저자의 말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사람들조차도 가장 좋아하고 자주 인용하는 말씀이 마태복음 7장 1절 말씀이다. 그들은 이 말씀을 가져다가 기독교 인의 모든 판단을 비난하며, 자신들의 자유를 옹호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을 조금만 진지하게 읽어 본 사람이라면, 예수님이 모든 판단을 금하시지 않은 것을 분명히 알 수가 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진리이다 라고 말씀하셨고 모든 죄악을 판단하시며 정죄하셨다. 그리고 동시에 그분을 믿는 자들에게, 성경적인 판단력을 가지고 상황과 사람을 판단하며 살아갈 것을 명령하셨다.

그러나, 그러한 기독교인의 판단은 ‘정직’과 ‘사랑’을 전제로 해야만 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지나치게 가혹하게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평가하는데, 그것은 상대방을 향한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진지하게 돌아보지 않기 때문에, 마치 자신은 하나님이라도 된 것처럼, 혹은 아무런 죄가 없는 것처럼 지나치게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비난하는 것이다.

주변을 돌아보면, 이미 세상은 넘칠 만큼의 판단으로 가득하다. 특별히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이 진리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혹독하게 세상을 판단한다. 그러므로 어쩌면 이 시대에 있어 가장 필요한 것은, 정확한 평가가 아니라 품어주는 사랑이 아닐까? 다른 사람을 향한 날선 비판이 아니라 진지한 자기 성찰이 아닐까? 그리고 특별히 목회자에게 그것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5. 적용

1) 당신이 지금 가장 비판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2) 만약에 누군가가 당신이 사용하는 그 비판의 기준을 당신에게 들이댄다면 어떻게 반응하겠습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 '터프 토픽스' 크리스천 북클럽 인도자용 자료모음
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5/08/blog-post.html  

2025년 10월 26일 일요일

독서 묵상 (26) 루터의 탁상담화 - 사랑이 없다면 목회는 불가능합니다

 



세상에서 쉬운 일은 단 하나도 없는 듯 합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목회도 참 쉽지 않습니다. 목회는 관계 속에서 섬기는 것이기에 당연히 위험이 존재합니다. 상대방에게 실망하여 마음이 상할 수 있고, 헤어나오지 못할 만큼의 큰 상처도 입는 것이 목회입니다. 

그래서 겉으로 보면 목회는 많은 것을 잃는 것입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목회를 감당하는 것은,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이며, 주님께서 맡기신 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모든 어려움을 감당하고 누구라도 품는 것입니다. 그래서 루터의 말처럼, 오늘도 주님을 사랑하는 일념으로 목회를 감당합니다. 

2025년 9월 23일 화요일

터프 토픽스 (4) - 예수님도 죄를 지으실 수 있었을까?



1. 요약

인간은 본성적으로 죄를 짓는 존재이며 그러므로 죄를 알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를 알지도 못하는 분이시다. 그분은 직접 죄를 지으신 적이 없고 죄가 없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죄를 지으실 수 있었는가? 다시 말해서 죄를 짓지는 않으셨지만 죄를 짓는 것이 가능했는가?

그분은 인간이셨기에 죄를 지으실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했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을 항상 의지하심으로 죄를 짓지 않으셨다. 그리고 두번째 아담으로서 죄를 짓지 않기로 선택하신 것이다. 성자 하나님은 인간이 되심으로서 자신의 신적인 능력을 사용하시지 않기로 의도하셨고 이것은 참된 인간의 한계와 함께 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분의 기적의 역사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행하신 것이다.

성령님은 언제나 예수님과 함께 하셨고, 그분의 능력을 예수님이 의시적으로 의존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죄의 가능성이 있었지만, 성령의 사역이 실패하시지 않으시기 때문에 그분에게는 죄의 가능성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예수님의 성령님에 대한 전적 의존은, 그분의 제자들이 인간성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모델이며, 제자들은 성령님을 통하여 소명을 완수해야 하는 것이다.

 

2. 책에서 한마디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원하신 삶의 방식, 즉 이상적이고 가장 성공적인 삶의 방식은, 하나님과 떨어져 독립적이거나 그분 없이 사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조화를 이루고 그분의 능력을 공급받는 삶이다. 예수님이 이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신 것이다.

 

3. 성경적 관점에서 보기

베드로전서 2:22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2:23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2:22 베드로는 오실 메시아의 고난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 곧 이사야 53장 9절을 인용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전혀 정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죄를 범한 적도 없고 누구를 속인 적도 없었기 때문에 사형을 선고받을 아무런 이유가 없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경험으로 부터 예수께서 완전하신 분임을 알았습니다. 그는 3년 동안 예수와 함께 살고 여행했습니다. 가까운 관계는 종종 사람의 가장 나쁜 면을 드러내지만, 베드로는 선지자의 말씀이 진리임을 직접 보았습니다. 그리스도는 삶과 말씀에서 그 어떤 죄도 없으셨습니다.

Bruce Barton et al., Life Application New Testament Commentary (Wheaton, IL: Tyndale, 2001), 1113.

요한복음 3:34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이니라

3:34 인간 교사들과 달리, 예수께서는 성령을 제한적으로 즉, 한정된 방식으로 받지 않으셨습니다. 성령님은 예수께 완전히 주어졌습니다. 이 구절에는 삼위일체 하나님 모두가 언급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아들을 보내시고, 그에게 성령을 한량 없이 주셨습니다.

Earl D. Radmacher, Ronald Barclay Allen, and H. Wayne House, The Nelson Study Bible: New King James Version (Nashville: T. Nelson Publishers, 1997), Jn 3:34.

누가복음 4:1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성령께서 예수님의 삶에 관여하신 것은 예수님의 참된 인성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과 성령의 인도하심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능력 있게 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광야는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믿음의 시험에 실패했던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스라엘이 통과하지 못했던 광야 시험을 통과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마지막 아담’ 으로 시험을 받으셨는데, 이는 첫 아담이 실패한 자리에서 승리하실 분이셨습니다.

A. Boyd Luter, “Luke,” in CSB Study Bible: Notes, ed. Edwin A. Blum and Trevin Wax (Nashville, TN: Holman Bible Publishers, 2017), 1609.

 

4. RCB의 관점으로

예수님의 죄 없으심이야 말로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시는 핵심이다. 그분이 무죄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죄를 예수님께 전가할 수 있으며,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실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죄 없으심이란 실질적으로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성경은 그분이 우리와 동일한 인간이시라고 분명히 말씀하심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는 그분은 죄가 없으시다는 선언으로 인하여 그분이 우리와 뭔가 다르다는 거리감을 느낀다.

그러나 저자는 예수님 역시 우리와 동일한 인간이 확실하며, 그분은 참된 인간으로서 죄의 가능성은 분명히 있었지만 성령님을 항상 의지하며 그분의 도우심으로 죄를 짓지 않았다고 분명하게 설명한다. 이 부분이 참 좋은 것은, 저자의 결론처럼 성도가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서 분명한 방향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인간으로서 오직 성령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능력으로 사셨던 것처럼, 모든 하나님의 자녀는 바로 그런 모습과 방식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비록 우리는 연약한 인간으로 죄를 짓고 살아가지만, 그러나 주님께서 만드신 새로운 피조물로서 예수님이 보여주신 참된 인간의 삶의 방식을 그대로 따라가야 함을 다시 한번 분명하게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다.

 

5. 적용

1) 당신은 삶의 모든 상황에서 오직 성령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있습니까?

2) 성령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능력을 힘입기 위해서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 '터프 토픽스' 크리스천 북클럽 인도자용 자료모음
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5/08/blog-post.html 

 

 

독서 묵상 (88) 집중의 뇌과학 - 창조된 인간은 언어 안에서 자라갑니다

  저자는 나이가 들어도 다양한 언어의 적극적인 사용을 통해서 인지 능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성인이 되어도 배움을 절대로 그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죄로 인해서 많은 부분이 망가졌지만 여전히 인간은 탁월한 존재입니다. 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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