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약
세상에 용서받을 수 없는 사람이 있을까? 당한 사람이 나라면 어떻게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스도인이든 불신자이든 용서를 선택하는 이유는 세가지의 근본적인 이유를 가지고 있다.
첫째, 용서만이 비은혜의 사슬을 끊고 비난과 고통의 악순환을 중단시킨다. 용서의 헬라어 단어의 의미는 문자적으로 ‘자신을 풀어주다, 자유케 하다’이다. 원한이라는 단어는 문자적으로 ‘다시 느낀다’이다. 용서를 통해 비난을 끊어야만 자유로워질 수 있다.
용서를 통해서 출구를 찾을 수 있다. 물론 책임 소재와 공평성의 문제가 한번에 해결되지는 않지만, 관계의 새출발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용서하지 않으면 과거에 갇히게 되며, 변화의 잠재력은 완전히 차단된다. 그러므로 용서는 바로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다.
둘째, 용서는 가해자가 겪는 죄책감의 중압을 덜어준다. 은혜에는 세상에 물들지 않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초자연적 힘이 있다.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에서 그러한 은혜가 등장한다. 신부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도 않은 장발장을 용서하고 장발장의 삶은 완전히 달라진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세번에 걸쳐 용서하시는 의식을 행하신다. 베드로는 배반자라는 죄책감을 품고 살 필요가 없었다. 예수님은 오히려 그 변화된 죄인들을 기초로 그분의 교회를 세우신다.
하나님의 용서라는 은혜로운 기적은,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가능한 것이었다. 하나님은 피조물과 인간과 손을 잡고 싶으셨지만, 방법이 문제였다. 체험적으로 보자면 하나님은 죄의 유혹에서 사는 것을 잘 모르셨다. 그래서 그분이 이 땅에 직접 오셔서 우리 입장이 되시고 배우신 것이다. 이것이 성육신이며, 하나님이 직접 벌어진 곳을 메우시며 아예 우리 자리로 오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 입장을 아버지께 대변할 수 있다.
하나님께도 용서는 쉽지 않았다. 예수님은 엄청난 대가를 치르시는 것을 아셨기에 할 만하시거든 잔을 지나가게 해달라고 기도하셨다. 운명하시기 전 그분이 남기신 한 마디는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이 되셔서 진정으로 말씀하실 수 있었다. 이제 이해하시는 것이다.
2. 책에서 한 마디
“용서한다는 것은 곧 잘못을 범한 사람에게서 그 잘못을 도려내는 것과 같다. 그 사람에게서 상처 입힌 행위를 떼어내어 그 사람을 재 창조하는 것이다. 전에는 상대를 가해자로 못박았으나 이제 그러한 생각에 변화가 생긴다. 내 기억 속에서 상대의 모습이 거듭나기 때문이다… 전에는 상대를 악에 능한 자로 낙인 찍었으나 이제는 그가 도움을 요하는 약자로 보인다. 과오를 범하여 내 과거에 아픔을 준 사람을 재창조함으로써 내 과거까지 재창조한 것이다.”
3. 성경적 관점에서 보기
누가복음 23: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개역개정) 23:34 Jesus said, "Father, forgive them, for they do not know what they are doing." And they divided up his clothes by casting lots. (NIV)
23:34 they do not know what they are doing. The apostles repeatedly note this in their preaching (Acts 3:17; 13:27; 14:16; 17:30; 26:9). Jesus becomes the model for his followers by willingly forgiving those who persecuted him (cf. Acts 7:60). 그들이 자기들이 하는 행동을 알지 못했습니다: 사도들은 계속해서 그들의 설교 가운데 바로 이 부분을 주목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핍박하는 자들까지 적극적으로 용서하심으로써, 그분의 제자들의 모범이 되셨습니다.
D.A. Carson, “The Gospels and Acts,” in NIV Zondervan Study Bible: Built on the Truth of Scripture and Centered on the Gospel Message, ed. D. A. Carson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5), 2134.
4. RCB의 관점으로
사람들은 흔히 용서를 이타적인 행위만으로 혹은 손해를 보는 행위만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얀시는 용서야 말로 나 자신을 위한 행동이라고 선언한다. 용서를 하는 사람만이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고, 변화의 잠재력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러므로 상대방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용서는 시급한 일이라는 것이다.
누구나 상대방을 변화시키고 싶어 한다. 그리고 얀시는, 그 방법이 바로 용서라고 말한다. 우리는 체험적으로 누군가를 변화시키는 것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모든 방법을 다 행해 보았다면, 이제는 용서를 실제로 적용할 때가 된 것이다. 조금 우스운 이야기이지만 밑져야 본전이다. 만약 말씀대로 행한다면, 우리는 기적을 볼 것이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범은 적극적인 용서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용서라는 것은 결국 ‘자기 스스로 죄를 깨닫지도 못하는 정말 죄인’을 용서하는 것임을 강조하신다. 용서할 만한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 못할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 진짜 용서이다.
용서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것을 자주 잊어버린다. 그러나 우리가 목표를 잃어버려서는 안된다. 예수님은 친히 인간이 되셨기 때문에 우리의 어려움을 모두 이해하신다. 우리를 이해하시는 주님의 도우심을 기대하며 예수님이 걸어가신 적극적인 용서의 길을 우리도 걸어가야 한다.
5. 적용
1) 당신 자신을 위해서 용서해야 할 사람이 있다면 누구입니까? ‘그 사람’이 아니라 ‘당신 자신’을 위해서라도 용서할 수 있는 용기를 달라고 기도해보세요.
2) 소극적인 용서가 아니라, 적극적인 용서를 해야 할 대상이 있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의 용서를 묵상하면서, 당신의 마음에 적극적으로 용서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해보세요.
*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 크리스천 북클럽 인도자용 자료 모음
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2/10/blog-post_2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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