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약
예수님의 은혜의 말씀은 교회 안에서 묽어지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진리를 논의하고 판정하는 데는 힘을 쏟아 왔지만, 은혜에서 남보다 앞서려는 교회를 찾기 힘들다. 안타깝게도 그리스도인들은, 바베트의 만찬이 아니라 빵으로 만든 죽이나 먹으러 모인 우중충한 사람들처럼 보일 때가 많다.
2. 책에서 한 마디
"그러나 이런 모호한 부분의 규정까지 지켜야 신앙 좋은 사람이 된다는 분위기가 매우 짙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율법 시대도, 은혜 시대도, 내겐 별로 달라 보이지 않았다."
“어느 스페인 아버지가 집을 나가 마드리드로 간 아들과 화해하기로 다짐한다. 아버지는 뒤늦게 양심에 가책을 느끼며 “엘리베랄” 신문에 이런 광고를 낸다. “파코, 화요일 정오에 몬타나 호텔에서 만나자. 다 용서했다. 아빠.” 파코는 스페인에 흔한 이름이다. 아버지가 그곳에 나가자 파코라는 이름의 젊은 남자가 무려 800명이나 나와서 저마다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3. 성경적 관점에서 보기
출애굽기 34:6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개역개정) 34:6 And
the LORD passed before him and proclaimed, "The LORD, the LORD God,
merciful and gracious, longsuffering, and abounding in goodness and
truth,(NKJV)
4. RCB의 관점으로
얀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죄인이 회개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세상에서 은혜를 찾을 수 있는 곳은 오직 하나님의 품이며, 오직 교회라는 것이다. 모든 인간의 마음 안에는 은혜에 대한 갈망이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적극적인 은혜를 베풀어 죄인을 하나님의 품으로 인도해야 한다. 그것이 교회의 목적이다.
인간은 기본적인 본성은 비은혜의 세계에 머무는 것이다. 나 자신을 대할 때에도, 그리고 다른 이들을 대할 때에도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만져 주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여전히 파괴적인 비은혜에 머무르게 된다.
얀시가 자신이 만난 은혜가 넘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넣은 것은, 결국 하나님의 은혜도 좋은 관계 속에서 배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말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과연 나는 누군가에게 은혜를 베푸는 사람인가? 혹시라도 나는 헤밍웨이의 어머니와 같은 사람은 아닌가?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존재임을 깨닫는 것도 어떤 의미에서 전적으로 하나님이 열어 주시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완전한 선물이자 사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적극적으로 묵상하는 것이다.
자비로우신 아버지 하나님의 성품이 예수님에게 나타났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찾으러 오셨고 죄인을 품으시기 위해서 오셨다. 그렇다면 그런 관점을 가장 중요한 배경으로 해서 모든 신약의 말씀을 보아야 하지 않을까?
벤자민 프래클린은 철저한 비은혜의 세상을 살아가던 사람이다. 스스로 완전한 의를 추구했으나 실패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의를 이루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친히 온전한 순종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완전한 의로움을 이루셨다.
이러한 예수님의 일하심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며 더 깊어져야 한다. 오직 예수님으로 인해서 우리가 완전한 은혜를 누리며, 하나님의 완전한 자녀로 받아들여짐을 기억하며, 그것에 대한 묵상과 이해를 계속적으로 추구해 나가야 한다
5. 적용
1) 당신이 은혜의 사람인지, 비은혜의 사람인지 스스로를 정직하게 평가해 보세요
2) 만약 당신에게 비은혜가 주로 나타난다면, 그런 당신조차 용납하시고 기다리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묵상해 보세요
3) 만약 당신에게 은혜가 주로 나타난다면, 자비하신 아버지의 은혜가 삶 속에서 더 풍성히 나타나도록 기도해 보세요.
*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 크리스천 북클럽 인도자용 자료 모음
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2/10/blog-post_2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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