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약
누군가 은혜를 교묘히 이용하려고 한다면, 은혜는 과연 한계가 없는가? 심지어 얀시의 친구는, 아무 이유 없이 외도를 하고 이혼을 고민하면서, ‘하나님이 자신이 하려는 끔찍한 일까지도 용서하실 수 있는가?’라고 얀시를 시험하며 물었다.
그러나, 악을 묵인하는 것과 악을 용서하는 것은 혼동되어서는 안된다. 용서란, 받아들이는 자가 있어야 온전한 것이 된다. 죄를 인정하지 않는 자는 용서를 받아들일 수 없다. 사람은 두 부류로 나뉜다.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죄인과, 인정하지 않는 죄인이다. 죄를 부정하거나 억압하는 것은 매우 큰 문제이며, 바리새인들이 그런 사람들이다.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손을 벌려야 하는데, 그 행동을 기독교 용어로 ‘회개’라 한다. 회개란, 하나님이 우리한테 독단적으로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복귀 행위를 뜻하는 것이다. 회개란 기쁨의 잔치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고, 그 때에 관계 회복의 길이 열린다.
하나님께서 내 죄를 깨우치심은 나를 멸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유익하게 하고 자유를 얻게 하시려는 것이다. 자유를 얻기 위해, 교만한 마음이 아니라 무력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자신에 대해서 철저히 절망한 신자일수록, 은혜에 대한 확신을 절실히 고백한다. 즉 죄의식은 영혼이 하나님을 느끼는 정도를 재는 척도이다.
그리스도인은 이론상 죄에 대하여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죄는 끊임없이 삶 속으로 들어온다. 죄인인 인간은 실제로는 은혜의 허점을 악용해서 당장 욕심대로 행하고 나중에 회개하려는 속셈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바울은,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할 수 없고, 은혜 아래 있다고 편하게 죄를 지으면서 살아서는 안된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바울은, 그 근거에 대해서 로마서에 설명한다. 로마서 6장에서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를 남용할 수 없는 이유는,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더 이상 그 가운데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바울은 성도는 죄에 대하여 죽은 자로 스스로를 여기며, 죄가 우리 몸에 왕 노릇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죄인이 자신의 자유의 표출이라 주장하는 죄악 된 일들은(담배, 술, 마약, 포르노), 실제로는 인간의 가혹한 상전이 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꼭 필요한 것은 자아를 부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오히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가 되어, 그분을 우리의 참된 복종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또한 로마서 7장에서는, 바울은 신앙 생활을 결혼에 견주고 있다. 만약에 누군가 결혼 첫 날 밤 신부에게, ‘내가 앞으로 바람둥이로 살아도 당신이 용서할 기회가 더 많아져서 좋은 것 아니냐’ 라고 말한다면, 그런 사람은 뺨을 올려 쳐야 된다. 그것은 사랑의 기본도 모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결혼 관계보다 더 친밀한 관계를 우리에게 원하신다.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바로 알 때에, 하나님의 은혜를 남용하지 않고 은혜에 감격하며 살아갈 수 있다. 내적 변화는 관계를 필요로 하고, 사랑을 필요로 한다. 이것이, 예수님과 바울이 율법 전체를,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짧은 명령에 다 담으신 이유이다.
2. 책에서 한 마디
“선한 삶을 사는 최고의 이유는 스스로 선한 삶을 원하는 것이다. 내적 변화는 관계를 필요로 한다. 그것은 사랑을 필요로 한다. ‘사랑으로가 아니라면 선해질 자 누구인가?’ 어거스틴의 말이다. 그는 또 이런 유명한 말도 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라.’ 그는 이 말을 아주 진지하게 했다.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싶을 수 밖에 없다.”
3. 성경적 관점에서 보기
마태복음 22: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개역개정) 22:37 Jesus replied: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and with all your soul and with all your mind.' (NIV)
22:37–38 God’s entire law, in fact, can be reduced to this. At their core, the Ten Commandments are really a command to love God. While we frequently associate love with a feeling, it must be more than that because it’s something that can be commanded. 하나님의 전체 계명은, 이것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십계명은 핵심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명령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자주 감정과 연결시키지만, 사랑이라는 것은 명령될 수 있는 것이므로 그 이상이 되어야 합니다.
God wants a relationship with you. He wants you to love him, to passionately and righteously pursue his glory. So what does loving God look like? It requires all of your heart, soul, and mind—in other words, your entire being. … God will not share you with anyone. Your love for him must be comprehensive. 하나님께서는 당신과의 관계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그분을 사랑하고, 열정적으로 그리고 의롭게 그분의 영광을 추구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당신의 전 존재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어떤 크리스천들은 자신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분을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을 다른 이와 나누어 가지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분을 향한 당신의 사랑을 포괄적이어야만 합니다.
It’s easy to say, “I love God,” but words can
be cheap. So remember, love for God is consistently expressed when you obey his
commands (see John 14:15; 1 John 5:3). Align your decisions with his
expectations. ‘하나님을 사랑합니다’라고 말은 하기 쉽지만, 그러나 그러한 말 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러므로 기억하세요, 하나님에 대한 당신의 사랑은, 당신이 그분의 말씀에 순종할 때에 지속적으로 표현됩니다. 당신의 삶의 결정들은 그분의 기대와 일치시켜야 합니다.
Tony Evans, The Tony Evans Study Bible (Nashville, TN: Holman Bible,
2019), 1129.
4. RCB의 관점으로
얀시는 이 챕터를 통해서 은혜가 가지고 있는 ‘약점’을 보여준다.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를 악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사실은 반드시 회개를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신앙의 삶에서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인간은 죄에 대해서 죽었고, 더 이상 죄의 노예로 살수 없으며, 또한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 속에 있다는 바울 사도의 논증은, 우리가 왜 은혜를 남용해서는 안되는가에 대한 강력한 이유를 제시한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사랑’이라는 말조차 다분히 감상적이며 낭만적인 것으로만 이해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은, 본질적으로 전적인 희생과 순종을 동반한다. 인간이 가지는 사랑의 관계 속에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헌신하지 않으면 그 관계가 소원해질 수밖에 없다. 하물며,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모든 인간은, 이미 우리를 향해 모든 것을 주신 그분에게, 마땅히 나의 모든 것을 드려야 한다.
오늘도 우리는 마땅히 우리의 전 존재를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그것은 전적인 순종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러한 순종을 통해서, 이미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은혜를 더 깊게 깨닫게 될 것이다.
5. 적용
1) 당신은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죄인입니까? 아니면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죄인입니까?
2) 당신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까? 만약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분을 위해서 오늘 당신이 순종해야 하는 부분은 어떤 것입니까?
*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 크리스천 북클럽 인도자용 자료 모음
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2/10/blog-post_2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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