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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6일 일요일

나도 큐티(QT) 잘하고 싶다 3 - “마음의 태도”가 “묵상의 전부”입니다

 


시편 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1:2 But his delight is in the law of the LORD, and on his law he meditates day and night. 
 
큐티의 첫 단계는 묵상입니다. 대표적인 묵상의 구절은 시편 12절 말씀입니다.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에서 묵상의 원어적인 의미는, “조용히 외우다”, “숙고하다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말씀을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또 숙고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보통 이 단계를 관찰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런데 저는 단순히 관찰이라고 부르는 것을 썩 좋아하진 않습니다. 왜냐하면, 관찰이라는 말은 감정이 들어가지 않은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관찰이라는 표현은 마치 중립적인 입장에서 어떤 물건을 관찰한다는 그런 느낌을 받기 때문입니다.

큐티의 첫 단계에서 우리는 단순히 관찰하지 않고 묵상합니다. 무엇이 차이일까요?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들이고, 그 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말씀을 단순히 관찰하지 않고, 그 말씀의 의미를 깊이 파고들어가며 그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합니다. 그것은 마치 낯선 사람의 이야기를 사무적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 가장 사랑하는 연인의 달콤한 이야기를 온 마음을 다해서 내 마음에 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커피숍에서 연인들의 대화를 생각해보세요. 누구도 그 둘 사이를 막을 수 없습니다. 서로의 눈을 바라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단어 하나 문장 하나 놓칠 수 없습니다. 몇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립니다. 함께 손을 잡고 일어서면서도 다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쉬울 뿐입니다.

성도님들께도 그리고 목회자인 저에게는 공통적인 큰 질문이 있습니다. “왜 말씀을 배워도 사람이 변하지 않을까?” 물론 우리는 완벽하지 못한 존재들입니다. 완전한 성화는 주님의 나라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변화를 추구합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그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현실은 나에게는때론 변화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목회를 하면서 저의 결론은, 말씀을 대하는 그 사람의 태도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마음의 태도입니다. 많은 말씀을 들어도, 그리고 개인적으로 성경을 공부해도 한 사람이 변하지 않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에는 말씀을 대하는 그 사람의 태도 때문입니다.

말씀을 묵상한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닙니다. 논리적으로 말씀을 요약하고 정리한다고 해서 그것이 나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묵상한다는 것은 우리의 영적인 태도가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우리는 말씀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권능의 말씀 앞에서 나를 낮추는 것입니다. 가장 달콤한 그리고 가장 맹렬한 그 말씀의 폭풍 앞에 나를 내어 놓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제가 듣고, 하나님의 뜻이 그러하시다면 제가 변하겠다고 결단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말씀의 역사가 나의 내면에 일어납니다.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억지로 나를 변화시키시지 않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상하게도 우리의 마음을 억지로 변화시키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섬세한 사랑의 손길을 우리에게 발휘하십니다. 교만한 마음이 아니라, 겸손한 마음 가운데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말씀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의 태도가 묵상의 전부라고도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2: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개역개정) 2:12 We have not received the spirit of the world but the Spirit who is from God, that we may understand what God has freely given us. (NIV)

특별히 이러한 겸손한 마음의 태도는, “성령 하나님의 역사를 사모하는 마음과 이어집니다. 묵상의 가장 큰 적은, 자신의 지적인 능력에 대한 과신입니다. 고린도전서 212절 말씀에 따르면, 성령 하나님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십니다. 그런 면에서 묵상을 하는 주체가 나이며, 나의 지적인 능력을 십분 발휘해야 하지만 여전히 말씀을 깨닫게 하시며 감동케 하시며 적용하게 하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저 역시 장로교 목사이기 때문에 돌이켜 보면 이런 부분이 너무 약했습니다. 저도 너무 차갑고 지적으로만 말씀을 분석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묵상이 아니라 관찰에 가깝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정말 잘못된 길을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분들을 쉽게 만납니다. 아주 차갑고, 똑똑하고, 말씀을 잘 알지만 그러나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아무리 신앙 생활을 오래 했더라도 영적으로 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묵상하기 위해서는, 내 머리를 믿어서는 안 되고 기본적으로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당신의 머리를 믿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나의 지성은 말씀을 묵상하는 수많은 요소 중에 하나일 뿐이지 그것이 근본적인 동력은 아닙니다. 만약 내가 좋은 학교를 나왔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말씀 묵상을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가장 큰 오해입니다.

오직 성령님만이 묵상을 가능하게 하시는 인격이신 하나님이십니다.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말씀을 묵상하는데 있어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다른 대안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말씀을 읽고, 이해하고, 적용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이 반드시 도우셔야 합니다.

결론입니다. 이제 방금 하나님의 말씀을 당신은 마음의 태도 가운데 두가지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이렇게 두가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기도가 절로 나옵니다. “아버지 하나님, 겸손한 마음을 주시옵소서, 성령 하나님, 저를 깨닫게 하시고 주님의 뜻으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두가지가 당신의 영혼 깊이 준비되었다면 이제 본격적인 묵상의 기술 활용할 준비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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