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약
크리스천은 걸어가던
중에 “현세의 정책”에 살고 있는 “세속 현자”를 만난다. 그는 크리스천에게 좋은 충고를 주겠다 라고
말한다. 크리스천을 평가하면서 지금 자신의 수준에 맞지 않는 너무 높은 것을 추구하고 있으며, 짐을 벗기 위해서 위험하고 어려운 방법을 택할 것이 아니라 도덕 마을에 살고 있는 “합법”의 도움을 받으라고
조언한다. 혹시 합법이 집에 없으면 그의 아들 “예의”의 도움을 받으라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 크리스천이 그곳으로 가
보니, 합법의 집 근처 언덕은 너무나 가파르고 위험했으며 그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꼈다.
마침 전도자가
그를 다시 찾아와 도와준다. 전도자는 크리스천이 하나님의 권고를 물리치고 멸망의 길로 들어가 스스로
불행을 자초하고 있다고 책망한다. 그리고 합법의 정체에 대해서 밝혀주면서, 합법은 “도덕이란 도시의 교회”에만 나간다고 말한다. 십자가를 지지
않고서도 세속 교훈이나 신조가 어려움에서 그를 구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도덕은 그런 것들을
신봉한다는 것이다. “합법”은, 크리스천이 바른 길에서 벗어나게
한 점에서, 십자가를 꺼려하도록 유도한 점에서, 그리고 사망의
골짜기에 이르는 길로 가도록 유혹한 점에서 반드시 크리스천이 물리쳐야 하는 상대임을 가르쳐준다.
전도자는 크리스천에게
말하기를, 합법의 말대로 그가 행동한 것을 혐오해야 하며, 십자가의
짐을 싫어하도록 합법이 유도한 것을 혐오해야 하며, 합법의 말을 믿고 발길을 돌이킨 것을 혐오해야 하고, 또한 합법은 크리스천의 짐을 벗겨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으라고 말한다. 크리스천은
세속 현자를 만난 때를 저주하며 자신이 바보라고 외치고 자신의 행동에 깊은 부끄러움을 느꼈다. 전도자는
아직 그에게 희망이 있음을 말하며 다시 좁은 문을 향해 나아가되 옆길로 빗나가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말한다. 크리스천은
다시 제대로 된 길로 돌아가는데, 도중에 만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말을 걸지 않았고 혹 누가 말을 걸어와도
대답 조차 하지 않았다.
크리스천은 좁은
문에 도착한다. 그는 두드리면 열릴 것이라는 글귀에 따라 문을 두드리며 자신을 긍휼히 받아 줄 수 있는지
그리고 들어가도 되는지 묻는다. “선의”가 문을 열어주고 그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선의는 크리스천이
걸어온 여정을 물어보고 크리스천은 대답한다. 크리스천은 지금까지 여정이 크나큰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말한다. 선의는 그에게 말하기를, 크리스천의 조상들과 많은 예언자들, 그리스도와 또 제자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길인 똑바로 닦여진 좁은 길을 걸어가라고 한다. 좁은 길에는 길을 잃어버리게 할 만한 길들이 많이 연결되어 있지만, 그런
길들은 모두 구부러져 있고 폭이 넓기 때문에 쉽게 옳고 그른 길을 분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해 준다. 크리스천은
선의에게 짐을 벗겨 달라고 간청하지만 선의는 구원의 장소에 이를 때까지 참고 가라고 말한다. 그리고
해석자에게 가면 여러 훌륭한 것들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한다.
크리스천은 길을
떠나 해석자의 집에 이른다. 그는 크리스천에게, 여행길에
도움이 될 만한 유익한 것들을 보여준다. 해석자는 그를 먼저 비밀스러운 방에 데려간다. 거기에는 눈은 하늘로 향하고, 가장 좋은 책을 손에 들었고, 입술 위에는 진리의 법칙이 쓰여져 있는, 그리고 그의 배경에는 전
세계가 그려져 있고, 머리에는 황금 면류관을 쓰고 있는 한 분의 초상화가 있었다. 이 주인공은 천에 하나 있을까 말까 한 분이며, 크리스천이 가고자
하는 곳의 주인인 하나님이 허락한 유일한 인도자라고 설명한다.
또한 해석자는
성화된 일이 한번도 없는 인간의 마음을 먼지 투성이의 객실에 비유하면서 보여준다. 율법이 단지 쓸기만
해도 방은 더 더러워진다, 그러나 복음이 물을 뿌린 이후에 청소를 하였더니 깨끗하게 청소가 되었다. 이것은 율법과 복음의 기능을 비유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율법은
죄를 금지하기는 하지만 뿌리 뽑지는 못한다, 그러나 복음은 죄를 사라지게 하며 영혼을 믿음으로 정결하게
하여 영광의 왕이 거하시는 장소로 변화시킨다.
또한 작은 방으로
안내하여 욕망과 인내 형제를 보여준다. 욕망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들을 당장 달라고 말하고, 주어진 것은 제멋대로 낭비하고 즐기며 인내를 비웃고 조롱한다. 그러나
결국 누더기 조각만 남는다. 욕망은 현세의 인간들을 상징하고, 인내는
내세의 인간들 상징한다. 현세의 인간들은 지금 당장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갖는 것이 장차 다가올 세상의
복락에 대한 하나님의 증언보다 더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현세의 종말의 때에 그들은
누더기만 남게 될 것이며, 나중에 좋은 것을 차지하게 되는 인내가 욕망을 비웃어야 할 것이라고 해석자는
설명한다.
또한 한 불을
두고 물을 끼얹는 마귀와, 기름을 붇는 그리스도를 보여주신다. 불은
사람의 마음 속에 작용하는 은혜이다. 마귀는 불을 끄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몰래 그리고 끊임없이
이미 넣어 준 은혜를 보전하시기 위하여 불 위에 기름을 끼얹으신다. 또한 아름다운 궁전으로 안내를 받는다. 많은 이들이 들어가고 싶어 하면서도 문간에서 서성거리고만 있었다. 그러나
한 사내는 자신의 이름을 적은 후에 용맹하게 싸워서 궁전에 들어가 결국 금빛 옷을 입게 되었다.
또한 크리스천은
쇠창살이 달린 감방에 갇혀 있는 한 남자를 만난다. 그는 과거에 훌륭한 신자였지만 그는 깨어 근신하지
않았고 세상적 정욕에 얽매였다. 그는 늘 하나님을 거역하고 노엽게 하였으며 이미 그의 마음도 너무나
굳어져 있었기에 회개할 수도 없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정욕을 위해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다시 못 박았고, 그분의 인격과 의로우심을 경멸하고, 그분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생각하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함으로 영원한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세상의
정욕과 쾌락과 헛된 부귀 영화로 즐거움과 행복을 얻게 되리라 믿었지만, 그것은 결국 자신을 삼키는 것들이
되었다고 말하였다.
또한 크리스천은
한 방에서 꿈을 꾼 사람을 만났다. 그는 심히 떨며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는 꿈에서 세상의 마지막 때를 보았는데, 하늘의 암흑과 번개와
구름과 불길들을 보았고. 구름 속의 한 사람이 죽은 자들을 깨워 심판하는 것을 보았다. 그의 부름을 받고 어떤 이들은 몹시 기뻐하였고 어떤 사람들은 두려워 떨면서 숨기 위해서 애썼다. 심판의 결과에 따라서 어떤 이들은 무시무시한 지옥으로 떨어졌다. 또
어떤 이들은 구름 위로 들려져 인도되었다.
그는 꿈에서
깬 이후에 심판의 날을 생각할 때에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음을 알았고, 재판장의 분노한 표정 앞에서
숨지도 못했다고 말한다. 해석자는 크리스천도 이러한 것들을 신중히 생각해 보았는지 물어보고, 그는 자신을 반성하고 생각할 때마다 희망과 두려움을 번갈아 느꼈다고 말한다.
해석자는 크리스천을 격려해주고 그는 다시 길을 떠나게 된다.
2. 책에서 한마디
“자, 이제껏 보았던 모든 광경들을 마음에 깊이 명심하여 당신의 여정에 많은
격려와 자극이 될 수 있도록 하십시오.”
3. 성경적 관점에서
보기
- 합법과 예의로는, 그리고 단지 율법으로는 구원 받을 수 없다는 측면에서
히브리서 12:21 그 보이는 바가 이렇듯 무섭기로 모세도 이르되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 하였느니라 12:21 The sight was so terrifying that Moses said, "I am
trembling with fear." 12:25 너희는 삼가 말씀하신 이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이를 거역한 그들이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부터 경고하신 이를 배반하는 우리일까보냐 12:25 See to it that you do not refuse him who speaks. If they
did not escape when they refused him who warned them on earth, how much less
will we, if we turn away from him who warns us from heaven?
모세는 신명기 9장 19절에서 금송아지 사건 이후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실
때에 두려움을 표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음을 말씀하신 것은, 시내산에서
선포된 율법보다 훨씬 더 집중해야 하며 또한 믿음으로 들어야 합니다. =>RCB 우리의 복음에 대한 집중력은
가장 탁월한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는가? 십자가를 그저 덤덤하게 받아들이는가 아니면 그 가치를 알아가기 위해서 더 애쓰고 있는가?
John
D. Barry et al., Faithlife Study Bible (Bellingham, WA: Lexham
Press, 2012, 2016), Heb 12:21.
R.
C. Sproul, ed., The Reformation Stud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2015
Edition) (Orlando, FL: Reformation Trust, 2015),
2220.
히브리서 10:38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10:38 But my righteous one
will live by faith. And if he shrinks back, I will not be pleased with
him."
하박국 2장 4절에서 인용한 말씀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하여 두 가지 반응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지속적인 믿음으로 사는 것에 대한 요구는 히브리서의 특징이며, 두려움이나 무관심으로 인해서 불신을 향하여 물러서는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RCB 성도의 믿음의 본질이라는 것은 포기하지 않는 것이며 계속 전진해 나가는 것이다, 과연 나의 현재 믿음의 상태는 어떠한가?
Douglas
J. Moo, “The Letters and
Revelation,” in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ed. D. A. Carson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2216.
갈라디아서 6:12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함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박해를 면하려 함뿐이라 6:12 Those who
want to make a good impression outwardly are trying to compel you to be
circumcised. The only reason they do this is to avoid being persecuted for the
cross of Christ.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할례를 강요하는 자들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구원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는 이유로 핍박을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하였습니다. =>RCB 십자가를 가치 있게 여기는가는, 그것으로 인해 핍박이 일어나는 상황 속에서 그 사람의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Bruce
Barton et al., Life Application New Testament Commentary
(Wheaton, IL: Tyndale, 2001), 795.
갈라디아서 3: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3:10 All who rely on observing the law are under a curse, for it
is written: "Cursed is everyone who does not continue to do everything
written in the Book of the Law."
바울 사도는, 신명기 27장 26절 그리고 28장 58절을 인용하면서,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율법의 행위에 의지하는 모든 사람은 율법의 저주 아래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 저주는, 이방인을 포함하여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들에게 오는 아브라함의 축복과는 정 반대가 되는 것입니다. =>RCB 성경이 보여주시는 가장 확실한 것은, 율법으로 자신의 의로움을 증명하려는 자는 반드시 결국 저주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스스로를 의롭다 증명하고자 하는 자는 더 큰 영혼의 고통을 경험할 뿐이다!
John
D. Barry et al., Faithlife Study Bible (Bellingham, WA: Lexham
Press, 2012, 2016), Ga 3:10.
갈라디아서 4:22 기록된 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4:22 For it is
written that Abraham had two sons, one by the slave woman and the other by the
free woman. 4:24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라 4:24 These things may be taken figuratively, for the women
represent two covenants. One covenant is from Mount Sinai and bears children
who are to be slaves: This is Hagar. 4:30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여종의 아들이 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4:30 But what does the Scripture say? "Get rid of the slave
woman and her son, for the slave woman's son will never share in the
inheritance with the free woman's son." 4:31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 있는 여자의 자녀니라 4:31 Therefore, brothers, we
are not children of the slave woman, but of the free woman.
하갈은 믿지 않는 예루살렘의 대표자입니다. 사라는 믿는 예루살렘의 대표자입니다. 왜냐하면 사라의 아들 이삭이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뢰의 결과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믿는 예루살렘의 시민들은 그들이 의롭게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약속만을 신뢰합니다. =>RCB 성경이 보여주시는 큰 틀이
바로 율법과 복음의 대조이다, 이 틀을 잘 기억하고 삶에 적용해야
한다!
R.
C. Sproul, ed., The Reformation Stud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2015
Edition) (Orlando, FL: Reformation Trust, 2015),
2081.
- 십자가의 복음이 가장 귀한 것이라는 측면에서
히브리서 11: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11:25 He chose to be
mistreated along with the people of God rather than to enjoy the pleasures of
sin for a short time. 11: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11:26 He
regarded disgrace for the sake of Christ as of greater value than the treasures
of Egypt, because he was looking ahead to his reward.
그리스도처럼 모세도 바로의 궁정에서 누리는 세상적인 쾌락을 받아들이는
대신에,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치욕을 겪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상
주심에 대한 기대는 믿음을 견디기 위해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동기입니다. =>RCB 십자가를 따른다는 것은 사실상
치욕을 경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혹시 나는 예수님 잘 믿으면 내가 잘되고 사람들이 떠받들어주는 착각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RCB 상주심은 우리를 어린이 취급하는 미숙한 방식이 아니다, 성경은 오히려 상급에 대한 절대적인 확신을 더욱 불어넣어 주신다, 마치 천로역정의 크리스천이 그러했던 것처럼 처음부터 이것을 확고히 가지고 있어야 한다!
Earl
D. Radmacher, Ronald Barclay Allen, and H. Wayne House, The Nelson Study Bible: New King James Version
(Nashville: T. Nelson Publishers, 1997), Heb 11:26.
- 크리스천의 길은 항상 좁은 길임을 반복해서 등장한다는 측면에서
마태복음 7: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7:14 But small is the gate and narrow the road that leads to
life, and only a few find it.
예수님께서는 주님을 따르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계속해서 강조하셨습니다. 구원은 오직 은혜로 말미암는 것이지만 쉬운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진리에 대한 지식, 회개, 그리고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섬기는 것, 그리고 그분을 기꺼이 따르고자 하는 의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RCB 얼마나 탁월한 표현인가? 오직 은혜로 받는 구원이 나에게 결코 쉬운 것이 아님을 우리는 왜 잊고 있는가? 세속 현자조차 그 길이 죽음 그 자체라는 것을 다 알고 있었는데, 어찌하여 이 시대 성도들은 종교의 소비자가 되어 마치 기독교가 꽃 길인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는가?
John
F. MacArthur Jr., The MacArthur Study Bible: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ashville, TN: Thomas Nelson Publishers, 2006), Mt 7:14.
- 성도에게는 참된 목자가 필요하다는 측면에서
고전 4:15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4:15 Even though you have ten
thousand guardians in Christ, you do not have many fathers, for in Christ Jesus
I became your father through the gospel.
바울은 그저 주인의 자녀를 돌보는 종 정도의 역할인 고린도 교사와 자신을 구별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을 위한 영적인 아버지였습니다. 그는 최종 책임을 갖고 있었고 그의 모범을 따르도록 명령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습니다. =>RCB 목자는 겉보기에는 한 없이 초라해 보일 수 있다, 아마도 바울 사도가 그러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바울 사도는 그가 영적인 부모임을 평생동안 잊지 않았다, 산고의 고통을 옆에서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그것은 어머니 자기 자신의 목숨을 거는 것이다.
Earl
D. Radmacher, Ronald Barclay Allen, and H. Wayne House, The Nelson Study Bible: New King James Version
(Nashville: T. Nelson Publishers, 1997), 1 Co 4:15.
갈 4: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4:19 My dear children, for whom I am again in the pains of
childbirth until Christ is formed in you,
갈라디아 성도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것은 마치 산고를 겪는 것 같았습니다. 기쁨이
있었지만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것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느꼈습니다. =>RCB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는 성숙의 순간까지 참 목자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그것은 얼마나
고된 길인가?
New Living Translation Study Bible
(Carol Stream, IL: Tyndale House Publishers, Inc., 2008), Ga 4:19.
- 성도는 현세의 욕망을 멀리하며 인내해야 한다라는 측면에서
고후 4: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4:18 So we fix our eyes not
on what is seen, but on what is unseen. For what is seen is temporary, but what
is unseen is eternal.
바울이 주장하는 핵심은, 바울 자신이 고난 가운데에서도 눈으로 볼 수 없는
영원한 것들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입니다. =>RCB 완성될 하나님 나라의 완전함을
덜 강조해서 현재 한국 교회가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덜 강조해서 혹은 그것의 영광을 잊어버리고
살기에 지금의 모습이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Joel
R. Beeke, Michael P. V. Barrett, and Gerald M. Bilkes, eds., The Reformation Heritage KJV Study Bible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4), 1675.
- 자신이 참된 성도라고 착각할 수 있다라는 측면에서
누가복음 8:13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깐 믿다가 시련을 당할 때에 배반하는 자요 8:13 Those on the rock are
the ones who receive the word with joy when they hear it, but they have no
root. They believe for a while, but in the time of testing they fall away.
여기서 말하는 믿음이라는 것은, 아마도 구원의 믿음이 아니라 일시적이고 단지
지적인 믿음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뿌리가 없고 열매를 맺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살아 있는 믿음에 대한 시험이 바로 인내입니다. 진리의 길에서 결국
벗어난 사람은 원래부터 하나님의 가족도 아니었고, 또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은 적이 없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RCB 살아 있는 믿음과 성도의 인내라는 것은 반드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큰 위로이다, 지금
견디고 인내하고 있다면 당신은 참된 성도이다, 그러므로 절대로 믿음의 삶을 포기하지 말라!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1968.
R.
C. Sproul, ed., The Reformation Stud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2015
Edition) (Orlando, FL: Reformation Trust, 2015),
1800.
히브리서 6:4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6:4 It is impossible for those who have once been enlightened,
who have tasted the heavenly gift, who have shared in the Holy Spirit, 6: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6:5 who have
tasted the goodness of the word of God and the powers of the coming age, 6: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6:6 if they fall away, to be brought back to repentance, because
to their loss they are crucifying the Son of God all over again and subjecting
him to public disgrace.
신앙 공동체를 떠나는 사람은 겉 모습이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처음부터 믿음의 가족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고는 다른 사람의 회복의 진실성에 대해서 추측하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더 주님께 가까이 매달리도록 촉구하는 것입니다. 또한
다른 이들을 위해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극심하게 반대하는 불신자가 비록 죽음 바로 앞에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를 구원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RCB 누군가가 믿음을 버리는 것을 보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것이다,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실족한 형제 자매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며, 가장 최악의 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죄인을 구원하실 수 있음을 기대하며 행동하는 것이다!
R.
C. Sproul, ed., The Reformation Stud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2015
Edition) (Orlando, FL: Reformation Trust, 2015),
2205.
- 타락한 이는 성도에게 큰 경계가 된다는 측면에서
데살로니가전서 5:6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5:6 So then, let us not be like others, who are asleep, but let
us be alert and self-controlled.
성도는 장래에 일어날
일을 알고 있기 때문에 영적으로 깨어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물론 모든 성도들이 천국에 갈 준비가 되어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 순간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바칠 준비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삶은
그리스도에 의해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RCB 내 주변에 영적으로
잠들어 있는 이들이 많이 있다고 해서, 나까지 잠들어야 할 필요는 전혀 없다, 왜 굳이 자꾸 신경을 쓰는가? 우리는 그저 말씀대로
나 자신을 주님께 온전히 드리며 살아가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 아닌가?
Earl
D. Radmacher, Ronald Barclay Allen, and H. Wayne House, The Nelson Study Bible: New King James Version
(Nashville: T. Nelson Publishers, 1997), 1 Th 5:6.
- 예수님의 재림의 생생함과 그것에 대하여 희망과 두려움으로 깨어 있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말라기 3:2 그가 임하시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가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3:2 But who can
endure the day of his coming? Who can stand when he appears? For he will be
like a refiner's fire or a launderer's soap.
이 말라기 말씀은 메시야의 재림을 언급합니다. 재림은 심판과 정결케 하시는 재림이 될 것입니다. =>RCB 재림은 반드시 일어나며, 그때에는 심판이 있을 것이다, 그 절박함을 마음 속에 생생하게 그리며 살아가고 있는가?
Earl
D. Radmacher, Ronald Barclay Allen, and H. Wayne House, The Nelson Study Bible: New King James Version
(Nashville: T. Nelson Publishers, 1997), Mal 3:2.
요한복음 5:28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5:28 "Do not be amazed at this, for a time is coming when
all who are in their graves will hear his voice
예수님께서 마지막 날에 죽은 모든 사람을 불러 일으키실 것이며, 예수님은 나사로를 살리심으로 이 권위를 미리 보여주셨습니다. =>RCB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기적의 능력들을 완전히 드러내실 마지막 날은 얼마나 놀랍고도 충격적인 날이 될 것인가?
D.
A. Carson, “The Gospels and
Acts,”
in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ed. D. A. Carson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1904.
마태복음 13: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13:30 Let both grow together until the harvest. At that time I
will tell the harvesters: First collect the weeds and tie them in bundles to be
burned; then gather the wheat and bring it into my barn.'"
가라지의 비유를 통해서, 우리가 현재 신자와 불신자를 분리하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전적으로 주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RCB 이것은 매우 좋은 관점이 아닌가? 누가 진짜이고 가짜인지 구분하는 것은 주님께 속했다, 주님께
속한 것은 주님께 맡기고, 이 짧은 인생 나는 최선을 다해 나의 사명을 감당하라!
Kenneth
L. Barker, ed., NIV Study Bible, Fully Revised Edition.
(Grand Rapids, MI: Zondervan, 2020), 1666.
데살로니가전서 4: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4:16 For the
Lord himself will come down from heaven, with a loud command, with the voice of
the archangel and with the trumpet call of God, and the dead in Christ will
rise first. 4: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4:17 After that, we who are still alive and are left will be
caught up together with them in the clouds to meet the Lord in the air. And so
we will be with the Lord forever.
주님의 재림은 결코 은밀한 것이 아니며 공개적으로 일어날 것입니다. =>RCB 마지막 날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는가? 그 가슴 벅차고 뿌듯하고 기쁨으로 넘칠 날을 소망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Kenneth
L. Barker, ed., NIV Study Bible, Fully Revised Edition.
(Grand Rapids, MI: Zondervan, 2020), 2110.
데살로니가후서 1:7 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 1:7 and give relief to you who are troubled, and to us as well.
This will happen when the Lord Jesus is revealed from heaven in blazing fire
with his powerful angels. 1:8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1:8 He will punish those who
do not know God and do not obey the gospel of our Lord Jesus. 1:9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1:9 They will be punished with everlasting destruction and shut
out from the presence of the Lord and from the majesty of his power 1:10 그 날에 그가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받으시고 모든 믿는 자들에게서 놀랍게 여김을 얻으시리니 이는 (우리의 증거가 너희에게 믿어졌음이라) 1:10 on the day he comes to be glorified in his holy people and
to be marveled at among all those who have believed. This includes you, because
you believed our testimony to you.
예수님께서 하늘로부터
다시 오실 때에 공의로운 심판이 온전하게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은 주님이시며, 최종 심판을 집행하는 분이십니다. =>RCB 심판에 대한 진지한 인식
자체가 없는 이 시대에, 이 말씀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예수님께서
불꽃 가운데 나타나실 때에 나는 과연 어떤 표정으로 어떤 마음과 태도로 그분을 맞이할 것인가?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2316.
이 심판은 하나님을 모르고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은 끝없는 형벌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경험하게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상을 주실 것입니다.
Douglas
J. Moo, “The Letters and
Revelation,” in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ed. D. A. Carson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2161.
4. RCB의 관점으로
천로역정은 단순히
천국으로 가는 여정의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적인 신학적 논쟁과 도전을 치밀하고 탁월하게 그려낸 책이다. 크리스천은 천국으로의 여정 속에서 수 많은 경험들을 하고 그 과정을 통해 성경의 진리들을 깊이 깨닫는 것이다. 번연은 세속 현자의 충고를 아주 세세하게 기록해 놓았다. 여러 장황한
표현들에 불구하고 핵심은 하나이다. 굳이 죄의 문제를 어렵게 해결하지 말고 쉽게 가라는 것이다. 그는 크리스천이 무모한 길을 가고 있으며, 합법적이고 예의 넘치는
삶을 사는 것만이 죄의 짐을 벗는 방법이라고 조언한다. 또 다른 표현으로는 율법을 잘 지켜서 죄의 짐을
벗으라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도덕이라는 도시로 찾아가니 실제로는 거기에는 불타는 언덕이 기다리고
있었다.
인간이 어찌
합법적인 삶으로 죄의 짐을 벗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 앞에서 그것은 불가능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인간의 도전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진노를 살 뿐이다. 모든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그는 여전히 죄인이다. 율법은 선한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의 짐을 어떻게 벗을 것인가의 관점에서는 날카롭게 대조된다. 그러므로 그저 도덕적으로 율법
몇 개를 지키고는 마치 하나님 앞에 인정 받는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태도는 필연적으로 십자가를 거절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너무나 혐오스러운 것임을 전도자의 입을 빌려 번연은 강조한다.
해석자는 크리스천에게
귀한 것들을 보여주며, 그것을 반드시 마음에 깊이 명심하라고 말한다.
여기에서부터 큰 걸림돌을 발견한다. 과연 우리의 마음은 무엇으로 가득채워져 있는가? 아무리 귀한 책을 읽고 영적인 지식과 감동을 얻는다 하더라도, 그것을
마음에 깊이 집어 넣어 묵상하고 붙들고 명심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유익이 있는가? 그저
순간의 즐거움에 그리고 실상 쓸데 없는 것을 마음에 명심하면서 자신의 삶을 바치는 현대인에게 있어서 해석자의 명령은 진정으로 큰 도전이다.
초상화는 참된
목자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은 목회자를 의미할 수 있겠다. 해석자는
그 초상화의 주인공이 천에 하나 있을까 말까 한다라고 말한다. 마음에 울컥하는 표현이다. 세상에는 스스로 양 무리의 목자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번연이 그려내는 것처럼, 말씀에 바탕한 신적인 권위와 위엄을 그리고 특별히 영혼을 해산하는 아픔과 경험을
가진 자는 과연 몇이나 될 것인가?
그는 머리에
황금 면류관을 쓰고 있다. 주님은 반드시 그에게 보상하신다고 약속하시기 때문이다. 주님의 상 주심이야 말로 가장 큰 삶의 원동력이다. 그런데 왜 이
시대는, 마치 상을 받기 위하여 달려가는 신앙의 여정을 유치한 것이라 받아들이는가? 왜 하늘의 상급을 강조하지 않는가? 그것은 혹시라도 이 땅의 즐거움에
취하여서 하늘의 상급의 가치를 오히려 폄하하기 때문은 아닌가?
번연은 마음
속의 은혜를 계속 유지시키기 위하여 기름을 끼얹으시는 그리스도를 보여준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성도의
영혼 안에 실제로 일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생생한 묘사이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확신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도대체 어디에서 진정한 삶의 원동력과 위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인가? 십자가는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며,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진정한 보화이다. 신앙의 성숙의 가장 중요한
표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 존귀함을 날마다 새롭게 깨닫고 감격하는 것이다. 삶의 마지막 날에, 나의 전 존재를 압도하는 십자가에 대한 가장
탁월한 이해와 그 감격이 우리 각자에게 있기를 소망한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그렇게 은혜가 임한자가 어떠한 삶의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놀랍게도 아름다운
성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자들이 많으나, 문을 막고 있는 이들을 보고 두려워하며 그저 문 앞에서 웅성거릴
뿐이다. 그런데 한 남자가 조금도 굴하지 않고 용감하게 달려든다. 치열하게
싸우고 많은 상처를 입는다, 그러나 그는 앞으로 또 앞으로 나아가며 마침내 궁전 안으로 들어가 금빛
옷을 입게 되었다. 이것보다 더 생생하고 가슴 벅찬 장면이 어디 있는가? “용기 있는 자”라는 타이틀이야 말로 성도의 진정한 정체성이 아닌가?
그리스도를 욕되게
하는 자는 결코 돌이킬 수 없다. 누군가는 하나님은 모든 죄를 용서하시는 분이 아닌가 라고 반문할 수
있겠으나,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이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스스로 거절하고 그분을 모욕한다면, 그가 지옥에 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게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그가 처음에는 사람들에게도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도 인정 받는 훌륭한
신자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세상의 정욕과 헛된 부귀 영화를 추구하면서 하나님과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그 긴 시간 동안 그에게 계속 기회를 주신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는 그 모든 기회를 스스로 저버린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삶의 마지막까지 그리스도 안에서 항상 거하기를
힘쓰며 스스로를 점검해야 한다. 참된 성도 그리고 자만이라는 두 단어는 결코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삶의 기회들을 결코 방탕하게 사용해서는 안된다. 이미
온전히 이루신 구원을 마음에 항상 기억해야 한다. 은혜를 끊임없이 부으시는 그리스도를 의지해야 한다. 진실한 회개로 나를 돌이키며 흔들리지 말고 믿음의 담대한 실천을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영적으로 깨어 있는 자의 마땅한 삶의 태도인 것이다.
꿈을 꾼 사람의
그 큰 떨림이 나의 떨림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날은 세상이 뒤집어지는 날이며, 모든 것이 밝히 드러나는 날이다. 모든 인간은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이다. 나는 과연 나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에, 어떤 모습으로 그분을 맞이할 것인가? 감격과 눈물과 흥분으로 목이
터져라 환호성을 지를 수 있을 것인가?
과연 나는 마지막
날을 마음에 진실하게 깊이 품고 있는 사람인가에 대해서 진지하게 질문을 던지게 된다. 마지막 날을 잠시만
묵상해도 심장이 두근거리고 가슴이 뜨거워지는 사람이 되고 싶다. 번연이 바로 그것을 위하여 천로역정을
기록한 것이 아닌가? 더 생생하고 더 간절하게 더 절박하게 그리고 더 큰 기대로 재림의 때를 기다리기
원한다.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분의 의로움을 나의 것으로 받은 것이 마지막 때를 준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날에 칭찬 받을 자로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하여, 오직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나의 마지막 날들을 살아갈 것이다.
5. 적용
1)
크리스천이 해석자의
집에서 경험한 것 중에 당신이 가장 마음에 와 닿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2)
당신은 지금까지의
크리스천의 여정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당신과 크리스천을 비교한다면 크리스천의 어떤 부분을
더 닮아갈 수 있겠습니까?
* "천로역정" 크리스천 북클럽 인도자용 자료모음 & 참여자 준비 자료 예시
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3/12/blog-post.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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