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약
종교적 체험이 중요하지만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리이다. 하나님 편에 서겠다고 결단할 때에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함께
하신다. 하나님의 영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령을 받은 이에게 일어나는 가장 중요한 변화는 무엇인가?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메시아라고 한 그 고백 위에 자신의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 당시 교회라는 단어는 사람들의
무리, 회합 또는 공동체를 뜻하는 단어였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후에 교회가 시작되었다.
예수님은 겨우 3년 남짓 제자들을 가르쳤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그의 제자들은
보잘 것 없는 사람들에 불과했다. 기독교는 초기에 유대교에 의해 이단이라고 불리웠고 이후에는 로마 제국에
의해 탄압과 박해를 받았다. 그런데 어떻게 이들의 공동체가 든든하게 세워지게 되었는가?
이들은 자신들을
부를 때에,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의 부활을 목격한 증인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것을 생명을 걸고 증언했다. 그리고 이 증언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져
결국 로마 제국은 기독교를 공인하게 되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실제로 이 세상에 임했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오신 성령을 따라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아가려고 했다. 이 공동체는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중심으로 움직였다. 잉여 재산을
처분해 공동체 안에 가난한 자를 도왔고, 여성을 존중하고 하나님 나라의 공동 상속자로 여기며, 노예를 형재로 대하였다.
그들은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하나님 나라의 원리대로 살겠다고 결단했다. 그래서 사랑과 공의에 입각해서 새로운 방식으로
살겠다고 결단한 것이다. 이러한 교회를 보고 사람들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인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가 부활했고, 그가 온 세상의 주인이다 라는 증언을 사실로 받아들였다.
그러므로 참된 기독교는, 단순히 무조건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전하는 것이 아니고, 무조건적인
영생을 보장하는 종교도 아니며,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었음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부인하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받아들여 살아가려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교회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공동체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특성과 동일한데,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희생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와 정의에 기초하는 것이다. 예수의 사랑을 배우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나눌 수 있는 진정한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시간과 가진 것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 하나님 나라가 완전히 임할
때까지 비진리 그리고 유사 진리와 싸워야 하기 때문에 세상을 공부해야 한다.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도모하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공동체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작은 일이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하는 것이 성도의 특징이다. 그러므로 시작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갔다는 것은 단순히 신앙 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 안에서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성장해 나가야 한다. 교회는
사랑의 훈련장이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것은 영향력의 크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서부터 주님의 사랑을 배우며 영적 성숙이 깊어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마지막에
세상을 완전히 회복하실 때까지 자신에게 주어진 것으로 주어진 사람들을 섬기며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사역이다.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우리가 사는 세상의 한 부분에 빛을 비추며
부패를 막고 짠 맛을 내면 된다. 자신이 잘하는 것과 하고 싶은 일들 속에서 자신과 연관된 영역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으면 된다. 이것이
세상을 회복하고 계신 메시아와 함께 하며 세상을 회복하는 일을 계승하는 자들이다.
2. 책에서 한마디
“성령을 선물로 받고 예수를 따르는
자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정체성이 같은 사람들의 공동체에 들어가 사랑하는 법과 정의롭게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3. 성경적 관점에서
보기
마태복음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16:18 And I tell you that you
are Peter, and on this rock I will build my church, and the gates of Hades will
not overcome it.
As it had been for centuries (e.g., Thucydides, Pel. 1.87; Xenophon, Hell. 1.7.9; Aristotle, Ath. pol. 43.4), so too in the world of Jesus and the Gospel writers, ekklēsia was used of any meeting or gathering (e.g., 1 Macc 3:13), including of a political body, and a crowd or unruly gathering of people (e.g., Josephus, Life 268; Ant. 12.164; 19.332; cf. Acts 19:32, 39–40). 수세기 동안 그랬던 것처럼, 예수님과 복음서 기자들의 세계에서도 에클레시아는 정치적 단체, 군중이나 무질서한 사람들의 모임 등 모든 모임에서 사용되었습니다.
G. H. Twelftree, “Church,” ed.
Joel B. Green, Jeannine K. Brown, and Nicholas Perrin, Dictionary of Jesus and the Gospels, Second Edition (Downers Grove,
IL; Nottingham, England: IVP Academic; IVP, 2013), 138.
I will build demonstrates that Jesus is ultimately responsible for the growth and expansion of the church. The word church was the word used in the OT to describe sacred Jewish assemblies. Jesus’s use of the word implies that his followers constitute the new Israel, the true people of God who submit to his kingly reign. 내 교회를 세우리니 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교회의 성장과 확장에 궁극적으로 책임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교회라는 단어는 구약에서 유대인의 신성한 모임을 묘사하는데 사용되었단 단어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단어를 사용하신 것은, 그분의 추종자들이 왕의 통치에 복종하는 참된 하나님의 백성인 새 이스라엘을 구성한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Charles L. Quarles, “Matthew,” in CSB Study Bible: Notes, ed. Edwin A. Blum and Trevin Wax (Nashville, TN: Holman Bible Publishers, 2017), 1528.
The Church : The Greek word for “church” is ekklēsia, which means “assembly.” The first two occurrences of this word in the New Testament are spoken by Jesus in Matthew’s Gospel. In the first instance (Matt 16:18), Jesus says “I will build my church.” This reference can be theologically connected to the Old Testament notion of the “assembly of Israel” used in reference to the Mount Sinai event where God visits His people (Exod 19–20). From that day on, God continued to meet with His people as they assembled around the tabernacle and later the temple—linking Israel’s experience of God’s presence with their being in assembly. 교회를 뜻하는 헬라어는 “에클레시아”로 “모임”을 의미합니다. 신약 성경에서 이 단어가 처음 두 번 나오는 곳은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첫 번째 사례에서 예수님은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언급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방문하신 시내산 사건과 관련하여 사용된 “이스라엘의 회중” 이라는 개념과 신학적으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그날부터 하나님께서는 성막 주위에 모인 이스라엘 백성을 계속 만나셨고, 이후 성전에서는 이스라엘이 모일 때에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과 연결시키셨습니다.
In Matthew 16:18, Jesus proclaims that He will create a similar assembly—what we know of as the church. This is why Jesus’ next reference to the church (Matt 18:15–20) is followed by the promise “where two or three are gathered in my name, I am there in the midst of them” (Matt 18:20). The fundamental idea of church is that it is the assembly of people gathered in Jesus’ name—and Jesus is present among them. Similarly, Paul speaks of Jesus being present when the church assembles for church discipline (1 Cor 5:4), communion (1 Cor 11:27–32), and worship (1 Cor 14:23–25). God’s unique presence in and through the church, being the group of believers, makes the church a way that people can experience God’s power and glory (Eph 3:21; compare Heb 10:19–25; 12:22–24). 마태복음 16장 18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비슷한 모임, 즉 우리가 교회라고 알고 있는 모임을 만들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교회에 대해 다음으로 언급하신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는 약속이 이어지는 이유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사람들의 모임이며,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 임재하신다는 것이 교회의 근본적인 개념입니다. 마찬가지로 바울은 교회가 권징, 친교 예배를 위해 모일 때 예수님께서 함께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신자들의 모임인 교회 안에 그리고 교회를 통해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독특한 임재는 교회를 사람들이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경험할 수 있는 통로로 만듭니다.
John D. Barry et al., Faithlife Study Bible (Bellingham, WA: Lexham Press, 2012, 2016).
갈라디아서 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3:27 for all of you who were baptized into Christ have clothed
yourselves with Christ. 3: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3:28 There is neither Jew nor Greek, slave nor free, male nor
female, for you are all one in Christ Jesus.
3:28 neither Jew nor Greek Paul emphasizes that the standard categories that often divide people—race, social status, gender—do not apply to those who are in Christ. It is not that such criteria cease to exist; rather, these distinctions are not grounds for exclusion from the life that God offers to all people in Christ. Because God is one (v. 20), He seeks to establish through Christ a single, unified family.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 바울은 인종, 사회적 지위, 성별 등 사람들을 나누는 표준 범주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강조합니다. 그러한 기준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구분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생명에서 배제할 근거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분이시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의 연합된 가족을 세우려고 하십니다.
John D. Barry et al., Faithlife Study Bible (Bellingham, WA: Lexham Press, 2012, 2016), Ga 3:28.
요한복음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13:34 "A new command I give you: Love one another. As I
have loved you, so you must love one another.
13:34 new command … As I have loved you. The standard is no longer how we love ourselves (Lev 19:18; Matt 22:37–40) but how Jesus loves us (see notes on 1 John 2:7–8). Jesus displays his love in foot-washing (see vv. 1–17 and notes) and supremely in the cross (see 15:13). 사랑의 기준은 더 이상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방식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시는가 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발을 씻기심으로, 그리고 십자가에서 그분의 최고의 사랑을 보이셨습니다.
D. A. Carson, “The Gospels and Acts,” in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ed. D. A. Carson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1923.
마태복음 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5:13 “You are the salt of the
earth. But if the salt loses its saltiness, how can it be made salty again? It
is no longer good for anything, except to be thrown out and trampled underfoot.
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5:14 "You are the light of the world. A city on a hill
cannot be hidden.
5:13 SALT. Salt was a very valuable
commodity in ancient times. It was not only used to flavor foods, but it was
indispensable in preserving them. Salt solutions were used medicinally,
specifically in washing newborn infants. Rock salt was also used as a fertilizer.
Salt’s value then came from these many uses. Jesus was then attesting to the
value of his disciples in the world. The disciples are to flavor the world
around them with God’s love and direction, and they are to preserve that which
is valuable in life from the spoilage of sin and hate. 소금은
고대에 매우 귀중한 상품이었습니다. 그것은 음식의 맛을 내는 데 사용될 뿐만 아니라 음식을 보존하는
데에도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었습니다. 소금 용액은 의학적으로, 특히
신생아를 씻을 때 사용되었습니다. 암염도 비료로 사용되었습니다. 소금의
가치는 이렇게 다양한 용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가치를 확언하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인도하심으로 주변 세상에 맛을 내고, 죄와 미움의 부패로부터 인생에서 가치 있는 것을 보존해야 하는 것입니다.
5:14 LIGHT. Light is another basic element of life. The function of light is to illuminate the darkness. This is an image for the truth believers are to bring to the world. OF THE WORLD. Israel was to be a light for the Gentiles (Is 49:6). That function is now passed on to the followers of Jesus (Jn 8:12). 빛은 삶의 또 다른 기본 요소입니다. 빛의 역할은 어둠을 밝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자들이 세상에 전해야 할 진리에 대한 이미지입니다. 이스라엘은 이방인의 빛이 되어야 했습니다. 이제 그 기능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전달됩니다.
Lyman Coleman, ed., Life Connections Study Bible (Nashville, TN: Holman Bibles, 2019), 1536.
고린도후서 10:4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10:4 The weapons we fight
with are not the weapons of the world. On the contrary, they have divine power
to demolish strongholds. 10:5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10:5 We demolish arguments and every pretension that sets itself
up against the knowledge of God, and we take captive every thought to make it
obedient to Christ.
10:3–5 By strongholds (10:4), Paul isn’t talking about physical fortresses but about destructive patterns of thought that lead people astray and hold them hostage to sinful, harmful, and addictive behavior. This is accomplished through blocking the knowledge of God (10:5) from penetrating the mind and life of the believer. If addictive behavior is present in a person’s life, that behavior is not the stronghold but merely its fruit. Strongholds can only be demolished by the knowledge of God—that is, by truth. As Jesus told his disciples, “The truth will set you free” (John 8:32). When your relationship to the living Word connects to the written Word, “you really will be free” (John 8:36). If you’re not taking every thought captive to obey Christ (2 Cor 10:5) and are instead succumbing to a stronghold, it’s because you either don’t know the truth or aren’t making use of the truth you know 견고한 진 : 바울은 물리적 요새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타락하게 만들며 죄가 되고 해롭고 중독적인 행동에 인질처럼 잡고 있는 파괴적인 사고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신자의 마음과 삶에 침투하지 못하도록 차단함으로써 이루어집니다. 중독성 있는 행동이 개인의 삶에 존재한다면, 그 행동이 요새가 아니라 단지 그 열매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요새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 즉 진리에 의해서만 무너질 수 있습니다. 살아계신 말씀인 예수님과 기록된 말씀이 연결될 때에 당신은 참으로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그리스도에게 순종하기 위해 모든 생각을 사로잡지 않고 오히려 견고한 진에 굴복하고 있다면, 그것은 진리를 모르거나 혹은 알고 있는 진리를 활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Tony Evans, The Tony Evans
Study Bible
(Nashville, TN: Holman Bible, 2019), 1374.
10:5 salvation, Knowledge of God—The world
scorns the gospel and proudly sets up clever arguments against it. God’s people
destroy such arguments knowing that true knowledge of God comes only through
faith, not through human reason. We should bring every thought into relation to
Christ. All of our thinking should have a consistent unity that comes from
having Christ at the center. Salvation is based not on hidden or philosophical
knowledge, but on relational and knowledge of God that comes through Jesus Christ
and the Holy Spirit.
Holman Bible Publishers, CSB Disciple’s Study Bible: Notes (Nashville, TN: Holman Bible Publishers, 2017), 1806.
디모데전서 3:15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3:15 if I am delayed, you
will know how people ought to conduct themselves in God's household, which is
the church of the living God, the pillar and foundation of the truth.
3:15 The church is called to be the pillar and ground of the truth. It is the church’s calling to hold forth the truth and confess it freely, over against all deceit and heresy.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가 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모든 거짓과 이단에 맞서 진리를 지키고 자유롭게 고백하는 것이 교회의 소명입니다.
Joel R. Beeke, Michael P. V. Barrett, and Gerald M. Bilkes, eds., The Reformation Heritage KJV Study Bible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4), 1756.
에베소서 4: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4:15 Instead, speaking the truth in love, we will in all things
grow up into him who is the Head, that is, Christ.
4:15, 25, 29–31 family, Communication—Even though addressed to the church as the family of God, these verses apply equally well to family relationships in the home. Honesty and helpfulness are encouraged, whereas lying, slander, and rage are condemned. See note on Col 3:8–10. The word structure in v. 30 suggests that unwholesome language grieves the Holy Spirit, who is present in the church or home at all times. 이 구절은 비록 하나님의 가족인 교회에 관한 것이지만, 가정 관계 안에서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정직과 돕는 것은 권장되지만, 반면에 거짓말, 비방, 분노는 정죄 받는 것입니다. 30절에서 단어의 구조는 불건전한 언어가 교회나 가정에 항상 계시는 성령님을 근심하게 한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Holman Bible Publishers, CSB Disciple’s
Study Bible: Notes
(Nashville, TN: Holman Bible Publishers, 2017), 1837.
4:15 Speaking the truth in
love suggests that all that believers say or do should be honest and true,
and said or done in a loving manner.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라는 것은, 신자들이 말하거나 행동하는 모든 것이 정직하고
진실해야 하며, 사랑하는 방식으로 말하거나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Earl D. Radmacher, Ronald
Barclay Allen, and H. Wayne House, The Nelson Study Bible: New King
James Version
(Nashville: T. Nelson Publishers, 1997), Eph 4:15.
4:15 The truth must not be used as a club to bludgeon people into acceptance and obedience but must always be presented in love. The truth leads the Christian to maturity, which is defined here as growing up into Christ. As head, Christ leads, directs, and guides the body (see 5:23; 1 Cor. 11:3). 진리는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순종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때리는 몽둥이로 사용되어서는 안되며 언제나 사랑으로 제시되어야 합니다.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2269.
히브리서 10: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10:25 Let us not give up meeting together, as some are in the
habit of doing, but let us encourage one another--and all the more as you see
the Day approaching.
10:25 The Day refers to Judgment Day. Some of the Hebrews were neglecting the gatherings of Christians to worship. It is possible that some avoided public worship to avoid persecution. Here Scripture urges all believers to keep on gathering together for worship. These verses highlight some of the blessings of gathering for worship. Believers spur each other on to live their faith (verse 24) and encourage each other until Jesus returns on the Last Day. 그 날은 심판의 날을 가리킵니다. 히브리인들 중 일부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 그리스도인들이 모이는 것을 등한시하고 있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박해를 피하기 위해 공적 예배를 피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성경은 모든 신자들이 예배를 위해 계속 함께 모일 것을 촉구합니다. 이 구절은 예배를 위해 모일 때 얻을 수 있는 몇 가지 축복을 강조합니다. 성도들은 예수님께서 마지막 날 재림하실 때까지 서로 격려하며 믿음을 실천하도록 서로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것입니다.
The Wartburg Project, Holy Bible: Evangelical Heritage Version Study Bible (Midland, MI: Northwestern Publishing House; Wartburg Project, 2019), Heb 10:25.
에베소서 2: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2:10 For we are God's
workmanship, created in Christ Jesus to do good works, which God prepared in
advance for us to do.
2:10 This is a thought-provoking statement: God prepared in advance opportunities for us in our lives to do good works—the only question is whether we will, in thanks to Christ, use those opportunities as we walk the path of life that he lays out for us. 이것은 시사하는 바가 깊은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에서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미리 예비해 두셨습니다. 유일한 문제는 우리가 그리스도께 감사하며 그분이 준비해 놓으신 인생의 길을 걸을 때에 그 기회들을 사용할 것인지의 여부입니다.
The Wartburg Project, Holy Bible: Evangelical Heritage Version Study Bible (Midland, MI: Northwestern Publishing House; Wartburg Project, 2019), Eph 2:10.
골로새서 1: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1:13 For he has rescued us from the dominion of darkness and
brought us into the kingdom of the Son he loves, 1: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1:14 in whom we
have redemption, the forgiveness of sins.
1:13 He has delivered us. Just as God rescued his people from slavery in Egypt under the old covenant (Ex. 6:6; 14:30), he has delivered them now from the domain of darkness, that is, from the realm of Satan and the powers of evil (see Acts 26:18). the kingdom of his beloved Son. This kingdom is the same as the “kingdom of God” (or “kingdom of heaven”) that Jesus spoke of (e.g., Matt. 3:2; Mark 1:15; etc.), which was central to Jesus’ teaching throughout the four Gospels. Jesus is the agent of God who will presently reign (1 Cor. 15:24) until he hands his kingdom over to the Father, when the kingdom of God comes into its full manifestation at the end of the present age. The emphasis here is on the present lordship of Christ. 하나님께서 옛 언약에 따라 자기 백성을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구원하신 것처럼, 이제는 그들을 흑암의 권세, 즉 사탄과 악의 세력으로부터 건져내셨습니다.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 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나라”와 동일한 것이며, 이는 사복음서 전체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의 중심입니다. 예수님은 현 시대의 마지막에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히 나타날 때, 자신의 왕국을 아버지께 넘겨줄 때까지 현재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대리자이십니다.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현재의 주권에 있습니다.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2294.
사도행전 1: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1:3 After his suffering, he
showed himself to these men and gave many convincing proofs that he was alive.
He appeared to them over a period of forty days and spoke about the kingdom of
God.
1:3 gave many convincing proofs … over a period of forty days. Jesus’ resurrection is therefore beyond dispute (cf. 1 Cor 15:3–8). His teaching concerned the “kingdom of God,” which was also the central theme of his teaching in the Gospel of Luke (the expression occurs 32 times; see Luke 4:43). In its broadest sense, the “kingdom of God” refers to God’s sovereign rule over his creation, a rule that Jesus restores by bringing forgiveness of sins and reconciliation through his life, death, and resurrection. Though the phrase “kingdom of God” occurs only six times in Acts (here; 8:12; 14:22; 19:8; 28:23, 31), it appears prominently at the beginning and end, framing the entire book.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설득력 있는 많은 증거들을 제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논쟁의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그분의 가르침은 누가 복음에 나오는 그의 가르침의 중심 주제이기도 한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가장 넓은 의미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피조물에 대한 그분의 주권적인 통치를 의미하며, 예수님께서 그의 삶과 죽음, 부활을 통해 죄 용서와 화해를 가져오심으로써 회복하신 통치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라는 문구는 사도행전에서 여섯 번만 나오지만, 이 문구는 사도행전의 시작과 끝 부분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면서 책 전체를 구성합니다.
D. A. Carson, “The Gospels and Acts,” in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ed. D. A. Carson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1952.
골로새서 1: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개역개정) 1:18 And he is the head of
the body, the church; he is the beginning and the firstborn from among the
dead, so that in everything he might have the supremacy. (NIV)
1:18 head. Refers to Christ’s supremacy over the church. Christ is the supreme ruler of the cosmos (even angels worship him, Heb 1:6), and he is present as the head of the church. The head not only directs and governs the body but also gives it life and strength (Col 2:19). The church exists not to satisfy itself or to ensure its institutional survival but to fulfill the purposes of its head. firstborn from among the dead. Christ’s resurrection (1 Cor 15:20; Rev 1:5). He was the first to be raised from the dead never to die again, and his resurrection ensures the resurrection of those who follow him. 머리라는 것은,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최고가 되심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는 우주의 최고 통치자이시며, 교회의 머리로 현존하십니다. 머리는 몸을 지휘하고 다스릴 뿐만 아니라 생명과 힘을 줍니다. 교회는 스스로를 만족시키거나 제도적 생존을 보장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그분은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살아나셨고 다시는 죽지 않으셨으며, 그분의 부활은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의 부활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Douglas J. Moo, “The Letters and Revelation,”
in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ed. D. A. Carson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2142.
4. RCB의 관점으로
이 챕터를 통해서 저자는 교회의 중요성을 설명한다. 그리고 저자의 설명을 통해서 교회가 무엇인가에 대하여 성경적으로 깊이 고민해 보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자신의 교회를 세우셨으며, 감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약속하신 것이 너무나 큰 위로가 된다. 마치 교회가 쇠락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시대에, 교회가 비난의 대상이 된 이시대에, 여전히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주인 되심을 고백하며, 또한 그분께서 우리의 모든 부족함을 채우시고 능히 이기게
하실 것임을 믿고 확신하게 된다.
저자에게 있어서 아쉬움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교회에 대한 설명 속에서 마치 예수님께서 한걸음 뒤로 물러서신 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과연 초대교회가 세상을 놀라게 한 그 이유가 저자의 설명처럼 그저 “하나님의
나라가 실제로 이 세상에 임했다는 것을 믿은 것” 때문인가? 아니면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그분이야 말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음으로 그들의 마음이 담대해졌기 때문인가? 아마
이 모든 것들이 함께 포함될 것인다. 그러나 현재 이 책의 흐름 속에서 하나님 나라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실제로 성경이 말씀하시는 그분의 교회를 친히 세우시는 예수 그리스도,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교회를 다스리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성경적 이해가 다소 약화된
느낌을 받는다.
저자가 설명하는 교회의 특징인 진리와 정의에 기초한 사랑이라는 것은 논리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소 추상적으로 느껴진다. 놀랍게도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가 너를 사랑한 것 같이”라는 구절을 해석할 때에, 단지 사랑을 위한 희생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사실상 그 말씀의 문맥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자신을
가장 낮추신 희생하는 사랑의 모습을 배경으로 한다. 물론 저자의 말이 넓게 보아서는 틀린 말은 아니지만, 과연 예수님께서 의도하신 그 의미를 충분히 드러냈는가라는 점에서는 아쉬움이 있다. 저자는 이 책의 전체 흐름을 통해서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그 정의가 실현 되는 교회를 항상 염두에 두고 있다. 그것은 참으로 옳은 논리이지만, 한편으로는 성경이 강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전적인 희생과 사랑을 약화시키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저자가 이 부분에서 약간의 모순을 보이는 듯 하다. 정의에 기반한 사랑이 필요하다고 말하다가 갑자기 사랑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질적으로 사랑이 무엇인가를 질문하게 된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죄인이 변하는 것에 대하여 다시
질문하게 된다. 저자가 이야기한 것처럼, 초대 교회에 로마
시대에 사람들이 기독교를 보고 놀란 것은, 그들이 말 그대로 “조건 없는 사랑”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진리가 바로 서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무조건적으로 품고 인내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굳이 숫자로 표현하자면, 열번중에 아홉번은 사랑의 인내가 필요하다.
흥미롭게도 바울 사도는,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말하라” 라고 말씀하신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드럽고 예의있게 상대방을 존중하며
사랑을 담아서 이야기하는 방식을 알지 못하며 평생동안 제대로 경험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과연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진리를 제대로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매우 오랫동안 죄인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베풀며 그들을 기다려 주어야 한다. 사랑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예수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기꺼이
내어 주신것처럼, 우리도 기꺼이 누군가에게 그렇게 행동해야만 한다. 그것이
교회의 가장 중요한 본질이다. 또한 더 나아가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고 가르치는 것을 부지런히 훈련해야
한다. 그러므로 크리스천 북클럽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 왜냐하면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는 실제적인 훈련의 장이 바로 크리스천 북클럽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교회의 특징을 설명하면서, 비진리와
유사 진리와 싸워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은 탁월하다. 그러나 조금 더 초점이 맞추어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바울 사도는 분명하게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라고 말씀하신다. 교회는 처음부터 그리스도의 교회이며, 그분의 다스림을 받는 곳이며, 모든 생각의 초점이 그리스도가 되어야 하며, 우리의 모든 사고가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것이 교회이다.
교회의 목적은 단순히 비진리와 싸우는 것이 아니다. 교회의 진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희생하신 방식, 예수 그리스도께서 걸으신 삶의 모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요구하신 교회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더 깊이 탐구하고 고민해야 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반드시
자신의 삶의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할 수 있도록 공동체 안에서 훈련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애쓰고 살아온 성도 모두의 지혜를 나누고 토론하고 종합해야만 한다. 놀랍게도 이것 역시 바로 크리스천
북클럽이 아닌가?
사실상 저자는 책을 통해서 세상의 회복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했지만, 실제로 그 회복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런데
마지막 챕터에서 드디어 그것이 명확하게 드러났다. 그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것으로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다. 그 크기와 상관없이 자신이 잘하는 것과 하고 싶은 일 속에서 비록 작더라도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라는 저자의
조언은 매우 실제적이다. 사람은 가지고 있는 재능과 환경이 모두 다르다. 한 사람이 세상을 모두 책임질 수 없으며 그것은 세상이 주장하는 허영심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저자의 탁월한 조언을 통해서 평범한 한 사람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실제로 행해야 하는 규모와 방향을
구체적으로 정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한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
단순히 섬기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세상을 섬기는 그 방식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사역은 그 크기와 상관 없이 그리스도의 아름다우심이 드러나야 한다. 세상이 감히 보여줄 수 없는 정직함과 순수함으로 섬겨야 한다. 화려한
외형이 아니라 오직 한 영혼에 대한 진정한 관심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교회의 목적을 분명히
알았다면 이제는 삶에서 담대하게 실천하고 거침없이 전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섬기는 이 선한
일을 위하여 우리에게 인생을 선물로 주셨다. 이것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 교회의 존재 목적이다. 이것보다 더 가슴 벅찬 소식이 어디에 있겠는가?
5. 적용
1) 중요한
것은 사역의 크기가 아니라 사역의 내용입니다. 현재 당신이 섬길 수 있고 섬겨야 하는 교회의 사역은
무엇입니까? 또한 현재 당신이 섬길 수 있고 섬겨야 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2) 당신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사랑하는 법과 정의롭게 사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까? 어떻게 해야 그것을 평생동안
더 탁월하고 효율적으로 배울 수 있겠습니까?
* 추가로 읽어볼
자료
- 내가 살아가는 방식 자체가 하나님의 진리에 근거한 방법이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이 지정하신 무기를 사용한다면-우리의 재능을 그분의 발 앞에 내려 놓고, 우리의 자만심과 야망에 대해 죽고, 성경의 도덕적 원칙에 순종하고,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기독교 세계관의 관점을 따른다면-설령 외적인 표준으로는 우리가 패배한 듯이 보일지라도 사실은 승리한 것이다…
자기 입장을 분명히 표현한 종업원 하나가 궁극적으로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할 수도 있다. 오히려 일자리를 잃을 위험도 있다. 그가 그런 위험을 홀로 감수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교회의 책임이다. 레슬리 뉴비긴이 기록했듯이, 동료 그리스도인들은 권력을 향해 진실을 말하는 자들을 지원할 준비와, 그로 인한 대가를 지불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도덕적 용기 때문에 생계의 위협을 받는 사람들을 재정적으로 후원할 준비까지 해야 한다…
- 교회의 공동체과 그 본질을 온전히 구현해 내야 한다는 측면에서
과거에 쉐퍼를 알던 이들은, 그가 미국에서 대규모 청중을 상대로 강연하고 대규모 기관을 세울 기회를 포기한 것을 두고 미친 짓과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일부는 그가 자기 은사를 낭비했다고 비난하며 성을 내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다니 그것이 대체 무슨 사역인가 하고 그들은 물었다. 나중에 쉐퍼는 어느 설교에서, 설령 우리가 수천 명에게 강연할 수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 사실에 대해 죽고, 한번에 한두 사람에게 이야기하려 해야 한다고 했다. 확실히 그의 통찰은, 때로 악의에 찬 비난까지 감내하면서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는 용기의 열매였다. 그것은 결코 추상적인 생각이 아니었던 것이다…
로마제국 치하의 초대 교회가 그 이웃에게 가장 감명을
주었던 것은, 신자들 사이에 목격할 수 있었던 사랑의 공동체였다. “보라, 저들이 얼마나 서로를 사랑하는지”라고
사람들이 말했던 것이다. 각 시대마다 복음에 대한 가장 강력한 증거는 말이나 논증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말과 행위를 통해 서로서로 사랑함으로써 하나님의 성품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 낸시
피어시, 완전한 진리, p693-699
* "하나님 나라의 도전" 북클럽 인도자용 자료모음
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3/09/blog-post.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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