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약
인간이 왜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가? 문제의 원인을 보아야 한다. 인간의 본성이
자기 중심적이라는 것이 인류의 근본적인 문제이다. 인간은 자신의 이익이 침해되거나 더 큰 이익을 얻고
싶을 때에 야만성을 드러낸다. 이런 세상에서 자신을 보호할 힘이 없는 약자들은 피해를 본다. 그들의 눈물이 끊이지 않는다. 경쟁적인 세상이기에 강자조차 더 강한
자가 되기 원하며 약자를 돌아보지 않는다.
놀랍게도 성경의
하나님은 자기를 알리실 때에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들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별볼일 없는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셨다. 과부와 고아는 사회에서 가장 약한자를 의미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약자가 노력하지 않고 게을러서 그렇게 되었다고 말하지만, 대개는 불의한 세상과 구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하나님은 약자의
하나님이시며, 약육강식을 싫어하신다. 그러나 세상은 여전히
그러게 돌아간다. 이유는 무엇인가? 온 우주와 인간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몰아내고 그 중심에 자신을 놓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 졌기에 인간은 원래 하나님의
소유이다. 인간은 지정의를 바탕으로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을 경영하도록 위임 받았다.
그러나 인간은 중심에
계셔야 하는 하나님을 제거해버렸다. 생명의 근원이자 왕이신 하나님을 버렸다. 그리고 하나님을 대신할 유사 신과 유사 왕을 붙들었다. 그러나 하나님
외에 어떤 존재도 인간에게 생명을 주지 못한다. 하나님을 제거한 상태로는 인간의 본질적 질문들은 결코
답을 찾을 수 없다. 또한 어려움을 당한 자들의 사정을 돌아보지 않게 된다. 유사 신과 하나님을 동시에 믿는다면, 하나님은 신경 안정제 이상이
될 수 없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잃어버린 것은 모든 것을 잃은 것이다.
2. 책에서 한마디
“약자의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세상의 약자와 소수자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사회구성원으로서 그들이 갖는 권리를
지켜 주는 것이 마땅하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이야기하는 것과 하나님을 왕으로 믿고 진정으로 따르는 것은
다르다.”
3. 성경적 관점에서
보기
창세기 1: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1:26 Then God
said, "Let us make man in our image, in our likeness, and let them rule
over the fish of the sea and the birds of the air, over the livestock, over all
the earth, and over all the creatures that move along the ground."
1:27 The term image of God can be seen as describing the ways in which man is different from all other created beings. It describes how humans resemble God in their ability to think, to communicate, to understand right and wrong, to be creative, and to experience relationships with God and with one another.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용어는, 인간이 다른 모든 피조물들과 다르다는 것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은, 인간이 생각하고, 의사 소통을 하고, 옳고 그름을 이해하고, 창조적이며, 하나님과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경험하는 능력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닮았는지 설명하는 것입니다.
J.
I. Packer, Wayne Grudem, and Ajith Fernando, eds., ESV Global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2012), 38.
출애굽기 22:22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22:22 "Do
not take advantage of a widow or an orphan.
22:23 네가 만일 그들을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으리라 22:23 If you do and they cry
out to me, I will certainly hear their cry. 22:24 나의 노가 맹렬하므로 내가 칼로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의 아내는 과부가 되고 너희 자녀는 고아가 되리라 22:24 My anger will be aroused, and I will kill you with the
sword; your wives will become widows and your children fatherless.
22:21 you were
aliens The memory of 400 years of slavery is often the given
rationale for obeying the word of Yahweh (e.g., 20:2; Deut 5:15). Israel is not
to oppress, because it too was oppressed. The memory of bondage in Egypt
continues to play an active role in Jewish tradition, especially in the
celebration of Passover (Exod 12–13). 너는 나그네였음이라 : 400년간의 노예 생활에 대한 기억은 종종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는 근거로 제시됩니다. 이스라엘도 압제를 받았었기 때문에 누군가를 압제하면 안됩니다. 이집트에서의 속박에 대한 기억은 계속적으로 특히 유월절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22:22–24 These verses echo the story of the
exodus out of Egypt and the punishment of Pharaoh’s armies. When the cries of
the oppressed reached God’s ears, He acted, and began a series of events that
led to the suffering of Egypt (2:23–25; 3:7–8; 7:14–15:21). The same fate is
promised to those who oppress the most vulnerable in society—the fatherless and
the widow. 이 구절은 애굽에서 탈출하는 이야기와 파라오의 군대가 받는 형벌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억압받는 자들의 부르짖음이 하나님의 귀에 들렸을 때, 하나님께서는 행동하시고 이집트에 고통을 내리시는 일련의 사건들을 시작하셨습니다.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 즉 고아와 과부를 억압하는 이들에게도 동일한 운명이 내려질 것입니다.
John D. Barry, Douglas Mangum, Derek R. Brown, et al., Faithlife Study Bible (Bellingham, WA: Lexham Press, 2012, 2016), Ex 22:21.
예레미야 2:13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개역개정) 2:13 "My people have committed two sins: They have forsaken
me, the spring of living water, and have dug their own cisterns, broken
cisterns that cannot hold water. (NIV)
2:13 forsaken me, the … living water … dug their own cisterns. In abandoning the Lord, Israel abandoned the source of “living” (i.e., running) water in favor of stagnant “cisterns” that could not even hold the water that was put in them. In other words, they exchanged the source of true life and peace for empty and deceptive promises, which is all that idols can give. 여호와를 버리면서 이스라엘은 생수의 근원을 버리고, 그 안에 부어진 물 조차 담고 있을 수 없는 웅덩이를 선택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참된 생명과 평화의 근원을, 우상이 주는 전부에 불과한 공허하고 기만적인 약속과 바꾸어 버린 것입니다.
D.
A. Carson, ed.,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1292.
4. RCB의 관점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깊게 성찰하지 않는다.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다. 자신의 거친 말과 태도를 혐오하면서도, 깨어진 관계에 괴로워하면서도, 그리고 삶의 허망함에 몸서리치면서도
정작 그것의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깊이 돌아보지 않는다. 이 책의 탁월한 점은 문제의 증상이 아니라
그 본질을 향해 파고 들어간다는 점이다. 문제의 원인은 단 한가지이다.
인간의 타락한 본성의 “자기 중심성”이다.
김형국 목사님은 글을 풀어내는 실력이 탁월하다.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 그리고 약자와 동행하지 않는 교회의 아픈 현재의 모습을 잘
드러낸다. 이분의 장점은 약자를 향한 진실한 마음이 있다는 것이다. 이분은
자신이 믿는 바를 실천하기 위해서 실제로 부단히 힘쓰는 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충분히 존경 받을 자격이
있다.
또 한편으로는 논리적 우선 순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예민한 부분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키신 이유가, 단순히 그들이 약자였기 때문인가? 그렇다면 약자는 모두 보호받아야
하는 것인가? 예를 들어서 성경에서 분명히 죄라고 선언한 성적 소수자들 역시 약자라는 이유 때문에 그들은
무조건 보호 받아야만 하는 대상이 되는 것인가? 오히려 약자를 품으시는 하나님이라는 프레임으로 하나님을
한정 지음으로, 죄를 미워하시고 그것을 벌하셔야 하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왜곡하는
것은 아닌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탄식을 들으셨다. 그러나
그들이 단순히 약자였기 때문에 구하신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분의 백성을 구원하신 것이다(출 2:24-25). 이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물론 교회는 마땅히 고아와 과부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며 마땅히 연약한 자들을 돕고 사랑해야
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세상의 강자
약자 모두가’ 하나님 앞에 죄인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죄 사함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형국 목사님이 스스로 이야기한 것처럼, 강자는 절대로 자신을 강자로
생각하지 않는다. 강자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에게 당신이 강자가 아니라고 혹은 당신이 자기 중심적 사람이라고
이야기하는 자체가 과연 어떤 긍정적인 영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 다시 말해서 회심을 가져올 수
있는가?
그러므로 아담과 하와의 죄에서 시작한 인류 타락의 역사를 단지 강자와 약자의 프레임만으로 축소시켜서는 안된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는 성경적인 세계관을 붙들고 고수해야 한다. ‘액체 근대’의 시대에 성경적으로 생각하고 성경적으로 실천하기 위해서 사력을 다해야 한다. 강자이든 약자이든 ‘자신이 자기 중심성에 빠진 하나님께 대적한 끔찍한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할 때만이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수 있다.
루이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교회가 약자를 돌아보지 않는
것은 ‘여전히 자신을 바라볼 때에 불완전한 피조물 정도로 보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매 순간 내가 하나님
앞에 반역자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제서야 하나님의 그 깊은 은혜를 발견하며 지속적으로 자기 중심성과
싸울 수 있다. 그리고 그제서야 자신이 대하는 그 어떤 약자라도 진정한 긍휼과 사랑으로 품고 도울 수
있을 것이다.
5. 적용
1) 나
자신은, 세상의 약자들을 향해서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으며, 어떤
실천을 하고 있습니까?
2) 우리
교회는, 세상의 약자들을 향해서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으며, 어떤
실천을 하고 있습니까?
* 추가적으로 읽어볼
자료
- 인간은 혼란 속에 있고, 자칭 전문가를 따라가는데 여념이 없다는 측면에서
사람들은 오늘날과 같은 ‘액체 근대liquid modernity’ 속에서
무언가 붙잡을 만한 것을 찾느라 필사적이다. 액체 근대는 사회학자이자 철학자인 지그문트 바우만의 표현으로
추종하기로 문화적으로 합의된 모델이나 참조할 만한 기준이 없는 혼란스러운
역사적 시기를 뜻한다.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폭우가 몰아치는 바다로 우리를 몰아넣는 시기다. …
시간의 검증을 거친 전문가를 찾아라. 자칭, 타칭 전문가라 주장하는 사람들을
경계하라. 연구 결과를 보여줘야 하는 자연 과학(물리학, 수학, 화학)에서 전문가가
모방적으로 선택될 가능성은 적다. 그러나 단지 책 한 권을 출간했다는 이유만으로 하룻밤 사이에 ‘생산성’
전문가가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핵심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것을 믿고 싶어 하는지에 상관없이 우리가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있도록 지식의 원천을 조심스럽게
큐레이션하는 데에 달려 있다.
너 자신의 이유로 살라 | 루크 버기스, 최지희 저
- 회개라는 것은 결코 자기 중심적인 인간의 개선 정도가 아니라는 측면에서
그렇다면 인간이 빠져
있는 ‘곤경’이란 어떤 것일까요? 스스로 독립적인 위치에 서려고 한 것, 스스로 자기의 주인인 양 행세하려
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타락한 인간은 개선의 필요가 있는 불완전한 피조물이 아니라 손에 든 무기를
내려놓아야 하는 반역자입니다. 무기를 내려놓고 항복하면서 잘못했다고 말하는 것, 그
동안 잘못된 길을 걸어 왔음을 깨닫고 삶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준비를 하는 것, 이것이 이 ‘곤경’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렇게 항복하는 과정—전속력을 다해 뒤로 도는 동작—을
그리스도인들은 ‘회개’라고 부릅니다. 회개는 장난 삼아 할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닙니다.
이것은 단순히 굴욕을 감수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입니다. 회개한다는 것은 수천 년 간
익혀 온 자기 만족과 자기 의지를 버린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여러분 자신의 일부를 죽이는 것, 일종의 죽음을 겪는 것을 뜻합니다.
순전한 기독교 | C. S. 루이스, 이종태, 장경철 저
* "하나님 나라의 도전" 북클럽 인도자용 자료모음
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3/09/blog-post.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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